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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3월호 / 통권 21호 / 불기
2540(1996)년 3월 1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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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법어
선문의 공안 / 채인환 큰스님
선문의
수행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수행의 하나에
바로 수행자가 선지식을 찾아뵙고 조실
방안에서 일대일로 직접 스승에게 자신이
항상 품고 있는 커다란 의문점을 물어서
가르침을 받거나, 또는 좌선 정진하는
가운데서 얻어진 견해를 가지고 스승과
함께 가차없는 논란을 벌임으로써 자기의
경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수행의
향상에 이바지 하는 참사문법(參師門法)이
있습니다. 선원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하는
조실스님은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선의
높은 경지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었음을
조사에게서 인가를 받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법하여 참선납자들을 엄격하게 단련시켜서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시키는 그야말로
그 인격이나 식견이 뛰어난 세상의 사표가
되는 고승인 것입니다. 이러한 선문의
지도자인 조실스님에게 직접 법을 묻는
수행자들도 대부분이 이미 오랜 참선의
정진을 통해서 상당한 경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선문의 스승에게 혼신의 기력을
다하여 진지하게 묻는 것이기에 이러한
사이에서 주고 받는 문답은 그 내용의
차원이 매우 높은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선에 소양이 없는 사람들은 설사
그러한 선문답을 듬는다 하더라도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고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선문답(禪問答)이라고
하면 의례히 질문과 해답이 맞물리지 않고
엉뚱한 소리를 주고 받는 대명사같이 여겨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럴 것이
중국의 선종(禪宗)은 육조혜능(六祖慧能)스님의
법을 이은 남악회양(南嶽懷讓)스님의 제자인
마조도일(馬祖道一 : 709~788)스님에 이르러서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선풍(禪風)의 일대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마조스님이나, 그의
제자인 백장회해(百丈懷海)스님의 이전에는
이치를 가지고 수행승들을 지도하여 견성(見性)케
하는 일이 많았으나, 마조스님이 큰 고함소리로
백정스님을 견성하게 한 뒤로는 그러한
생생하고 직접적인 행동으로써 수행자를
지도하는 선풍이 성행하였던 것이지요.
백장스님의 귀를 3일 동안이나 멀게 하였다고
전해지는 마조스님의 고함소리는 말이나
글에만 얽매이는 마음을 단번에 끊어버리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마조스님 이후로는
임제스님의 할(臨濟喝)이나, 덕산스님의
방(德山棒)이 유명하듯이 수행자들을 지도할
때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또는 방망이로
때리거나, 아니면 논리적으로는 풀 수가
없는 화두(話頭)를 제시하여 제자들을
깨우쳐 견성케 하였던 것입니다.
마조스님은
“그대들 각자의 마음이 그대로 부처이니,
이 마음이야말로 부처의 마음인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에
온 까닭은 일심의 법(一心法)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능가경(楞伽經)』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무문을
법문으로 삼고 있다.(佛說之宗旨 無門爲法門)’고
한 것이야 말로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보여준 것이다.”라고 설파하였으니, 즉
마조스님의 선은 철저하게 바로 깨치는
입장(頓悟)을 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달으면 바로
부처요,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지 못하면
바로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조스님은
이 세상이 오로지 마음 하나뿐이요, 마음
말고 따로 별다른 법이 없다고 설하였지만,
그는 이 같은 삼계유심(三界唯心)을 결코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는 일이 없었으니,
마음을 이치로 관념적으로 따지는 것은
철학이나 교학에서 할 일이지 그의 관심은
오로지 세상이 마음 하나뿐인 도리(唯心)를
몸소 행하는 것이요 공(空)을 생활하는
것이요, 무심(無心)으로 살아가는 것이었고,
따라서 마조스님의 선은 중생이나 범부를
멀리하여 마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중생 그대로가 부처의 보통으로 늘 쓰는
마음(三界心)그대로가 불도(佛道)임을
몸소 행하며 생활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마조스님은 수행자를 지도할 때는 마치
사자가 토끼 한 마리 잡는데도 온 힘을
기울이듯이 언제나 전심 전력을 다하였기
때문에 마조의 뜨거운 고함소리와 날카로운
방망이질은 어떤 둔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고야 말았다고 하니, 그런
까닭에 마조스님의 문하에서 크게 깨달은
제자들이 무려 139명이나 쏟아져 나온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겠으니,
오늘날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에도
제자들을 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저러한 열망과 기개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선문답이란 결코 지식이나 언어의 관념적인
놀음이 아닌 것이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식이나 학식 그리고 언어나 문자로는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이해시켜 줄 수도
없는 선사상(禪思想)을 오직 몸으로 경험(體驗)함으로
해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自覺) 선의 수행의
하나인 것이며, 이러한 선문답의 중심문제
즉 참선정진 속에서 꾸준히 들게 되는
과제(課題)가 공안(公案)인 것입니다.
공안은
옛적 중국의 관청에서 사용하던 말(法制用語)인데
즉 관청에서 내는 법령 등의 공식문서
또는 법원에서 재판하여 내는 판결문을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관청의 공식서류(公府案牘)를
공안이라 하니, 이것은 법령에 의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에 따라야
하는 권위가 인정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화두(話頭)를 과제로 사용하는 간화선(看話禪)에서는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손잡이로써
좌선 정진하며 깊이 사색하려는 사람에게
주는 문제를 공안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공안의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본다면 중국의
선승 동산스님(洞山守初 :?~990)에게 어떤
수행승이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하니,
동산스님이 “마삼근(麻三斤)이니라”하고
답하였고, 그 수행승이 즉시에 깨달아
절을 하였다 하는 것입니다. 부처(Buddha
: 佛陀)란 깨달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고대 인도에서는 ‘종교적으로 완성된
인격’이란 뜻으로 사용되었고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언젠가는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하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던 터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고
“나는 부처가 되었노라”하셨을 때에
그들은 모두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본래의 자기’를 자각한 사람이며,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누구나 모자람
없이 갖추어 가지고 있어서 이런 점으로는
부처와 중생의 차별이 없음을 아는 마음의
눈이 열려서 모두가 부처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이
있음을 바로 본(見性)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불교를 믿는 사람, 특히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성의 문제는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불성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삼이서근'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자칫 잘못하면,
그 말에 걸려서 서근의 삼이 부처다라고
한 것처럼 알기가 쉬운데, 만약 『열반경(涅槃經)』같은
데에서 ‘모든 존재는 다 본래 부처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
有情無情皆有佛性)’고 하였다 하여 범신론(汎神論)과
같이 안다면 그것은 선에서의 참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범신론이라면 산이나 물에도
신이 있다고 믿지만, 선에서는 산이나
물같은 객관적 물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산이나, 물을 존엄한 것으로 알고 받아
들이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산스님이 말하는 “삼이서근”이라고
하는 것은 물건이나, 또는 물건의 수량이나
값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부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질문을
받았을 때 삼의 산지로세 유명한 그 고장의
특산물인 삼을 마침 저울에 달고 있던
동산이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서근의
삼을 바로 그 수행자에게 보이면서 “마삼근”하고
말한 동산스님의 마음에 이 공안을 참구하는
사람의 마음이 바로 이어지게 하려는 데에
이 공안의 목적이 있다고 하겠으니, 즉
‘마삼근’ 이란 동산화상의 마음 바로
그것인 것이며, 그것이 부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부처의 마음(佛心)이란 특별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항상 모든 것을 진리의 모습으로 보고
존중할 수 있는 자기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직접체험이라
합니다. 실지로 보고 듣고 그것을 실행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얻게 되는 경험(經驗)에
있어서는 대개가 다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가 있음에 비하여 이러한 체험(體驗)은
같은 것을 행하더라도 그 사람이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나오게 되므로
선의 수행이란 자기 자신의 전신전령을
다하여 우주와 인생을 일관하고 있는 진리
즉 자신의 인생을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바로 살 것이냐를 확립하기 위한
직접체험이요, 인생 가운데 가장 위대한
활동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근자에 우리 동국대에서 선실수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수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가장 인기있는 과목으로 부상하고
있어서 매스컴의 경쟁적 취재대상이 될
정도인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며,
선실수를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학생들이 선하는 방법을 배우고 생활화함으로써
정신적 혼란을 극복하는 힘을 기르며,
성현들도 가르쳐 줄 수 없고, 오직 체험으로만이
얻을 수 있는 선의 수행에 좋은 인연을
맺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정각도량
두 가지 법 / 이도업(경주캠퍼스 정각원장)
어떤
사람은 “법이 서야 나라가 선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법이란 힘있는
자들이 휘두르는 칼로써 이현령(耳懸鈴)
비현령(鼻懸鈴)이라고도 한다.
