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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9월호 / 통권 17호 / 불기 2539(1995)년 9월 1일 발행

 

   

 

고승 법어

염불과 참선은 하나/청화 큰스님

 

일주문

광복 50주년과 민족의 현실/ 이법산

 

정각도량

오탁(五濁)과 악세(惡世)/ 이도업

 

정각논단

21세기와 종교의 위기/ 윤호진

 

불교건강법

기다리는 마음 /김장현

 

교리강좌

 대승과 소승 /정승석

 

경전의 세계

천수경(千手經)/ 이만

 

불심의 창

게으른 자의 미련한 변명/ 곽준규

 

불자탐방

이종석 교무과장 / 편집부

 

동국과 불교

동국대학시대의 개막/ 이봉춘

 

가람의 향기

송광사 / 편집부

 

신행단체

심우회

 

비유와 설화

설산동자의 위법망구/ 조용길

 

나의 신행담

아집을 버리는 절 / 김한일

 

 

 

고승법어/염불과 참선은 하나
청화큰스님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티벳불교에 대한 세계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 굉장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신비롭게 보이며 특히 달라이라마는 모양이 좋아 미국에서 설법을 하면 몇천명이 운집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부처님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법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할 때 우리 한국불교는 그런 점을 소홀히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부처님 당시 다가 피라는 비고 제자가 있었습니다. 14세에 출가해 이른바 삼현육통을 통했습니다. 다가 피는 자기 몸에서 불을 내는 화광 삼매에 든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신화 같은 얘기죠.

아라한과를 성취한 다가 피는 뒷방에서나 쉬면 될 텐데 자개를 스스로 맡아 소임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특히 선방에서는 불을 잘 켜지 않고 왼손을 들어 화광 삼매에 들어 불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백성을 방으로 안내했지요. 우리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다가 피 뿐만 아니라 부처님도 6할 이상을 화광 삼매에 들어 자기 몸에서 불을 밝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 우리 중생이 할 수 없는 부사이한 힘을 쓴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간성을 너무나 축소시킵니다.

우리 인간성을 확실히 1백% 잘 믿지 않습니다.

국한시키지 말고 우리는 마음의 본질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자체가 부사이 신통법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생이 열심히 공부하지 못해서 그러한 신통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보통 교만해서 아는 것 이상으로 말도 하고 정도 이상의 야만 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생명의 말씀을 하셔도 그러한 교만 심 때문에 수용을 못하지요. 부처님은 그런 교만한 중생을 조복시키기 위해 신통을 먼저 보였습니다.

우리 중생이 알고 모르고 상관없이 이 우주는 완벽한 우량공덕을 갖춘 진여 불성으로 우주가 항시 충만해 있습니다.

'시방연기는 법계심'이라 하는데 법계란 우주 전체를 말합니다. 따라서 우주 전체가 부처님의 법이지요.

우리가 생각할 때 '일체중생 개유불성'즉,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들어 있다고 하지요. 그러면 불성이 우리 몸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연기법에 따라보면 우리 몸 어디에 불성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 전체가 불성의 화신입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 입니다. 또는 식물이나 자연계나 우주만 물이 부처님의 화신이지요. 우주 어느 것도 법계에 들어가지 않는게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 전체가 부처님의 법문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화신이지요.

불성이라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의 순수생명이기 때문에 작은데 있으나 큰데 있으나 그래서 티끌 가운데 있는 불심이든가 태양계에 있는 불심이든가 그런 불심의 공동내용은 똑같습니다.

우리의 자성공덕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기 부처님의 우량공덕을 다 갖추고 있고 또한 상대방인 저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나와 너는 둘이 아니기 때문에 우주에는 빈틈도 없이 부처님의 우량공덕이 충만해 있습니다.

우주공간이란 조금도 빈틈없이 에너지 광맥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전자나 양성자나 중성자가 그것입니다. 서울의 무수한 불빛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주에 충만한 불성은 무엇입니까. 진여 불성은 가장 순수한 생명의 광맥입니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 중생은 누구나 똑같이 광명의 화신입니다.

참선공부라 하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공부가 아닙니다. 참선공부는 재미있는 공부입니다. 우리 몸도 참선하는 자세가 제일 편합니다. 40일 동안 정좌불와 가부좌한 모습이 우리 사람모양 가운데 제일 편한 모습입니다. 우리의 영감이 불심을 발동시키는 온전한 자세이지요. 우선 자세가 편하고 호흡이 편해지니까요. 참선하는 마음은 분별심의 마음이 아닙니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남을 좋아하고 미워하고 그런 마음이 없어야 참선이 됩니다. '무'자 참선이라고 덮어 놓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자님들! 참선을 결코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교학과 참선이 둘이 아니며 염불과 참선도 둘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통 훌륭한 스님도 다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학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부처님의 마음 없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나올 수가 없지요.

참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말이 둘이 아니듯 부처님의 마음과 부처님 말이 둘이 아니듯 교학과 참선도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또는 염불과 참선도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우주의 근본생명인 동시에 인간존재 모든 존재의 근본 생명입니다. 따라서 내가 내 본래 몸을 생각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염불이란 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니 다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본체를 여의지 않는게 참선입니다. 화두를 삼거나 명상을 하나 본제를 여의지 않는 것이 참선입니다. 염불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가파른 길을 오르는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조금씩 부처님에게 다가선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욱더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해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른 발심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보는 것은 사실로 보는 것이고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은 사실로 못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는 것은 다 부처입니다. 조금도 번뇌가 없는 마음의 불성이 나한테 갖추어져 있습니다. '내 마음이 바로 부처고 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분별심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사어록을 볼 때도 화두로 먼저 막힘없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량공덕에 있다고 믿고서 참선을 해야 참선이 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하나 관세음보살을 하나 옴바니반메훔을 하나 본래 진여 불성이 안정되면 모두가 성불할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는 세계불교 중에서 가장 앞서 있습니다. 연통과 화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참선의 자세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속에서 이뤄집니다. 우리 불자들 가운데 무서운 허물은 증산만입니다. 깨달아도 모르고 깨달았다 하는 것입니다.

증상만하면 자기도 파멸시키고 다른 사람도 파멸시킵니다.

우리가 공부를 성취한다고 할 때 아라한의 뿌리가 뽑혀야 합니다. 이상에 빠지면 공부가 안됩니다.

우리마음을 절대로 국한시켜서는 안됩니다.

다 알고 다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우리 중생이 부처가 되는 공부인 것입니다. 참선할 때는 꼭 '본래시불'이라 내가 즉 부처라는 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참선해야 합니다. '무'자나 화두를 놓고 참선하는데 이것을 서투른 관세음보살을 밖에서만 찾지 말고 자제공덕을 만들면 바로 참선이 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참선하는 바를 깨달아야 됩니다.

