차
례
이달의
법문 /IMF시대의 불자의 자세 정각도량
/병의 근원은 무명 정각논단
/ IMF시대의 불교사회복지 신행상담
/ "상대방의 결점" 불전의
설화 /환생(還生)이야기
불교와
어문학 / 구결능엄경과 능엄경언해(Ⅱ)
법화경
공부 / 관음보살의 가피력 불자탐방
/ 좌선회 회장 이금석 교수님 불심의
창 / 부처님 나라 불교의
상징들 / 연꽃의 의미
이야기로
배우는 불교 / 마등가와 인간평등 불서산책
/ 붓다의 호흡과 명상 가람의
진수 / 미타도량(彌陀道場) 부석사
@ 이달의 법문
/IMF시대의 불자의 자세
오녹원 큰스님
여러분 세상이라는 게 참으로 간단치 않아요. 누가 이 봄이 이토록 어렵고 어두울 줄 알았겠이요. 春來不似春이라더니 올 같은 해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란 한 시대, 시대가 이어지고 연속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리 고 시대, 시대 마다엔 나름대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풀어야 할 話頭가 있게 마련이란 말씀이예요.
날더러 정작원장 스님이 "IMF(국제통화기금) 시대를 살아가는 불교적 지혜"를 오늘 법문에서 말해 달라고 주문하셨는데, 듣고보니 이 시대우리가 풀어야 할 화두를 던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시대의 話頭는 '국가부도의 위기 克服"이라는 것이지. 헌데 이런 거창한 국가 사회적 문제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지혜를 짜서 풀어야 할 것이지 어찌 우리같은 山僧이 더구나 이 교육장에서 해결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도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지난해 국내 기업의 총부채는 거의 1천 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실제로 1천 조원의 부채는 평균 20% 의 금리로 추정해온 올 한해 이자만 2백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사실 불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지, 경제를 말하는 종교는 아닙니다. 우리불교는 여러분도잘 알지만 남에게 베푸는 것, 주는 것, 즉 布施를 인생의 第一德目으로 삼고 있는데, 경제란 주는 것만이 위주가 아닌 받는 것도 중시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경제와 불교는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인생을 떠나서 경제가 없고, 또 마음을 떠나서 人生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각원장 스님이 내게 준 話頭의 意味를 알만도 합니다.
百丈선사가 "一曰不作이면 一日不食"하라는 서릿발같은 淸規를 지어서 중국 唐代에 모든 선승들이 이를 지키도록 독려한 일은, 아직까지도 불교승단의 노동정신을 대표하는 말이 되고 있어요.
면벽 참선하는 선사가 왜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야 하는가? 이 도리가 무엇이겠어 요. 여러분! "不作이면 不食" 이게 그 시대의 話頭였기때문야. 도대체 놀고 먹을 줄만 알지 일할 줄 모르니 恒産이 있을 까닭이 없고, 恒産이 없으니 孟子의 말대로 국민들의 恒心이 없어진 것이야. 그러니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일을 통한 생산에 있었던 것이지 다른 게 아니야.
이처럼 百丈선사는 한 시대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었어. 여러분 이제 우리도 생각 좀 해 보자고.
IMF의 구제금융 시대는 누가 불러왔는가?
TV나 신문, 방송을 듣거나 보면IMF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또 더한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들 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우리는 이런 말들이 참으로 잘못 되었다는 것을 우선 깨달아야 해요. IMF는 국제 금융기구인데, 이 기구가 우리 경제를 오늘날 이렇게 만든 것처럼 말하며, 어렵게 된 처지를 은연중 "네 탓"이란 식으로 비난들하고 있는데, 불교적으로 보면 이것도 아주 잘못된 識 놀음에 떨어진 이예요. IMF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잘못한 때문이지. 모두가 우리들 마음이 識놀음, 그것도 잘못된 虛僞意識에 놀아났기 때문이란 말씀이예요.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因果를 믿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국가부도의 위기는 내 탓이지 결코 네 탓은 아니며, 우리 모두가 마음을 잘못 다스린 때문이예요, 허울좋게 世界化다, OECD의 선진 멤버다, 21 세기 태평양시대 주역이다. 운운하면서 부풀대로 부풀어 자화자찬에 도취한 것이야.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누구고 간에 국민모두가 세계가 한국을 中心으로 存在하는 양 생각하면서 마구 부풀리고 마구 써대면서 흥청망청 댄 것이지 기업이든 가정이든 분수에 맞게 처신한 게 아니라 모두가 거품 속에 산 것 이란 말씀이요.
내가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 우리나라 위기를 국민들이 극복하려면 正道로사는 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교에서 정도란 我執의 소멸을 통해 종교적 생명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게 다름 아닌 八正道예요. 우리나라 국가 부도위기는 모두가 正道를 잃은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보았더라면(正見) 왜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터무니없는 달러 빚을 졌겠습니까.
正見 바로 보고
正思惟 바르게 생각하며
正語 바르게 말하고
正業 바른 일을 하며
正명 바르게 생활하고
正精進 바르게 노력하며
正念 바르게 기억하고
正定 바르게 집중하는 것이
쉽게 말해 부처님 법인데, 우리들이 이렇게만 생활할 수 있다면 과욕을 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원대한 꿈을 갖는 것은 매우 발전적이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은 허욕입니다. 虛欲은 禍를 부르는 것이지요. 교수, 직원, 학생 여러분!
나는 여러분께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하기 전에 八正道에 입각해서 살아 가지고 강조하고자 합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바르게 살자 것이고, 바르게 살다보면 원만한 어려움은 그리 힘들지 않게 克服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開限, 즉 눈을 뜨라는 말을 제일먼저 가르칩니다.
무엇에 눈을 뜨라는 것인가? 여덟 가지 바른길에 눈을 뜨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국가적인 경제난도 정견하고 정업하며 정명하면 빠른 시일 내에 극복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 정각원장께서 좋은 話頭를 주어 여러분과 八正道를 새겨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東南亞 불교인들은 禪家의 "이 뭣고?"를 찾기보다는 五戒 八正道를 더욱 중시합니다. 인간은 깨우침도 중요 하지만, 우선 생활하고 사는 것도 생명활동이기에 이같은 佛道의 닦음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 정각도량
/병의 근원은 무명
이법산스님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외로운 것으로 치자면 병고(病苦)보다 더 괴롭고 외로운 것은 없다. 몸이 병들거나 마음이 아플 때는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어떤 즐거운 일도, 몸을 편안하고 마음을 기쁘게 해줄 수는 없다, 세상에 가장 귀중한 것은 벼슬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오직 건강일 따름이다, 심신이 피곤할 때 세상의 모든 것이 귀찮고 번거로울 뿐이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를 괴로움으로 규정하지만, 사실 다지고 보면 태어나는 고통이야 엄마가 산고(産苦)를 치렀지 정작 태어나는 본인이야 설사 고통이 있었을지언정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태어났으나 태어남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그다지 실감나는 고통이 아니다. 늙는 것은 세월 따라 머리가 희어지고 근력도 약해지며, 모양이 쭈그러들어 몸이 자유스럽지 못하니 젊은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소외감을 느끼게 됨에 쓸쓸하고 서글퍼지게 될 뿐이지 늙음 자체가 그다지 고통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죽음도 생각 해 보면 얼마나 괴로운지 경험해 본 사람 이 없기 때문에 실제는 알 수 없다. 설사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괴롭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죽음이란 끝이라는 의미에서 두려울 뿐이며, 보내는 사람으로서는 안타까울 뿐, 그다지 괴롭다고는 할 수 없다.
병! 병이란 참으로 괴로운 것이다. 병은 죽을까 두렵고 살을 저미고 마음을 도려내 는 듯 참으로 고통스러운 존재다. 병은 어떤 종류의 것이나 괴롭지 않음이 없다. 몸도 마음도, 가정이나 사회. 정치 경제 나아가 천지자연에 이르기까지 병들면 썩게 되고 괴롭게 된다.
천지만물 가운데 주인이 있다면 제각기 주인 아님이 없겠지만, 우주자연을 활용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영특한 두뇌를 가진 인간뿐이다. 인간은 어느 생명보다 자신에 대한 의지력이 강하고 욕망에 대한 집착 또한 적극적이며, 강력하기 때문에 우주의 주인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오직 거기에 의존해야만 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보호해야 한다. 이와 같은 법칙은 국가. 사회. 직장. 가정 등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들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환경적인 모든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단체이든 모든 구성원 개개인이 공동체적 주인의식을 가질 패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는 보존상 채가 양호하여 이물질에 오염되지 않고 병들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주인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환경 관리를 잘못하면 환경만 더렵혀진다.
썩어가는 환경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생명이 어찌 병들지 않고 편안할 수 있으리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국민이 어리석어 국가의 통치자를 잘못 선정하면 나라가 병들어 국민이 고통스럽게 된다. 개인의 육체도 주인인 마음이 어리석어 관리를 잘못하면 몸만 병들어 고통을 받게 된다.