法이란
무엇인가.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두가지
法이 있다. 율법(律法)과 자연법(自然法)
그것이다. 여기서 율법이란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하는 계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 지키기로 약속한 일반
법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人爲的인
法이라 할 수 있다. 인위적인 법은 시대나
지역 또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물을 보는
잣대의 치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녀가 7세가 되면, 자리를 같이하면
부도덕하다고 보는 사회 윤리가 있었는가하면
20세가 넘는 남녀가 서로 팔짱을 끼고
樂樂하면서 입을 맞대고 민망한 짓을 해도
아무런 거부감도 느껴지 않는 그런 시대도
있다. 또 자동차의 핸들을 오른쪽에 달아
놓고 왼쪽 길로 가도록 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왼쪽에 달아 놓고 오른쪽 차선으로
달리게 하는 나라도 있다. 또 어느 대통령이
군 법당이 나군 성당은 젖혀두고 군 교회에만
가서 예배를 보는 것을 어떤 사람은 “신앙의
자유”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전도사들이나
할 일이지 공인된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사려깊은 처신이 아니라고 하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이와 같이 인위적인 법은
시대나 지역 또는 사람의 생각 여하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절대법이 아니다.
절대법이 아니지만 정해진 법이니 지켜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범법을 하면 처벌받음도
당연하다. 악법도 법이기 때문이다.
자연법이란
무엇인가. 시대나 지역이나 사람의 생각에
관계없는 영원의 法을 말한다.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 무성하다 가을에 시들어 겨울에
떨어지는 四季의 변화작용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는 지구의 공,자전의 법칙이 그것이다.
또 정해진 시간에 들고 나는 밀물과 썰물의
작용이나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늙어야하고
병들어 죽게되는 老, 死의 법칙을 말한다.
인륜(人倫)이나 천륜(天倫)의 법도 물론
여기에 포함된다,
이
자연의 법(法)을 부처님께서는 연기(緣起)의
法이라 하셨다. 6년 동안 고행하신 후
어느 날 새벽 밝은 별을 보시고 대각(大覺)하신
후, 「연기(緣起)의 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이 우주 법계의 어디에나 언제나 항상
하는 법이다. 나는 이 연기법(緣起法)울
깨달았으며 중생들을 위해서 알기 쉽게
이 緣起의 법칙을 설명하노라」하셨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이 연기의 법은 절대법이다.
시대나 지역이나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고칠 수 있는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법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없다. 인위적인
法을 어기면 법조항에 의한 처벌은 받지만
緣起法을 어기면 천벌(天罰)을 받게 된다는
것은 先人들의 한결같은 말씀이다. 요즈음
정치권에서는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법회 논쟁이 치열한 듯 하다, 그 논쟁의
옳고 그름은, 일차적으로는 人爲法의 잣대로
잴 수밖에 없겠지만 人爲法을 절대법으로
착각하거나 고집하면 소인이다. 참으로
大人은 연기법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연기법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緣起法의
모양은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다.
심안(心眼)이 열린 자만이 볼 수 있고
심지(心地)가 깊은 사람만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몇조 몇항 식으로 문자화되어
있지 않지만 통치자가 연기법에 눈이 어두우면
민심이 떠나게 되고, 크게 거역하면 천심(天心)이
노함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도
좋고, 신앙의 자유도 좋지만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人爲的인 法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절대法으로 착각하거나 어느 한 종교에
편협하면 연기법에는 대통(大通)할 수
없고 연기법에 大通하지 못하면 대통(大通)의
령(領)은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주문
성도절의 법등 / 전해주(불교학과 교수)
이번
성도재일에는 사찰마다 등불을 유난히도
더 많이 밝힌 것 같다. 燃燈을 한 사찰
수도 많아 졌거니와 같은 절에서도 지난해보다
동참자 수가 훨씬 불어났다. 천등 만등
정도가 아니라 십만 등 이상 밝힌 사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연등행사는 공민왕 이후부터 사월에 행해지게
되었고, 그 이전까지는 정월보름과 시월보름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음력 사월초파일의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는 연등만이
아니라 납월파일 ‘부처님되신날’등불로까지
이어진 연등행사가 이제는 자리를 잡게
되는 것 같다. 이는 부처님의 성도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하게 되므로 매우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 중생 올 구제하러
오셨음을 다 알고 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와 원력의 광명으로 어둠을 밝혀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비록 밝음의 덕을 입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밝은 빛을 볼 수는 없다. 눈뜸은 우리
개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성도의
의미를 재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소이가
이에 있다고 하겠다.
성도란
무엇인가? 성도임에 법등을 밝히며 누구나
젖어보는 단상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성도는
降魔成道로 일컬어진다. 마군이를 항복
받고 도를 이루셨다는 것이다. 마군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번뇌이다. 모든 번뇌를
멸하여 없애서 해탈하여 열반의 경지에
드신 것이다.
그러면
여러 경계 속에 부딪기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모든 번뇌가 사라진 해탈의 경지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그것 때문에 울고,
웃고, 교만하고, 절망하고, 싸우는 일체
경계란 色?聲?香?味?觸?法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나에게, 우리 주변에, 온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뭇 고통의 원인은 바로
그 여섯 가지 경계에 끄달린 탓이다. 그
六塵 경계는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무상한 존재이다. 그런데 탐욕을 부리고
집착함으로써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집착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中道적인 정진을 통해 공덕을
지어감으로써 無常苦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미 이천육백여년 전에
석존께서 깨달아 보이신 모습이요 길이다.
우리의 삶의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법등을 밝히는 참뜻이 있다.
(지난
20호 일주문의 제목 ‘욕망이라는 이름의
폭군’을 ‘절망이라는 이름의 폭군’으로
바로 잡습니다.)
전등이야기
마음이 부처요 법이다 / 이법산(서울캠퍼스
정각원장)
마음은
본래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아무런 맛도 없다. 그러나 마음은
모양도 만들고, 색깔도 나타내고, 소리도
듣고, 맛도 안다. 기뻐하고 괴로워하며,
즐거워하고 슬퍼하며, 좋아하고 싫어하며,
만들고 파괴하며 온갖 일을 다하는 것이
마음이다. 이렇듯 마음은 형체도 없으면서
용량은 무한대이고, 그 작용은 끝도 없다.
이
마음의 본래 모습을 알면 부처라 하고
모르면 중생이라 한다. 세상 일도 모르면
고생스럽고 알면 쉬운 법이다.
몸에
병이 드는 것도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몸을
잘 다스리면 병들어 고생할 일이 없다.
중생은 마음이 어리석어 욕심을 부리게
되고, 자기 욕심대로 안되면 성을 내어
평상심을 잃게 된다.
괴로움의
종자도 마음이 심고, 그 과보도 마음이
받는다. 경전에 ‘한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법이 생겨나고, 한 마음 돌이키면 모든
법이 사라진다.’고 했듯이, 이 세상 모든
일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잘못된 마음을 돌이켜 자기의 본심을 찾으면
자연히 병도 낫게 되고 괴로움도 소멸된다.
중국선종의
제3조인 승찬(僧璨)대사는 몸에 몹쓸 풍병이
들어 피부가 썩고 짓물러져 괴로운 삶을
살다가 때마침 불교를 만나게 되어 참회기도로
정진하였다. 승찬 스님은 훌륭한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으며 행각 하던 중 마침내
마음의 삼독심이 녹아 없어질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그
인연이 바로 달마 대사의 제자인 혜가대사였다.
승천은 참회로 일관된 수행을 해왔기 때문에
혜가대사에게 참회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혜가대사는 승찬에게 마음의 삼독심을
말끔히 씻고, 몸의 풍병을 고치는 비법을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제자는
풍병이 걸렸사오니 부디 화상께서 죄를
참회케 하여 주소서.”
“너의
죄를 가져오너라. 그리하면 너의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이미 다 참회되었느니라. 앞으로는
불?법?승에 의지하여 머물도록 하여라.”
“지금
화상을 뵈옵고 승보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볼보?승보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다.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느니라.”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아오니, 마음이 그러하듯이
불보와 법보가 둘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승찬은
한 마음 돌이켜 깨달음으로써 마음과 몸의
병이 모두 낫고, 아울러 고요하고 찬란한
부처의 본성에 계합되었던 것이다.
정각을
위한 수상 빨간 꽃과 부처님 / 서윤길(불교대학장)
나는
평소에 불교신자나 이에 관심 깊은 분들로부터
불교에 대한 여러 종류의 많은 질문들을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빈도수가 많았다고
생각되는 법신 부처님에 대하여 이 글에서
빨간 꽃을 예로 들어 얘기하려고 한다.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시피 꽃은 빨간색의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흰색, 노란색, 분홍색,
자주색 등 갖가지 색깔의 꽃이 있다. 그러므로
그 중에서 어떤 색의 것을 가지고 법신
부처님을 설명한다고 해도 좋은 것이지만,
나는 편의상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빨간 꽃을 선택하여
부처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먼저
“빨간 꽃”이라는 말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 말은 분명 하나의 단어요,
하나의 보통 명사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
올 자세히 살펴보면, ‘빨간’ 과 ‘꽃’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것이 모여서 하나의
“빨간 꽃”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불교에서는 연기적이라 하거니와,
빨간색은 꽃이 지니는 속성이므로 이것을
법성(法性)이라하고, 꽃은 빨간 법상이
깃드는 물체이므로 이것을 기체(基體)라고
한다. 그러므로 빨간 꽃이 빨간 꽃이기
위해서는 빨강이라는 법상이 꽃이라는
기체에 연기했을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빨강이라는 법성이 다른 기체를 만나거나,
꽃이라는 기체가 다른 법상과 연기하게
되면 그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가령 빨간색이라는 법성이 토마토라는
기체에 깃들게 되면 “빨간 토마토”가
될 것이고, 입술이라는 기체를 만나게
되면 “빨간 입술”이 될 것이며, 구두라는
기체와 연기하게 되면 “빨간 구두”가
될 것이다.
