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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11월호 / 통권 27호 / 불기
2540(1996)년 11월 1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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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법어 나를
찾는 공부 / 이행원(숭산큰스님)
'쿵'
이
소식은 무슨 소식인가? 이 소식은 산이
물이 되고 물이 산이 된다는 소식입니다,
산이 물이 되고, 물이 산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자꾸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없기 때문에
과거가 없고 미래가 다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허망합니다. 변하지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일월성신
.산하대지 이름과 모양이 있는 것은다
변하고 변한다는 겁니다.
'쿵'
이것은
무슨 소식이냐? 이를 과 모양의 세계를
떠날 것 같으면 우리 본체가 드러납니다.
본체, 그걸 어떤 사람은 본체라고 하고
혹은 또 어떤 사람은 실상이라고 이야기하고,
그 본체의 세계에서 볼 때는 이름과 모양을
가진 것이 변하고 변한다 할지라도 그
본체의 세계는 하나도 변함이없습니다.
그 본바탕은 텅빈자리입니다. 텅 빈자리에
들 것 같으면 모양과 이름을 초월해서
생각할 것도 없고 멸할 것도 업고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어 전차1가 다하나로서
귀의합니다. 즉, 만법이 하나로 귀의합니다.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며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그 자리는 이름과 모양을 초월했기
때문에 입을 열게 되면그르칩니다. 곧.
말하게 되면 이미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본체의 자리라. 그 자리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쿵'
이
자리는 그럼 또 어떤 자리이냐? 실상의
세계라. 실상의 세계를 우리는 진리의
세계라고 합니다. 우리가 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모든 것이
끊어진 세계라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지만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중생을 구제할 것인가?열반의
세계에서 진리의 세계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실상의 세계라고 합니다. 실상의
세계를 우리는 진리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상의 세계, 허망의 세계,텅비어
있는 진공의 세계라는 세 가지의 세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세계를 지나면 비로소
실상의 세계, 진리의 세계라. 이 곳에
가면 산은 산이요, 물은 그대로 물입니다.
산도 공하고 물도 비었다는 것은 실상의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 근본의 세계, 거기서
한 발짝 나가면 곧 진리의 세계입니다'
'할'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갑니다. 산은 푸르고
물은 홀려간다는 세계가 또 하나 나왔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 이용의 세계에서
한 발짝 나오면 산은 푸르고 물이 흐른다는
세계가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실용의
세계라고 합니다. 실용의 세계에는 세
가지가 있어 일체의 세계, 그 다음에 실상의
세계,그 다음에 실용의 세계입니다. 곧
쓰는 세계라, 곧 보살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이 실용의 세계를 올바르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대보살도를 이루게 되고 일체
중생들을 구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는 나만이 깨쳐서 부처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내가 깨친 것을 남에게 베풀어서
모든 중생을 이끌어 불국토를 만들자는
것입니다.'자타일시 성불도' 하자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모양과
이름의 세계는 자꾸 변하고 모양과 이름의
세계는 고통의 세계라. 모양과 이름의
세계를 떠나는 것을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모양과 이름에 걸리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의 공부라
하고 마음의 공부를 법의 공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 와서 학문을 공부합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그러니까 지식과
지혜라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혜는
누구한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저 마음을
닦고 닦아서, 생각을 쉬고 쉴 때져 대상이
없어지는 세계가 나온다 이겁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세계에서 얻는 것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을 초월한 것입니다.
하늘과 하나가 되고 땅과 하나가 되었을
때, 상대가 없어졌을 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전부 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닙니다.
옛날
임제스님은 무엇을 물어도 '악'하고 소리를
질렀고, 덕산스님은 무엇을 물어도 방망이로
때리고 굳이 스님은 무엇을 물어도 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그 자리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입을 열어서 설명할 수가
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손가락이나
할이나 방망이로 본바탕을 보여주셨다
이겁니다 거기서 한발짝튀어 나가면 옛날에
동산스님한테 '부처가 무엇업니까?'하고
물으니까 동산스님은 '마가 서근이다'
라고 하셨으며,운문선사라는 유넣한 선사는
선사가 막 변소에 갔다 오는데 어떤 사람이
'부처가 무엇입니까7' 하고 물으니까 '마른똥막대기다'하고,
또 어떤 사람이 주주스님한테 묻기를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7'하고 물으니까
'뜰앞에 있는 잣나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상각으로 하편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 자리는 실상을 나타낸 자리라 우리의
근본과 우주의 근본을 가르쳐 주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학문적으로만
불교를 배울 것이 아니라 이런 도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데는 가정도, 직업도 다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공부를 해야 할것인가?
일제 중생을 위해서 종사하는 보살도를
닦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보살도를 닦을
때 이 세상에 나온 가치가있는 것입니다
보살의 길은 무었인가? 보살행을 하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위해 봉사를 할 때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 중생을 위해 봉사할 때 앞길이 확
열리고 일체중생을 위해서 사는 보살도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을 보살도라고 합니다.
이 시대를 말세라고 하는데 우리는 무었을
해야 하느냐 '나를 찾자는 공부
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 어떻게 죽을
줄 모르잖습니까 그러니까 죽기전에 나를
찾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 불교는 내 자신을 깨 닫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갈 길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세세생생 보살도로 나아갈 길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이 무얼 가르쳤냐,
나 자신을 깨달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나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해가자고 잃지 중생을
제도하여 산다면 무 얹을 먹는지 무엇을
하든지 괜찮습니다. 나의 목적이 뚜렷하다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목적이 불분명하고
네 하루 하부 사는 것이 욕심에 얽혀 산다면
죽어서 어디로 끌려갈 지를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일심히 공부해서나
자신을깨닫고 내 마음 속에 있는 지성을
밝혀, 우주의 대 광명을 밝혀 일체중생을
제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주문 莫存知慧
/ 법산스님 / 서울 정각원장
일주문(一t主門)은
절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기둥은
좌우 하나씩 밖에 없다 문 위에 「00산00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어서 산문(山門)이라고
부르며, 일주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신선한
절의향기가 물씬 느껴지면서 마음까지도
경건해져 저절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되고 자세도 정숙해진다. 어떤 절에는
일주문 약간 못미친 곳의 양쪽 돌기둥에
「入此門丙 莫存知慧)」라는 두 글귀가
새겨져 잠시 걸음을 멈칫하게 한다 즉
「이 문안에 들어 가면 알음알이를 두지말라」는
말이다. 절이란 수도처로서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어 깨달음을 얻는 곳이므로 절에
기연 일반적으로 세상살이에서 고뇌하단
생각을 잠시 털어놓고 새로운 깨달음으로
밝고 맑은 지혜를 증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주문 밖에서 가지고 있던 관념 즉 권력,
재산, 지식 이념 등 마음에 어떠한 주관이나
권위의식도 붙여두지 빌고 깨끗이 버리고
나서 일주문에 들어서야 비로소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밝은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만약
일주문 밖에서의 생각을 그대로 가진 채
절에 들어간다면 밖에서 가지고 온 그
견해가 주인이 되어 아무리 좋은 정보도
담기질 틈이 없으며 어떤 지혜의 밝은
빛도 스며들 겨를이 없으므로 소득이 없다.
일단 일주문을 들어서 편 일주문 안의
규칙을 지키겠다는 선택적 의무가 주어지게
되므로 반드시 한생각 돌이켜 평소의 고정된
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우선 입문자의 마음이
스스로 열리지 않으면 문안의 상황을 제때
받아들여 수용하지 못하므로 마음에 압박감을
느끼고 이방인처럼 행동하게 되므로 항시
불안하고 불편하게 될 뿐이다.