일체존재는 에너지의 파동입니다. 선진자만이 그것을 압니다. 물질은 우리 중생의 허구를 보는 것입니다. 착실하게 선지식도 만나고 교학도 공부해야 합니다. 참선하는 마음가짐을 놓치지 않으면 선방에서 공부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꼭 결정적인 단계에서 자기의 신명을 다하는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일주문/광복50주년과 민족의 현실
이 법산(서울캠퍼스 정각원장)

 

우리 민족은 오늘 광복 50주년을 맞아 정말 기뻐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민족혼은 과연 온전하게 살아있으며 우리의 국적은 무엇인가?

조선조 500년 우리 국토는 결국 일본의 게다짝에 망가가 되어 버렸다.

임진왜란은 왜 당했으며 한일합방는 어떻게 성사되었던가? 임진왜란을 당해 봤으면 그만이지 한일합방를 또 당하다니.......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의 힘을 빌었고, 한일합방의 식민통치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겨우 벗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외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광복 50년을 맞은 오늘도 국토의 허리를 잘라 놓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를 비방하며 동족상잔의 상처가 아무 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있다.

광복 50년을 맞는 오늘 외세가 마음대로 이 나라를 짓밟을 수 있는 내종병을 진단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진정한 독립국가가 성립되는 광복의 날은 남북이 통일되고 외세가 완전히 물러가야 한다. 남북이 대치하고 외국 군대가 어떤 구실에서 이건 주둔하고 있는 현실에서 광복의 노래를 부르며 축포를 터뜨리며 축배를 든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정치인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분당과 합당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고 자기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는 통일이고 민족이고 국민의 의중도 아랑곳없이 덤벙 되고 있다.

기술입국을 부르짖은 지 몇 해인데 아직도 외국기술이 아니고 외제 부품이 아니면 그 흔한 전자제품 하나도 못 만든다니.

비행기도 떨어지고, 배도 엎어지고, 백화점 빌딩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가스가 폭발하고, 다리도 무너져 내려앉고, 철둑도 꺼지고, 기름배가 깨어져 바다를 덮는 모두가 정신 못 차린 인간들의 부주의에서 오는 과부가 아닌지.

우리의 특산물도 농축 물도 외산에 놀아나고, 노래도, 언어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외제에 물들어 미풍양속도 생활문화도 우리 전통 것은 다 팽개치고 있으니, 우리 백의민족의 도덕과 풍류와 아름다운 문화는 누가 있어 계승하리요.

고려시대 민족정신을 함께 모아 몽골군의 침략을 물리친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항일투쟁과 분단조국을 막으려던 민족지도자들의 얼을 받들어, 현실을 돌이켜 올바른 미래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정각도량/오탁(五濁)의 악세(惡世)
이도업(겅주캠퍼스 정각원장)

요 근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대형사고들이 끊임없이 터졌다. 구포의 열차사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대구의 가스 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씨 프린스호의 기름 유출사고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지구촌으로 눈을 돌려 보면 어떠한가. 지진으로 수백 명이 한꺼번에 죽는가 하면 혹한 혹서의 이상 기온이 발생하고 대홍수로 물난리가 나 아우성들이다. 그 뿐인가.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에이즈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더니 요즈음에는, 사람의 살을 파먹어 걸리기만하면 수일도 못 간다고 하는 에볼라 바이러스 병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왜 이럴까? 왜 이런 끔찍한 현상들이 계속해서 일어날까. 불교적인 해답은 없을까.

부처님께서는 5탁(五濁)의 악세(惡世)에 관해 말씀하신 일이 있다. 다섯 가지로 혼탁하여 악성화된 세계에 대한 말씀이다. 五濁이란 무엇이며 惡世란 어떤 세계를 말하는가.

5탁(五濁)이란 불교용어로 겁탁(劫濁). 견탁(見濁). 번뇌탁(煩惱濁). 중생탁(衆生濁)그리고 명탁(命濁)을 말한다. 악세(惡世)란 이 5탁 중에서 특히 처음의 劫濁과 마지막 命濁의 세계를 말한다. 견탁. 번뇌탁. 중생탁의 三濁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 겁탁과 명탁의 세계가 곧 악세(惡世)인 것이다.

그러면 겁탁(劫濁)이란 무엇인가 시대의 혼탁을 말한다. 이 혼탁의 시대에는 두 가지 두드러진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첫 번째 현상은 대형의 人災나 自然의 天災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고, 그 다음 현상은 보도 듣도 못했던 신종병의 유행이라고 한다.

명탁(命濁)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 선진국의 예를 보면, 인간 수명이 길어져서 노인 다수국이 되어 가는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인간은 본래 8만살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현대의 과학이냐 의학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소리겠지만, 앞에서 말한 見濁 . 煩@濁 , 衆生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이 악세다. 앞에서 말한 수많은 대란(大亂)이 터지고 끊임없이 신종 병이 발생해서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는 세계. 그것이 억세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악세(惡世)의 원인은 무엇인가. 왜 이렇게 많은 대형사고나 질병 혹은 大亂이 계속되는가.

그것은 삼탁(三濁)때문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三濁의 첫 번째는 견탁(見濁)이다. 見濁이란 사상의 혼탁을 말한다. 나다 니다. 민주다 공산이다. 내 종교다. 네 종교다. 하는 편견 된 사상의 독선을 말한다. 이 견탁의 시대에도 두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정법(正法)은 점점 쇠퇴해지고 사견(邪見)이 판을 치게 되고, 수행하는 자, 실천자는 적어지고 입으로만 설교하는 공론자(空論者)가 행세하게 된다고 한다.

이 세상을 약세로 만드는 두 번째 원인은 번뇌탁(煩惱濁)이다. 煩惱濁이란 불신. 불안. 불만 등으로 마음이 늘 번뇌스럽다는 뜻이다. 마음이 번뇌 서러워지는 이유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애욕(愛欲)이요, 둘째는 물욕(物欲)이다. 지나치게 色을 탐닉하고 재물을 탐착하기 때문이라고 부처님은 말하고 있다. 아무리 주야로 색(色)을 탐하고, 또 재물을 모아도 자족(自足)할 줄을 모르니 항상 부족하고 불만스러워 번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자동차 수가 1000만대를 넘어섰고, GNP가 10000불에 가까운 그런 생활 여건 속에 살고 있다. 3.40년 전에 비하면 물질 면에서 대단히 풍부해졌고 생활면에서 크게 편리해졌다. 그럼에도 그때 그 시절보다 불만과 불평과 불신의 골이 깊고 넓어졌으니 그 원인은 무엇일까. 見濁 煩惱濁에이어 부처님은 衆生濁을 들고 있다. 衆生濁이란 중생들의 질(心性)이 혼탁함을 말한다. 질이 혼탁되어 졌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윤리나 도덕적인 의식이 마비되어 심성이 극도로 본능화되었다는 뜻이다.