비단
빨강이라는 법성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고
꽃이라는 기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꽃이라는 기체에 흰색이라는 법상이 깃들게
되면 그것은 “흰 꽃”이 될 것이고, 검정색의
법상을 만나게 되면 그때는 “검정 꽃”이
될 것이며, 노란색이라는 법성과 연기하게
되면 “노란 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빨간색이라는 법성이 그 깃드는
물체인 기체에 따라 빨간 토마토도
되고, 빨간 입술도 되고, 때에 따라서는
빨간 구두도 되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꽃이라는 기체의 입장에서도 거기에 어떤
법상이 연기되느냐에 따라 빨간 꽃도 되고,
흰 꽃도 되고, 노란 꽃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빨간 꽃, 빨간 토마토, 빨간 입술, 빨간
구두의 관계를 살펴보면, 꽃과 토마토와
입술과 구두는 서로서로가 전혀 다른 별개의
개체이다. 그러면서도 그 서로 다른 별개의
개체들을 구성하고 있는 내면에는 빨간색이라는
동질의 법상을 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빨간색이라는 법상의 경우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꽃이라는 기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빨간 꽃, 흰 꽃, 노란 꽃
등의 관계에서 빨간색과 흰색과 노란 색은
서로서로가 전혀 다른 별개의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그 서로 다른 별개의 색깔인
법상들은 꽃이라는 동질의 기체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빨간 꽃의 관계에서 빨갛다고 해서 모두가
꽃이라고 말할 수 없고 꽃이라고 해서
다 빨갛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동일한
빨간 법성이라도 그 깃드는 기체에 따라
외형이 달라지고 같은 기체인 꽃이라도
거기에 깃드는 법상에 따라 내용이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빨간
토마토, 빨간 입술, 빨간 구두, 빨간 꽃,
흰 꽃, 노란 꽃의 관계에서 그들은 모두가
같다고도 말할 수 없고, 또 모두가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로 다른 기체에 동질의
법성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동질의 기체에
서로 다른 법성이 의지해 있기도 하기
때문이거니와, 그러한 관계성을 불교에서는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다”거나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는 곧 하나”라는 표현을
빌려 쓰기도 한다.
이제
이와 같은 빨간 꽃의 사실을 부처님의
이해 쪽으로 돌려보자.
부처님은
한 분만이 아니고 여라 부처님이 계신다.
서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하여 지장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 미륵 부처님이 계시는가
하면, 많게는 삼천불 내지 일만 불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부처님도 결국은
법신불(비로자나 : Vairocana)이라고 하는
한 부처님의 다양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법신불이란
법성의 부처님이라는 뜻으로서 “빨간
꽃”에서 빨간색이라는 하나의 법성이
꽃이나 토마토, 입술, 구두 등의 기체에
깃들어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내듯이,
또는 꽃이라는 하나의 기체에 빨강, 노랑,
흰색 등 모든 색깔을 갈무리하는 것처럼
법신불은 일체의 기체에 깃드는 법성인
동시에 모든 법성을 포섭하는 기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에 대하여
설명한 불지경에서는 “법신불은 삼세에
유희하시고 일체의 곳에 널리 퍼지셔서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그것으로써 몸을
삼는다”고 하셨다.
부처님은
중생 구제를 그 본령으로 하거니와 하나의
법신불이 그 구제의 대상과 시기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다투신 것이 서가모니
부처님이요, 지장 부처님이며, 아미타나
미륵 부처님인 것이다.
마치
한 사람이 노동을 할 때는 작업복을 입고,
예식에는 정장을 하여 그 겉모습은 비록
다르나 사람은 동일한 것과 같이 부처님도
여러 부처님이 계시지만 그것은 하나인
법신불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오늘은
영하 10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이 땅에 봄은 올 것이고, 봄이 오면 붉은
영산홍도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그 꽃을
보는 모든 사람사람이 다함께 법신불이
되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맺는다.
교리강좌
기세간과 자연 / 정승석(인도철학과 교수)
자연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나 유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자연은 무조건
보호의 대상이라는 의식으로 우리는 이미
세뇌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도 세뇌된
만큼의 실효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경우에 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대개 자연이란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연이라는 한자어
자체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은
‘인위’의 반대말로 간주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자연을 단순히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불교에
의하면 자연은 모든 생명체가 공동으로
지은 업의 과보이다.
자연이라는
말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의미로 통용된
것은 영어의 nature를 ‘자연’ 이라고
번역한 데서 유래한다. 이 경우의 nature는
본성을 의미하며, 이러한 의미는 그리스
어의 physis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physis가
지닌 본래의 의미는 ‘저절로 있는 본성’
혹은 ‘저절로 생성하는 과정’이다. 이
의미에는 물활론이라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즉 자연의 사물에도
활력과 혼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저절로 생성되어가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이 같은 생각은 현재에도 변함이
없다 인간의 파괴 행위가 자연의 진행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자연은 그 일부가
파괴당하더라도 계속 저절로 생성되어
갈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저절로 생성되어
가는 속도가 인간의 파괴 속도에 비해
더디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당면
과제인 자연 보호도 사실은 인간의 파괴속도를
대폭 줄이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다시 파괴하기 위하여.
이러한
자연관이 불교의 상식으로 원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자연계를
세간(世間)또는 세계라고 부른다. 이 세간은
‘변화하여 허물어져 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세간은 유정 세간과
기세간으로 구분된다.
유정
세간은 유정(有情), 즉 뭔가를 느끼거나
아는 기능을 지닌 생물로 구성되는 세계이다,
유정은 중생과 같은 말이다. 기세간(器世間)은
현대에서 말하는 자연계에 상당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자연을 ‘기’ 즉 ‘그릇’이라고
생각한 점이 불교적 자연관의 특징을 드러낸다.
모든 생명체를 포용하여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그릇을 자연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릇 자체보다는 그릇의 내용물인
생명체를 중시하는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그릇은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신을 섬기는
입장에서는 신이 그 그릇을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중생의 업력에
의해서 그릇이 형성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업을 중생 사이에서만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이 인간으로서
이러이러한 소질을 갖고서 지금 여기에
태어난 것은 전생에 이것과 상응하는 업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업의
인과를 믿는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이 간과하고
있는 업의 다른 일면도 있다. 이 일면은
마땅히 그럴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간과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업은
일차적으로 그 업을 지은 개인에게 과보를
초래하지만, 그 개인에게 과보를 초래하는
여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생이
저마다 짓고 있는 업들은 그 당사자들에게
나타날 과보로 성숙해 가는 동시에 당면한
현실에서 공동으로 과보를 초래하기도
한다. 중생의 업들이 함께 어울려서 중생
전체에게 적용되는 공통의 과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경우의 업을 특별히 공업(共業)이라고
부르며, 이 공업의 과보가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공업은 특별한 종류의 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중생 저마다의 업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그 여세를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업이다. 다시 말해서
공업은 중생과 자연과의 관계에 적용되는
인과를 주목하도록 요구한다. 산하대지
등의 자연환경은 그 속에 있는 중생들이
공통으로 보호받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환경 세계인 자연도 중생들이 짓는 업의
여세에 의해 형성되거나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때, 자연계 역시 업의 과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중생 전체에게
공통하는 과보를 낳는 여세로서의 업을
‘공업’ 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자연은 결코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있는
본성’도 아니다. 설혹 ‘저절로 있는
본성’이 곧 자연이라고 하더라도, 그
본성은 결국 중생의 본성에 속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중생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의식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
파괴의 중지만을 외치는 자연 보호 운동은
진정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 같은
운동은 돼지를 키우는 심정으로 자연이
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일 뿐이다.
기세간인
자연계는 중생을 포용하면서 중생과 공존하는
그릇이다. 그런데 이 그릇은 저절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변형되어 간다. 그러므로 불교적인
자연 보호 운동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오염된 세계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정화할 수는 있지만, 지저분한 마음을
지니고서도 주변의 세계를 정화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진정한 실현이 불가능한
공상에 속한다.
경전의
세계 능엄경 / 이 만(불교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경의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문장이 명쾌하고
그 요지가 또한 불교의 전반사상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널리 수지독송 되고
있는 이 경전은, 그 원명이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라는
다소 긴 이름이다. 그리하여 이를 대폭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이라고 하거나 그냥
대불정경, 수능엄경 내지는 능엄경 등으로
약칭되고 있는데, 특히 이 경전을 일명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陀大道場經)이라고
할 때는 인도의 중부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 나란타사라는 옛 불교의 교학 중심지를
기점으로 하여 거기에서만 이 경전이 유행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불리진 것이라고 한다.