이
점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 집단,
모임, 가정 등 어느 곳에나 규정과 분위기가
독특하게 간직되어 있다 일단 자기의 마음을
단체나 모임의 성격에 부합시키고 순서
하여 분위기에 어울려야 우리는 더불어
살 수 있다. 일주문에 들어가키 전에는
들어갈 수도 안 들어 갈 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일단 들어가면일주문 밖의
생각을 버리고 절 안의 분위기에 맞추어
가는 것이 새로운 세계를 깨우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동국대학교의
일주문은 교문이다 동국인은 교직원, 동문이
모두 문 안의 한 가족이다 울타리 안의동국가족은
동국의 이념을 잘 수순 해야 한다 자신과
동국은 둘이 아니다 어떠한 다름이 있더라도
동국의 정신 아래 나를 깨우쳐 밝은 사회,
아름다운 국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정각도량 업(業)
이야기 / 도업스님 / 경주 정각원장
얼마전에
"은행나무침대"라는 영화가
크게
흥행한 후, 전생이나 윤회에 관한 책들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지금의
나는 전생에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또 내세에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까
하는 등의 문제는 누구나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그런데 전생이나 윤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업(業)이라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전생이나
윤회는 업이라는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생명체(衆生)는
시간상으로 과거 .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윤회하고, 공간적으로 지옥.아귀
.축생 .아수라.인간 . 천상의 육도(六道)를
윤회한다고 하는데 그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이 곧 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업,
전생, 윤회라고 하는 말의 구체적인 뜻은
무엇일까. 업이란 범어(梵語) karrna의
번역어인데, 그 본뜻은 행위 또는 버릇이라고한다.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굳어지는
버릇 또는 습관을 의미한다.그런데 사람의
행위 즉 업은 묘한 습성이 있어서 행위
그 자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위에 의해서 미묘한 힘이 붙게 된다.
이것을 업력(業力)이라 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업을 만들어 가지만
업에 일단 가속도가 붙으면 자기도 어쩔
수 없이 구업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 입력의
묘한작용이다. 예를 들면,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것은 사람의 의지지만 한번 두번밟아서
자전거에 일단 가속도가 붙으면 정지하려고
브레이크를 잡아도 곧 멈추어지지 않는
원리와 같다. 또 예를 들면, 술을 마시는
행위 그것이 곧 업인데 처음에는 자기가
주체적으로 마시지만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면 음주하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게 된다. 그래서 일단 알콜중독에 걸리면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주력(酒力)에 끌려
또 술을 마시게 된다. 이것이 업의 속성이며
부사의함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업력에의해
생(生)하고 입력에 의해 사(死)하게 되는
것이다. 전생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생만을 말하는
것이아니다. 지금이라는 시점으로부터
지난 과거의 생활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생이란 지금 ''이 시각''을 기점으로
해서 보면 어제도 전생이요 지난해도 전생이며
태어나기 이전의 생도 전생인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전생의 업에 의해서 이승의 내가
있게 된 것이고, 작년에 한 나의 행위(業)에
의해서 금년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있게
되었고, 어제 내가 한 일(業)에 의해서
오늘 ''이 곳에이렇게'' 내가 있게 된
것이다. 각각의 지난 과거의 시간에 가졌던
생각이 다르고 행위가 달랐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 사람마다의 생각이 다르고 행위가
다르고 그러므로 또 처한 위치나 모습이
다른 것이다. 윤회란 무엇인가. 지금의
자기 모습이 자기의 생각과 행위 즉 자기의
업력에의해서 순간순간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가는 작용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생명체는 물론 무정물(無'1'杳物)들까지도,
순간순간 윤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윤회하면 전혀 다른 형태의 모습을
생각하기 쉬우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육도윤회 (六道輪爻釀)하면 사람이
소로 태어나거나 아수라로 태어나는 모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 윤회하는 시간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면 사람은 소도 될 수 있고 아수라로도
태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와
소년은 그 모습이나 사고능력 등 여러
가지 면어1서 서로 다르다. 소년과 청년이
다르고 청년과 중년도 다르다. 중년과
장년이 서로 다르고 장년과 노인 또한
다르다. 그러나 조금 달리 생각하면 9세
아이와 i0세의 소년은 별로 다르지 않고,
19세의 소년과 20세의 청년은 서로 같다.
29세의 청년과30세의 중년은 다르지 않고,
49세의 중년과 50세의 장년은 같다. 그
뿐인가, 59세의 장년과 6i세의 노인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인이 곧 장년이고 장년이 곧
중년이고 중년이 곧 청년이며 청년이 곧
노년이며 노년이 곧 어린 아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이 곧 어린아이요 어린아이가
곧 노인인 것이다. 어린아이와 노인은
전혀 다른 존재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윤회의 논리에서 보면 어린 아이가 곧
노인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될 일이 하나 있다. 지금 여기에 이런
상태로 있는 이 노인의 모습은 어린 아이가
전생(즉 지나온 과거의 시간)에 어떤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면서 어떻게 행동해 왔는가의
결과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예사로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훗날의 내 모습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부처님께서도 간절하게 말씀하시지않았는가.
신(身)
.구(口) . 의(意)의 삼업(三業), 즉 몸과
말과 행동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수행의
근본이라고!
정각논단 불교문학의
비유 / 홍기삼 /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의
가장 소박한 매력은 일상의 언어감각을
전복시키는 비유의 날카로움에 있다. 그것은
단지 날카롭기 만한 것이 아니라 언어의
찬란한 광채, 일상의 잠을 흔들어 깨우는
느낌의 진동, 우리의 관습에 일격을 가하는
의외성, 탄복을 자아내는 표현의 적정성과
무릎을 치게 만드는 공감의 힘 따위가
비유를 통해 산출되는 문학의 매력이며
특성의 하나가 된다,
불교문학온
가장 풍부한 자산을 가진 비유문학의 보고다.
여기서 말하는 불교문학이란 십이 분교
모두를 포괄하는 불교경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도의 수사학과 문학적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인도의 문화선반과
어느 정도 관계를 갖는다.
한
연구자의 소개를 참조해 보면 (岩本 裕,
불교설화의 원류와 전개))불교문학의
비유에는 upamZ, aupamya,drst읕nda, apad듭na(
;ava-dna)등으로나누어 살필 수 있다.
uparn 는 수사론에서 직유(sde)를 의미한다.
a heart uke stone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uparn는 동사어근 upa에서 유래한 것으로「비교」
「상사(相似)」 또는 「동일한 것 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다른 것에 재다」
「비교하다」는 뜻을 어원 적으로 갖는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의 비유는 어떤 관념이나
존재를 현실 속의 사물이나 사태에 대해
비유한 형태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숫타니파아타》에서 ''뱀의 독이
몰에 도는 것을 약이억제하듯, 노여움을
억제해서 수행자는 이 세상을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껍질을 벗어버리듯.''과
같이 노여움의 억제를 약이 뱀의 독을
억제하는 것에, 세상비리는 것을 뱀이
허물을 벗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uparna에는
은유적 인 것도있다. ''살결이 옥 같다''가
직 유라면 ''머리에 서리를 이다''는 은유다.
예컨대 어느 농사짓는 바라문과 세존과의
대화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역시 숫타니파아타》에
있는 내용이다.
바라문
: 수행자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갈고 뿌린 뒤 식사를 한다.수행자여, 그대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게. 그리고 그 뒤에
먹도록 하게.
석가
.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있다. 그리고 그 뒤 식사하고 있다.
바라문
: 그러나 우리는 그대의 연장도 소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렇게말하는가. 그대
스스로 농부라 하지만 그대가 경작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네.그대가 경작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밝히도록 하게.
석가
: 믿음은 종자, 고행은 비, 이지(理智)는
연장, 수치심은 말고삐, 생각은 내 멍에,
행동을 조심 말을 조심, 음식을 절제해
과식함은 없고, 우리는 진정 풀을 깎고
절제는 내 멍에를 벗기는 것,노력은 우리를
태워 옮기는 소, 평온한 곳으로 옮려간다.
물러섬 없이 나아가고 거기에 이르러 걱정함
없네. 이 경작은어같이 해서, 여기 불사(不死)라는
과보있네. 이 경작을 행하면 모든 고뇌로부터
해방되느니.
위의
문답중 석가의 대답은 거의 은유적 수사에
힘입어 상대를 설득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종자는 믿음에 , 비는 고행에, 연장은
이지에, 말고삐는 수치심에, 멍에는 생각에
각각 대응하는 은유적 장치들이다. 쉽고
간명한 비유여서 이해하는 데는 결코 어려움이
없다.어느 바라문이 일하지 않으면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 바른 이치 아니냐는 뜻으로
세존께 추궁했을 때 세존의 대답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존에겐
농사를 지을 땅도, 연장도 없었고 따라서
일하는 모습도 보여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가장 중요한 농사가
무엇인지 은유적 이치를 통해 가르쳐서
바라문의 비판이 단순한 현상의 것이었다면
세존의 비유는 궁극적 삶의 방식에 관한
것임을 일깨운 것이다.