경에서는 구체적으로,

부모나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는다.

악업의 과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덕을 짓거나 지혜를 닦으려 하지 않는다.

윤리적인 생활(持戒生活)을 하지 않고 본능적으로만 살려고 한다.

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겁탁(劫濁)과 견탁(見濁)의 악세 (惡世)에 살고 있다. 심란(心亂)하고 혼란한 대란(大亂)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大亂을 극복하는 불교적인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앞에서 말한 삼탁(三濁)을 정화시키는 길 밖에 없다. 그 三濁의 주체는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밖으로만 분주했고 밖에서만 구해왔다. 그 결과 이 지경이 됐다. 지금부터는 외적인 신법(神法)이 아닌 내적인 심법(心法)에 눈을 돌려야 한다. 心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용심법(用心法)이다. 마음 쓰는 法이란 곧 心性의 순화법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불법(佛法)이다.

 

 

 

정각논단/21세기와 종교의 위기
윤호진(불교학과 교수)

(1)

먼 뒷날 저럼 생각해 왔던 21세기는 바로 눈앞에 다가 왔다. 그것은 이제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내일'이 되고 말았다.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는 20세기와는 상당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미래를 내다보는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21세기는 인류가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경험했던 두 세 번의 결정적인 변화보다도 더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21세기를 앞에 두고 기대감으로 희망에 차 있기도 하지만 위기감과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2l세기에 가서 맞이하게 될 변화와 위기는 종교분야에 있어서도 예의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종교는 다른 분야보다도 더 큰 변화와 어려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인류와 관계된 모든 것은 꾸준히 변해 왔지만 종교만이 변화를 거의 외면해오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종교들이 그 기본 틀과 설명들, 그리고 방법과 제도들을 만들어 고정시켰던 것은 수천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다른 모든 것은 엄청나게 많이 변해 왔다. 그러나 종교에서만은 수천 년 전의 '그 말씀들'이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 어떤 종교들은 그들이 맞이했던 시대의 변화를 견디지 못했을 배 도태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한재 우리가 신앙하고 있는 종교들은 사라져 버린 과거의 종교들과는 달리 시대와 변화를 초월해서 생존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종교인들이 사랑하고 있는 현대판 미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앞에서는 변화를 이끌고 가거나 변화를 따라 가거나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종교가 시대를 이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그와 반대일 때는 종교는 시대가 만드는 변화를 따라 가지 않으면 안된다.

 

(2)

불과 30여년전에 일어났던 산업혁명은 긴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인 고비를 만들었다. 이 혁명은 현대의 과학기술과 산업사회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그때까지 영위해 왔던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온갖 기계를 만들어 인간의 육체와 동물의 힘에 의지 했던 대부분의 일들을 기계에 맡겨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기차와 자동차를 발명해서 그 이전까지의 교통수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력으로 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비행기와 잠수함을 만들어 새처럼 하늘을 날고, 고기처럼 물속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도 되었다. 전기. 전화.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등을 발명했고 인공위성을 만들어 지구로부터 우주로 발을 내디딜 수 있게까지 되었다. 물리학과 화학 . 생물학 등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에 인류가 발견하고 발명해낸 수많은 이론과 물건들은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결과 인간들이 우주와 자연을 보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세계와 인생을 보는 눈도 크게 달라졌다.

게다가 20세기 후반에 갑자기 등장하게 된 컴퓨터와 생명공학은 다시 한번 더 인류의 앞길에 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공업 시대에는 물리적인 일만을 기계에게 맡길 수 있었지만 컴퓨터시대에 와서는 사고 활동까지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덕택으로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범위는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 인간들은 처음으로 자연을 기술적으로 직접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손에 넣게 되었다.

여기에다 또한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을 터득함으로써 창조주나 신(神)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던 생명창조의 일에 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인간은 생물의 성질을 어느 정도 까지는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생물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생물이 태어나기 전부터 원하는 대로 바꾸고 조합하여 그 일생을 사전에 조작할 수도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낼 수도 있게 되었다.

컴퓨터와 생명공학에 의하여 인류의 역사에는 새로운 한 장(場)이 더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역사상 최대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속도와 규모와 그 깊이는 일찍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그들 자신이 이 변화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당황하고 두려워해 하고 있다. 이 변화는 인류역사상 야만시대에서 문명시대로 옮아 올 때 겪었던 변화에나 비교할 수 있는 극적인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마레크라는 학자는 이것을, '20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5천년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한 시대를 끝맺음하고 있다. 우리는 선사시대의 인간처럼 이제서야 눈을 뜨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내다보고 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심리학자인 베니스도 '그 어떤 과장, 말장난, 과격한 언동으로도 변화의 정도와 속도를 사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는 과장만이 그나마 진실에 가깝게 보일 정도이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3)

이와같은 상황 앞에서 종교도 서둘러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지금까지 종교가 사용해온 이론과 설명들로써는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수용하기는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바탕으로 삼아 왔던 근거들 가운데서 많은 부분은 인류가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이룩해온 새로운 발견과 연구의 결과들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많은 종교 이론들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종교는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심하게 그 밑바탕이 뒤흔들리게 되었다. 여러 학자들은, 21세기는 과거의 어떠한 종교가도, 철학자도, 그리고 위인들도 전혀 모르던 세계이기 때문에 '그들이 남겨놓은 목소리는 완전히 침묵해 버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기성종교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서는 이 새로운 시대의 '육박해오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교는 이와 같은 상황 앞에서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간단하게 변신할 수도 없다. 외면하면 도태될 것이고 변신하자면 지금까지 사용해온 많은 부분을 뜯어 고치거나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더욱 사정이 나쁜 것은 이와 같은 위기를 종교인들이 진정으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사 그들이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위기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해도 그와 같은 일을 준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는 수렵채집시대에서 농경시대로, 농경시대에서 공업시대로 옮겨 오면서 크고 작은 여러 번의 변천을 경험해 왔다. 이들의 경우에서는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옮겨갈 때 길게는 수 천년, 짧게는 수 백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이론과 설명들을 갖추고 적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2l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과거의 여러 변천 기에서와는 사정이 다르다. 극히 짧은 시간 내에 과거의 어느 변천 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갚고도 넓은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종교는 자신의 위치를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모든 면에서 재정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종교는 세상의 다른 일들을 걱정하기 보다는 종교 자신을 걱정해야하게 되었다. 이 걱정은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느냐 소멸하느냐라는 생존과 관계되는 걱정인 것이다.