이 세상에 어리석음만큼 무서운 악마는 없다. 어리석음은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잘못을 뉘우치지 못한다. 한마음이 어리석어 자신을 잘 살피고 보호하지 못하면 몸이 나쁜 행위를 하여 자신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생명들까지 괴롭히게 된다. 그러므로 우선 내 마음이 어리석지 않아야 내 몸이 편안하고 나의 밝은 마음과 건강한 몸이 가정과 이웃 등 모든 더불어 하는 환경을 건전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무명업식 때문 에 병고로 고통받음을 직시하시고 거듭되는 괴로움이 바다에서 헤어나려면 한시바삐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무명업식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부처님 당시의 유마힐거사는 병을 빙자하고 누워있었다.
부처님께서는 10대 제자들을 차례로 보내어 유마힐의 병문안을 하도록 했다. 병은 왜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낳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병은 무명(無명)으로부터 애착이 일어나 생겼고, 모든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고 있습니다.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生死)에 들고나고 죽음이 있으면 병이 있게 마련입니다. 중생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병은 대비심(大悲心)에서 생깁니다."
유마힐은 보살의 화신이다.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무명업식을 벗어나 병으로 인한 괴로움을 스스로 해결하게 하기 위하여 병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병든 사람이 생각해야 할 것을 말하였다.
"나의 병은 모두가 전생의 망상과 그릇 된 생각과 여러 가지 번뇌 때문에 생긴 것이지 결코 병에 걸려야 할 실체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 가지 요소(흙. 물. 불. 바람)가 결합되어 몸이라고 가칭하였을 뿐 네 가지 요소에는 실체로서의 주체는 없으며, 몸에도 역시 '나'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 병이 생긴 것은 모두가 '나'라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병은 어제의 어리석음에 있고, 오늘의 무명은 내일의 병을 낳을 수 있다. 몸 자체는 원래 병이 없는 것이지만 주인 인 마음의 어리석은 짓으로 병을 만들어 고통받는 것이다. 어리석은 마음 한 생각 깨달으면 다시는 새로운 고통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애욕은 집착을 버리면 어리석음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 정각논단
/ IMF시대의 불교사회복지
이혜숙
개인적으로 불교와 사회복지의 깊은 연관을 추궁하여 온 지도 20년이 되어간다. 끊임없이 불교계가 특히 사회복지 분야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 실천의 능동적인 주체여야 한다는 확신을 더해왔으나, 불교계의 그 분야는 기대만큼 충분한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마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실상 사회복지가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불교계도 그동안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성장과 역량을 자타간에 다시금 입증해 보여야 할 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회복지가 최우선의 과제'라는 표현이 뜻밖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흔히 말하듯 경제만이 우선인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가 결과적으로 사회복지를 또한 당면과제로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난국이라 하고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의 과제라고도 하며 이 중증의 치료와 후유증은 10년 이상이 갈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각양각색의 사회문제들 을 파생시켜서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사회복지의 대책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한때 '복지국가지향'이라는 표어를 단 정부 아래서 사회복지 연구는 주로 제도와 정책 의 틀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었으나 그도 정상적인 성숙의 과정을 마치기 전에 오늘의 위기가 닥친 것이라고 본다. 한편 그러는 동안에 민간 사회복지주체로서 종교계는 정부 위탁사업체로 선정되기에 부심하여 양적으로 확장을 본 것도 사실이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게 적잖은 수탁시설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 어려운 재정적 여건 속에서 정부가 아무리 사회복지 재원을 확충하고자 하여도 민간사업에 전과 같은 지원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사회보장 의 기본인 실업대책, 최저생계대책마저도 그 예산 규모와 재원 마련조차 투명하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데 돌이켜 미국의 경우를 보자면, 경제공황 와중에 뉴딜(New Deal) 정책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에는 종사자 20명당 한 명의 사회사업가를 두도록 규정하였다는 것과 1930년과 194O년 동안 사회사업가의 고용이 40,000 명에서 80,000명으로 늘어났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정부로부터는 아직 그처럼 사회복지분야의 고유한 역할을 이용하여 이 난국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려는 방안은 듣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간 사회복지사업 주체들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동. 서양을 막론하고 민간 사회복지실천은 종교계의 지원이 절대적인 것이 사실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만한 비중을 가진 종교계가 한 자리에 모여서 사회복지실천에 있어서의 경험이나 발전을 위한 비판, 제안 등을 함께 나누었던 기억은 없고, 오히려 각각 경쟁적으로 지원 확보나 시설 인 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시안은 이 짧은 글에서 다루려는 바가 아니므로 다른 기회로 미루고 단지 불교계에서의 자기검토의 일환으로 나누고 싶은 몇 가지만 정리해보기로 한다.
2.
불교사회복지의 실천주체는 신도개인을 위시해서 단위사찰 그리고 종단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이며, 가용자원의 규모나 주체의 성격상 그 역할도 조금씩 다를 것이 분명하다. 물론 각 주체들 상호간에 조직체로서의 구성이나 연대감 등도 미약한 지금의 시점에서 획일적으로 역할의 분담을 말하기는 곤란한 점이 있으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서는 장차 자연스럽게 역할이 구분되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기에 불교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각 단위주체별로 그 역할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 불교도 개인은 복지설천의 초석
신도개인의 입장에서 사회봉사의 실천은 사실 불교정신의 개인적 구현에 반드시 필요 한 한 과정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경전 을 읽으면서 얻는 무수히 좋은 말씀들을 참으로 내가 옳다고 믿는다면 그와 같이 내가 듣고 배운 대로 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알고서 행하지 못하는 지식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이며 모르는 경우보다 더 부정적인 업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경전의 가르침은 헤아릴 수도 없이 여기저기서 복지사업의 실천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다른 자리에서 자선사업적인 자원봉사와 사회복지를 구별하여 불교계의 대 사회적 사업들이 전문화되어야 함을 강조해 왔지만, 실상자선사업이든 사회복지사업이든 불교신자 개개인들의 지원이 없어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상황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시련이라고 할 만큼 절박한 시기로서, 정부의 공공기금 지원은 절대부족일 수밖에 없는 가운데, 불교도 개개인의 후원이 크거나 작거나, 단속적이든 지속적이든, 비전문적이든 전문적이든, 모든 것을 모으고 보태서 실천현장에 보내져야 하는 때이다.
예컨대, 보살의 걸을 궁구하는 불교인이라면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四攝法을 되새 겨 볼 만하다. 同事攝, 利行攝, 布施攝,受話攝의 네 가지 실천요목 가운데 무엇 하나 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내가 물질적으로 도울 입장이 아니란다면 건강한 몸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도울 수 있고, 그나마 시간을 내어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으니 그렇다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고운 위안의 말로라도 이 시대의 우울함을 나눌 수 있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날 일도 많지 않다면 소리없이 이 시련이 속히 거두어지기를 간절히 기도라도 하면서 同事攝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쓸 일이다.
②사찰의 복지시설화
우리들이 때때로 무심코 쓰는 말 가운데 '집도 절도 없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세간적 살림에서 집이 없으면 절이라 도 있어서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비추어 그러한 최후의 보루마저 없는 불운을 나타내는 수사라고 생각된다. 과거에 불교사찰이 오랫동안 맡았던 그 역할을 반영하는 수사일 뿐만 아니라 이 시점에서도 다시 한번 기대되는 역할의 상징적 표현이다.
실제로 필자는 산문의 강원이나 기도도량, 전통적인 수행가람 등을 제외하고 시중의 표교사찰들이 한시적으로나마 복지시설로 전용될 수는 없을까 하고 공상을 하기도 한다. 우선 그 사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실행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면, 주지스님과 신도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들을 창출하여 그보다 나은 여건에서 직접 사업을 구상하는 이웃사찰을 지원하거나 혹은 직속종단의 추진사업에 후원을 하는 것이다. 가용자원을 창출하는 방안으로서 예컨대, 일체의 佛事를 중단하고 그 자금은 인간방생불사의 차원으로 회향한다든지 신도 가운데 조상의 제사를 모실 사람이 있을 경우에 그 비용을 가지고 돌아가신 조상만큼 어느 세의 인연이 깊을 수도 있는 현세의 인연들을 돌보는 것으로 회향한다든지.. 아무리 한시적이라고 해도 이렇게 극단적인 아이디어를 실효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마는 그런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불교계가 합심을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국가적 사태를 돕는데 큰 몫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편, 기왕의 전문적인 사회복지 실천의 경우를 본다면 자원의 창출은 더욱 중요한 기초작업이다. 종래 정부로부터 다소간의 지원과 함께 수탁 운영해 온 복지시설이나 기관들도 사적인 후원이 없이는 운영이 어렵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며, 이제는 더욱이 다양하게 급증하는 서비스 수요에 비해 서비스 공급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한층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한번 불교계 사업주체들은 불교인들의 후원을 호소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한 지원과 후원이 촉구를 위해서는 사찰 법회를 비롯해 기타 불교교육이 보다 실천적인 데 초점을 맞추도록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찰에서 직접 하는 복지프로 그램이든 별도의 시설 사업이든 간에 그 사업들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입증할 자료들을 객관적으로 만들어 후원자들에게 알리는 것 또한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의 필요성을 알리는 방법의 하나가 된다. 정부의 위탁기관이나 시설 가운데서도 당연히 업무능력과 기타의 여건에 따 라 차등의 지원이 있는데, 이처럼 공공기금이든 私기금이든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사회복지사업의 중요한 한 토대이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의 육성 및 활용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불교계 복지시설이나 기관들이 해당 서비스의 내용과 프로그램들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보다 합리적인 조사방법을 활용하고 그 타 당도를 검증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을 필요로 한다.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에서 급변한 IMF 상황에 맞추어 당면한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시간적 공간적 문제성에 최적의 서비스를 강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다. 많은 복지기관들이 예컨대 생계 자원이나 실업 및 고용대책이 일환으로 직업 재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 등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물질적 원조를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데 주먹구구식으로 답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한 가지 더 종교계 본연의 역할을 반영하여 직접 간접으로 문제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정신적 심리적 충격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분야에서 불교사회복지의 독자성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사업계획도 필요하다. 이러한 비상시국에서가 아니더라도 사회복지 는 물질적 원조, 직업적 안정을 위한 대책뿐만이 아니라 심리사회적, 정신적(spiritual) 영역까지를 포괄하는 전인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것이 그 본래 목표가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布施法에서와 같이 재불만이 아니라 진리(法)와 정신적 자신감(無畏)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었던 불교정신과도 상응하는 사회복지 이념이라고 하겠다.