다음으로
auparnya에 대해 알아보자. 법화경>의
<비유품>의 원명 이 auparnya인데
이 비유의 특징은 ① 어떤 가정의사실을
상정한다. 그 가정의 사실을 근거로 해서
가르친다는 점이다. 물론 어느 특정 장르에만
해당되는 비유는 아니다. uparnma가 단유(短喩)에
속한다면 이것은 장유(長喩)에 해당된다고
할 수있다. uparnma는 원시경전에 두루
보이고있을 만큼 수사적 전통이 오래된
셈이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비유도 단순한 사실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 쪽으로 근접하게 되었다.여기에
등장한 비유가 auparnya이다. 이 역시
비유임엔 틀림없으나 uparri귤의 단순성을
벗어난 비유의 이차적 전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어떤 사실을
가정하는 방식으로 이 비유는 흔히 행해진다
옛날
어떤 곳에 한 부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의
집은 초가였다 합시다.
그
집에 갑자기 큰불이 일어나 집 전체가
불에 휩싸였다 합시다.
그런데
그 집엔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었다고 합시다.
그
집안에는 어린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놀고 있다 합시다.
이처럼
이야기는 모두 가정된 사실들로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전개된다 그리고 이 설화의 끝은
비유의 진의를 해석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쓰러져가고 불타는 집은 이 세상(삼계)을
뜻하며, 하나밖에 없는 출입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의미하고, 부잣집 주인은 부처다.
불이 타오르는 집 속에서 철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은 중생을 뜻하고 소 양 말이
모는 수레가 있다면서 어린 아이들을 불
속에서 이끌어 밖으로 불러내는 것은 중생을
가르치기 위한 교묘한 수단이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백유경》(실제로는98편이지만)은auparnya만을
모은 비유설화 집인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한 어리석은 자가 있었다. 그는 손님을
초대해서 우유를 대접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만약 우유를 짠다면
매일 우유의 양이 늘어서 보관할 수가
없어지겠지. 게다가 썩을 위험도 있고.
그러니까 우유를 짜지 말고 소의 뱃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초대한 날 한번 짜자.''
그는 어미에게서 송아지를 떼고 어미 소의
젖을 짜지 않은 채 1개월쯤 두었다. 그리고
손님이 오자 젖을 짜려 했으나 젖은 나오지
않게 돼버리고 말았다. 많은 손님은 노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
이상이
대강의 줄거리다. 이야기 뒤에는 ''어리석은
자는 이렇다. 보시를 하려 생각했으나
'더 많이 있을 때 하자.'고생각하면서
보시를 하지 않고 돈을 저축하려 한다.
그러나 돈은 어느 사이에 세리가 거두어가고
수재나 화재를 만나기도 하며 도둑이 훔쳐가기도
한다, 때로는 보시의 공덕을 쌓지도 못하고
갑자기 죽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역시 보시는 기회만 있다면 하여야 한다.그
기회를 잃으면 이야기의 어리석은 자처럼
되는 것이다''로 이어지며 그친다. 우유를
짜지 않고 소의 뱃속에 더 많이 저장해
두려 했던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는 물론
가정된 사실이지 실재했던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그와 같이 미련한 자가 존재,.....
소의 뱃속에 우유가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젖줄이 말라붙어 한 방울의 젖도 얻어
낼 수 없는 것처럼 부자가 된 뒤에 보시를
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인가를
알려주는 가정된 비유의 설화인 것이다.drstanda는
aupamya에 속하기는 하나 다음과 같은
서사적 특성을 갖는다. 첫째 설화의 주인공은
덕행 있는 사람일것. 둘째, 설화의 진행에
부처가 직접 간여하지 않는 것(그러나
그 가르침은 서사 전개의 주요 동기를
이룰 수 있다)등이다. drstanda 는 본래
「실례」 「예증」등을 의미하는 말로
논리학과 강은 관계를 가진 말이었으나
''어떤 주장 없이 진술이 실례로 증명되는
경우의 비유''라는 수사학적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여기에
해당된다.어느날 장사꾼 일행과 함께 승려들이
바다를 항해하다 배가 난파되었다 그때
나이 많은 승려가 널빤지를 잡으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더없이 위험한 바다가 망망
무제로 넓게 퍼져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표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 승려가
널빤지를 잡고 헤엄치는 것을 본 늙은
승려가 말을 걸었다.''나이 순서대로 가지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러니 그
널판지를넘겨주게'' 젊은 승려는 세존께서
연령순서로 가지라는 가르침을 떠올리고
부처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하여 노승에게
널빤지를 넘겼다. 바로 그때 젊은 승려의
성실한 마음에 감동한 해신(海神)이젊은
승려를 해안으로 구출하고 ''너는진정한
승려이고 사문이다''라고 칭찬하였다.
이것은
미명의 (대장엄논경)(권3, i2)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비유설화로 분류한다면 auparnya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런 교훈적 설화를
모아 하나의 문헌으로 엮은 것을 drstanta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설화의 유형이
아니라 설화 집의 기능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모토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본질로서의 비유' 가 아니라 '용법으로서의비유'에
해당된다. 배가 난파되어 죽음의 순간을
맞은 극한의 상황에서조차 세존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지탱하던 널빤지를
양보한 젊은 승려의 태도는 가정된 사실을
통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설화의 주인공이 덕행 있는 인물이며 서사진
행에 부처가 간여하지 않는다는 설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비유」라고 번역되는 apadana는
어떤 것인가.이 역시 불제자 또는 경건한
신자의 덕행과 그 인연의 이야기다. apadana는
비설화적인 uparma와 달리 설화의 형태를
통해 나타나고 같은 설화라 하더라도 가정의
사실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aupamya와도
다르다. 구분교(九分敎) 또는 십이 분교의
하나로도 설명되는 apadana는 '영웅적
행위'나 '위업'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한역
되면서는 연(♣彖), 인연, 비유, 비어(譬語)
등으로 소개된 말이다.
apadana는
비유적 설화로 기능 하기는 하지만 비유
보다는 설화에 해당되는 서사 양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apadana를
비유라고 번역한 것은 그다지 적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것을 비유라고 번역하면서도Jataka와
같은 본생 설화에는 비유라는 뜻으로 번역한
사례가 없는 것은 다소 의심스런 일이다.
그러나 불교경전에 수록된 그 많고 많은
설화들은 본질적으로 비유문학으로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설화는 설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교의 보조수단인 것이며 바로 그런 까닭에
불교설화는 비유의 기능을 수행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는다. 중생들에게 심오하고
난해한 가르침을 쉽게 이해시키고 재미있게
깨우쳐 주는 데는 설화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찾기 어려울것이다.
교리강좌 참회
/ 정승석 / 불교대학 교수
중국에서
불전이 번역된 이래, 참회라는 말은 일찍이
불교어로서 통용되어 있었다.그럼에도
그 말을 기독교의 용어로 생각하기 쉬운
것은, 천주교의 고해 성사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든가 장 자크 루소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에서 성자로 취급되는 만큼, 고백론이라고도
번역되어 있는 그의 참회록은 성자에게도
어떤 잘못이었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여기서는 범부가 기대하는 참회의 의미를
찾기어렵다. 그의 참회란 자신의 신에
대한 찬미와 믿음을 고백한 것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이 다.
프랑스의
루소는 자유 분방하고 낭만적인 계몽주의자였던
만큼, 그의 참회는 우리에게 모범이 될
듯하다. ''잘못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말라.''라는 그의 명언을 고려하면 더욱
그 자신의 참회를 기대할 만하다.실제로
2부로 구성된 그의 참회록에는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 얽힌 감정을 중심으로하여, 자신의
편력이 솔직하게 토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참회의 마지막에 덧붙인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면, 그의 참회의 진의에 대해서
아무래도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누가 지금 내가
막 폭로한 것과 상반된 것을 알고 있어서,
그것을 수없이 증명하더라도 그는 거짓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와 함께 그것을 구명하고
해명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정의도 진실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당당하고
기탄없이 밝혀 두겠습니다. 어느 누구든
나의 책을 읽지 않더라도 자신의 두 눈으로
나의 성격, 나의 품행, 나의 성벽, 나의
쾌락, 나의 습관을 살펴보고 나서, 나를
불성실한 인간이라고 믿는 자가 있다면,그런
자야말로 박살시켜 마땅할 인간입니다.''