 

 

 

불교건강법/기다리는 마음
김장현(서울캠퍼스 보건소장)

인간의 한평생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는 부모는 물론 친. 외조부모 등 집안 어른들의 기대와 설렘 섞인 기다림 끝에 태어나고, 학교에서는 스승의 가르침과 도움이 섞인 기다림 끝에 학업을 마치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주위 모든 사람들과 만남과 기다림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다가, 후손의 따스한 사랑과 슬픈 이별의 기다림인 임종 끝에 생을 마치게 된다.

어떤 일이던 기다리지 않는 일은 없다. 기다리지 않고 성취될 수 있는 일은 없다. 기다리지 않고도 이루어지는 일은 전혀 무가치한 일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익히며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근간 우리 사회에 생겨나는 모든 사건 사고는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되는 사고였다. 콘크리트 영생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단시일에 건축을 하고, 최소의 비용을 위해 대충대충 빼버리고 건축한 결과 많은 사람들을 다치고 죽게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할까? 우리 사회는 어째서 기다리지 않고 '빨리빨리'문화가 형성되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대책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기다림이란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 해어짐, 싫어하는 사람과 만남,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함은 모두 고통이다'라고 설법하셨는데 단시간 내에 경제적 물질적 부와 영광을 이루려는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고통이다. 이런 고통의 형태가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스트레스이다. 이것이 한의학적으로는 화병(火病)의 원인이 된다. 큰 의미의 화(人)에는 외인(外因)과 내인(內因)이 있지만 여기에서 화는 외감병(外感病)이 아닌 내상(內傷) 칠정(七情) 노역(勞役)으로서 유발된 내적인 화병을 말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화는 인체의 원기의 역할을 하지만 과하여 이상이 발생하게 되면 병기(病氣)로 화하게 된다. 화의 병은 장부(贓腑)를 훈작(燻灼)하고 진액을 소모시키며 심신(心身)의 번조(煩燥)를 초래하고 성폭무상(性暴無常)하여 지는 것이 특징이다.

화병의 치료에는 각각의 원인에 따라 해열(解熱), 청열(淸熱), 사열(瀉熱), 온열(溫熱)의 치료법을 적용하는데 처방으로는 울화(鬱火)의 대표적인 처방인 육울탕(六鬱湯)과 칠정(七情) 표울(表鬱)에 통용되는 처방인 정기천향탕(正氣天香湯), 반표반리(半表半裏)의 화를 해열시키는 소자호탕(小紫胡湯), 진액(津戒) 고갈로 인한 허번(虛煩) 증상을 치료하는 죽엽석고탕(竹葉石膏湯), 주독으로 인한 내상 열을 치료하는 갈근해성탕(葛根解醒場)외에도 많은 처방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병이 되기 전에 예방이 우선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결실의 날을 기다리는 참된 자세가 바로 근본적인 처방이다. 인고의 뒤에 오는 달콤한 결실을 기대하고 즐기면서 기다리는 마음이 화병의 예방에는 최고의 방법이다.

 

 

 

교리강좌/대승과 소승
정승석(인도철학과 교수)

요즘은 해외여행이 빈번해지면서 불교 신자들도 해외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보통 소승불교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불교 국가를 여행한 사람들은 거위가 그 나라의 불교적 분위기에 대해 좋은 인상을 토로하는 예가 많다.

그런데 그런 잡다한 인상을 토로할 때는 한결같이 '소승불교 국가인데도...,...'라는 운을 먼저 떼기 일쑤이다. 그 운에는 '소증이 대승보다 낫더라.'라는 언외의 의미마저 담겨 있음이 사실이다. 이런 인식에는 교정해야 할 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동남아시아의 불교 국가가 대승불교권에 속하는 국가보다 불교의 전통을 국가적 차원에서 더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소승과 대승이라는 불교적 특성 때문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쪽 국가들에는 불교가 전래하기 전까지는 불교에 버금갈 만한 자국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교는 별다른 문화적 저항이 없이 항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소위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던 중국과 한국과 일본 등의 대승불교권에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불교에 버금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의 불교는 문화적 저항으로 인해 저마다 특수한 변용을 겪지 않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우위를 지키기도 어려웠다.

둘째로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서 소승과 대승에 대한 가치 판단이 불교 전반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하게 언어적인 감각이나 인습 또는 고정 관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소승과 대승이 불교의 양면일 뿐이지 결코 반대되는 교의가 아님을 진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승이든 대승이든 모두가 불교인 점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좋고 나쁨의 기준이 적용될 수 없는 구분이다.

불교 교학의 역사에서 소승이라는 말은 '대승' 보다 나중에 등장했다. 대승불교라는 새로운 흐름이 출현하면서 대승 경전들은 자기 입장의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 교리 연구에 전념하는 이전의 몇몇 부피들을 '소승'이라고 지칭하였다. 그리고 이 말은 이전의 불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이라기보다는 불교를 실천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양측이사로 불교가 아니라고 비난했던 것은 교리 해석의 차이와 더불어 정통성에 대한 시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소승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대승의 입장을 전제로 하여 답을 구할 수 있다.

대승과 소승의 차이를 우선 이해하기 쉽게 구분하자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에서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하는 수행 과정을 모범으로 삼아 전념 수행하는 입장을 소승, 그 과정을 포함하면서도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한 이후 대중 교화를 위해 노력했던 의식에 많은 비중을 둔 입장을 대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정통성의 취약점을 안고 있는 대승은 오히려 부처님의 본의에 충실해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교리의 해석과 적용의 문제도 이와는 무관하지 않다. 대승불교는 많은 부처와 보살들을 부각하는 동시에 인도의 여러 신들도 수용하여 속신적인 요소까지 내포한다. 이에 대한 기존의 입장은 대승이 불교의 정도를 벗어난 것으로 비판하지만, 대승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이 자비심으로 중생 교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했던 것과 같은 방편의 일환임을 전제한다. 이에 따라 대승에서는 다양한 사상과 신앙 형태가 전개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기본 시각에서 보면, 대승은 소승이 견지했던 개인적 수행의 입장을 바탕에 깔고서 '부처님의 자비 구현'이라는 실천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전개되었다. 그래서 대승은 그러한 입장의 선봉장으로 보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출발하였다. 이 경우의 보살은 자기 개인의 성불이라는 목표에 앞서 타인의 성불, 즉 중생구제라는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맹세를 실천하는 이상형의 불교인으로 천명 되어 있다.