③ 종단 중앙기구의 지도감독 역할
각기 불교 종단은 사회복지재단을 형성하여 산하 단위사찰들의 복지사업에 대해서 지원을 하기도 하고, 혹은 대외공신력을 이용해 정부의 위탁사업시설이나 기관들을 인수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처럼 종단의 중앙조직 차원에서 사회복지 실천의지가 공식적으로 천 명되기 이전에 오히려 단위사찰들이 독자적 산발적으로 복지사업을 시작했던 것이 사실인 관계로 중앙기구라고 해도 단위사찰들의 복지 사업에 대해서 쉽사리 지도감독의 지위를 주장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불교 사회복지사업이 양적으로 신장하는 것 못지않게 질적인 검토와 지도감독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장차는 중앙조직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불교계 내에서 사회복지요원의 수급, 관리, 육성, 재교육 등을 담당하고, 물적 자원의 조달과 분배, 나아가서는 이론분야와 실친분야의 양자를 연결해 불교사회복지의 독자성을 확립해 가는 과제 등에 대해서 주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종단의 중앙기구에 더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한편에서 중앙기구가 반드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역할의 하나로 서 대정부, 대책적 사회복지 비판과 제안을 통한, '공공시책에 대한 지도감독'의 의무를 발하고 싶다. 거듭 말하거니와 종교계의 지원이 없어서는 사회복지의 실천과 발전 자체가 있을 수 없었을 역사적 경험과, 지금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 종교계는 정부시책이 시녀와 같은 역할 이상을 자처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공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정 경제, 사회 등과 유리된 종교란 있을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사회참여가 과거와 같이 특히 정치적 이유들에 촛점을 두기보다는 대중적으로 사회복지를 증진하는 데 목표를 세우는 것이 불교의 饒益衆生의 정신과도 상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이 복지정책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고 혹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감독의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불교계 사회복지실천의 경험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복지의 현실과 동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하는 전문가집단이 필요하다.
3.
이 짧은 글은 지금의 사태-IMF-를 규명하기 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비록 불교신자인 독자라 하더라도 요즈음의 상황에서는 내가 왜 이 무거운 짐을 나누어져야 하는지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만약 우리가 독화살을 맞고 서둘러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그저 서서 "이 독화살은 어디서 온 것이며, 무슨 독이 묻었으며, 왜 내가 이 화살을 맞게 되었는지.." 따져보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 필자는 다만 불교사회복지의 실천을 전제한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다음 기회가 오면 불교인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가 자주 빚어내는 엄청난 오류와 무책임과 부도덕 등에 대해서 그 囚과 緣의 실마리를 추적해 보기로 하겠다.
@ 신행상담
/ "상대방의 결점"
장계환스님
아주 솔직하고 또한 용기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단 창일군 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안주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남의 말"하는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이때의 남의 말이란 바로 상대의 결점 내지는 허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상대방 즉 결점 투성이의 그에게도 분명히 장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결점과 허물만이 눈에 띄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좋은 장점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어느 모임에서 한 연사가 흰종이의 중앙에다 매직팬으로 검은 점을 큼직하게 하나 찍고서 청중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지요. 그때 청중들은 한결같이 검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검은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보입니까?" 하고 거듭 연사기 물었더니 일제히 "안 보인다"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러자 연사는 "여러분 모두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왜 이 크고 흰 종이는 보지 않습니까?"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것, 보다 희망적인 것, 보다 좋은 장정들은 곧잘 놓쳐버리고 곧잘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이것은 마치 흰 종이에 찍힌 검은 점만을 보듯이, 실패나 좌절 그리고 남의 결점만을 보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은 점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흰종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상대방의 결점만을 보고 있으니까 자꾸 불만스러워지고 또한 마음에도 들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통념에 따른다면 상대방의 결점을 고쳐서 새사람으로 만들고자하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불교의 입장을 물었으니까 불교적인 접근방법을 권하고 싶군요. 즉 내 자신이 상대방 쪽으로 다가가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친구의 장점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불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어찌 불에 타는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며,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어찌 고통받는 지옥중생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결국 내자신의 자리를 옮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동아리의 활동이 원활해짐은 물론이거니와 누구보다도 창일군 자신이 주위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불전의 설화
/환생(還生)이야기
이만
일반적으로 불교의 여러 사상 가운데서 우리들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내용은 아마도 윤회사상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 한창 사회 일각에서 유행하고 있는 자기의 전생에 관한 내용과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 사상이 주는 근본적인 암시는 어디까지나 권선징악(勸善琊惡)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에 크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에 마음이 쓰여서 행동이 부자유스러워진다면 그것의 본래취지인 방편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구속을 받게 되므로 역효과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이 업사상이 설해진 근본이치는 여러 사람들이 섣부른 감정을 가지고 선악과 같은 분별심을 내어서 그 과보를 받게 되므로 그와 같은 것을 경계하지 위하여 교설된 것이다. 즉 쓸데없이 나쁜 감정을 자주 내는 정(精)이 많은 사람(有情)들에게는 자기가 그렇게 저지른 업의 세력들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자기 마음 속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가 바로 나타나거나 아니면 몇 백년 뒤에라도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받게 되는 세계는 죄질에 따라서 지옥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으로도 되며,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아니면 가혹 천사와 같이 복된 곳에도 태어나는 이른바 생을 거듭하는 중생(衆生)이 된다. 이렇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자주 생을 바꾸기 때문에 중생을 또한 이생(異生) 범부라고 부르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생을 자주 바꾸는 설화를 소개하여 보면,
옛날에 어떤 마을의 한 부자가 예쁜 부인을 맞아 들어서 좋은 집에서 비싼 의복과 맛있는 음식으로 그를 호강시키면서 살았는데, 부인은 어느 날 집에 온 소금장수를 보더니만 금방 서로 좋아해서 주인을 버리고서 그와 함께 달아나 버렸다. 부자는 그 원인을 몰라서 궁리하던 끝에 절에 가서 적정(寂靜)의 경지에 들어서 참선을 한 결과, 그들의 전생에 관하여 알았다. 즉 자기 부인은 전생에 개에게 붙어살았던 파리였고, 그 소금장사는 개였는데, 파리는 개에게 항상 붙어살았기 때문에 전생의 연분을 만나서 그와 같이 간 것이다.
또한 비슷한 내용의 환생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보면, 어느 한 선비가 주막 앞을 지나다가 마침 옷에 붙은 이 한 마리를 잡아서 주막집의 돼지에게 붙여 주었다. 그 선비가 나중에 죽어서 정승으로 다시 태어났고, 가정을 이루어서 부인도 맞이했는데, 어느 날 그 부인이 갑자 기 종적을 감추어서 보이지 않으므로 정승은 부인을 찾아 나섰다가 깊은 산골에서 숯장사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에 정승은 모든 것을 잊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청했지만 부인은 완강히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필요 없다. 이제는 당신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승은 크게 낙담을 하고 혼자서 집에 오는데, 도중에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 이와 같은 자기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 노인이 말하기를,
"당신은 전생에 선비였고, 어느 때에 댁이 이 한 마리를 떼어서 주막집의 돼지에게 붙여준 일이 있었는데, 지금의 부인은 그 이가 환생한 것이며. 숯쟁이도 역시 돼지가 환생한 것이다. 그래서 잠시 당신 부인이 당신과 함께 살다가 전생의 인연에 따라서 숯장사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라고 전생담을 일러주었다 여기에서 이러한 설화들의 내용을 음미해 보면, 전에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 뒤에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변작되어 다가오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일생 동안에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평생을 같이 해로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전생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집단적으로도 발생할 수가 있으니, 그 예를 들어보면, 옛날에 한 30여 명의 도둑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도둑질을 하다가 마침 어느 산 고개 밑에 매어 있던 황소 한 마리를 주인 모르게 잡아먹었다. 그 일이 있은 몇 십년 후에 어떤 고을에서 한 여자가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숫자가 자그만치 30명이나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그 나라의 임금은 신기하게 여기고는 후한 상품과 함께 산호로 만든 지팡이 하나씩을 주면서 잘 자라도록 당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임금의 의를 과신한 나머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으며, 심지어는 교만해져서 그 나라의 정승 지도 업신여긴 결과 외나무다리 등에서 만나면 길을 비켜주지 않고 자기들이 먼저 건너가곤 했다.
