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12월호 / 통권 36호 / 불기 2541(1997)년 12월 1일 발행

서원/ 장계환 스님 불교대학 교수

지난달 '42수 관음상'의 의미가 관음보살님의 수많은 서원과 원력을 나타내고 있다는 설명은 저도 궁금해 하던 터이라 참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서원이란 말을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소원과 같이 생각해도 좋은 것입니까. 그리고 부처님께 절을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원하고 빌게 되는데, 이것도 욕심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서원은 꼭 세워야 하는 것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한의과 대학 한의학과 이나미)

우리는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도 항상 크고 작은 소원을 지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지난 날을 되돌아 보면, 지금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있게 된 것도 실은 이전에 내가 세운 많은 희망들의 결과이며, 그 바람을 놓고 나의 행동이 크든 작든 작용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혹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인정한려고 들지 않는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거나 또는 나빴다고 하여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자신에 대하여 무책임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세웠던 원과, 그 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소원'과 서원'은 그 어느 쪽도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뜻에서는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전자가 이기적인 측면이 강한 반면에 후자는 이타적인 입장에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승불교는 실로 서원(誓願)으로 이루어진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원이 없는 불보살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성불하시기 전, 보살행을 닦을 때 세우신 서원을 본원(本願)이라하고, 이 본원에는 다시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지요. 먼저 총원은 모든 불보살들의 공통적인 서원으로서 바로 사홍서원(四弘誓願)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법회의식에서 매번 사홍서원을 하는 것도, 이러한 결의를 다지고 실천하고자 하는 뜻에서 입니다,
다음은 불보살마다 각기 따로 세운 원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별원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미타불의 48대원, 약사여래의 12대원, 보현보살의 10대원등은 모두 별원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불보살들은 왜 이렇게 원을 세우는 것일까요? 가령 백미터를 목표로 정하고 달리는 사람과 천미터를 목표로 정하고 달리는 사람이 있을 때, 앞사람은 다 달려도 겨우 백미터밖에 달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뒷 사람은 달리다가 중간에 그만 두더라도 이미 오백미터를 달린 셈이 되지요. 이처럼 서원을 세우는 것은 수행에 박차를 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원은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무지개같은 서원만 세우고 서 요행만 바란다거나, 세운 서원이 비도덕적인 것이라면 질문한대로 그것은 욕심에 불과하겠지요. 그러므로 나미양이 이타(利他)적인 서원을 세울 때, 그것은 바로 자리(自利)의 공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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