결국
루소의 참회는 자신의 모든 감정과 행위가
정당함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인도에서는
일찍이 안기가 끝나는 날에 스님들끼리
'타인에게 고백'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
관습이 원래의 포살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참회는 이 포설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포설이란 스님들끼리 계율을 잘 지키고있는지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의식이었는데,이때
잘못이 있음을 자각한 스님은 그 점을
일동 앞에서 고백하고 이에 대한 판결을
구하였다. 이 고백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것이므로,
판결하는 측도 아무래도 관대하게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처하게 된다. 그래서 참회는
잘못의 고백과 이에 대한 용서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개념이다.
참회의
원어는 크샤마(ksarna)이고 이 말은 참마(懺摩)라고
음역되었다. 크샤마는인내, 관용, 용서를
의미한다. 이 같은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참마의'참'에다 과오를
뉘우친다(悔過)는 의미의회(悔)를 덧붙여
참회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불교에서의
참회는 단지 종교적 자비외실천이라는
측면보다는, 그것이 자각이라는 깨달음의
전제가 된다는 측면에서 중시된다. 또
한편으로 그것은 인과 응보라는 불변의
법칙에서 구제의 길을 찾을 수 있는 돌파구이기도
하다.
''중생이
지은 행위는 백 겁을 지나도 없어지지
아니하여 인연이 결합하는 때에 가서는
응당 과부를 스스로 받아야 한다.''라는
것은 불교 윤리의 근본 법칙이다. 그런데
이 법칙에 악업을 상쇄할 수 있는 방도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 법칙은 자기 변신이
불가능한 결정론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숱한 경전들이 악업을 상쇄할 수
있는 방도로서 참회를 강조하고 있다.예를
들어 『분별선악보은경』에서는 ''비록
악업이 있어도, 마음을 돌려 고백해서앞서의
잘못을 반성해 깨닫고 마음을 집중하여
거듭 참회한다면, 비록 악업을 지었다
해도 그 과부를 받지 않는다.''라고 설한다.특히
『심지관경 (,心.地穰匿經)』에서는 참회는
능히 번뇌의 섶나무를 태우며, 영원한
즐거움의 궁궐에 들어가게 하며,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며, 깨달음의 꽃을
피어나게 하며, 부처님의 지혜의 거울을
얻게하며, 보배 있는 장소에 이르게 한다는
등으로 참회의 효력을 제시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효력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를 실천할 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서도
입장을 참회하는 예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내가
이제 몸과 말과 생각의 청정한 업으로
법계에 두루 한 많은 부처님과 보살들
앞에 지성으로 참회하고, 다시는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계율의
모든 공덕에 머물겠다.''
불교에서는
그 대가를 의식하지 않는 진정한 참회를
'무상(無相)참회'라고 한다.『육조단경』의
참회품에서는 사홍서원도 이무상 참회
후에 발해야 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참회란
믿음을 성립시키는 바탕으로서 마음을
먼저 정화하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육조단경』에서 설명하는 무상참회야말로
참회의 불교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
''참(툴戮)이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침이다.전에 지은 악업인
어리석고 교만하고 시기질투한 죄를 다
뉘우쳐 다시는 더 일어나지않도록 하는
것이다. 회(悔)란 이 다음에 오기 쉬운
허물을 조심하여 그 죄를 미리 깨닫고
아주 끊어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범부들은 어리석어 지나간 허물은 뉘우칠
줄 알면서도 앞으로 있을 허물은 조심할
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지나간 죄도
없어지지 않고 새로운 허물이 잇달아 생기게
되니, 이것을 어찌 참회라 할 것인가.''
경전의
세계 대집경 / 이만 / 불교문화대학
교수
『法華經』과
『華鳥隻經』처럼 각광을 받지도,『無量壽經』이나
『大日經』처럼 하나의 종파를 형성하지도
못했지만, 『大集經』은 중요한 대승 경전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원래의 명칭은
『大方等大集經』이다. 범어로는maMsamnip됴ta
s고ra이 고, 티 벳어로는 ' dus pa chen
po라고 하는 경이다. 경영에서 '方等'은,
널리 일체의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方' 이고, 고르게 모든 가르침을 설하기
때문에 '等'의 뜻을 가진다. 이 방 등은
초기와 중기의 대승 경전의 경영을 장식한
형용사라고 할 수 있다. 『大方等陀羅尼經』
또는『大方等)枕雲經』 등 5세기 경 중국에
다수 의의와 같은 종류의 경전이 전래되었다.
천 태대사는 오시교판에서 방 등 시를
화엄시, 아함시다음 반야, 법회열반시
전의 제3의 설법시료시설하고 있다. 이
방 등교를 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마경』,
『능가경』, 『승만경』 등을 들 수 있다.
대정신수대장경에서는 방 등 부에 속하는
경전 중에서 『대집경』을 별도로 '대집부'로
분류하고 있다. 대집경은 초기와 중기의
대승불교의 기본적 성격(방등경)과 이것과
구분되는 특수한 성격(대집경)을 띠고
있는 경임을 알 수 있다.
『대방등대집경』은
뉘앙스가 다른 여러 가지의 부분으로 성립되고,
그것이 '法數'에 의해서 다소나마 통일된
형식을 갖춘, 17分 60卷으로 성립되어
있는 一大茴書라고 할 수이 만/불교문화대학
교수있다. 이 60권의 余涇數는 隋代 招宅邑寺의
사문僧就가 편찬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
17권 60권의 『대집경』은 명확히 전반과
후반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은
제12分의 『無盡意춈薩品』까지의 30권이고,
후반의 제13分의『日密分』 부티 제17의
『十方菩薩分』까지의 30권이다.
1)
瓔珞品(1권 전반)에서는 부처님이 성토한
후 16년이 지나 사자보좌에 올라가 온갖
보살과 마왕 등을 위해 보살이 행해야
할 무에의 법문을 설하려고 함을 보여준다.
2)
陀羅厄自在王菩薩品(1권 후반-4권)에서는
부처님이 다라니자재왕보살을 위해 수행해야할
계.정.혜 및 다라니에 대한 4종의영락장엄한
법 등에 대해 설한다.
3)
寶女品(5, 6권)에서는 寶女薑女가 성취한
32종의 보심 등을 밝힌다.
4)
不斷墩菩薩品(7권)에서는 불현보살을 위해
8다라니, 8정진, 8법, 8장엄, 8발심 등을
설한다.
5)
替慧菩薩品(8-11권)에서는 해혜보살에대해
i爭因三昧, 불법, 대승의 의의, 보살의
발원, 魔冀, 사천왕조 등을 제시한다.
6)
無言菩薩品(12권)에서는 무언 보살이 설하는
바에 따라 무언, 無聲, 空인 法'1生을
설한다.
7)
不可說菩薩品(13권)에서는 불가 설 보살이
설하는 바의 발 무상보리심의 16법, 증장보
리심의
32법 등을 술회한다.
8)
虛空藏菩薩品(14-18권)에서는 허공장보살을
위해 6바라밀을 비롯한 보살의 각종 덕업을밝힌다,
9)
寶幢分(19-끄권)에는 13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보살이 각종의 색을 시현하여
중생을 조복하고, 마귀들을 파괴하는 신력의
인연과 마귀의 권속을 파하는 주문 등을
설하며, 범천 등의 사천왕은 이 경전을
호 지할 것을 맹세한다.l0) 虛空目分(22-24권)에는
10품이 들어 있는데, 4제, 8정도, 12연기설
등을 설하고, 4무량심의 修相과 여러 가지의
방편행을 설하면서 결국에는 대승의 진리로
회향하는 것을 설명한다,11) 寶慓菩薩品(25-26권)에서는
보살의 바라밀행, 助菩士튠行, 신통행,
調衆生行이라는 4종의행을 설명한다.
12)
無盡魚菩蘊品(27-30권)에서는 6바라밀,
4무량심, 6통, 4섭, 4무애지, 4依 등을
아무리 닦아도 지나치지 않음을 말한다.
i3)
日密分(31-33권)에는 6품이 들어 있는데,사방의
보살들이 운집하여 정법의 수호를 서원한다.
14)
日藏分(34-45권)에는 13품이 들어 있는데,
악업을 멸진시키는 다라니의 공능과 星!笛의인연
및 염불삼매 등의 신통력을 설한다.