여기에는 모든 사람이 석가모니와 같은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다. 이에 대해 소승으로 불리는 기존의 불교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소승불교에서도 대중을 교화하였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 수행에 전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입장의 주된 방향이 자기 수행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입장은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출가자 위주의 불교가 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대승은 중생 구제의 자비 실현이라는 기치에 따라 교리상으로는 성불의 가능성에서 출가와 재가를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승은 재가자 위주의 불교인 것으로 비치게 된다.

교리적으로는 대승과 소승에 많은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대승은 교리의 해석과 적용이 소승에 추가된 것일 뿐, 근본적으로는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입장의 차이에서 유래한 구분이다. 따라서 비록 대승 경전에서 소승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타적인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실천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소승에 대한 심각한 가치 부정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대승을 신봉하는 재가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승의 입장이 못마땅한 것은 사실이다 소승은 해탈의 문제에서 만큼은 출가하여 계율을 실행하지 않으면 해탈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각고의 노력 끝에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재가자로서의 수행이 출가자로서의 수행과 동등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재가자 위주의 불교로 출발한 듯한 대승도 후대에는 출가자 위주의 입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대중의 신앙 형태나 방식만큼은 매우 수월하고 관대한 방향을 견지하였으나, 이런 면은 소승불교권에도 수용되어 있다.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다면, 소승에서는 출가자에 대한 계율상의 엄격성과 보수성이 아직까지 대승보다 심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출자자 위주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교에서의 수행은 자기의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이며, 이는 출가자와 재가자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필수적인 노력이다. 그리고 이 노력 자체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이러한 측면은 소승의 과정인 것이다.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 과정에서 이타적인 노력을 병행할 때는 대승의 차원이 된다. 그러므로 소승이란 불교의 출발인 동시에 대승에 포용 되어 있는 입장이다.

일상용어가 아닌 불교 용어로서는 소승이 개인의 자기 수행 적 입장이라면, 대승은 그러한 수행의 사회적 실천까지 고려하는 입장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경전의 세계/천수경(千手經)
이만(불교학과 교수)

어떤 종교이든지 간에 그 종교의 가르침 못지않게 거기에 따르는 의식도 중요하다. 오히려 일부의 종교는 이 의식에 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서 의례를 일상생활에서 상용하도록 신도들에게 강요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지만 그러나 대개의 의식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이를 독송한다든지 아니면 노래 등으로 그 내용을 읊은 몇 가지의 덕목이나 경이 있으니, 거기에 항상 들어가는 것이 이 천수경(千手經)이다.

정확하게는 천수천안관세음 보살광대원만무애비심다라니경(千手千阻餐見骨昔菩薩灌大圓@ 無碌大悲心陀羅尼經' 대정신수대장경 제20권, pp.106~111)으로써 이외에도 이와 유사한 경의 이름으로 세상에 유통되고 있는 것은 수십 종에 달한다.

우리가 흔히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고 누구나 외우고 있는 것은 이 천수경을 독송하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입으로 지은 모든 업을 깨끗이 한다는 정구업진언(淨口稟眞言)으로써 다라니(@羅尼)라고도 하는데, 부처나 보살,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에게까지라도 간절하게 소망할 때면 무엇 보다도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서는 안되기 때문에 첫째로 입부터 깨끗이 하고 시작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라니라는 것은 옛날 인도에서 처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이 표기될 때에 범어(梵語)라는 글자로 쓰여졌는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외우는 것으로써 이것을 그대로 외우는 것은 그 뜻이 잘못하면 어디에 한정되어서 국한되기 쉽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의미 있고 효력 있는 말은 남에게 밖으로 표현된 말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을 때에 크다는 것으로써 이를 밀어(密語)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을 외우는 사람은 다른 많은 말을 들어도 이를 잊지 않는 힘이 있으며, 끝없는 모든 이치를 잘 알아서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장애를 잘 극복하여 한량없는 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등의 뜻에서 이를 총지(總持)라고 하거나 능지(能持), 능차(能遮)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를 잘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이 경이 밀교적인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는 반면에 중생들이 바라는 바의 모든 소원을 해결해주기 위하여 관음보살로 나투시는데, 보통의 보살이 아니라 천 개의 눈 과천 개의 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이 보살은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죄로 말미암아 6도에 윤회하게 되는데, 이 6도를 순방하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할 때의 여섯 관음 중의 한 분으로서 그 모습을 보면, 보통의 보살상에 밖의 양쪽으로 각각 20개의 손, 즉 합해서 40개의 손을 더 가지고 있고, 이 각개의 손바닥에는 또한 한 개씩의 눈이 달려 있어서 눈도 역시 40개가 되는 편이다. 그리고 이 40개의 손으로 각각 25유(有)一삼계(三界) 즉 욕망의 세계와 물질세계 내지는 정신 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전생의 과보나 현세의 업에 의하여 지옥이나 아귀, 축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경지인 비상비비상처(菲懋菲菲想處)까지 25가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 一를 구제함으로 천 개의 손이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천개의 눈도 필요한 까닭에 이렇게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마디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많은 작용이나 힘을 이 관세음보살이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이와 같은 보살사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신라시대부터 불교신자들 사이에서 간절하게 소원을 빌 때에 그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써 그 영험이 뛰어났으며, 현재와 같이 의식 때에 독송 되는 경전의 형태는 아마도 조선시대의 서산스님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한국불교의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보면, 이는 누구나 한 번의 독송으로 다섯 가지의 것을 수행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발원과 귀의와 송주(誦呪)와 찬탄과 참회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맨 처음에는 발원하는 사람이 먼저 마음을 청정케 하기 위하여 정구업진언을 외우고, 이어서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이 부처님의 법에 안주하여 그 소명(召命)을 다 하도록 부축하는 진언을 독송하며, 다음으로는 이 경의 핵심인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라는 가장 의미 깊고 미묘한 진리의 말씀(無上甚深微妙法)을 읊기 전에 경을 여는 게송과 진언이 외워지고, 계청(啓請)이라고 하여 부처님을 청하여 의지하는 것과 별원(別願)이라고 하여 개별적으로 관세음보살과 여러 보살들에게 귀의하는 내용 둘이 나온다.

그리고 난 후 사방(四方)과 도량(道揚)을 찬탄하고 자기가 지은 죄를 참회하는 게송과 진언이 나오며, 천인장부관음(天人丈夫觀昔)에게 귀의하여 그의 청정함을 찬탄하는 준제주(准提呪)를 외우고, 끝으로 총원(總願)이라고 하여 여래에게 열 가지의 큰 서원을 바라고, 이어서 네 가지 서원(誓願)을 맹세하면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천수경은 많은 경전 중에서도 밀의로써 설해지는 진언을 통하여 부처님의 은덕을 지니려는 한편, 이의 성취를 위하여 천수 천안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을 구하는 과정이 그 줄거리로 되어 있는 한국적인 특색을 지닌 의례 목적의 경전이다.