능엄경이
중국에 전래한 것은 다른 경전 보다 훨씬
뒤의 일로써, 당시 중인도의 나란타사에
비장 되어 오던 것이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는 인도에서만 유통될 것을 역대 왕이
명령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이 경전은 당나라 이전까지는 전래하지
않고 있다가 중국의 중종(中宗) 신룡(新龍)
원년(705)에 와서 중인도의 승려였던 반랄밀제(槃剌密諦
: 極量)에 의하여 도입 되었고, 또한 그에
의하여 한역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전에 관한 주석서로는 송나라 이후의
것들이 보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① 인악(仁岳)이 지은 능엄경집해(楞嚴經集解)
10권(1095년)과, ② 계환(戒環)이 지은
동 요해(要解) 20권(1127년)과, ③ 함휘(咸輝)가
지은 동 의해(義解) 30권(1172년) 등이
있으며, 우리 나라에서 저술된 것으로는,
① 고려 때 보환(普幻)이 능엄경신과(楞嚴經新科)
2권과 수능엄경환해산보기(首楞嚴經環解刪補記)
2권을 지어서 현재까지 이것이 전해지고
있으며, ② 조선시대에는 유일(有一)이
동 사기(私記) 1권을 짓고, 또한 ③ 의첨(義沾)이
역시 동 사기(私記) 1권씩을 지어서 유통시켰는데,
이 가운데서 보환의 산보기(刪補記)는
송나라의 계환이 지은 요해(要解)의 잘못된
곳을 지적하여 이를 고쳐서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조선의 세조 때에 설치된
간경도감에서는 역시 이 계환의 요해를
언해했는데, 이 언해본을 해인사의 강원에서
영인하여 보급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이 능엄경은 그 구성과 내용이 어떠한가
하면, 먼저 구성에 있어서는 서분과 정종분과
유통분으로 나누어진 가운데, 처음 서분에서는
부처님의 제자였던 다문(多聞)제일의 아난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내용이고, 다음의
정종분에서는 그와 부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이의
내용이 그 이하에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종분을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눈
가운데, 제1권에서 4권의 중간까지의 견도분(見道分)에서는
허 망한 마음을 버리고 본래의 진심을
찾게 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어
4권의 중간에서 7권의 중간까지인 수도분(修道分)에서는
우리 범부들은 대개 번뇌의 발생이 육근(六根)의
분별로 말미암아 일어나므로 이들의 행상을
끊는 방법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덕목을 보면 3무루학(無漏學)을
닦거나 4율의(律儀)를 지키거나 다라니
등을 암송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뒷부분부터 8권의 중간까지는 증과분(證果分)인데,
여기에서는 중생들이 위에서 밝힌 수도법에
의하여 얻어지는 55가지의 단계를 설명한
것이고, 다음의 결경분(結經分)도 역시
이 8권의 중간부분에 설해져 있는데, 그
내용은 경전을 끝맺는 부분으로써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지옥, 아귀
등의 7취(趣)가 어떻게 생기는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제 10권까지의
부분인 조도분(助道分)에서는 더욱 이를
강조하여 변마장(辨魔章), 즉 수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갖가지의 마군들을
변별(辨別)하여 이를 퇴치하고, 아울러서
온갖 장애와 난관들을 극복하는 방법 둘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 그것 이 다.
다시
말하자면 이 능엄경은 어느 때에 아난다가
마등가(摩登伽)라는 기녀(妓女)의 주력(呪力)에
의하여 마도(魔道)에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부처님이 이를 신통력으로 구제한
후에, 중생들에게 선정과 다라니 등을
닦거나 암송할 것을 권장하고, 또한 이에
의하여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나면 여래의
진실한 식견을 얻어서 생사의 마계를 벗어나게
된다는 법문을 설하고 있는 것이 그 주요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특히
여기에서는 아난다가 부처님께 여러 부처들이
성불하게 된 직접적인 수행방법이었던
사마타(奢摩他 : Sama-tha, 止?止息?寂靜)와
삼마지(三摩地?三昧 : Samadhi, 定?等持?正受),
그리고 선정(禪定 : Dhyana, 禪?定?靜慮?思性修)등에
관하여 설해줄 것을 간곡하게 권유했을
때에, 부처님은 이러한 것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각 중생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여래장성(如來藏性)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라고
술회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능엄경에서는
그 어느 대승경전에서 보다도 여래상사상이
많이 설명되고 있는데, 이를 때로는 진견(眞見)이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묘명(妙明) 내지는 진성(眞性)등으로
부르고 있어서 관심이 가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의 의미는 다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진실한 성품으로써
외계에 의하여 쉽게 변하는 망견과도 다르고,
더 나아가서 어떠한 조건에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이 경전의 내용 중에는 교학적인
내용뿐만이 아니라 선적인 수행방법까지도
설해져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우리나라의
강원에서는 그 이력 가운데에 이 능엄경을
사교과(四敎科) 중의 한 교과목으로 지정하여
학습시켜 왔던 것이다.
동국과
불교21 6?25사변과 대학의 수난 /
이봉춘(불교학과 교수)
김동화
학장의 취임으로 우리 대학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중단되었던 교사건축과 시설확장을
위한 재단측과 대학측의 연석회의가 잦아지고,
교?강사의 보강을 위해서도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교육제도에
의한 임시조치에 따라 6월 초로 되어있던
학기초까지, 학장실에는 낯선 교수?강사들의
출입이 부쩍 잦았다. 1950년도의 신학기에는
이렇게 희망에 차 있었다. 그러나 신임학장의
포부와 경륜이 학사행정에 채 반영되기도
전에 우리 대학은 또 한번 큰 수난의 校史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적인
남침 자행으로 인한 것이었다. 우리 역사상
유례가 드문, 민족적 비극은 우리 대학에도
그대로 큰 수난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국군은 장비와 병력의
열세로 개전 초부터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6월 27일에는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괴군이 의정부를 거쳐 창동까지
침입하게 되자, 수도 서울시는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변하여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당시
정부에서는 아직 피난에 대해 어떤 지시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간취하고 27일에 학장 재량으로
임시휴교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학장의 임시휴교령도 모르고, 불교과와
사학과의 연구실에서는 점점 가까워지는
포성을 들어가며 새학기에 대비하여 청소와
도서정리에 한창 분주하던 풍경도, 기억에
남을 삽화의 한 토막이다.
6월
28일 첫 새벽에 이르러 전차대를 선두로
북괴군에 의해 서울이 유린되던 날은 건국이래최악의
날인 동시에, 우리 대학에 있어서도 창립이래
최악의 날이었다. 우리 대학 문학부 학생들이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던 皇建門의 편액에
북괴군의 포탄이 명중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그 잔편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것부터가 불길한 징조였다.
북괴군이
서울을 장악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하였다.
우리 대학에는 곧 敎責으로 조모가 파견되어
남아 있던 교수?학생들을 소집, 그 성분을
따지는 등 평화스러웠던 필동 교사는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일차소집에
응하였던 교수 학생 중에서는 재빨리 피신하여
다시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편
우리 대학의 전신인 중앙불전 혹은 혜화전문을
졸업한 동문으로 이미 사변 전에 월북해
있던 곽모, 김모 등이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듯이 나타나 교수와 학생 가운데 사감이
있던 사람을 찾아 필동 교사를 오르내리며
대학내의 공포 분위기를 더욱 조장시키기도
하였다. 남하하지 못하였던 김학장이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사무실에서 좌익으로 내려온
중앙불전 출신의 승려 곽모에게 날카로운
심문을 받은 일이라던가, 또 염천의 7월
하순에 불의의 소집에 응하여 등교하였다가
미 공군기의 공습에 대학내의 방공호에
대피한 故 김용배 교수가 그 큰 키에 공포로
떨던 광경은 이런 수난기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한편
전황의 악화에 따라 대학을 출입하던 교직원과
학생의 수도 줄어지고, 거기에 의용군이라는
미명 하에 북괴군이 청장년을 무차별 강제
징집하던 8월 초부터는, 교문을 출입하는
교수 학생은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필동의 우리 대학교사가 북괴군의
병영으로 강점된 8월 하순부터는, 대학관계자도
교문을 출입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교수
상호간은 물론 학우들끼리의 소식도 두절되어
버리고, 그렇게도 아끼던 도서관의 기증도서는
무지한 북괴군의 휴지 또는 계급장제작의
재료가 되는 비통한 광경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개교이래최악의 액운기를
겪으면서도, 학부의 학적부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교무과 서기 이철우가
희생을 무릅쓰고 학적부를 자택으로 옮겼다가
다시 시내를 전전하며 보존한 덕분이었다.
뜨거운 애교심을 보여준 이 미담의 주인공은
국군의 9.28수복 후 철없는 일부 급우학생들의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아 쓸쓸히 교문을
떠난 후, 그 작은 키의 검은 얼굴을 다시
대할 수 없게 된 것도 잊을 수 없는 우리
대학 비사의 한 토막이라 하겠다.