15)
月藏分(46-56권)에는 20품이 들어 있는데,
악귀들이 불법에 조복하게 되는 인연과
탑사 건립의 공덕을 설한다.
k)
須彌藏分(57, 58권)에는 4품이 들어 있는데,
보살도와 다라니의 공덕을 설한다,
17)
十方菩薩分(59, 60권)에서는 50종의 校計罪의
모습을 설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반의 각 장은 하나의
경전으로서 내적 연관성을 결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각 장은 각각의 독립된 경전으로
형성되어 있다, 또 각 품은 다른 대승
경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각 품이 서로
관련성을 가진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설해지는 교리도 서로 연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각 장의 통일은 단지 법상과
법주를 설하고 있는 점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정도이다. 제 13 日密分 이후의 후반은
隋의 成就에 의해 부가된 것으로 보여진다.
『대집경』의
내용은 잡다하여 통일성이 없고,법수의
나열이 많아 흥미를 가지고 읽기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 전체에
걸쳐 부처님이 시방의 불 보살을 모아
놓고 대승의 법을 설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서, 그 설법의 基調도 공사상에
있다고 할 수있다. 또.밀교적인 요소도
풍부하여, 잡밀적인요소뿐만 아니라 순밀적인
요소도 나타난다, 또 일장분과 월장 분
등에서는 인도, 중앙아시아 등지의 天文星宿의
내용을 집대성하고 있다. 따라서 『대집경』에서는
토속신앙, 천문학과 더불어불교사상사에서
주목할 만한 많은 문제를 거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대집경』 60권은 수의 성취에
의해 편찬되었는데, 그 중의 앞의 26권
및일밀분의 3권은 曇掩識이 번역한 것이고,
무진의보살품 4권은 智嚴寶雰의 번역이며,
이는 『無盡意菩繭經』으로 독립되어 있기도
하다. 일장분12권, 월장 분 11권, 수미장분
2권은 那連去髮耶舍의 번역인데, 각기
『大乘大方等大集日藏經』, 『대승대 방등대
집 월장경』, 『大乘須彌藏經』으로 독립되어
있으며, 사방보살분은 안 세고가 번역한먁羚說明度五十校計經』으로
독립되어 있다.
동국과
불교 이학부의 신설과 시설확장 / 이봉춘
/ 불교문화대학 교수
서울
수복 후 파괴된 교사의 보수와 도서관의
재건이 시급하여, 미루어오던 신임총장의
취임식은 1953년 11월 25일에야 거행되었다.
교정의 가설식장에서 거행된 식전은 간소하면서도
엄숙하였다.우리 대학으로서는 새로운
기대로서 추대된제2대 총장 백성욱박사는
그의 취임사를 통해,현시점에서의 대학의
사명과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밝히고 학생 .교수의협조와 전동국민의
대동단결을 호소하였다. 백성욱총장의
취임과 함께 학내의 기구 개편 및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다. 이는 확 장기의 우리 대학교에
적합한 기구와 인사로서 그 운영의 민활을
기하기 위한 새 총장의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부총장 제도의 신설, 교무처 소속의 학생과를
분리한 학생처의 승격, 공석 중이던 법정
.농림 대학장의 임명 및 처장급의 인사가그것이었다.
참고로 이 때의 기구개편과 이에 따르는
인사이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총장
최정우(신임 )
대학원장
김동화( )
법정대학장
김갑수( )
농림대학장
이승우( )
사무처장
김잉석(유임)
교무처장
장원규( )
학생처장
정두석( )
이같은
인사이동 가운데 도서관장을 공석그대로
둔 것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어느 면에서
나그 인선이 잘 짜여 있다는 것이 당시
교내외의 평이었다. 한편 농림대학장의
취임과 더불어 농림대의 실습지로서 200만환으로
사들였던 청량리 교외 묵동의 농장 28,500평도
그 정리가 진척되어 밝은 전망이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종합대학으로서의
본교의 가장 큰 결점이 되고 있던 이과게
학과의 신설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이에
본교에서는 문과대학에 이학부를 증설하여
문리과대학으로 변경키로 결정하였다.
이어 그 추진으로서 소요되는 경비의 재정적
뒷받침과 구체적인 운영방안 및 설비계획서를
첨부하여 1953년 12월 10일자로 그 인가신청을
교육부에 제출했던 바, 1954년 2월 1일부로
문리과대학의 변경이 인가되어 이듬해부터
학생을 모집할 수 있게 되었다. 신설된
이학부의 내용은 수학과.물리학과 . 화학과의
3개과였으며, 문학부의 국어국문학과 .
사학과를 합하여 변경 인가된 문리과대학은
5개 학과를 갖춘 단과대학으로서 그 면목이
일신 확대되었다. 이학부의 신설로 문과대학이
문리과대학으로 바뀌어 정원이 증가한
데 이어 휴전협정으로 그동안 군대에 있던
본교 재학생의 복교가 늘어나자 이제 교사의
협소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연구실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대학원은 연구실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는 대학원의 운영에 결정적인 차질을
가져왔던 것이며, 자칫하면 희망에 불타고있는
재학생 위 향학열마저 저하시길 우려가
있는 만큼 교사의 해결문제는 절박한 것이었다.이에
대학 본관의 설계를 서두르는 한편 임시조처로서,
원래 제3강의실로 사용하다가 새로 개관하여
도서관으로 배정된 대학선원에 135평의목조
가건물을 지어 대학사무실과 교수연구실에
충당키로 하고 그 완공을 서둘렀다.
1954년
4월 초에 착공하여 1개월 쯤 뒤에 완성된
이 임시 연구실 28실과 대학원 연구실
겸 집무실 3실 등 31실은 평균 3평 정도의
비좁은 곳이었다.그러나 그 내부는 침식에도
불편이 없을 만큼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창이 많고 청색으로 산뜻하게 단장되어
곧잘 엑둘기집」으로 애칭 되던 이 연구실은
그 후 여름철에 이르러, 지붕이 얕고 얇은
목판에 함석을 덮씌운 까닭에 열기가 달아올라
사용이 곤란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우리 대학교수들의 최대낙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임시조처만으로 극심한 교사 난이
해결될 수는 없었다.그리하여 학교당국과
재단측에서는 교사문제의 항구적인 해결방안으로서
연차적으로 건축하되 우선 본관부터 착수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54년 4월
1일 국내 굴지의 설계전문가인송민구씨를
초빙, 건축사무소장으로 임명하고 설계를
서둘렀다. 한편 설계도의 작성과 때를
함께 하여 정지작업이 착수되어 교내에는
불도저의 굉음이 요란하였다. 그러나 학생
. 교수들에게는 그마저 희망의 굉음이었다.
1954년
9월 8일 석조 3층 35실 1,462평의 거대한
건물 설계도가 완성되었는데, 이 때는
예산 상의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기초공사가 이미 착수되어 있었다. 기초공사의
착수로 분위기는고조되었으나, 그것은
당시 물가지수로 보아 2억5천만환 이상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공사였다 문제는 이
거액의 자금염출이었다. 따라서 재단과
학교측은 누차의 연석회의를 갖고 건축비지출의
기본방침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건축에
사용할 석재는 1952년 사용계약이 성립된
귀속재산 「돈암채석장」을 이용하여 소요석재대금
약 4천만환을 절약한다.
②
건축자금 일부분을 후원회에 의존한다.③
재단이 소요하고 있는 대광유지주식회사의주식
14,182주 전부를 매각, 건축비에 충당한다.④
재단의 기본재산으로 되어 있는 산림에서의
과실을 건축에 중점 충당한다. 이런 방침이
결정되자 당시 불교후원회장 이윤용 씨
등 후원회측과의 상의도 원만히 이루어져,
학생의 매학기 등록시에 건축비 항목으로
약간씩을 갹출하여 소요예산의 3분의 1을
부담키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기초공사가
끝난 코냔 12월 본교 교사건축에 하나의
희소식이 있었다. 본교측 임석 진교수
. 조종석 서무과장과 이제 3철도 수송대
소속 슨소령 . 토스대위 간에 본교 건축자재의
보조 교섭이 이루어져 이듬해 3월부터
3만 5천달러 상당의 목재 . 시멘트 등
기타 건축물자의 원조를 받게 된 것이다.