이러는 가운데 한 정승은 버릇없는 이런 아이들을 제거하려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던 산호 지팡이를 몰래 훔쳐다가 그 속에 비수를 넣고 제자리에 갔다 놓았다. 아이들은 그 한 줄도 모르고 그들의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 정승은 임금께 아뢰기를, 30명의 형제들이 역모를 하고 있으며, 그 증거로는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검사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임금은 즉시 신하들을 시켜서
그들의 산호 지팡이를 철저하게 검사해 본 결과 그 속에서 비수가 나오므로 이들을 모두 처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정승은 예사의 정승이 아니라 전생에 도둑들에게 죽음을 당한 황소가 환생한 것이며, 역적으로 몰려 한순간에 비참한 최후를 마친 30명의 아이들은전에 황소를 잡아먹었던 도둑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생설화들은 다분히 우리에게 악업에 의한 응보의 두려움을 강조하고 있지만, 음과 같은 게송에서도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잠못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不寢야長) 피곤한 자에게는 지척도 천리나(罷倦道長) 어리석은 자에게는 낳고 죽은 생사의 윤회가 긴데 (愚生死長) 이는 올바른 이치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莫知正法).
@ 불교와 어문학
/ 구결능엄경과 능엄경언해(Ⅱ)
김무봉
여말선초(麗末鮮初)에 경(經)의 구두(句讀)에 구결을 달아 읽었던 이른바 「구결불경」들은 국문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입게 된다. 바야흐로 언해불경」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언해불경은 일반에는 다소 생소한 말이지만 국어학계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우리말로 번역. 인출된 불교 경전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고 있다.
물론 언해(언解)가 경전의 번역에만 쓰는 말은 아니다. 한문으로 된 원문과 구분하기 위해 한글로 번역된 글을 일러 흔히들 언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언해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문 문장을 우리말로 읽고 적기 위한 강렬한 욕구에서 창안된 독특한 번역 양식이요, 인출 양식인 것이다. 이러한 언해 양식을 빌어 정음초기에 간행된 불전들이 언해불경이고, 그 언해불경의 전범(典範)자리에 놓이는 경전이 <능엄경언해>이다. <능엄경>은 여말선초에는 경의 구두에 해당되는 곳에 구결을 두어 읽는 방법으로 유통되었으나 국문자가 창제되면서 언해불경이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민정음의 창제는 우리 문화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출판 영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불경 언해가 서게 된 것이다. 당시 불경 언해 사업을 기획하고 관여했던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 언해불경은 훈민정음 창제 후 중앙어의 보급과 새로 제정된 국문자의 일반화에 기여한 바 크다. 그리고 이러한 국문 및 중앙어의 보급에 언해류가 기여한 은 불경 언해 및 여타 언해들이 가지는 언해 양식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경전의 심오한 가르침과 한문 문장의 난해한 내용들을 일반에 설명하고 전하기위해 독창적인 언해 양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문 문장의 구두에 두는 정음 구결은중세 한국어의 곡용 및 활용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불교 용어나 난해한 어휘를 설명한 협주는 우리 고유어의 모습을 온전히 전해주고 있다. 또한 독자의 읽기 편의, 곧 가독성(可讀性)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시도된 언해체제의 변화는 우리 출판 문화의 수준을 몇 단계 높이는데 기여했다. 불경 언해 사업은 왕실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는데 이는 조선의 치국이념이 나 당시의 시대 상황과는 동떨어진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왕실에서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불전 언해 사업에 골몰했을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돌아간 부왕이나 모후 의 명복을 비는 이른바 추천불사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신(유臣)들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한 구실이요, 변명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기실 그 속내는 사대부들에게 외면당하던 국문자의 보급을 위해 실수요자인 일반 백성들의 뿌리 깊은 불심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종-세조 초에 걸쳐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던 불경 언해 사업은 세조 7년(1461) 6월 경전 간행 기관인 간경도감이 설치되면서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물론 간경도감에서 언해 경전만을 간행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문 경전의 간행이 월등히 많았지만 방대한 분량의 대승경전들이 이 시기(1462-1472)에 잇달아 언해·간행되었다.
『능엄경언해』는 간경도감 설치 이전과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인간되었다. 한 번은 1461(세조7년) 교서관에서 활자인 을해자(乙亥子)로 간행되었고, 한 번은 간경도감 설치 후인 1462년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능엄경언해』는 송나라 온릉 계환이 요해한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에 세조가 정음으로 구결을 달고 한계희, 김수온 등이 번역한 것이다. 언해에 혜각존자 신미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권10의 말미에 실려있는 세조, 신미, 김수온 등의 발문에 의하면 세종31년(1449) 왕의 명에 의하여 세조가 번역에 착수하였으나 사정으로 미루어지다가 세조 7년에 5월 부처님 분신사리 백여과가 출현하는 영적을 보고 2개월여의 번역 작업 끝에 그해 10월 고서관에서 활자본 400부를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모두 십권 십책인데 이 중 권4를 제외한 책들이 국내의 대학이나 연구기관 그리고 일본에 남아 전한다.
그러나 활자본은 서둘러 간행되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되었고 급기야 그 다음해인 1462년 활자본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일부 불교 용어의 한자음을 바꾸어 간경도감에서 목판본으로 재간행 되었다. 역시 모두 10권 10책인데 그 완질이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인출 당시의 제첨까지 가지고 전한다.
목판본 간행으로 활자본의 오류가 수정되었으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미 유통되고 있던 활자본을 거두어 목판본과 통일을 기한 듯 현존 활자본에는 주묵의 교정이나 인쇄된 쪽지가 덧붙어 있다.
『능엄경언해』의 체제를 보면 경의 본문 구결문은 행의 첫머리에서 시작하여 적당히 끊어 읽기가 이루어진 후 그 밑에 언해문을 두고 그 뒤에 한자 내려서 계환의 요해 구결문을 둔 후 다시 그 밑에 언해문을 둔 형식이다. 언해문 중 난해한 한자어나 불교 용어에는 협주가 들어가는데, 그 표시는 [ ]로 하였다. 국한혼용의 언해문에는 동국정운 한자음이 병기되어 있다.
이러한 『능엄경언해』가 구결능엄경의 계통을 잇고 있음은 각권 권말의 음석에 구결능엄경의 일부가 전재되어 있음으로 확인된다.(이승재 1993참조)
목판본 『능엄경언해』는 그 언해 체제는 물론, 번역 양식, 언해 내용에 이르기까지 이후 간행된 불경언해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그 방대한 분량 속에 실려 전하는 내용은 비록 번역된 글이라고 하더라도 당시의 국어를 아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료들이다.
@ 법화경 공부
/ 관음보살의 가피력
안중철
"선남자여 만약 한량없는 백천
만억 중생이 있어 온갖 고뇌를
낟는다 해도 관세음보살의 공덕
을 듣고 일심으로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듣
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
불도 수행의 중심은 기도와 참회에 있고 지극한 기도를 통해 부처님의 마음과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불보살님의 시현(示現)하심을 감득(感得)할 수 있다. 이 품에서 는 주로 관세음보살의 가피력(加피力)과 영험이 설해지는데,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그
이름을 관세음이라고 하는가 하는 무진의보살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물음에 대해 석가여래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다. 일체중생이 괴로움을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지극한 마음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그 소리를 듣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바람에도 날리지 않고 칼과 몽둥이에도 잘라지거나 다치지 않으며,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고 쇠고랑에 묶이지도 않으며 도적의 두려움까지 면할 수 있도록 관세음보살께서는 베풀어주신다.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예경하면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욕심이 많은 사람은 욕심을 여의게 하시고, 성내는 마음이 많은 사람은 성내는 마음을 여의게 하시며, 어리석은 마음이 많은 사람은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게 하신다. 나아가 어떤 여인이 아들을 낳고자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양하면 복이 많고 영리한 아들을 낳게 하고, 딸을 낳고자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양하면 모습이 단정하여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딸을 낳게 한다. 입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화난(火難), 수난(水難). 풍난(風難), 도장난(刀杖難, 사형), 나찰난(羅찰난), 가쇄난(가鎖難, 무고죄), 원적난(怨賊難, 도난)의 7난(七難)에서 벗어난다.
또 마음에서 관세음보살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면 탐. 진. 치 3독을 여의게 되며, 몸으로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양하면 아들과 딸을 원하는 대로 낳을 수 있다고 하여 이구양원(二救兩願)을 교설하고 있다. 여기서 아들은 지혜를, 딸은 자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구양원은 지혜와 자비를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 이 나라에 어떤 중생이 있어 마땅히 부처님의 몸을 다투어 제도해야 할 이가 있으면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의 몸으로 변신하여 법을 설 한다. 이 보살은 성문의 몸, 벽지불의 몸 등 33가지의 몸을 시현하여 중생들을 제도하므로 중생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께 공양하고 예경하여야 한다.