뜻하지
않았던 6.25의 참화로 모든 기능이 마비되었던
대학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서울이
탈환된 9.28수복 후부터였다.
북괴군의
검거로 거의 폐허가 된 필동의 교사에는
흩어져 피난하던 교수와 학생들이 다시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학도의용대에 자진
입대한 학생들이 군무의 틈을 얻어 무장한
채로 학교로 달려와, 교수와 학생들의
안부를 확인하려고 뛰어다니는 모습도
눈물겨운 정경이었다. 이때 우리 대학에서
긴급히 해야 할 일은 중요서류의 정리와
교정에 산산이 흩어져 있던 도서관소장의
도서의 수습정리였다. 소개되었던 학적부를
회수하여 정리하고, 기타의 서류정리와
병행하여 도서관의 서적을 정리하던 당시의
사무량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과도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리 작업과 더불어 학생의 등록개시,
이산된 교수와 학생의 조사 등으로 오래간만에
교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타 대학의 예에
따라, 우리 대학에서도 북괴의 소두 강점시
그들을 환영하였거나 동조한 교수
학생을 심사하기도하였다. 그러나 타 대학에
비하여 그 證跡이 두드러진 자는 별로
발견되지 않아 사상면의 희생자가 그다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6.25참변으로 폐허가 된 우리 대학의
재건사업이 거의 본궤도에 올랐던 12월초부터,
다시 政局은 급속히 악화하였다. 중공군의
개입과 인해전술로 부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한다는 소식이 번번이 들려옴으로써,
수도 서울의 인심 또한 더욱 흉흉해지고
있었다.
우리
대학에서는 전쟁발발 이후 그 동안의 쓰라린
경험에 비추어 곧 중요서류를 정리하고
부피 때문에 운반이 어려운 학적부는 얇은
半紙로 사본을 만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이윽고 와서는 안 될 비운이 다시 시시각각으로
닥쳐오자, 12월 20일경 김학장은 우리
대학의 모든 서류를 대구시 남산동 소재의
동화사 별원으로 소개하고 대학본부 또한
임시 그곳으로 옮겼다.
대학
본부의 뒤를 따라 최봉수, 정두석교수
등이 가족과 더불어 이곳에 도착하여 동화사별원의
우리 대학 임시본부는 마치 피난민수용소
같은 느낌조차 있었으나, 뒤따라 대구로
피난 온 교수 직원의 유일한 연락소가
되었다.
흩어져
있던 교수 학생들 간의 연락을 짓고, 전세의
추이를 관망하며 조용히 개강이 허용될
날을 기대한 것이 이 대구 남산동 시절의
임시대학본부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찰에서의
피난생활은 동국과 불교의 또 하나 긴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비유와
설화 현재 나라의 재앙 / 조용길(불교학과
교수)
그
옛날 현재(現在)라는 나라가 있었다. 한
장로비구가 오랜 병으로 위중하여 현재국의
어떤 절에 누워 있었는데, 몸은 여위고
더러워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데리고 그 곳에 가서 환자를
차례로 보살피게 하였다. 그러나 비구들은
역한 냄새 때문에 환자를 천대하면서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더운 물을 떠다가
손수 앓는 비구의 몸을 씻어 주었다. 이를
본 비구들은 사뭇 송구스럽게 생각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이와 같이 보살펴 주는
이 없이 가난하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서다. 병들고 약한 사람이나
수행자,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에게
공양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어 무엇이나
뜻대로 되느니라. 마치 다섯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이 복이 오는 것도 그와
같아서 공덕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곁에
있던 왕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
스님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러
해를 두고 병으로 고생하면서 낫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악행(惡行)이라는 왕이 있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몹씨 거칠고 사나웠다.
걸핏하면 새 법을 만들어 백성을 괴롭혔다.
그는 힘센 장사를 시켜 채찍을 가지고
자기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치게
하였다. 그 힘센 장사는 왕의 위엄과 노여움을
빙자하여 엄하게 다루기도 하고 부드럽게
다루기도 했다. 뇌물을 요구하여 그걸
손에 넣으면채찍질이 가벼웠고 뇌물을
얻지 못하면 채찍질이 사나웠다. 그래서
백 성들은 늘 불안에 떨게 되었다.
한번은
어떤 선량한 사람이 터무니 없는 모함을
입어 채찍질을 받게 되었다. 억울한 그는
장사에게 사정했다.
‘나는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으로 아무 죄도
없는데 남의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힘센
장사는 그가 정법을 믿는다는 말을 듣고,
손을 가볍게 놀려 채찍이 몸에 닳지 않게
때리는 시늉만을 했다.
그
장사는 죽은 된 지옥에 떨어져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 고통을 받다가 죄보가 끝난 다음
축생의 몸을 받았다. 축생으로 있으면서
6백 생을 두고 채찍을 맞았다. 그 뒤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늘 중병을 앓으면서 고통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채찍질을 하던 장사가
바로 이 자리에서 앓고 있는 이 비구요.
나는 전생에 그의 관용으로 채찍질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은혜로 지금 내가 손수
환자를 씻어주게 된 것이오. 사람이 선이나
악을 행하면 복과 재앙이 그림자처럼 몸을
따르는데, 그 과보는 생을 달리하더라도
면할 수 없소.”
부처님은
다시 게송ㅊ로 말씀하셨다.
선량한
사람 올 채찍질하고
죄없는
사람을 거짓으로 모함하면
그
갚음은 끝내 용서가 없어
다음의
열 가지 재앙을 받는다.
살아서
못견딜 고통을 받고
몸을
다쳐서 불구자 되며
저절로
병이 들어 괴로워하고
낙담하여
정신이 혼미해지네
항상
남에게 모함을 받고
혹은
관청의 형벌을 받으며
재산을
송두리째 잃게 되고
친족들과
멀리 떠나 산다,
가진
집은 모두 불태워지고
죽어
서는 지옥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 가지 재앙이니라.
병든
비구는 부처님의 이 게송과 전생일을 듣고
자신의 죄업을 스스로 꾸짖었다.
불전(佛典)에는
인과(因果)에 관계된 설화가 끝없이 많다.
인과를
생각하면서 두려워 떨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가 뿌린 씨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고스란히 거두게 된다는 우주질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전에는
나라 이름도 수없이 많은데, ‘현재(現在)’라는
이름은 처음 본다. 어째서 나라 이름을
현재라고 했을까?
묻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선량한 사람을
채찍질하고 죄없는 사람을 모함하여 괴롭히는
일이 현재도 이 지상 어디에선가 진했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의 입을 통해, 그는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느냐고 묻게
한다. 왕은 세속적인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설화는 사실성과 함께 진실성을
갖는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인류역사의 자취를
훑어보면 인과관계에 날과 씨로 짜이진
얼룩진 천임을 알 수 있다. 깊고 깊은
참회(懺悔)를 통해 6도윤회의 무간지옥의
늪에서 벗어나 맑고 밝은 청정행(淸淨行)으로
보살(菩薩)의 공덕(功德)을 이 생(生)에
쌓도록 하자.
귀중한
생명(生命)은 현재에 수행(修行)하고 갈고
닦지 않으면 어느 생(生)에 다시 닦을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을
차분히 하고 인과의 늪에서 벗어나는 경전(經典)을
읽도록 하자.
부처님의
경전은 마음과 몸을 맑히는 업장소멸의
보배창고이다.
절하고
읽고, 염주 돌리며 기쁨과 안심과 평안(平安)으로
이생을 빛내자.
모든
것은 흘러 무상한 것이며, 머물러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신도 귀신도 인간도 산천초목도
있지 않다. 오직 마음의 진리만이 영원할
뿐이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불심의
창 악심 조복(惡心調伏) / 윤석성
목련
꽃밭에 와
꽃이
피는 내력을
묻는다.
꽃은
말이 없고
방끗
웃는 아내,
오후의
목욕을 한다.
20대
후반에 쓴 졸시 「和合」의 앞부분이다.
그 때 나는 대체로 꿈속에서 살고 있었다.
세상은 믿을 만하고 아름다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가기기만 하면 세상은
열려서 나를 맞이해 줄 것 같았다. 시대의
어둠이 깊었지만, 그러한 어둠도 곧 풀려서
밝은 세상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和合」을
쓸 당시 나는 ‘오후의 목욕’이라는 시적
테마에 매여 있었다. 나를 포함한 만상이
하루의 일과를 되돌아보기 시작하는 오후
세 시쯤 정신의 목욕을 하고 소생한다는
시적 테마는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것이었다.