3만
5천만 달러는 당시 외환률로 따지면 약1,550만환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뜻하지 안은미 제8군측의
원조로 본교의 재단이나 후원회의부담이
상당히 줄어들게 된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건축물자
성수기였던 1955년 4월초부터 미군측에서는
물자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목재100,000가,
시멘트 40,000포대를 비롯한 기타 건축자재들이
속속 운반되었다. 자재를 실은 운반차들이
그렇지 않아도 비좁고 굴곡이 많은 교문을
붐비며 오갔으며, 그것은 그만큼 공사의
진척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불자탐방 황만수
정심회 회장 / 편집부
등교길에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반야심경 독경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는 묘한 조화를 이루며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한다. 서늘한 가을바람은 우리들로
하여금 저절로 지나간 일들을 반추하게
하고 무엇인가를 사색하게 만든다. 서울
캠퍼스 기능직원의 불자 모임인 정심 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황만수 선생님을 근무하고
계시는 본관으로 찾아갔다. 본교에 근무한지
꽤 오래 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 동국대와
처음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제가 1972년
3월 11일부터 근무했으니까 올해로 벌써
24년이나 되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제행무상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지나간
세월이 정말 무상한 것 같습니다. ''불교와는
언제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평소에
생활하시면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6.25때 부모님이
충남 예산 수덕사 근처로 3년동안 피난을
가셨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수덕사에 참배하려 다니곤
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가까운 도선사를
자주 찾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잘 다스려覺者가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부족하지만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심회 선생님들은 아침에 근무하기
전이나 점심때 잠시 짬을 내어 정각원
법당을 찾아 참배하고, 법회 때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사찰순례도 가족등반으로 가는
것을 보고 교내의 다른 신행단체에 비하여
신행활동이나 단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정심 회의 신행활동
현황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심회는
서울캠퍼스의 기능직에 종사하는 불자들이
모여 만든 신행단체입니다. 기능직은 크게
다섯 분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인원은
80여명이며, 그 가운데 정심 회원은 45명정도입니다.
매월 두 번씩 둘째.넷째 목요일에 정각원
법당에서 정기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봄과 가을에 성지순례를 다니는데, 올
봄에는 수덕사를 다녀왔고, 올 가을에는
수원에 있는 용주사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정심회
회장으로서 앞으로의 포부와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제가
기능직원의 상조회장도 맡고있느니 만큼
우선 여러 분야로 구성된 회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도록 친목도모에 힘쓰고자 합니다.
그래서 봄에는 체육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심 회의 활성화를 위해 아직
정심회에가입하지 않은 선생님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도록 힘쓰려고 합니다.''정각원장
스님께서도 늘 정심회 선생님들은 음지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누구보다도
묵묵히 성실히 일하며 고생이 많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학교에 근무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실
때도 있지만 애로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나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고 주위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 보람과 긍지를 느끼죠.
그러나 음지에서 일한다고 무시할 때는
솔직히 섭섭한 심정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학교에
오랫동안 근무하시면서 예전의 학생들에
비해 지금의 학생들이 다르다고 느끼시는
점과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예전의
학생들은 서로 견해가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썼는데, 지금의 일부
학생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자신만 옳고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믿음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좀더 진취적이면서도
포용력을 가진 학생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교정의
곳곳에 나부끼는 현수막은 가을 캠퍼스의
활기를 보여주고, 정각원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볕과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는 도심생활에
찌든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고 여유있게
해준다. 우리 동국 가족이 모두 이러한
활기와 여유를 가지고 생활한다면 올 가을은
분명 결실을 맺는 계절이 되리라.
신행단체 정목회
/ 편집부
지난
83년 창립되어 지금까지 13년째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정목회(회장 유순현/경기대학
교수, 부회장 고영일/공인 회계사)는변호사,
국회의원, 교수, 실업인 등 각 분야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불자들로 구성된 신행
단체이다.
평소
친분이 있던 불자 몇 분이 모여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3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있다.
긴 역사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회원들의 신심 만큼은 남 다르다.
정목회는
현재 동국대학교 정각원에서 매월 첫째
토요일 오후 법회를 耳촌고 있으며 법산스님(정각원장)의
지도로 「육조단경」 강의를 듣고 있다.''應無所在
而生其,已, 머무는데 없이 마음을 써라''라는
마음 공부를 하고 있다 이 밖에 정목회는
한 달에 한번 정목회보를 발행하고 있으며,
이 회보에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신행생활을 소개하는 난이 있어 회원들의
신심을 돈독히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봄, 가을에 걸쳐 회원은 물론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야외 법회를 갖고 있다.
금년 봄에는 「도리사」에서 일박 정진하고
「직지사」에서 관용큰스님을 친견한 후
뒷산에 있는 암자 須彌山寺에 오른 회원들은
주위에 아름다운 선경에 흠뻑 빠져서 발걸음을
되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을에는 야외법회
경 등반대회를 북한산 「승가사」에서가졌다.
정목회는
부처님의 보시 정신을 실천하고 각자의
마음공부를 熱毛져 하고 있다 중생과 부처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데 무엇이 중생을
만들고 부처를 만들까요?
매
법회 끝에는 정목회 발원문(고은 지음)을
낭송한다.
前略......
이제 저희는 새삼 옷깃을 여며 저희의
지혜를 닦고 세상의 작은 이익을 보태고자
하는 수행을 실천코자 하옵고 아울러 밤마다
함께 깨어나는 나날을 살아 갈 발원을
하옵니다. 바라옵건데저희의 작은 뜻을
헤아린 나머지 세세 생생의 행로를 길이
가호하여 주시옵소서.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서가모니불 나무서가모니불
비유와
설화 어리석은 일들 / 조용길
/ 불교대학 교수
(1)
사자 밑에서 빌어먹은 여우
어떤
여우가 사자에게로 가서 빌어먹고 있었다,매양
남의 것을 얻어 먹으려고 쉴 새 없이 다녔다.마침
사자가 배가 고픈데 아직 먹이를 얻지
못했으므로 곧 여우를 오라고 불러서 코로
씩씩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덥석 붙잡아
삼켜버렸다. 여우는 아직 숨이 떨어지기
전에 목구멍 속에서 다 죽어가면서말했다.
''주인
어른, 저를 살려 주십시오.''
사자는
말했다.
''너를
살려 두면서 살찌게 기른 것은 오늘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너는 무슨 헛소리를
지꺼리느냐.''
(2)
뼘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다투다
옛날
한 마리의 뱀이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다투었는데
머리가 꼬리에게 말했다.
''내가
어른이어야 한다.'' 꼬리가 머 리에게
말했다.''내가 어른이어야 한다.'' 머리가
말했다,
''나에게는
귀가 있어서 들을 수 있고, 눈이 있어서
볼 수 있으며, 입이 있어서 먹을 수 있고,
다닐 때에는 앞에 있게 되므로 어른이어야
한다. 너는 이런 기술이 없다.'' 꼬리는
말했다.
''내가
너를 가게 하기 때문에 갈 수 있을 뿐이다.그러면
이제부터 나는 몸을 나무에다 세 바퀴
칭칭 감고 있겠다.''
그리고는
몸을 나무에다 감고 3일 동안이나 풀어주지
않았으므로 먹이를 구할 수 없어서 배가
고파죽게 되자, 머리가 꼬리에게 말했다.
''너는
그만 풀어라, 네가 어른이다.''
꼬리는
그 말을 듣고 즉시 풀었으므로 머리는
다시 꼬리에게 말했다.
''네가
어른이니, 네가 앞에서 가거라.'' 그러자
꼬리가 앞에서 가기 시작했는데 몇 걸음기지
못해서 불 구덩이에 떨어져 죽었다.
(3)
집을 3층부터 먼저 지으려 하다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너무나 무식하여
어떤 부잣집의 3층의 높고 넓고 화려한
건물을 보고
''내
재산도 저 사람보다 못하지 않다. 난들
왜 저런 집을 못 짓겠느냐?''
하고
곧 목수를 불러 물었다
''당신은
저런 집을 지을 줄 압니까?''
목수는
''저것은 내가 지은 집입니다,''
했다.
그는 ''지금 내 집도 저렇게 지어주시오.''했다.
목수는 곧 땅을 재고 구덩이를 파는 등
누각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목수에게
''나는
밑의 2층은 필요 없소. 맨 위의 3층부터
먼저 지으시오.''했으므로 목수는 말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밑의 2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3층을 먼저 짓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나는 밑의 2층은 필요 없소.꼭
3층만을 지으시오.''