관세음보살은 두렵고 위험한 일이 있을 때 두려움을 없애주기 때문에 시무외자(施義長者)라고도 칭한다. 관자재보살 광세음(光世音)보살 등으로 호칭되는 관세음(觀世音)보살이란 무슨 뜻일까? 세음(世音)은 세상 사람들의 소리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환경과 성질에 따라 각기 바라는 것이 모두 다르다. 이 바람에 대한 소리가 '세음' 이다. 관(觀)은 본다는 뜻으로 수동적으로 보는 것 이 아니고, 능동적으로 자세히 살펴본다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 비한 보살이므로 일체 중생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게 함을 서원으로 하고 있는 보살이다. 중생들이 바람의 소리를 확실하게, 그리고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항상 세상의 소리를 관찰하고 계시며 그런 까닭에 관세음이라고 청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품은 구원의 본불이 큰 자비심으로 우리들 중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바세계에 관세음보살로 나타나시어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설한 법문이다. 이 품은 독립되어 관음경(觀音경)이라는 명칭으로도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 관음신앙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인도. 중국. 일본 등 대승불교권의 모든 나라에서 종파를 초월하여 크게 성행하고 있으며, 관세음보살의 방편력과 가피력이 심도있게 설해지는 이 관음경은 관음신앙의 근본 경전으로 많은 불자들에 의해 널리 독송되고 있는 경전이기도 하다.
@ 불자탐방
/ 좌선회 회장 이금석 교수님
편집부
컴퓨터공학과 선.
언듯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같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에 가지가지가 다 부처님 아님이 없고, 부처님 말씀 아닌 게 없다고 했다. 매주 수요일 아침(07:30~ 08:30)이면 어김없이 정각원 법당에서 조심스레 자신을 찾는 분들이 있다. 바로 동국대 좌선회 모임이다. 5년 전 해인사에서 교직원 수련대회가 있었다. 그때 수련회를 바치고는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서로 논의를 하다가, 당시 정각원장 스님이시던 선학과 보광스님의 제의로 교수, 직원, 학생들이 학교에서도 좌선을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이 좌선회로서 지금은 정각원 원장이신 법산스님이 지도법사로 계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힘듬을 안고 산다. 흔히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을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이기고자 하는 것이다. 동국대 좌선회의 주 회원은 화학공학과 등 공대교수님들이 반수를 차지하고 법성게(法性偈)를 보면 "하나 속에 모두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어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네. 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담겨 있고 낱낱의 티끌마다 시방세계가 들어있네"라는 글귀가 있다. 요즘 세대를 비유로 들자면 조그마한 컴퓨터칩 속에 수많은 정보자료가 들어가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면 조금은 이해가 쉬울까? 부처님은 벌써 2000년 전에 이와 같은 오묘한 법문을 설해 놓으셨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컴퓨터. 화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들이 정신세
계의 최고봉을 달성할 수 있는 좌선회 활동을 하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회장님을 뵈려고 본관 불상 앞을 지나려니 예전과는 다른 삼월의 꽃샘추위 속에서도 나무
가지의 새순과 새내기를 맞이하려는 각 동아리 의 손짓이 봄을 맞이하는 놀이마당 같았다. 원흥관 4층 교수 연구실에는 서너 명의 공학도가 객이 방문하는지도 모르고 컴퓨터 禪(?)에 심취해 있었다. 젖은 듯한 분위기를 깰새라 살며시 노크하고 들어가니 첫 눈에 수더분하시고 겸손한 자태가 산사의 어느 선승을 뵙는 것 같았다.
방의 모습도 깨끗이 정리되어 풍기는 인상이 어느 선방을 연상시키는 듯 했다. 전화상으로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도 몇 번씩 '내가 무슨 자격이 있느냐"며 사양을 하셨다. 그러면서 느끼는 아쉬움은 불자들이 너무 겸손해서 타종교보다 사회활동에서 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교수님은 별로 내세울게 없다고 몇 번이나 사양하시다 계속되는 질문에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하셨다. 우리나라 불자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교수님도 어릴 적 할머니의 손을 잡고 부처님 오신날에나 안동의 산사에 따라 다녔던 초기신앙이, 서울대와 과학기술연구소를 거쳐 동국대를 들어오시면서 본격적인 믿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묘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턴 믿음이 마음 속으로 다가왔다고 하셨다.
어느 날 산사에 몇 일 있을 요량으로 갔다가 감기로 인해 목이 아파 저녁나절 담배를 끊겠노라고 부처님께 다짐을 하고 잤다. 다음날 아침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담배를 들고 화장실에 가다가, 그렇게 다니면서도 부딪치지 않았던 철봉에 이마를 부딪치면서 "아차, 내가 부처님과의 약속을 어겼구나"해서 재발심을 하게 되고 벌이 무서워 함부로 부처님전에 약속도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며 웃으신다. 그리고 담배를 끊으면 온다는 금단현상도 전혀 없더라는 것이 모두 물질로서 강제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정신적으로는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하신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들에게 더 크고 많이 작용하지 않느냐고 하신다.
그렇다, 지금 서양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선의 모습은 미래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사람들에게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할 부분이다. 물질만능시대가 판치는 작금의 시대에 나 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무얼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할 것이다. 세상은 항상함이 없지 않은가? 교수님은 모두를 다 포용하시는 모습을. 마음의 넉넉함도 갖고 계셨다.
가족들에게도 종교의 강요는 않으시고 모든 스승이 다 좋고, 모든 산사가 다 좋고 모든 경 전이 다 좋으시다고 하시며, 굳이 들자면 청화스님의 법문과 반야심경, 신심명 그리고 절은 의성 고운사가 가장 인상에 남으신다고 한다. 조용함과 차분함의 아름다움을 뵙는 듯 했다. 그리고 좌선회를 하면서 무조건 가부좌 틀고 앉아 있는게 아니라, 경전공부도 병행하고 있다며 불립문자 견성성불(不立文字 見性成佛)의 참뜻도 바로 알고 행하려고 노력하신다고 했다. 또 송광사의 4박 5일 출가수련회에 참석하시면서 느낀 점이 많으셨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데 어찌 마음 수행의 모습을 말로써 풀수 있을까마는 누구라도 차분히 앉아 깊은 호흡과 진행의 상태에 따라 다가오는 오묘한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좌선을 하다보니 교수님은 또 다른 일이 찾아옴을 느꼈냐고 했다. 바로 한글 대장경을 전산으로 입력해서 인터넷에 띄우거니, CD를 만드는 『전자 불전 연구소』다. 지금 해인사 장경연구소와 모 신문사가 협력해 하고 있는 고려 대장경 입력은 한문인데 비해 『전자 불전 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작업은 한글이라서 일반인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또 고승. 대덕의 법문인 『한국불교전서』도 전산화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벌써 학교측과 협의가 낱난 상태이므로 곧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이런 일련의 큰일도 좌선을 하면서 생긴 가피라고 대견해 하셨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없으시냐는 물음에 암으로는 물질문명의 시대보다 정신문화가 미 래세계를 이끌어갈 시대라며 많은 사람들이 좌 선회를 찾아주어 다 같이 마음 찾는 공부에 정진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여름과 겨울에는 수련회도 가시고 봄. 가을에는 명산 대찰을 찾아 마음의 고향에도 갈 계획이 마련되어 있다며 많은 홍보를 해달라고 하신다. 다시 본관 앞 뜰을 나오면서 좌선회 회장이신 이금석 교수님의 빚은 눈매가 가슴에 오래 남음은 선을 많이 하신 그 덕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아름다운 화엄의 세계가 보이는 듯 했다,
@ 불심의 창
/ 부처님 나라
강현주/불교아동학과 조교
"盡人事待天命'
동국대학교 부속유치원이 설립된 다고 하니 문득 위의 글귀가 생각났다. 오랜 기간 동안 타지역으로 유치원 실습을 나가면서 우리 대학에도 유치원이 있었으면 실습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체험을 보다 가까운 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텐데 하던 바람은 불교아동학과 재학생 및 졸업생 그리고 교수님들 또한 한마음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이론과 실기가 병행된 교육이야말로 배우는 이에게 있어서는 좋은 교육여건이고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가까운 현장에서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생활교육을 유치원 설립의 서원(誓願)으로 세워 1967년 불교아동학과가 개설된지 10년만에 숙원이 이루워진 셈이며, 더불어 불교 아동학과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케 된 것이다.
지난 11월 중순 유치원 원서배부 및 접수 그리고 원아추첨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생활한 나는 가슴 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9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국대학교에서 드디어 교육의 초석이 되 고 어린 불성(佛性)을 키워내는 유치원 교육을 바로 이곳 석장동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역 유일의 대학부속 유치원이기 때문인지 지역민들이 관심도가 높다 는 것을 원서접수와 공개로 진행된 원아추첨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제한된 정원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아 난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속유치원에 대한 자부심이 커져 바쁜 일정 속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유치원 건물이 어느 정도의 손질이 끝나갈 무렵, 유치원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여 내부 환경정리와 하게 만들기 작업을 위해 불교아동학과 학생 모두가 동원되어 밤늦게까지 작업하여, 생명력을 가득 불어넣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애정 어린 손질이 닿으면서 변해 가는 꼬마 궁전의 모습을 재잘거리는 어린 아이들의 해 맑은 모습에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유치원 주변에 묘지가 있어서 비 오는 날이 되면 모두가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비 오는 날만 되면 일찍 가는 날로 정하기도 했다. 식사시간을 놓치기는 일쑤였지만 모두가 웃음으로 피로를 풀었다. 영가천도제를 비롯 준공식이 지나 어린이를 맞을 날이 다가올수록 모두가 걱정이었다. 잘못된 것은 없을까. 혹시나 부족한 것들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유치원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미비한 부분을 보충하고 환경정리 또한 새로이 하는 등 모두가 열심이었다. 오랜 기다림으로 이룩된 유치원 입학식을 준비했다.