때는 4월이었고 더할 수 없이 화창한 날씨가
계속 된데다 주변에 5백평은 됨직한 목련꽃
재배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일시에 유백색
꽃망울을 터뜨린 것은 나에게 다시 만나기
어려운 축복으로 이러한 시적 테마를 촉발시킨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적
자아인 ‘나’는 맑게 피어난 목련꽃의
花,心에 들어가 유백색 순결에 동참하고
싶었다. 이러한 목련꽃은 오후의 목욕을
하는 상상의 아내에게로 이어지고 이들에
의해 나는 한동안 맑은 정신의 목욕을
하곤 했다. 비현실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이때 나는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맛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일체감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렇게 된 요인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개인에게도 있었겠지만, 자아실현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는 커닝 이를 경계하고
훼방한 공권력에 그 책임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80년대는 모든 가치관이 전복된
시대였다. 폭력과 거짓이 주인노릇을 했고,
법률도 교육도 언론도 종교도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군중들은 보신에
급급했고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불의한
권력에 영합했으며, 극소수의 비판자들은
소외되거나 고통 받았다. 사회는 분열되고
대립했다. 가해자나 방조자 적응자들은
비판자들을 박해하거나 경원했다. 소수의
비판자들은 소외감 속에서 냉소적이거나
과격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절망에
빠진 일부 비판자들은 폭력에 호소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비판자들의 이런
태도를 기득권자들은 공격하고 비웃었다.
사회는 극한적으로 대립했다. 기득권자들은
떳떳지 못한 자신들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기에
바빴고, 이런 그들을 소외된 비판자들은
독설과 냉소로 신랄하게 공격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목숨을 건 대결 속에서 본래의
자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어디에도 출구는
없었다.
여기에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원인제공의
문제이다. 원인을 제공하여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자가 뉘우치거나 자숙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악심을 낼 것 없이 용서하고
相生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승리자 행세를 하려
한다면 갈등은 해소되기 어렵다. 이상하게도
한국인들은 원인제공자들에게 너그러운
면이 있다. 힘과 머리를 내세워 끊임없이
악업을 짓는 자들을 나무라고 반성하게
하는 대신 의롭게 살려다가 핍박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매정하게 대하거나 일방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가해자가 힘이 세고 피해자가 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힘
있는 자에게 의지해 자신을 보호받고 힘없는
자들을 짓밟고 군림하려는 가학심리의
발로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무엇보다도
이러한 불공평한 관계에서는 화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근기가 높은 이라면 가해자의
악심을 調伏해 선업의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겠지만 절대 다수의 중생들에게서는
이러한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용서란
피해자의 아량도 있어야 하겠지만 가해자의
참회도 맞아 떨어져야 한다. 서로 간의
이러한 노력이 없이 피해자에게 용서와
화해만을 요구한다면 수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악심을 불러 일으켜 악순환은
끝없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이러한 악심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양지에서 힘 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음지에서 외롭고 억울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위로하고 깨우쳐 주어
악심을 일으키지 않게 하고 원인제공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참회를 촉구하여, 대립과 증오를
벗고 서로 어울리는 화해의 세계, 시비를
벗고 본래의 자성으로 살아가는 청정사회를
이룩하는 데 불자들이 앞장서야 한다고도
감히 생각해 본다. 이런 일은 무엇보다
내가 앞장서야 한다고 자책도 해 보고
나에게 더 이상 악심을 불러일으킬 원인제공자가
없기를 바라기도 하면서, 역경 속에서도
지금보다는 더 맑고 넉넉했던 때의 졸시
한 편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겨울노래
? 4
더
아픈 이웃 곁에서
치료되는
우리의 아픔,
무너지면서
우리는 사랑하고
더
넓은 내일을 배운다.
누구의
아픔도
바다가
되며는
어린
강을 껴안는다.
아픈
바다는 젊다.
아픔이
끝나는 날
내
사랑은 죽는다.
불자탐방
김흥우 교수님 / 편집부
병자년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남쪽 땅끝에서는
벌써 봄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올해 겨울은
전형적인 삼한사온의 날씨를 보이면서
입시한파도 지나가고 이제는 새학기를
준비하느라 사무실이 차츰 바빠지고 있다.
올해는 개교 90주년을 맞아 교내에서는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어서 뜻깊은
한해가 될 것으로 기대되어진다. 이번
정각도량에서는 동국대에서 가장 인기학과
중의 하나인 연극영화학과의 김흥우 교수님을
방문하였다.
교수님
요즈음 매스컴의 발달로 인하여 연극영화학과는
일반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학과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교수님께서 공부하실
때에는 예술계는 배고프고 힘든 직업이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60년대
한국사회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교회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성탄절이나 부활절 등에 연극을 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학연구소에서 3년을 일하면서
틈틈이 희곡작품을 쓰면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들고 당시 동국대 교수로
계시던 유친씨 댁에 방문하여 조언을 부탁하였는데
교수님께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 다음 해에
연극영화학과가 생기니 입학을 하라고
추천하여 주었습니다. 다음해 입학을 하였는데
1기생 1번으로 예술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연극의 불모지인 불교계를 개간하셨습니다.
처음 공연을 하신 불교 작품과 기억에
남으시는 몇 작품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불교는 사찰 내에서 문화활동역량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외국에도 자주 다녀오시는데 그 곳에서
불교공연을 보신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일전에
중국, 리벳 등지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곳 사찰에서 본 공연들이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라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티벳에서 ‘차모’라는 공연을 보았는데,
이 차모는 사찰에서 스님들이 직접 탈을
쓰고 출연하여 3일 동안 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탈들은 사찰에 모셔져 있는
보살이나 신장들의 모습을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사천성에서 ‘목련전’ 이라는 공연을
보았는데, 이 공연도 3일 동안 펼쳐지는데
사찰에서 스님들이 직접 출연하여 연극을
하는데 사찰과 마을 등지에서 무대를 따로
만들지 않고 모든 장소에서 공연을 하고,
관객이 출연자와 함께 공연을 하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차 한잔을 마시면서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교수님 연구실 벽에는 세계각국에서 수집해
온 탈이 아주 많이 장식되어 있어서 한눈에
교수님이 탈을 매우 좋아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다른 연구실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책상 옆에 비디오와
TV가 놓여 있는 것이다.
교수님은
한때 교회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불교를 신행하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불교와
참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시절 도선사에서
청담스님의 법문을 듣고서 본격적으로
불교에 귀의하였습니다. 그때 청담스님은
항상 참선을 하라고 하시면서 참선 방법을
지도하여 주셨는데 그 이후로 꾸준히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쓰면서
원효대사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또
병자년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에
특별히 계획하고 계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우선
목련존자를 다시 편집하여 사찰에서 스님들과
함께 공연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고, 이제까지
모아온 자료들을 정리하여 불교희곡 자료집을
편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일은
학교에 연극박물관을 세워서 이제까지
수집해온 세계각국의 탈 천여 개와
연극 영화 포스터 팜플렛 등 소장하고
있는 모든 자료들을 모아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원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원력이십니다. 아마 동국대에 연극박물관이
세워진다면 후학들뿐만이 아니라 한국
예술계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성취되기를 기원드립니다. 끝으로 불교계에
바라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불교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포교당이아 사찰이
좀더 개방되어 문화공간이 확보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사찰에서 어린이 연극이나
성인극 등 불교극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예술활동이 포교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btn과 불교라디오 등의
영상매체가 포교의 중요한 방법중의 하나임을
의식하여 스님들이 예술계에 관심을 가져
예술행사가 사찰에서도 자주 공연을 가지도록
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교수님과
대화를 끝내고 나서 티벳에서 찍어 온
차모라는 공연을 잠시 틀어 주셨다. 그것은
또 다른 만남이다.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새로운 만남, 이것이 바로 예술의 세계일
것이다.
불교건강법
체질과 질병 / 김장현(서울캠퍼스 보건소장)
사람은
각각의 얼굴모습처럼 같은 오장육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기능의 虛하고 實한
상태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독특한
생리기능을 발휘한다. 이를 體質이라 하며,
이러한 체질의 특이성에 의해 사람들은
성격이나 음식의 기호, 체격, 자주 걸리는
질환까지도 차이가 나게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마다 각기 특이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똑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어떤 사람은 식중독에
걸려 두드러기가 나거나 소화가 안돼서
두통을 일으키고 구역질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러한 경우는
약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똑같은 약이면서도
사람에 따라 유익한 작용을 하여 보약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해로운 역할을
하여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땀을 내서 병을 치료하는 發汗요법의
일종인 한증이나 사우나로 감기가 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땀을 내면 오히려
기운이 빠지면서 증세가 더욱 심해져 마침내는
만성 기관지염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몸이 괴로울수록 살이 찌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살이 빠지는 사람도
있다.
질병에
있어서도 체질의 차이에 따라 각기 독특한
질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개개인의
체질적 특성을 고려하여 예방 의학적 측면의
섭생법과 치료 방법 등을 연구하는 것을
체질의학 또는 四象醫學이라고 하며, 인간의
性情 즉, 타고난 바에 의해 각각의 오장육부에
虛實이 생김으로써 체질별로 독특한 질환이
발생한다고 보고 태음인(太陰人), 소음인(少陰人),
태양인(太陽人), 소양인(少陽人)의 4개
유형으로 대별하여 치료하는데, 각 유형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태음인은
간대폐소(肝大肺小)의 장부 생리적 특징을
갖고 있으므로 주로 호흡기계와 순환기계가
약한 편이어서 고혈압, 중풍 등의 질환과
피부질환, 간장 질환 등이 잘 발생한다.