 

 

 

불심의 창/게으른 자의 미련한 변명
곽준규(서울캠퍼스 학생처장)

불교는 본래가 부처님을 믿고 수행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교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더러는 도의 추구 보다는 기복을 추구하는 전 근대적 신행형태를 유지함으로써 불교를 올바르게 신앙하지 못하고 있어 교계 지도자들의 걱정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인지 불교계에서도 최근에는 현대화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으며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경전의 국역 사업과 국역 된 경전을 의식에 사용하는 일의 타당성문제동을 놓고 꽤 심각하게 논의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불교의 현대화와 관련된 내 나름의 생각을 피력해 봄으로서 불교 현대화 문제에 대한 미련한 제안 한 가지를 해 볼까 한다.

 얼마 전 나는 모 선원의 법회에 참석하여 하루를 보낸 적이 있는데 이 선원의 집회 형식이 매우 독특하고 현대화된 듯 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선원에서는 법회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시간을 갖는데 이 시간에는 신도들이 찬불가를 합창하거나 새로운 찬불가를 배운다. 찬불가의 합창과 학습이 끝나면 스님들이 들어와 좌정하여 법회를 준비한다. 법회의 준비과정으로 신도들은 스님들의 인도에 따라 독경을 하는데 모든 참석자가 한 목소리로 합창하듯 읽는 그 독경이 참으로 경건하게 들릴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는 듯 하여서 참 좋았다고 생각했었다.

 불교의식에서 독경은 빼 놓을 수 없는 순서인데 거의 모든 경전이 한문으로 쓰여진 것이어서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과 같이 특별히 대중화된 몇 가지 경문을 제외하고는 일반대중들이 독경에 함께 참여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 때문에 예불 시에 대중이 독경에 참여하는 일이 그다지 보편화 되지 못하고 있어 예불시의 독경은 자연히 스님들이 도맡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같이 경문이나 경전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신도들은 독경이나 경전의 학습을 통한 구도보다는 구복에 더욱 관심을 갖는 신행 형태를 보이게 된 것도 같다. 또 이런 현상이 불교를 현대화된 대중적 종교로 발전시키는데도 어려움을 주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보게도 된다.

 물론 불교의 현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의 통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불교의 현대화를 경전의 국역으로 해석할 수 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의식을 현대적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을 불교의 현대화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교의 현대화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식을 취하던 현대화는 필요한 것이며 조만간 이루어 져야할 과제라는 데는 많은 이들의 생각이 일치 하리라고 본다.

전에 참석했던 그 선원에서의 의식에서 내가 다른 불자들과 함께 읽었던 경문들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한전으로 된 경문과는 달리 경문의 의미가 쉽게 이해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무엇을 왜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훨씬 간절한 마음으로 경문을 읽을 수 있었다. 더욱이 이 경문을 다른 모든 신도들과 한 목소리로 읽을 때 느끼는 동참의식은 우리가 모두 같은 불제자이며, 한 식구라는 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에 족하였고 이들과 함께 하는 이란과정을 통해서 나도 어렵지 않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경험했던 일은 지금까지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 선원에서는 이 경문을 책으로 엮어놓아 가정에서나 사찰에서나 장소에 구애 받음이 없이 휴대 할 수 있어서 활용을 용이하게 하여 신행활동의 편리성도 도모하였다. 예불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신도들이 목청을 돋우어 한 목소리로 찬불가를 열심히 합창하는 모습을 본 것도 이런 경험을 자주 하지 못한 나에게는 경이 서러웠으며 큰 감동이었다. 찬불가를 가르치는 보살님은 목소리도 아름다웠으려니와 성량 역시 큰 법당에 어울리도록 화려하고 우렁차서 그가 가르치는 노래를 통해서도 불교의 오묘한 진리가 쉽게 깨달아 질 것 같기도 하였다.

불교는 진리 그 자체가 깊고 오묘할 뿐 아니라 그 의식 또한 대단히 성스럽고 장엄하다. 이 심오하고 오묘한 진리가 그리고 장엄하고 성스럽고 경건한 의식에서 사용되는 경문이 우리말화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불교 신행은 한층 풍요로워지고 의미 깊어 질 것 같다.

 최근 중립학교와 청소년 신행단체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불교의식에 삼귀의례, 사홍서원 등 을 현대의 음악적인 형식을 빌어 활용하는 예가 자주 있으며, 음악으로 표현되는 이란형식이 많은 불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켜 참여의식을 높여 줌으로서 현대생활 속에서의 불교신행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만일 이와 같은 예불형식이 불교의 종교적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교의 현대화라는 차원에서도 이러한 형식의 활용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해 봄직 하지 않을런지? 또 경우에 따라 적절하게 불려지는 찬불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의 여러 가리 오묘한 진리를 대중들에게 쉽게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포교의 수단도 될 수 있을 것이며 한목소리로 부르는 합창을 통해 신도들은 각자가 불제자로서의 한 가족임을 느끼게 됨으로써 구도의 과정에서도 나만이 아닌 우리로서 정진할 수 있게함으로써 불교 신앙에 차원 하나를 더 보탤 수 있게 할 것이다.

 

 필자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양주(현 남양주시)군에 소재하고 있는 중립 K중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2년을 봉직한 적이 있다. 이 학교는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산중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종류는 다양하지 않았지만 제법 짜임새 있는 Marching Band한 팀을 갖추고 있었으며 구성원들도 꽤 잘 훈련된 편이었다. 나는 이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한편 이 Band를 맡아 지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이 Band를 지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었지만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특별활동의 일환으로 Band부에서 나팔(클라리넷)을 불었던 경험을 통하여 음악적 소양을 어느 정도 쌓은 배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 인근에는 봉선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며 이 사찰이 바로 이 학교의 모체 있기 때문에 우리 Band는 사월 초파일만 되면 봉선사에 초대되어 가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에 참석하여 삼귀의례를 필두로 초파일과 관련되는 찬불가와 사홍서원 등의 불교음악을 힘차게 연주하곤 하였다.