3월 4일 유치원 입학식,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진행된 행사는 준비하고 또 준비하였지만 어딘가 모자람이 있었고, 처음하는 행사라 마음이 조마조마해졌지만, 원아들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환한 웃음소리와 함께 식전행사, 국악과의 사물놀이를 볼 때 저절로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천상(天上)의 풍경 같았다.
부속유치원은 160명의 원아들로 구성되었으며, 부처님의 지혜를 의미하는 슬기반, 염주를 의미하는 구슬반, 불교의 꽃으로 더러움에서 물들지 않는 연꽃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실 때의 샛별을 보고 샛별반, 불성의 씨앗을 의미하는 새싹반의 5학급으로 이루어졌다.
35대의 CD-J를 갖춘 CD-l실, 참선 과 다도 그리고 예절을 가르치게 될 예절교육실, 미술실, 양호실, 심리상 담실, 수영장, 실내 놀이실 등 어린이의 지성과 감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교육의 장을 갖추고 있다. 티 없이 밝고 순수한 어린 불성(佛 性)들이 모여서 부처님의 말씀 안에 서 건강하게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160명의 아이들이 부처님의 지혜를 배워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는 참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들어선 명상의 숲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정신을 본받아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 들어 가는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 길 바라며, 그동안의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일들을 함께 한 교수님들과 재학생, 졸업 동문들 그리고 차질없 이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이 글로 대신하고 싶다.
@ 불교의 상징들
/ 연꽃의 의미
김미숙/불교학부 강사
꽃의 계절, 봄이 완연한 빛으로 산야를 물들이고 있다. 시절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 가슴마다 춘정(春靑)이 무르익어 갈 것이다. 봄꽃 만발한 동산으로 선뜻 꽃구경을 가지는 못해도 길을 오가며 느끼는 봄의 정취는 빛의 변화에서도 확연하다. 회색 빛의 겨울에서 연분홍빛 봄으로 넘어가는 변화는 다른 어떤 계절의 바뀜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지 마련이다.
불교를 알고 불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봄의 빛깔 또한 각별하다. 불가(佛家)의 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신일인 음력 4월8일 즉 초파일의 준비로서 그 막을 열게 된다. 초파일 준비는 연등 준비가 핵심이다. 활짝 핀 연꽃 모양의 등불을 마련하여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는 불가의 풍속은 초기 불교의 성립 이래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연례 행사의 하나 이다. 그만큼 연꽃 공양과 등불 공양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분홍빛 연꽃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연등이 빛이 짙어 감에 따라 바야흐로 불가의 봄도 깊어 가는 것이다.
흔히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꽃으로서 주저없이 연꽃을 꼽는다. 연꽃과 불교는 부처님이 이 땅에 머물러 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후대의 불교 예술과 문화의 핵심에서 촌각도 시들 지 않고 만개하여 그 향기와 빛을 발하고 있다. 연(蓮)의 원산지
가 인도이며, 지금 도 인도의 나라꽃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나라 꽃 못지 않게 널리 사랑 받고 있는 꽃이 바로 연꽃이다. 어디서든지 굳이 절의 경내가 아니더라도 여염 집 지붕의 암수 막새 기와에서든지 섬돌의 부조 문양에서든지 무심히 눈길 닿는 어디든지 연꽃과 연잎이 아로새겨져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식자(識者)들은 연의 특성을 면밀히 해부하고 그 의미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갖가지 의미 분석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다음 열 가지로 그 특성을 분석한 뒤에 각각의 경우를 사람의 품성과 연결하여 해석한 것이다.
첫째, 진흙탕에서 자라는 연꽃, 하지만 결코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은 일체 세속 더러움을 떠나 청정하고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에 비유한다.
둘째, 연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물지 않는다. 행여 물방울 하나라도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뿐, 연잎 위에 물가가 지나간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처럼 악한 환경에 속해있으면서도 결코 그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연에 비유한다.
셋째, 연꽃이 피면 그 향기는 진흙탕의 오물 냄새를 사라지게 한다. 이러한 연꽃 향기의 특성은 한 사람의 따뜻한 인간애로 인해서 사회 전체가 훈훈해 지는 것에 비유된다.
넷째, 연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밝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이와 같이 언제나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을 연에 비유하여 말한다.
다섯째,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온화하게 한다.
이러한 특징은 언제나 낯빛이 밝고 원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비유된다.
여섯째, 연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이러한 특성은 유연한 성격과 융통성을 지닌 사람에게 비유된다.
일곱째, 연꽃은 좋은 징조를 상징한다. 따라서 연꽃을 꿈에 보면 좋은 일이 생기며, 연꽃을 지니거나 보기만 하여도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여덟째, 연꽃은 피어나서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마치 연꽃 열매처럼 좋은 씨앗을 맺는 사람을 가리켜서 연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홉째, 만개한 연꽃은 그 빛이 매우 곱다. 활짝 핀 연꽃과 같이 성숙함이 느껴지는 사람을 만개한 연꽃에 비유한다.
열째, 연은 그 싹부터 다른 꽃들과 구분된다. 연꽃이 그 생겨남과 함께 뛰어난 특성을 보여 주듯이 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기품이 넘치는 사람은 어느 곳에 있어도 드러나기 마련이라 한다. 그 사람을 가리켜서 연꽃과 같은 이라고 부른다. 경전에서 묘사하기를, 극락 정토에는
청련화, 황련화, 홍련화, 백련화 등이 가득하여 장엄의 극치를 보여 준다고 하며, 그 각각의 연꽃 잎마다 광명을 발하여 오색 찬란한 빛이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라면 누그든지 극락 정토에 다시 나기를 원할 것이다. 그토록 장엄한 불국토에 다시 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연꽃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부처님 앞에 연등불 하나 켜서 밝음을 공양하는 이, 연꽃처럼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이, 청정한 수행의 공덕을 쌓은 이, 연꽃처럼 밝은 낯빛으로 온화한 향기를 주는 이, 바로 그 사람이 극락 정토에 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바로 연꽃 같은 사람이다, 이 봄, 찬란한 봄의 햇살 속에서 극락 정토에 이르게 될 연꽃 같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연꽃 같은 사람을....
@ 이야기로 배우는 불교
/ 마등가와 인간평등
정승석/불교학부 교수
인도에서 찬달라는 불가촉민(不可觸民)으로 불리는 최하층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찬달
라는 인도의 전통적인 네 계급에도 들지 못하고 아예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천민이다.
인도의 고대어로 '마탕가'라는 말은 코끼리를 뜻하면서 동시에 찬달라를 가리킨다. 일찍이
불가촉의 천민으로 취급되었던 고대의 마탕가 종족이 현재에도 인도에는 마탕가족으로 불리
는 종족적 계급으로 잔존해 있다. 마탕가가 코끼리를 의미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탕 가라고 불리는 종족은 코끼리를 숭배했다. 그들은 아리안족이 인도에 들어온 후, 불교가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아리안족의 지배를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바라문교 체제 하에서 마탕가 족은 완전한 불가촉민으로 낙인찍히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같은 마탕가가 불전에서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한역(漢譯) 불전에서 마등가 (摩鄧伽)라고 음역되는데, 『대공작명주경』(大孔雀呪王經)과 같은 경전에서 마등가는 선인(仙人)이나 용왕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심지어는 벽지불(抗支佛)의 한 이름으로 사용되는 예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이름의 용례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천민이라는 계급 차별을 의도적인 것으로 보일 만큼 철저히 무시해 버린 불전의 일화들이 다. 먼저 『마등가경』의 도성녀품(度性女品)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슈라바스티에서 부처님이 아끼는 제자인 아난은 걸식하고 급고독원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물긷는 찬달라 여자를 만났다. 아난이 그녀에 게 물을 청하자 그녀는 자신의 신분이 천하므로 물을 바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난은 자신이 사 문이고 마음이 평등하므로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본다고 말했고 이에 그녀는 물을 바쳤다. 이 후 찬달라 여자는 아난에게 매료되어 곧바로 아난을 연모하게 되었다. 그녀는 주술사인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주술로써 아난을 유혹했다. 이 위기를 천안(天眼)으로 알아차린 부처님이 아난을 구제하고 찬달라 여자를 훈계하였고 그녀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마탕가를 주제로 끌어들여 계급 차별을 무시하는 이야기는 본생경에서도 보인다. 예를 들어 마탕가자타카에서, 부처님은 전생에 보살이었을 적에 바라나시 교외에 사는 찬달라족의 모 태어서 태어나 '마탕가' 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성장하여 바라나시의 어느 부호의 딸인 딧타망 갈리카와 결혼하였으나. 마탕가는 출가하여 수행을 쌓아 선인(仙人)이 되었다. 그리고 초자연적 능력을 갖추어 바라문보다도 훌륭한 자가 되었으나, 바라문들에게 살해되어 버렸다.