식성이 비교적 좋고, 대식가가 많으니
성격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므로
때에 따라서 폭음, 폭식을 하여 위장을
손상시키는 일이 많다. 또한 외형상 피부가
약간 검고 두터우면 땀이 많고, 수족이나
입술은 크고, 골격이 장대한 편이나 가슴
부분은 빈약하며, 복부는 견실하다. 비교적
무뚝뚝하지만 점잖은 성격의 소유자이며,
식성에 관해서는 편식 없이 아무 것이나
잘 먹는다. 이 체질에는 녹용과 갈근이
잘 맞으며 음식은 쇠고기, 배, 밤, 호도,
무, 도라지, 연근, 고사리, 밀, 콩, 율무
등이 좋다.
소음인은
신대비소(腎大脾小)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설사, 소화불량과 같은 소화기계와 노이로제,
히스테리, 불면증 등 정신신경계 질환
등이 잘 발생한다. 전형적인 소음인의
경우 너무 인색하여 수전노의 소리를 듣는
경우도 많다. 또한 깔끔하고 착실하며
일마다 치밀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다. 다른 체질에 비하여 소음인이 병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관상 피부가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상체보다는 하체가
건실하여 엉덩이가 넓고, 수족은 작은
편에 항상 차갑다. 식성은 편식 경향이
있고, 더운 것을 즐기는 편이다. 이 체질에는
인삼, 육계 등이 잘 맞으며, 음식은 닭,
양, 명태, 고등어, 대추, 사과, 복숭아,
시금치, 미나리, 양배추, 찹쌀, 조 등이
좋다.
소양인은
비대신소(脾大賢小)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주로 비뇨생식기 및 내분비선 기능이 약한
편이다. 성기능의 쇠약, 비뇨생식기 질환,
요통, 구토 등이 잘 발생한다. 또한 여자는
신장기능이 약하여 多産하지 못한다. 피부에
땀이 적으며, 입술은 작고 얇으며, 손발은
항상 뜨겁고, 가슴이 넓고, 하체는 약한
모습이다. 소양인은 항상 밖의 일을 좋아하며,
가정이나 자신의 일은 경솔히 여긴다.
판단력이 매우 빠르다. 계획성이 적으며,
일이 안될 때에는 체념을 잘한다. 솔직담백하여
마음속에 있는 것은 다 털어놓고, 조그마한
꾸밈새도 싫어한다, 식성은 차고 시원한
것을 즐겨 찾는 편이다. 이 체질에는 숙지황이
잘 맞으며, 음식으로는 돼지고기, 굴,
해삼, 새우, 전복, 수박, 참외, 포도,
오이, 가지, 호박, 보리, 팥, 녹두 등이
좋다.
태양인은
폐대간소(肺大肝小)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식도 협착, 식도 경련, 위암 등이 잘 발생한다.
이는 辛熱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척추와 허리가 약하여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기대어 앉거나 눕기를 좋아하며,
다리에 힘이 없어서 오래 걷지를 못한다.
대체로 몸은 마름 편이며, 자궁 발육이
잘 안되어서 生産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남들과 잘 소통하고 재간이 많고
사교적이며, 과단성과 진취성이 강하다.
태양인은 그 수가 적다고 한다. 이 체질에는
오가피가 잘 맞으며, 음식은 새우, 조개류,
포도, 감, 앵도, 다래, 모과, 메밀, 채소류
등이 좋다.
자기의
체질을 알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방법도
슬기로운 생활의 지혜가 될 수 있다.
신행단체
마음소리는요? / 편집부
“마음소리”
이름만으로도
어떤 동아리인지 아시겠죠? 저희 마음소리는
1991년 9월 불교학과 혜경 스님과 몇몇
뜻있는 선배님들이 모여 “부처님의 동체
자비사상에 입각한 장애인 포교 및 봉사”
활동을 목적으로 “마음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우선은
동아리연합회의 가등록 동아리로 정각원에서
수화를 배우며 공부하다가 94년 9월에
정식 동아리 승인과 함께 학생회관 4층에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동아리방을 마련한
뒤 더욱 열심히 수화를 공부하며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주된 활동은 ①수화 배우기 및 보급 ②재활원
방문 등입니다.
한국
농아복지회 부산지부 ‘강주수 강사님’을
모시고 일주일에 2번(화, 목) 수화를 배우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1번씩
재활원을 방문하여 청소 및 레크레이션
시간을 함께 갖고 있으며, 장애인의 날과
그 외 교내 행사에 수화를 알리고 그 행사를
축하해 주며 또한 수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한가지
활동의 예로 95년에는 불국사의 중등부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어 주위의
어려운 농아 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 다른 활동 중의
하나는 농아 인들과 함께 소풍을 가서
서로의 마음을 읽어보고 느껴보며 공감대를
형성하여 서로기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년 ‘마음소리’의
가장 큰 행사로는 ‘수화발표회’가 있습니다.
일년동안 배우며 공부하고 활용했던 수화를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여러분들 앞에서
펼쳐 보입니다.
저희
가족들은 대략 40명 정도로 대식구는 아니지만
늘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분위기요? 수화를 배울 때는 다소 딱딱하고
엄한 분위기이지만 그 외엔 서로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는 진짜 가족처럼 지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입니다.
흔히
수화라는 것은 청각장애인들의 언어 즉
손짓언어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표정과
손, 그리고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어서
불교의 부처님 말씀을 모르며 또한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화로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수화는
아직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의 수화를, 아니면 수화에 대해
아시는지요? 이런 사실들이 저희 마음소리를
안타깝게 하고 더욱 열심히 수화를 통하여
부처님 말씀을 포교하게 합니다.
앞으로
저희 마음소리의 행보를 많은 관심과 눈길로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일반인과 장애인이라는
벽을 조금은 더 좁히고 싶은 것이 마음소리의
작은 소망입니다. 96년에는 더욱 더 열심히
여러분들의 마음에 마음소리를 전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가람의
향기 마곡사 / 편집부
이번
겨울은 전형적인 3한(寒) 4온(溫)의 날씨를
보여주어 모처럼 진짜 겨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매서운 겨울폭풍의
초입에 신라문화원에서 유적답사가 있었다.
이번 답사는 영남문화권이 아닌 충청도지역의
백제문화권이라는 소식에 문화원 답사일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창건
설화>
마곡사는
충남 공주군 태화산(泰草山) 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이곳의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등의 여러
비기(秘記)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이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를 보면 백제 의자왕
2년(64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것인데
자장 스님은 선덕여왕 5년 (636년)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7년만인 선덕여왕 12년(643년)에
귀국하여 분황사와 흥륜사를 비롯한 이곳저곳에서
강론을 하였고 또 대국통(大國統)이라는
직함을 가지고서 국정을 돕고 있었는데
어떻게 백제땅에 다시 사찰을 창건했는지
의문이다.「삼국유사」에 자장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 십여 군데 된다고 적고는
있지만 양산의 통도사, 울주의 태화사,
강릉의 수다사(水多寺), 태백산의 성암사와
같이 모두 신라 강역에 속해 있는 것을
보면 자장 스님이 이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전설은 창건에 관한 기록이 분명하지
않은 대개의 사찰들이 창건주를 무조건
아도(阿道)화상이니, 원효니, 의상이니
하는 식으로 옛날의 유명한 스님에게 기탁하고
있듯이 혹시 이 마곡사도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곡이라는 이름은 보철(寶徹)화상이
법을 얻어 가지고 오자 모인 사람들이
삼(麻)처럼 많아서 마곡이라고도 하고
또는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골짜기에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이 삼대밭 같아서
그런 이름이 얻어지게 되었다고 되어 있다.
청양
장곡사와 이곳 마곡사 그리고 지금은 없어져
버린 예산 안곡사 이렇게 셋을 이 지역에서는
삼곡사라 불렀다고 한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신라말부터 고려초기까지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1172년(명종 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그 뒤 폐사가
되었다가 1651년(효종 2년)에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의 31본산(本山)시대에는 도내
1백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또한 이 절은 김구(金九)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 말 민비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광보전 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偉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교(極樂橋)를 사이에 두고 보물 제801호인
대웅전과 보물 제800호인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802호로서 천장의 무늬가 아름다운
대광보전(大光寶殿),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興聖樓), 해탈문, 천왕문, 나한과
2구의 신장을 모신 응진전(噫眞殿)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건물 중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조선
중기의 목조 건축양식을 대표할 만한 것이다.
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金時習)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또 대웅보전은
l651년에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은
김생(金生)의 글씨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특이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문화재이며,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이
밖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69호로 지정된
감지온니묘법연화경 권6. 보물 제270호로
지정된 마곡사 오층석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인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 등이
있다. 이 중 오층석탑은 고려후기의 탑으로
풍마동다보탑(風磨銅多寶塔)이라고도 하는데,
상륜부에 風磨銅이라는 청동제로 상륜을
장식하여 그리 부르는 것 같다.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도 하나 라마교탑과 비슷하여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탑은 임진왜란때 도괴되어 탑 안의
보물들이 도난당한지 오래이나 1972년
수리할 때 동제은입사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이 탑은 한국, 인도, 중국
등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가 있다. 이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후기에
어떤 앉은뱅이가 찾아와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는 불구의 몸을 고치기 위해서
백일기도를 하는 동안 틈틈이 이 삿자리를
짰다. 그는 이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인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 드렸는데 백일기도 후에 법당에서
나가는 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법당문을
나갔다고 한다.