산사에서 힘차게 울려 퍼지는 이 음악은 참으로 웅장하고 감격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Band를 지휘하고 있는 나 자신뿐 아니라 불타의 탄생을 봉축하기 이하여 부처님께서 태어나실 때의 우주가 열리는 그 웅장한 소리와 환희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이것은 참으로 큰 감동이었으며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음악이란 참으로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슬프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하며 열광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여러 목소리나 여러 악기가 어울리는 합창이나 합주는 더 없는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그래서인지 모든 종교는 음악을 가르침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불교도 음악을 포교의 도구로 정식으로 사용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봄직도 하다. 나아가 경전의 국역과 국역 된 경전의 내용을 찬불가로 제작하여 예불이나 여러 종류의 집회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포교에 더 없는 방법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려운 불교의 경전의 내용이나 여러 가지 가르침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음악의 형식을 빌어 곡을 만들고 연주하게 하거나 모든 신도들이 신행활동에서 자유로이 활용 할 수 있게 한다면 설법과 경전의 학습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교리 전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도는 참으로 어려운 길이지만 추구하여야 할 길이며 현대생활에 맞는 구도의 방법은 중생들을 보다 어렵지 않게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며 오늘을 사는 신도들의 신행을 훨씬 활기차게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찬불가의 대중화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불자탐방/이종석 교무과장
편집부

정각도량 17호에서는 동국대학교의 건학이념을 구현할 새로운 교육개혁 방안에 대하여 실무적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교무과장 이종석 불자님을 탐방하였다.

먼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를 말씀하셨다.

'사실 불교는 나의 모래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할머니의 불심을 본받아 열심히 절에 다니셨던 어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나를 종종 절에 데려가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불교와 좀더 가까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동국대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부터라고 생각됩니다.

막연하게 부처님을 알고 있던 나는 학교에서 배우게 된 '불교학개론'과 '불교문화사'를 통해 초발심을 키웠으며 지금까지도 불교는 나의 정신적인 지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과장님은 동국대학교의 직장인으로서 혹은 불교 신자로서 누구보다도 긍지를 느끼는 듯하다.

'동국대학 행정학과에 입학 할 때만 하여도 내가 모교에서 봉직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졸업 후 동국에 몸담은 지 어느새 20년 근속을 하게 되었으니 새삼 부처님의 기피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와 자비에 의거한 인간의 자기완성과 불국정토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동국」에서 교직원의 일원으로 한 몫을 담당하고 있음에 늘 긍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는 절이 있습니까?'

'어렸을 때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서 관악산에 있는 삼막사에 가곤 했는데 선친께서 6.25동란 중 전사하시어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신 후로는 국립묘지 안에 있는 지정사에 가족 모두가 다니고 있습니다.'

지장사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영령들을 위하여 특별히 지장보살님을 섬기는 사찰이다. 이과장님은 정각원의 정기법회에 참석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정각원에서 실시하는 정기 고승초빙 법회에는 꼭 참석하여 부처님의 감루법을 만나는 인연을 맺으려 하고 있으며, 직원 불자 최인 보현회 법회에도 참석하여 법문도 배우고 동료들간의 친목도 다지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동국인의 일원으로서 동국대학교의 건학이념이 잘 실천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또는 앞으로 건학 이념을 구현할 방향을 어떻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까?'

'9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동국대학은 1906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를 당하는 등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단한 성장을 계속하여, 이제는 명실상부한 순수 민족대학으로서 그 규모 또한 막강한 양적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의 질적인 수준 향상이나 건학이념 구현은 부분적으로 미흡한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의 국내외적인 교육환경의 변화는 우리에게 보다 실효성 있는 교육의 질적 향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교육개방과 자율화, 정보화, 세계화 시대의 도래는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대학의 모형을 다양화하고 특성화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지식 중심의 교육에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정보윤리, 환경윤리, 평화애호와 인류애 정신에 관한 인성교육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 동국대학교의 건학이념은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학문과 인격을 연마하고 민족과 인류사회 및 자연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 하여 서로 신뢰하고 공경하는 이상세계의 구현을 건학이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학이념에 따라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연구 교수하여 불교를 비롯한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노력하여 민족과 인류사회의 이상 실현에 기여할 지도적 인재의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육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고 나아가 건학이념의 구현을 위해서는 학교 운영의 합리화와 효율성 제고,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전반적인 검토와 개선이 요구되며 각 대학 및 학과별로 교육목표를 새로이 정립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교를 신행하면서 자부심 또는 불교의 장점 그리고 특이한 영험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일상의 신행 생활 자체가 부처님의 기피라고 답변한다.

'신행 생활을 함에 있어서 아직도 초심자에 불과한 내가 자부심이나 불교의 장점들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일상생활 중에 부처님을 찾아 참배하면서 생활의 지혜와 심신의 평안을 얻곤하니, 동국의 정각도량 안에서 늘 생활하는 나이기에 누리는 행복이라 생각하며 부처님의 기피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끝으로 동국 인으로서 또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우선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이 최선임을 밝힌다.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경쟁력을 확보하고, 안 세기 초반에 세계적인 유수한 대학으로 발돋움하고자 교육제도 및 교육과정 개정, 편제 및 학사운영 개선, 종합 발전계획 수립 등 건학이념에 입각한 교육의 질적 수월성을 확보하고 특성화하기 위해, 개교 이래 최대의 교육개벽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개혁 사업이 원만히 성취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국과 불교/동국대학시대의 개막
이봉춘(불교학과 교수)

조개학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이전의 재단법인 조선 불교중앙교무원은 1922년 9월 30일 전국 사찰에서 거출한 淨@640,425원을 기본 재산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본재산에서 얻는 수입은 그 거액이 결코 본교의 전신인 중앙학립의 유지경영에만 충당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중앙학림이 1928년 3월 중앙전수학교로 승인된 다음해인 1929년 3월에는 당시 4천석에 해당하는 4십만원이라는 거액이 증자되고서야. 비로소 이듬해 1930년 3월에 이르러 불교계로서의 오랜 숙원이었던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설립이 인가되었던 것이다.

그 후 1940년 2월에 재단법인이 조개학원으로 개칭되는 동시에, 재단의 기구개편과 획기적인 운영을 기도하였으나, 실제적으로 기본재산의 증자는 전혀 없었다. 특히 해방 후 38선 이북의 전역에 산재한 재단소유재산의 약 3할 정도는 부득이 포기하지 않을 수없는 것이 실제 현실이기도 했다.