이 이야기에서는 부처님이 최하층 천민인 찬달라 여자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함으로써 찬달 라와 상위 계급이 혼인을 허용하지 않던 금기를 깨뜨리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계급 차별의 타파이다.
한편 『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說一切有部奈耳鏶事)에서는 부처님이 전생에 복을 쌓은 인
연을 전하는 중에 마탕가 즉 마등가는 선인(仙人)으로 등장한다.
옛날에 삼나(삼나) 마등가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덕행 있었지만 출가하여 5신통을 얻었다. 그때 바라나시에 브라마닷타 왕이 있었다 점술사가 이 나라는 앞으로 12년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왕은 명을 내리길, 12 년의 비축이 있는 자는 나라에 머물고 없는 자는 다른 지방으로 마음대로 이주하라고 했다. 그래서 비축이 없는 자들은 마등가 국경의 삼나 마등가 선인이 있는 데로 가서 난을 피했다.
여기서 사람들이 마등가 선인에게 피신한다는 대목을 티베트 번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다 자세히 이야기한다. 마탕가국에 마탕가족 출신의 선인이 있었다. 그는 진실어를 말하고 비를 크게 내린다고 사람들은 듣고 있었다. 그래서 12년 간의 식량을 비축하지 못한 자들은 이 나라로 왔다. 거기서 마탕가 종족보다 번영했던 선인의 아들인 마탕가 왕은 사람들에게 식량을 베풀었다. 나중에 선인은 바라나시에 비가 크게 내리게 하여 기근이 사라지고 풍년이 들게 했다. 마탕가국에 있던 자들도 바라나시로 돌아가 원래의 생업에 종사했다. 이 마탕가 왕인 트리샹쿠(삼나)는 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었다. 이상의 이야기에서 마탕가는 계급 차별로 배척되는 천민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변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탕가를 굳이 부처님의 변신으로 묘사한 데는 기존의 계급 의식을 완전히 도외시한다는 평등 사상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탕가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원래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이야기가 『디비야 아바다나』라는 불전에 다음과 같이 전해져 있다. 이 이야기에서 마탕기는 마탕가 종족의 여성을 표시하는 말이다.
아쇼카 왕은 부처님의 4대 성지에 보리수를 심었는데, 여기에 공양하는 데 대단한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왕의 첫째 왕비는 이것을 질투한 나머지 어느 마탕기를 불러 보리수를 고사시키게 했다. 마탕기는 실로 나무를 묶고 주문을 외우자 나무가 마르기 시작했다. 보리수가 고사했음을 안 아쇼카 왕은 '보리수는 곧 부처님이 다. 이 나무가 고사한 것은 바로 나의 목숨을 잃은 것과 같다."라고 비탄했다. 보다 못한 왕비는 다시 마탕기를 불러 나무를 소생시키도록 했다. 마탕기는 실을 풀고 나무 주변에 구덩이를 파서 우유를 붓자 나무는 바로 소생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마탕기가 나무를 소생시키는 것은 마탕가 주범(呪法)의 일종이다. 밀교 경전 에는 마탕가의 주법이라는 것이 전해진다. 이것은 마등가주(魔鄧伽呪) 범천주(梵天呪) 등으로도 불린다. 앞의 이야기에서 아난을 유혹하는 데 사용했다는 주술도 이와 같은 것일 것이다.
이처럼 마탕가 또는 마탕기가 거의 모든 이 야기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주술사의 역 할을 맡고 있는 것은 고대 종족 사회에서 번영했던 마탕가족이 그러한 옛 주술의 보존자였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밀교에서의 마탕가 주법은 단지 고대 종족의 주술의 부활을 의미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에 앞서 인간 평등이라는 불교적 이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불전에서 전하는 마탕가 또는 마탕기 이야기 는 인간 평등의 이념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불교의 인간 평등관을 통하여 이윽고 밀교에서는 마탕가를 신격화하기에 이른다. 마탕가 이야기 는 불교의 인간 평등관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일례가 될 것이다.
@ 불서산책
/ 붓다의 호흡과 명상
편집부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건강 비결이 난무한다. 특별한 약물 처방이나 운동은 예로부터 통용되어 온 건강법이지만, 언젠부턴가는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도모할 수 있는 종교적 수행의 일종도 건강 비결로 선호되어 왔다. 이 같은 비결로는 단 전 호흡, 기체조, 요가 등이 대표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아울러 추구 할 수 있기로는 불교의 수행 만한 것이 없을 것이라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불교의 수행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데에는 종교상의 문제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불교의 수행이란 보통 사람으로서는 따르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는 데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단단히 발심했다 하더라도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무엇부터 배워야 하는지에 난감해지기도 할 것이다. 더욱이 불교의 수행은 단지 육신을 다스리는 수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불교의 마음 공부도 포괄적으로 말하면 명상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 명상은 우리의 잡다한 상념을 잠재워 소위 무념 무상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에 대한 상식을 거부하는 독특한 수행이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의 그 생각하는 습성을 깨뜨려, 그 습성으로 가려져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불교의 명상이 다. 여기에는 격렬한 동작이 필요하지 않다. 불교의 명상법을 흔히 참신 또는 좌선. 지관(止觀)이라고 부르듯이 그 실행 방법은 지극히 차분하고 고요하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 은 불교의 수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궁금해 한다. 이 궁금증은 불교 의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수행법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실천했을 명상법에 대한 의문에까지 이른다. 위와 같은 궁금증이나 의문을 간명하게 풀어 주는 경전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실은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과『대념처경』(大念處經)이 그것이다. 이 두 경전은 불교 수행의 기초 원리와 방법을 제시한다. 그 내용이 그렇게 난해한 것만은 아님에도 적은 분량의 한역(漢譯)으로 인해 일반인으로서는 아무래도 미흡함을 느끼기 쉽다. 정태혁 박사의 『붓다의 호흡과 명상』(정신세계사,1991)은 바로 그 미흡함을 충분하게 해소하여, 단지 따라 읽어 가는 것만으로도 불교의 수행에 쉽게 입문할 수 있게 해 준다. 『안만수의경』은 들숨과 날숨에 의식을 집중하는 소위 수식관(數息觀)을 가르치는 경전이나. 경명에서 '안'은 들숨. ‘반' 은 날숨 '수의'는 의식의 집중을 뜻한다. 이것은 호흡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가져오고 나아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호흡 수련에는 여섯 단계의 진전과 이에 따르는 효과가 있다.
첫째 단계는 수(數)로서 들숨과 날숨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며, 여기서는 네 가지 마음의 힘을 얻게 된다, 둘째 단계는 상수(相隨)로서 의식이 호흡을 따름으로써 서로 하나처럼 흐르는 상태이며, 여기서는 또 다른 네 가지 마음의 힘으로써 악을 없애게 된다. 셋째 단계는 지(止)로서 마음이 이제는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고요히 안정되는 상태이며, 여기서는 네 가지 초능력을 얻게 된다. 넷째는 관(觀)으로서 정신 집중의 상태로 오직 대상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며, 여기서는 다섯 가지 정신력을 얻게 된다. 다섯째는 환(還)으로서 다시 고요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태이며, 여기서는 일곱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여섯째는 정 (淨)으로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상태이며, 여기서는 여덟 가지 바른 길
을 얻게 된다.
누구나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이 수식관은 단지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진전에 따라 지와 관을 거쳐 적성(寂靜)과 8정도를 성취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수행의 도가 깊은 사람은 위와 같은 진전을 거쳐 나가므로,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면서도 뭔가에 걸림이 없이 곧고 안정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대념처경』에서는 보다 차원 높은 명상법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는 육신, 감 수, 작용, 상념, 일체의 대상 등, 4명처에 대한 명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수행과 연관되는 핵심적 교리를 설명한다. 즉 탐욕, 노여움, 수면, 어리석음과 걱정, 의혹이라는 다섯 가지번뇌(5蓋),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5礤), 여섯 가지 감각 기능(6處), 그리고 7각 지(覽支)라고 불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이다. 7가지란 선악을 구별하는 지혜의 힘, 선악의 진실을 가리는 힘, 게으르지 않고 수행하는 힘, 마음에 전함을 얻어 기뻐하는 힘, 그릇된 것을 없애고 올바른 것을 행하는 힘, 잘못된 것을 버리고 다시는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힘, 정신 통일로 더 이상 명상을 일으키지 않는 힘이다. 끝으로 4성제에 대한 명상법을 가르친다.
이상에서 육신에 대한 명상은 흔히 부정관(不淨觀)이라고 불리는 수행법을 포함하고있다. 먼저 호흡에 대한 관찰을 설명하고 나서 일상의 행위 및 육신의 안팎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이후 그 육신이 시체가 되어 썩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함으로써 육신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을 저절로 버리게 한다. 불교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수식관과 부정관이 불교 명상의 기초라는 사 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초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그것의 의의를 간과하기 쉽다. 이는 아마도 『안반수의경』과 『대념처경』을 직접 읽어보지 못했거나 건성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붓다의 호흡과 명상』은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더욱 적합한 불교 수행의 입문서가 될 만하다. 또 이 책의 자상하고 친절한 해설은 불교의 수행을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하여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모범 적 인 지침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가람의 진수
/ 미타도량(彌陀道場) 부석사
유문용
세상에 어느 사물(事物)치고 이름이 없는 법이 없다.