<유물>
대광보전
경내의
조선 후기 목조건물로 마곡사의 정전(正殿)으로
높이 약 1m의 자연석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多包)계단층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불단 위에는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을
모셨는데 불단을 서쪽으로 배치하여 불상이
동향인 것이 특이하다. 17세기말~18세기초의
건물로 내부공간 구성이 특이한 건물로서
주목된다.
대웅보전
조선
후기 2층 목조 불전(佛殿)으로 아래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위층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
고려시대의
고배형(高杯形) 청동은입사향로로 몸통과
대좌가 별도로 만들어져 연결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작은 원반형(圓盤形)장식이
있는 이 향로는 몸통이 아랫부분의 배가
부르고 대좌가 약간 짧아졌으며, 몸체
전면에 은입사(銀入絲)의 화려한 무늬들이
가득 새겨지는 고려 후기 향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절은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고
답사일행에게 사찰을 안내해주신 교무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속에 오목하게
자리하여 봄에 꽃이 피면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지형이었다.
열린마당
보광사를 둘러 보며 / 이은심(영어영문학과
졸업)
새해
첫날 눈을 뜨자 좁은 방안에 이상한 꽃
향기가 확 끼쳤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어둡고 우울했던 나날들이 연이어지는
속에 새롭고 기쁜 환희가 느껴졌다. 계시일까.
기쁘고 새롭고 아름다운 나날에 대한 예감이
잔뜩 움츠러든 가슴 한 귀퉁이에서 일고
있었다.
삶의
잡다한 문제에 지쳐 있는 내게 그 때의
소중한 꽃 향기를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이다. 분합
속에 모아둔 말린 꽃잎들에서 겨울 날
아침 우연히 분합 뚜껑을 열어 추억 향기를
냄새 맡는 장면에서 ‘아 이거’하는 신음이
나의 깊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인식은 곧 행동으로 옮겨지기 마련 나의
귀여운 어린 것들을 두들겨 깨워 함께
절에 갈 것을 권유하였다. 명령과 강제가
뒤섞인 애원 어린 부탁이었음을 그 나이에
알 수 있을까.
가까이
내 마음을 끌어 당기는 절이 없다는 핑계로,
스님의 설법이 마음에 안 든다는 핑계로,
예배의 의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핑계로
다양한 사물에 둘러 쌓인 이 세계가 제공하는
무한한 형상을 추구하며, 그들이 지어
내는 갖가지 말과 사건이 불러 일으키는
잡다한 호기심에 말려들며 나는 종교생활을
마음껏 뒤로 미루어 왔던 것이다. 무한을
추구하는 자신의 열정을 프로메테우스적인
영웅주의로 한껏 미화하며 하늘을 날으는
이카루스가 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인생을
고라 설한 부처님의 말씀을 한껏 비웃으며
청춘을 즐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책임인 아이들 문제까지 상대방에게 서로
미루어 가며 자유로운 섬으로 도피하며
마음껏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과에 속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불확실한 내일의 운명에 걸어 놓고 가며
그러면서 우리는 어리석은 싸움을 계속해
왔다. 타고난 아름답고 천진난만한 세계가
무너져 가는 줄 모르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의심과 거짓과 불신으로 병들어
가는 줄 모르고.
그러나
진리를 어길 장사는 없는 것. 아이들의
표정에 부모의 모순이 심각하게 반영된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 매일 겸손한 마음으로 가정생활에
임하는 평범하지만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양심은 현실의 아름다운
조화로 인해 마음이 밝아져 오는 것을
느낀다. 젊은 시절 함께 진리의 말씀을
들었으나 실천에는 눈 어두운 사람과 묵묵히
정진한 사람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을 우리는 언젠가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경을 외는 스님의 염불소리가
법당을 올릴 때 이 지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중생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며 골고루
펴주는 법력을 느끼게 되며 법을 중심으로
용맹 정진해온 그들에게서 다시금 삶의
진리를 깨우치며 부처님 집의 문고리만
잡아도 복이 굴러든다는 말씀을 곰곰이
새겨보는 것이다.
조선조
양주의 명찰의 하나로 이름을 떨쳤던 경기도
파주군의 보광사는 신라말 도선 국사가
백두대간의 하나로 손꼽히는 삼각산에서
곧장 한강을 타고 갈 수 없어 다시 북쪽으로
튀겨 올라온 고령산을 신령이 깃든 곳으로
택하여 창건한 비보 사찰로 손꼽힌다.
고려대에는
원진국사, 무학 대사 등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사명 대사가 승병 3천을
이끌고 권율 장군과 함께 왜적에 대항하느라
숱한 살상자를 낸 이 비운의 터는 이후
피밭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임난 후 청동 20근으로 시작하여 300여
근이 넘게 완성된 범종은 덕인, 도원스님,
참여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명문으로
유명하며 현재 문화재 지정물로 거론되고
있다. 영조는 이 절을 모친 숙빈 최씨의
소영원의 기복사로 삼은 후, 대웅보전
등을 중수하였으며, 굵고 힘차며 화려
장엄한 글씨체로 대응보전의 편액을 직접
써서 걸어 놓기도 하였다.
대웅보전의
내부에는 영산회상호불탱, 제석범천탱,
삼장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어 빛깔이
몹시 바래 있기는 하나 종교화로써 조금도
손색없는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중층지붕의
닫집 또한 희귀한 양식이다. 바깥에 그려진
벽화는 만화적인 형식으로 연화왕생, 지장보살,
화엄신장 등의 불교적 설화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현재의
만세전은 몹시 퇴락하여 있으며 허물어져
가는 낡은 기둥들은 혁신적으로 이 사찰을
이끌고 갈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몹시 지친 표정이다. 한국 역사의 온갖
오욕을 다 겪고 나서 체념 어린 표정으로
서 있는 보광사의 마지막 비운이 6.25
전란의 대화재였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이후 주지직을 둘러싼 갈등과 분규는 차라리
언급하고 싶지 않은 상처이기도 하다.
전쟁 당시 군사 요충지이기도 하였던 이
절 근처에서 죽은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하느라
1981년 당시 합참사령관을 비롯한 초우,
도형 스님은 키가 3M에 이르는 호신 대불을
조성하였는데, 지금도 대불의 너그러운
미소는 시방 삼세에 무량 무진한 부처님의
광명을 널리 퍼져 나가게 하고 있다.
대중
공양방의 긴 벽 위쪽 한지에 거칠게 쓰어진
스님들의 법함과 관련된 소임들을 보노라면,
선방에서나마 원시 불교의 소박한 평등
사회를 건설하려는 스님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종단의 중심
세력에서 처져 있는 비구니 및 일반 신도들에게까지
퍼져서 각 개체가 삶의 보다 온전한 주체자로서
의사 표현 및 의사 결정을 보다 자율적으로
책임 있게 할 수 있으며,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더불어 사는 삶의 구성원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
시대 대각 운동을 펼쳐 불교계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음을 만방에 알리게 한 용성
스님과 민족 시인으로 불교 문학의 황금의
꽃을 펼쳐 보이셨던 한용운 스님이 견성하신
도솔암이 이 곳에 있다는 사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보광사의 자존심이다. 그
기백이 젊은 스님들에게 이어져 밤낮 없이
용맹정진하게 하며 미래 불교를 이끌어
갈 굵직한 기둥들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골짜기 사이 장엄하게 지는 석양을
매일 바라보며 서있는 호신 대불의 크고
너그러운 미소는 어쩌면 보광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역사의 미망을 쫓아내고
불법 호장 세계로 길을 여는 등불인지
모른다.
부처님의
광명 어린 미소를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길을 돌아 보광사의 일주문이라 할 수
있는 만세루로 이어 지는 계단을 오르면
마당에는 잘게 부순 하얀 돌이 깔려 있어
사원의 선적 정적감을 더해주고 있다.
미처 새롭게 단장하지 못한 낡은 선방의
문들을 향하여 미래 불교 중흥의 역사적
도량을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 오기를 권하는
보현 보살이 부드러운 눈짓을 머금고 있다.
경전의
말씀 마음은 선악의 근본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어
마음
속의 생각을 입과 행동으로 나타낸다.
마음
속에 악함 품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은
마치
수레의 뒷바퀴가 앞바퀴를 따르듯이
그
과보가 따름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마읍은
모든 법의 근본이니
마음
속에 선한 생각을 품으면
그
사람의 행동도 착해지리라.
그림자가
몸을 따르는 것과 같느니라.
선행에
좋은 과보가 따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르는 것과 같네.
-증일아함경,
대애도열반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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