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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금강계의 단이 있는 통도사를 불보사찰이라고
했고 부처님의 말씀이 기록된 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고
했다. 이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혀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수행하시는
스님이 많이 배출된 사찰을 보고 승보사찰이라고
한다. 어느 절 치고 스님을 배출하지 않는
절이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사찰 중에서도
스님의 행적이 불교계의 공헌도로 보나
나라에 공헌도를 인정받은 국사나 선사의
배출이 가장 많이 배출된 사찰을 승보사찰로
부르고 있다.
전남
승주에 있는 송광사에는 고려시대 16국사의
영정이 봉안된 국사전이 있다. 국사(國師)라고
하면 나라에 스승이 되고 왕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高僧)에게 주는 존호(尊號)이다.
한 가람에서 제 1대 국사부터 16대에 이르는
국사가 대를 이어서 배출된 경우도 없고
이 16국사의 영정이 고스란히 봉안된 곳도
흔하지 않다.
이 가람이 송광사라고 불려지게
된 것도 이 16국사와 무관하지가 않다고
한다. 송광사의 송(松)자를 풀어보면 열
십(十)자와 여덟 팔(八)자가 합쳐져서
목(木)자가 되기 때문에 18공(公)의 큰스님이
나신다는 말이 되고 넓은 광(廣)자는 이
큰 스님들이 불법을 널리 펼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또 한 전언(傳言)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정혜(定慧) 결사(結社)의
큰 뜻을 성취하고 수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포용하기 위해서 큰 절터를 찾고 있던
중 소나무로 깎은 솔개를 만들어 날렸더니
바로 이 절의 국사전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을 치락대( 落臺)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솔개가 앉은 대라는 말이라고
한다. 솔개를 지방말로 솔갱이라고도 하는데
솔갱이는 소나무를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산에 옛부터 소나무가 유난히 많아서
솔뫼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넓은 지역에
소나무가 들어 차 있어서 송광산이라고
불렀고 절의 이름도 송광사라고 전한다는
말도 있다.
이 송광사 자리는 신라말엽에
혜린선사(慧璘禪師)가 창건한 길상사(吉祥寺)가
있었는데 거의 폐사가 될 형편이었던 것을
고려시대에 보조국사가 정혜결사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이 곳으로 옯기면서 대총림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현재도 목조건물로
국보 56호인 국사전을 비롯한 국보 보물급의
지정문화재 만도 15점이나 되고 전 가람에
54개 동이나 되는 대 총림을 이루고 있다.
특히 국사전과 하사당은 조선초기 건물로
우리나라 건축사에도 매우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는 국보이고 그 안에 봉안된 16국사의
영정도 우리나라 회화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995년도에 16국사의 존영
중에서 13존영이나 도난을 당했지만 아직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존영은 제1대 보조국사의 존영과 2대인
진각국사 그리고 14대인 정혜국사의 존영만
남아있다. 가장 중심에 있고 제일 윗대인
보조국사의 존영을 그대로 둔 것을 보고
조금은 양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제일 웃어른을
탈취해가면 벌을 받을 까봐 그랬는지 모를
일이라고 한마디씩 한다.
이렇게 송광사에서 16국사가
배출되는 데에는 보조국사의 정혜결사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 당시만 해도
불교계에는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난립으로 혼탁해진 분위기였는데 보조국사는
이를 정립하고자 숱한 정진과 수행으로
불경을 통찰하고 있었다. 이 당시의 상황이
보조국사 탑비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우행호시(牛行虎視)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조국사는 모든 사물이나
정황을 호랑이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통찰력있게 직시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수행은 소걸음과 같이 느리게 한다는 말이
된다. 사회정황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보고 그런 혼탁한 실정을 정립해야 된다는
목표가 설정된 것이 정혜결사의 설립이라고
하면 그 정립된 불법의 수행하는 과정은
꾸준한 노력으로 수행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우선 선(禪)과 교(敎)가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다가 방대한 대장경을 보면서
타득한 것이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정혜결사문'을 작성해서 교서(敎書)로
삼고 혼탁한 시절의 모든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게 되니까 선종과 교종의 스님들은 물론이고
불자님들 그리고 심지어는 유교사상을
가진 사람이나 도가의 사람들까지도 모두
동참을 해서 정혜결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넓은
도량이 필요했고 솔뫼에 있는 거의 폐사가
된 길상사의 터가 넓고 자리가 좋은 것을
알고 이곳으로 옮기게 된다. 이때가 1200년
경이라고 한다. 전당과 법당 요사를 짓고
중창을 해서 대 총림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 정혜결사의
기본 교리는 부처님의 마음이 곧 내마음이요
부처님의 말씀이 곧 깨우침이다 하는 것을
전제하고 첫째가 부처는 우리 마음에 있으니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마음 다스림을 가져라
하는 것이고 둘째가 마음을 닦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 깨우침을 받는다. 셋째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마을을 닦는 것은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하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불교뿐아니라 모든 사조(思潮)의
흐름을 버리고 오직 마음 닦음으로 깨우침을
얻어라 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정혜결사의
사상은 불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정진하는 기본 바탕이 되는데 이 바탕
위에서 각 분야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각자 필요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다면 반드시 깨우침을 받는다는 사상이기
때문에 요즘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보조의 사상을
상세히 기록할 수가 없지만 전해 듣기로는
이 보조국사의 정혜사상이 범 세계적으로
확산이 도어서 외국어로 번역이 된 사실도
있고 또 이 사상을 가지고 박사논문까지
받은 일도 여러 편 있었다고 한다. 또
오늘날까지 스님의 필수 교육 교재로도
쓰인다고 말을 들었다.
이러한 사상을 회통불교 또는
통불교의 전통이라고 하는데 다양한 흐름과
실천이 하나로 모아지는 불교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 보조국사의
정혜결사는 그 이후로도 고려 말기에 이르는
동안까지 수제자로 이어지는 국사의 존호를
받는 15대 국사가 계속 대를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었다. 조선 초기에 들어서면서
국사의 존호는 없어졌지만 16대의 고봉화상도
정혜결사의 법통을 이어온 스님으로 16국사에
합류가 되었다.
송광사에서 배출된 큰 스님들은
조선초기까지의 16국사로 끝이 난 것이
아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혜결사의
사상으로 연연히 이어져 오고 있는데 조선조에
부휴선사라든지 취미선사 무용, 영해,
풍암, 묵암과 같은 선사들이 주석하였고
근세에 효봉스님은 유명하신 스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최근에 그 맥을 이은
구산스님은 송광사에 조계총림을 개설하시고
국내외로 불교 발전에 공헌이 많으신 분이다.
이렇게 한 가람 안에서 16대에 걸친 국사의
존호를 받은 경우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이후 최근에 이르기 까지 보조국사의 법통을
이어온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송광사는 승보사찰의 면모를 영원히 간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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