하고
고집했다. 그때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비웃었다.
마치
세존의 사배(四輩) 제자들이 삼보에 대한
공경을 부지런히 닦지 않고 도과(道果)부터
구하려고하는 것과 같다. 즉 밑의 삼과(三果)는
구하지 않고제4의 아라한의 과 위를 얻으려
하다가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도
저 어리석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또 샅승(三乘)의
차례에 의하지 않고 먼저 대승을 배우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정경에 ''먼저 소승을 배운 뒤에 대승을
배우지 않으면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전등이야기 혜능과
일숙각 선사 / 성본스님 / 불교문화대학
교수
六祖慧能의
법을 이은 제자 가운데 一笛覺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永嘉玄覺(675-713)이 있다 그는
i益州의 永嘉縣 출신으로 내외의 경전에
통달한 당대의 걸출한 선승이다. 원래
그는 天台宗의 승려였으나 뒤에육조혜능을
참 문하고 즉시에 인가를 받고 하룻밤을
혜능의 문하에서 묵은 뒤 다시 영가로
되돌아온 특이한기연으로 별명이 붙여지게
된 인물이다. 특히 그 작품으오 잘 알려진
『證道歌』는 깨달음의경지률 노래한 신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며, 『永嘉巢』은 그의
법문을 모은 책이다.
그는
일찍이 온수의 개원시에 있으면서 편모에게
효도하고 또한 누이까지 잘 모시고 살았는데,
이러한 현각의 처신에 대하여 절집 안의
스님들과 마을에서 까지비방하였다. 어느날
모친이 별세하자 喪Ba을 입고서도 누이를
버리지 못하니 더욱 사람들의 비방을 받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히 불법을
수학하였다,어느날 복도에 60여 세가 된
신책(神策)이라는 禪僧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이가 '저 노스님을 청해서 차를 대접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현각의 간청으로 모시고
와서 차를 대접했다. 세 사람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산책선사는 현각의
71상이 남과 다르고 또 그의 누이도 대장부의
기개가 있음을 느끼고 현각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모와
형제에게 효도하는 일도 불법을 닦는 일이다.
자네가 비록 불법의 이치를 밝히긴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받지 못했구나. 과거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법을 전하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가를 했다 석가여래도
연등 불의 수기를 받았다. 만 약인가를
받지 않으면 자연 外道에 떨어진다 마침
남방에 혜능선사라는 큰 선지식이 계시니
친견하고 예배하여 스승으로 섬기도록
하라.'
현각은
신해선사의 권유로 조계산 혜능선사를
찾아 갔다 그의 나이 31살 때의 일이었다.
현각이
조계산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혜능선사가上堂
법문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현각은
주장자(錫杖)를 들고 혜능선사의 法床을세바퀴
돌고 서니 혜능선사가 물었다
'대저
사문이라면 삼천 威儀와 八萬의 자세한
품행을 갖추어 행위와 예절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이처럼
교만하고 아 만을 부리는가?'현각이 대답했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無常이호孔速합니다.(生퓻E事大.
無常迅連)'
'그러면
어찌 生死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르지않는
도리를 터득하지 않는가?'
'체험에는
원래 남(生)이 없고, 터득함에는 빠름이없습니
다.'
'그대는
生滅이 없는 도리를 매우 잘 얻었구나!''남(生)이
없음에 어찌 뜻이 있습니까?'
'뜻이
없다면 누가 分別하는가?' '분별하는 것
역시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
옳은 말이다.'
이때
천여 명의 대중이 혜능대사와 현각의 모습울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현각은
물러나 석 장을 걸어 놓고 의의를 갖추어
정중히 혜능대사께 절하고, 눈을 들어
마주치게 하고는 바로 나갔다. 그리고
곧장 승당으로 가서 대중을 찾아보고 다시
혜능대사께 하직 인사를 고하니, 혜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벌써 가려고 하는가? 너무
빠르지 않는가?'
이에
현각은 '본래 움직임이 없는데 어찌 빠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움직이지
않은 그 사실을 누가 아느냐?' '스님스스로
분별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자
혜능은 곧장 법상에서 뛰어 내려 현각의등을
어로 만지면서 말했다.
'장하미
옳은 말이다 자네의 손에는 창과 방패를
모두 지니고 있구나 하루 밤만이라도 묵어가도록
하라1'그래서 현각은 혜능의 간곡한 청으로
스승 舛潭능대사의 문하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혜능대사께
ㅎI직인사를 고하고 열 걸음 나와서 주장자로
땅을 세 차례 치고는 말했다.
'조계의
혜능대사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生死와는
전혀 상관없는 깨달음을 분명히 체득했노라!'고.현각은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 혜능으로부터
인가받은 生死를 초월한 불법을 펼쳤다
생활
속의 불교어 유아독존(唯我稠尊) /
편집부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잘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흔히 '유아독존'이라고
말한다.이 말 속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과 경멸감이 포함되어
있다. 동등한 인격체끼리의 만남, 함께
사는 인간사회에서 저만 잘난 척하는 사람이
환영받지 못할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이 쓰어진 본래의 곳, 불교용어로서는
그 뜻이 크게 다르다. 나의 잘남 만이
아니라 너의 잘남까지 인정해야 하는 당위가
그 속에 있다.
불전에는
불타의 출생광경이 신비하고 상서롭게
묘사되어 있다. 마야왕비께서 출산을 위해친정
콜리성으로 가시는 길에 룸비니 동산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우협(右脇)으로 왕자가
탄생하였다.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상서로운 음악과 함께 아홉 용이 향 물을
뿜어 갓 태어난 아기 왕자의 몸을 씻겨
드렸다. 이때 왕자는 사방으로 일콜 걸음씩을
걸으시고 다시 중앙에 서서,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는 땅을 가르치며 크게
외치셨다고 한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내가 오직 존귀하다.(天上天下
"缶我獨尊)」
세상에
출현하신 불타의 이 첫 일성을 탄생게(誕生
曷)라 부른다. 유아독존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며, 세상 사람들도 널리 쓰는 말이
되었다.
불타의
탄생설화는 물론 종교문학적인 상징성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신심 깊은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자 불타의 정신에
대한 감화의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당시
신과 바라문의 절대적인 권위는 아무도
쉽게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만큼 이런 종교적 사상적 권위와 전통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무거운 질곡이 되어왔다.
그런
때에 불타가 출현하여 인간존재의 평등함과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서 증명하는 삶을
보여주셨다. '나' '인간'외에 그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음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내가
오직 존귀하다.''는 탄생 게는 곧 불타의
인간에 대한 자각과 선언인 셈이다. 그것이
후대에 불타의 탄생과 결부된 설화로써
묘사된 것이다.
유아독존의
참 정신은 나만 잘났다는 것과는 오히려
반대의 것이다. 나도 너도, 인간은 그
자체가 오직 존귀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고 서로 인정해야 함을 보여주는 말이다.
변질해 버린 이 말의 본래 뜻이 바르게
살려자고 널리 쓰일 때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신행상담 수계
/ 계환스님 / 불교대학 교수
수정양과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수계 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은데 그린친구들을 위해서도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받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법률입니다.
법률은 구속적인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법률이 있음으로써 우리들 개개인의
자유가 오히려 보장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남을 때려 다치게 하면
상해죄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남을 때리면
안 된다는 사회적 규칙이자, 실은 이러한
법률조'항이 있음으로 인하여 이유없이
남에게 ''맞지 않는다''는 권리와 자유도
함께 보장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종교가 정한 규율에 따르고,
또한 거기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 입문하는 의식인
수계(受戒)는 꼭 받아야 합니다. 수계를
받음으로 인하여, 이제 불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수정 양처럼 수계를 받은 후에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염려를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수계의 참 뜻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원래
계(戒)의 범어는 sila로써 명상하다, 봉사하다,
실천하다논 의미의 동사로부터 파생되어
습관, 행위, 성격, 경향을 뜻하는 명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습관이나
행위를 다섯 가지(殺, 盜, 飮, 妄, 酒)에
비추어서 악행은 하지 않고, 선행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의 선언이 오계이고, 그 의식이 바로
수계식입니다.