절을 짓고 그 절에 이름을 붙일 때에도 여러 가지 사연이 있다.
이 곳은 부처님의 나라를 재연했으니 불국사(佛國寺)라 했고, 부다가야 산의 경문에 심취되어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든다고 해서 해인사라고 한다, 속세와 격리된 산에 부처님의 법이 주처(住處)한다고 해서 법주사이다. 그리나 그 절의 창건설화에 얽힌 이름을 붙인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가 않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浮石寺)는 창건 설화에 얽힌 인연으로 부석사라고 한다.
부석사에서 가장 주존이 되고 우리나라 건축사(建築史)에서도 매우, 중요시되는 무량수천 왼편 뒤쪽에 크고 널찍한 바위가 돌 위에 얹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개는 중요한 무량수전을 보느라고 이 떠있는 바위는 무심히 보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들 떠있는 바위 (浮石)가 있어서 부석사이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6년 666년에 당나라에 유학을 할 때 한 신도 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 집에 선묘(善妨)낭자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의 뛰이난 용모에 빠져 사모하게 되었는데 갖은 모양을 내고 유혹을 해 보았지만 굳은 의상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선묘낭자는 그의 불심의 굳은 의지를 보고 오히려 의상을 스승 삼아 도심(道心)을 배우고 10여 년 동안 공양을 받들었다고 한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할 때 먼 여행길에 쓸 법복이며 일용품들을 마련하여 주려고 하였으나 이미 배를 타고 떠난 뒤였다. 선묘는 일용품들을 바닷물에 띄우면서 배까지 당도하도록 주문을 왼 뒤에 자신도 물에 뛰어들어 용으로 변하여 험난한 뱃길을 도왔다고 한다. 귀국 후해도 대사의 전법(傳法)을 도왔다고 하는데 의상이 두루 산천을 다니다가 봉황산 기슭에 절을 세우기로 하였으나 그 곳에 500의 잡뼈(雜輩) 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난감하였다고. 한다. 용으로 화한 선묘가 이번에는 사방 십리나 되는 큰 반석으로 변해서 공중에 치솟았다가 내려치려고 하니까 잡배들이 모두 도망을 쳤다 고 한다.
그때 내려앉은 바위가 지금 법당 뒤에 있고 이때에 변신한 용은 석용(石龍)이 되어 법당 주존불 좌대 밑에 있다고 한다. 일제 시대 공사 때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송나라 고승전(高僧得)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무량수전 왼편 뒤쪽으로 부석이 있고 오른편 뒤쪽에는 선묘낭자의 영정을 봉안한 선묘각이 있다. 그리고 뒷산 언덕에 동편으로 선묘의 용이 산다는 선묘정(善妙井)이 있고 서편으로는 식사융정(食沙龍井)이 있다. 이렇게 부석사는 창건설화와 얽힌 선묘낭자의 유지( 遺址)가 많고 사명(寺名)도 창건설화로 인해서 부석사라고 한 것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에 창건이 되는데 지리적으로 화엄의 입지(立地)에 미타도량(彌蛇道場)을 융합한 독특한 가람(伽藍)이다
의상대사는 해동화엄(海東華嚴)의 초조(初祖)라고 한다. 당나라에 가서 10여 년 동안 화엄학을 수업했고 신라로 돌아와서도 화엄의 법통(法統)을 이어준 분인데 광범위하고 방대한 화엄경을 210자로 집약을 해서 30구의 싯구로 작성을 하고 54각을 접어 「화엄일승법계도.(草嚴一乘法界園)」라는 괘도를 만들어 사부대 중에게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화엄의 사상을 강론하였다고 한다. 이 시(詩)의 형식을 구한 30행의 싯구를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만다라 문양에 맞추어 210자를 돌아가면서 구상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경지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해동화엄의 초조로서 부석사에 미타도량을 개창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사는 불도(佛道)의 근본은 극락왕생(橋樂往生)에 있고 극락왕생은 곧 화엄의 연화장세계 (蓮華藏世界)의 이름과 같다고 본.것이다. 화엄의 주존이 연화장 세계의 비로자나가 되기 때문에 극락의 아미타(阿彌蛇)는 연화장에 통섭(通涉)된다는 견해이다.
부석사의 위치는 봉황산 중턱에 있는데 주변에 도솔봉, 비로봉, 연화봉, 문두산 등이 있어서 화엄의 연화장세계가 되는데 이 자리에 극락왕생하는 미타도량을 조성한 것이다. 가람의 배치는 시문(詩文)의 격식대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성을 구사했다고도 해석이 되고 극락정토의 3배9품(三輩九品)의 교리를 상징한 면도 불 수 있고 화엄경의 10지관 (十地鯤)을 구상한 면도 보인다.
현재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를 산문(山門)이 있는 곳이어서 기(起)로 보았고 범영루까지에는 요사가 있기 때문에 승(承)으로 보았다. 안양문까지는 승방(僧房)이 있어서 전(轉)으로 보고 무량수전까지는 법당이 있으니까 결(結)로 보았다. 깊이 들어 갈수록 위계(位階)가 높아지는 것으로 본 것이다.
가람 입구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고 거리가 떠 있다. 천왕문에서 무량수전까지는 매우 경사가 높아 축단(築檀)을 조성했는데 높은 축단 3단이 있고 그 사이마 다 낮은 축단이 3단씩 있어서 9단이 되는데 3 배9품으로 본 것이다. 좀 거리가 떨어져 있는 천왕문의 축단까지를. 친다면 10개의 축단이 된다. 그렇다면 화엄경의 10지관으로도 불 수 가 있다.
이렇듯이 부석사는 철저한 화엄과 미타도량의 융화가 잘 맞은 가람의 배치를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부석사에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는 무량수전이 있다. 국보 제18호로 지정이 되어 있고 이외에도 조사당이 국보 제19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자인당의 부처님도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고 석조물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문화재가 많다.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를 합해서 10점이 지정문화재 이다.
이 부석사의 무량수전의 주존불인 아미타 부처님은 건물 중앙 전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편 측면에 좌정하고 동편을 향해서 앉아 있다. 이것은 부석사가 미타도량으로 조성한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된다.
아미타(阿彌陀)라는 말은 "무량한 수명을 갖은 자"라는 말인데 무량수(無量壽)라고 한다. 이 법당이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아미타 부처님은 서방(西方)의 극락정토(橋樂淨土)를 다스리는 분이다. 따라서 무량수전은 남향을 하고 있지만 부처님은 서 편에 앉으셔서 동편을 바라보고 있게 된다.
이 무량수전은 원융국사비문(圓融國卑門文)에 보면 고려 현종 7년 1016년에 창건되었다고 되어 있으나 1016년에 해체보수 때에 발견된 묵서명(墨書名)에 의하면 공민왕 7년 1358년에 왜구에 의해서 소실되고 우왕 2년 1376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건물의 양식으로 보아서는 100년이나 200년은 앞 선 것으로 보여진다.
이 당시의 건물에서는 지붕이 맞배지붕이 대부분이다. 그 당시의 건물로서는 이 무량수전이 유일한게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특히 이 당시의 건축양식의 특징은 기둥의 배불림(배흘림)이 가장 강하고 양편 끝의 기둥이 높아지는 귀솟음이나 귓기둥이 안으로 쏠리는 안쏠림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주칸이 넓어도 기둥 위에만 포(包)가 올라가는 주심포로 되는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 된다. 기둥머리 위에 있는 주두(柱碩)와 소로 밑에 안쪽으로 휘어져 좁아지고 밑에 굽이 있는 굽주두, 굽소로도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특히 대들보의 단면이 사각으로 되지 않고 항아리 모양으로 되는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 된다.
이 부석사에는 무량수전 만큼이나 중요한 집이있다. 무량수전 뒤편 언덕 위로 올라가면, 조사당이 있다. 당초에 의상대사께서 거처하시던 곳이다. 이 건물은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고려 우왕 3년 1377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 조사당에는 의상대사의 영정과 이 절에 주석하시던 역대 조사(祖師)들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석고상으로 된 의상대사상이 있다.
이 조사당에는 벽면에 고려시대 벽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벽화 보존각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도 국보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조사당 기단 위에 비선화(飛仙花)」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의상대사가 전국에 화엄 10찰(華嚴十刹)을 조성하기 위해서 떠날 때 평소 짚고 다니던 석장을 찾아 놓았는데 이 석장에서 잎이 피고 살아나서 지금까지 수 백 년을 살아 온 것이다. 그 나무는 사람 한 키도 안될 정도이고 나무의 굵기도 불과 한중밖에 안되지만 수 백년을 살아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1700년대에 이곳을 방문하고 적어놓은 「택리지(鐸里志)」라는 책을 보면 '비와 이슬을 받지도 않으면서 겨우 한 길 남짓한 것이 천년을 지나도 하루 같다."고 한 것으로 보아 지금의 모습과 같다고 보아야 하고 필자가 처음 본 것도 2, 30년은 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한 겨울의 " 추위에도 잎이 완전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조금은 남아 있어서 살아있다는 증표를 남기 고 있다. 의상대사의 영험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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