그리고
옛 어른들이 ''계는 앉아서 받고 서서
파하더라도 받아야 한다''고하신 말씀도,
결코 수계자 자신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일상생활에 뒤따르게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들 삶의 기본윤리라고 할 수
있는 오계를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맑고 향기로운 사회가 약속될
것입니다.
지난
해 교계의 어느 신문사에서 오계(五戒)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그때 오계 가운데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망어(妄語)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타인에게 꼭 지켜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도 역시 망어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열린마당
불교를
신행하는 이유 / 전창훈 / 불교문화대학
학생회장
신행수기라
하는 것은 믿음의 실천을 근거로 쓰는
것인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껏 딱히
신행이라고 할 만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불교를 하는 몇 가지 이유를 말함으로써
수기 아닌 수기를 대신 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먼저 제목에서 '불교를 믿는'
것이 아닌 '불교를 하는' 것이라고 한
이유는 불교의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신앙
형태가 타력이 아닌 자력신앙이라 생각한데서
비롯되었다.
수행을
하던 해탈을 하던 스스로기 자발적으로
하고 얻는 것이지 누가 도와주거나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불교를 믿는다'가
아닌 '나는 불교를 한다'라고 한 것이다.
또한 기복직 성격이 강한 한국 불교의
한 모습으로 지금껏 무력하고, 관념적
종교라고 오인된 불교를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본래의 불교모습으로 전하는 뜻에서 '믿는다'는
말보다 '불교를 한다' 라는 표현이 걸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설하고 내가 불교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몸으로 깨달아 부활하지 않으신
부처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그것은 확실히 신의
사명을 받은 대리자로서 초월적인 신의
능력을 보이신 것이다. 그 후에도 종종
세상에는 불가사의한-인간의 능력을 초월한-힘을
보이는 사례도 있었지만 예수님의 부활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다. 그 부활은 신의 대리자라서
신에게 선택된 자에게 주어진 능력이었다.
그것은 석가모니에게는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종교적인 장엄한 모습이다. 내가
불교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몸으로
깨닫고 죽음에서 부활하지 않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그 인간적인 죽음이 주는 의미때문이다,
불교학과
4년을 다니고도 여전히 불교의 깊은 지혜를
알기엔 역부족이지만 입학 당시에는 불교를
그저 신비한 그 무엇이 있는 종교로 알았고
당연히 부처님이라면 예수님과 같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녔을
것이라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내 억측은
반 학기가 지나기 전에 무너졌다. 조금씩
귀동냥으로 불교를 알아가는 가운데에서
불교는 신비한 그 무엇이 있는 종교가
아닌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로
또 부처님은 초월자적인 모습이 아닌 가장인간적인
삶을 살다간 인류의 참 스승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부처님께서
40년 간을 설법하신 진리는 우주의 삼라만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과 흐르는
시간 속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으로
어느 한때의 고정된 모양으로 있지 못하는
중생에게 어떤 고정불변의 자아도 없다는
것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사물의 본 모습은
고정된 것이 없어 취할 것도 얻을 것도
없는 무자성(無③1生)한 공(空)이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한 얻을 것 없는 것에
집착하여 괴로움을 일으키고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보시고 스스로 수행하여
깨달아 해탈을 얻어야 그 괴로움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또한
모든 사물은 서로기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며 원인이 결과를 낳고 다시 결과가
원인이 되듯 서로 얽혀 있는 것이라 하시고,
이렇듯 모든 사물이 서로 얽혀, 나고(生)
머물고(住) 변하여(異) 없어진다는(滅)
부처님의 깨달음은 진리를 체득한 성자
자신도 그러한 우주의 법칙 속에서 예외일
수 없다 라는 가장 큰 가르침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부활 없는 인간적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큰 법을 설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만약
부처님이 열반 후에 예수님과 같이 영적인
존재로 부활하였다면 그의 깨달음과 그의
가르침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지혜를 이루고 부활 없는 인간적인 죽음으로써-똑같은사람으로
태어난-내게도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지니고 있으니 타인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아 수행하라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 이것이 신에게
선택된 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내가 불교를
하는 가장 큰이유이다.
2.
열려있는 사고
내기
불교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사고의열려있음이다.
옛 선사들께서는 수행하는 가운데 부처가
보이면 칼로 부를 베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것은 그 이면에 또 다른 뜻이 있겠지만
단순히 부처님이라 해서, 부처님이설하신
말씀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위해서는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부정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불교의 사고
체계가 얼마나 열려 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보여준다 -
우리는
하나의 사상이나 이념이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지 못하고 경직된 모습으로,
현실에 맞지 않는 사상을 강요하는 경우를
흔히봐왔다. 스스로 자기 부정의 길을
열어 놓지 못한 사상이나 이념이 얼마나
많은 인류에게 피해를 입혀 왔는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혹은 근래의 사회주의의
몰락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무리 부처라
할지라도 혹은 진리라 알려져 있더라도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닐 때에는 과감히
부정할 수 있는 열려있는 자유로운 사고체계가
내가 불교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불교가
오늘날 세계 곳곳에 전해지면서 강압이나
폭력이 아닌 포용의 종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자기 부정의 길을
열어 놓은 부처님의 혜안 덕이 아닐까
생각홴다.
부단히
자기 부정이야말로 점차 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본틀이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다가올 미래사회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는 가르침은 이러한 자기
부정의 기틀을 가지고 있는 불교가 아닐까?
불교!
그 갚고 넓은 바다에서 나는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지만 자기 부정의 부단한 허우적거림이
있다면 인생을 보다 적극적이고 폭넓게
그리고 가장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것이다.
불교건강법 두통증
/ 김장현 / 서울캠퍼스 보건소장
머리가
아픈 증상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흔히 느낄 수 있는 신체적 통증의
하나로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경험하게
된다.
두통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그 원인 또한
다양하지만 머리나 혹은 흉부, 복부의
장기에 의한 국소적인 경우와 열을 동반한
혹은 독성 상태의 전신적 병변에 의한
두통이 있는데, 대뇌 속에 기질적인 병변
없이 나타나는 두통은 염증성 질환의 발열에
따른 두통, 정신신경과 적 원인 및 두피(頭皮)에
분포된 혈관의 지나친 수축과 확장에 따른
두통이 대부분이다.
머리는
모든 양기(陽氣)가 모이는 곳으로 두통도
陽氣의 변조에 의한 것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있다. 일차적으로 외부환경의 자극과
내장키의 기능이상이 동반되어 발생하는데,
그 병리에 있어서는주로 풍담(風痰)과
화열(火熱)로 발생한다. 컴퓨터의 중앙전산처리장치에
냉각장치가 계속 돌아가야지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두뇌도 열을 받으면 고장이 나게
된다.
두통이
몇 년을 두고 계속되거나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감소 없이 지속되는 것은 대개
정신적이거나 헬 관성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전에는 없던 두통이 갑자기
심한 경우는 대개 기질적인 병변이 발생한
것으로 중요시 하여야 한다.
두통을
그 나타내는 부위별로 전두통, 후두통,
편두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편두통은
주로 젊은 여성층에서 빈발하는데, 혈관이
부드러워 확장이 잘 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특히 월경 전후에 많이 호소한다.
그리고 유전성도 있어 모친이나 자매 가운데
두통환자가 있는 일이 많으며 성격적으로는
완전주의자이면서 다소 야심적인 사람으로
그 야심이나 욕구가 좀처럼 실현되지 않는
것이 편두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두통이
낮에만 있는 것은 사회적이나 직업환경에
의한 것이며, 어린이의 경우 학교 가는
도중이나 어떤 특정한 시간에 두통이 발생하는
것이 많고, 여자들은 월경으로 매달 주기적으로
두통을 호소할 수 있다. 대개 밤에 호소하는
두통은 기질적인 원인이 많으며, 종양,
경부, 척추이상, 녹내장 등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대개
정신적인 두통은 봉분, 긴장, 소리 등으로
심해지며, 기질적인 병변은 기침, 재채기
혹은 몸을 구부리거나 뛸 때 더욱 심해지며,
뇌압의 상승이나 혈관질환이 있는 경우는
누우면 심해지고 일어서면 약해진다. 특히
두통과 공복 상태에서도 심한 오심과 구토가
나타나면 뇌압 상승이 의심된다. 두통에는
천궁이나 감국, 오미자 등으로 차로 만들어
복용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두통은 누구에게나
잘 나타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자주
나타나면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것 보다는 전문가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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