이에 재단법인 조계학원은 38선 이남의 전국 사원에 대학 승격을 위한 기본재산의 증자를 극력 설득하였다. 그 결과 1946년 5월 20일에 개최된 제3차 중앙교무 회에서는 토지 2백만평의 증자가 의결되었다. 경제사정이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던 당시에 혜화전문학교의 대학 승격을 위해 38선 이남의 각 사찰만으로 2백만평의 광대한 토지기부가 흔쾌히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당시 한국 불교계가 세계의 조류를 직시하고, 새로이 탄생할 본 대학에 신생 조국의 장래를 밝혀갈 선봉자 양성의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재단법인 조개학원의 교지 선정과 기본 재산의 증자로 대학 승격의 외적 조건이 구비되고, 거기에 다시 학교 당국자와 학생의 꾸준한 노력이 경주된 결과, 1946년 9월 20일자로 드디어 혜화전문학교는 동국대학으로의 승격 인가를 받았다. 이로써 이제 동국대학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회고컨데 원홍사(현재 창신국민학교터)의 一室에서 교사 3명, 학생 29명이 신문화활동의 기치 밑에 고고의 소리를 올린 지 만40년이 된다. 그간 교명도 명신학교에서 혜화전문학교까지 누차 개칭되었고, 학제도 거듭 변경되어 왔으나, 건학이념인 불교정신과 민족문화의 수호 및 새 문화의 창조정신은 줄기차게 계승되어 왔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역사상 최대의 수난기에 있어서 굳게 건학정신을 고수하며 걸어온 본 학원의 발자취는 가시밭 그대로의 험로였다.

그런 본 학원이 이제 광복과 더불어 우리 힘에 의해 대학으로 승격되어 민주국가 건설의 이념적 선구자를 양성하는 슬기 찬 도량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 국민뿐 아니라 인류의 복지 증진을 추구하는 전 세계 불교도에게도 또한 뜻 깊고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새로 인가된 동국대학의 학제 및 학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문부(제1부) : 불교학과 . 문학과 . 사학과

2. 전문부(제2부) : 국문학과 . 문화과 . 역사과

3. 학부: 불교학과 . 문학과(국문학전공 . 영문학전공) . 사학과

여기서 전문부탄 5년 과정의 구제중학교를 졸업한 자가 진학하여 3년간의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혜화전문학교와 동일한 교과과정이어서 신제교육법의 실시에 따라 연차적으로 소멸되는 잠정적인 학제였다. 따라서 현행의 학제에 따라 대학으로 인가된 것은 학부의 3학과뿐이었다.

새 학제에 따라 설치가 인가된 학부의 입학자격은 당시 선제고등학교의 졸업자가 없었던 만큼 잠정적으로 구제전문학교 2년 수료자 및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인정되는 자로 되어있었다. 이 기준에 따라 새로이 인가된 학부생으로서 그 입학이 허가된 인원은, 불교학과 36명, 문학과 48명, 사학과 43명으로서 모두 127명이었다. 동국대학시대는 이와 같이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막된 것이다. 갓 태어난 대학의 가족적인 분위기는 그 인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학부 입학자격이 구제전문학교 2년 수료 또는 이와 동등한 학력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 모집된 학생은 대부분이 혜화전문학교 3학년 재학생이거나, 아니면 광복 전에 재학하다가 학병으로 강제 징병 되었던 동문들이어서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승격 후의 대학장은 혜화전문학교장이었던 許允이 임명되어 학사행정을 통할하였다. 또 대학부는 불교학과에 金東華, 문학과에 梁柱東, 사학과에 金庠基가 각각 주임교수로 임명되어 신설된 학과의 실제직인 운영을 전담하였다. 한편 혜화전문학교에서 개편된 전문부위 주임교수는 다음과 같았다.

제1부 : 불교학과 주임 趙明基

        문학과 주임 異河潤

        사학과 주임 茶義順

제2부 : 국문학과 주임 車相轅

        문화과 주임 金孝敬

        역사과 주임 閔泳珪

이상과 같은 제 교수의 임명과 함께 1946년 9월 말에 전문부는 혜화동 교사에서 대학부는 새로 마련된 필동3가의 현 본 대학 교사에서 교과과정에 따라 개강되었다.

우리는, 동국대학이 표방하던 민족문화의 부흥과 신문화창조의 기치 아래 벅찬 사명감과 젊은 정열을 불태우며 무한히 전개된 희망의 세계로 매진하던 승격 당시의 교수. 학생의 진지한 모습을 이하 윤교수의 다음과 같은 회고를 통해 엿볼 수 있다.

'2차대전으로 진학의 기회를 잃었던 중학출신, 실업학교출신, 일본. 중국 등 외지에서의 귀환학생, 학병 .징병에서 돌아온 청년들, 당당한 직장을 버리고 새 국가의 일꾼이 되려고 모여든 청년들이었으므로 향학열이 최정점에 달하였다.

교수진도 문자 그대로 사계의 권위를 총망라하여,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이 격심한 때에 기적이라고 할 만큼 상호의 이해가 깊었고 친위가 두터웠다.

<'都下各大學巡禮記' 東國大學稿 「新天地 9月號>

학부. 전문부 할 것 없이 재학생의 연령차는 엄청난 것이었다. 20세 전후 밖에 안 되는 홍안의 대학생이 40고개를 훨씬 넘어선 노대학생을 보고 00군이라고 부르면 그 노학생은 빙그레 미소를 띠며 훈수하는 광경도 별로 진기한 것이 아니었다. 제복이 정해져 있지 않는 대학부의 경우에는 옷차림도 가지 각색이었다. 낡아 빠진 염색군복을 입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한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교수들도 못 입는 소위 모두 오복을 쭉 빼입고 청강하는 멋쟁이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빈부의 격차를 가리지 않고 함께 학문을 연마하고 정담을 나누던 교정의 풍경은 그대로 학문의 전당다웠고, 아름다운 인정미의 난류지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화기애애한 학원에도 학생간의 분열, 혹은 감정대립의 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람의 향기/송 광 사
편집부

올 여름은 지난해 여름보다는 덜 덥고 비도 많을 것이라 기상대에서 예보를 했지만 그 예보는 중부지방은 맞을지 몰라도 남쪽지방에서는 믿을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가뭄으로 사람들은 몹시 지쳐 있다. 그래서인지 시원해 보이는 초록색이 짜증스럽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기자가 송광사에 가던 날은 태풍이 지나가고 있어서인지 시원스럽지는 않아도 빗줄기 구경을 하던 날이었다.

송광사에 가려면 경주에서 부산을 경유해서 순천으로 가야한다. 또 순천에서도 송광사 가는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타고 들어가야 한다.

역사

송광사는 전남 승주군 조계산(曺溪山)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며, 삼보사찰(二寶寺刹)의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대길상사(大吉祥寺) .수선사(修禪寺)라고도 불리웠다. 지금의 '송광(松廣)'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松廣山)에서 비롯되었는데 절 이름에 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구전(口傳)해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이 산이 장차 '18공(十八公=松)이 배출되어 불법(佛法)을 널리(廣) 펼 훌륭한 장소'이기 때문에 송광이라 하였다는 것과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이 절터를 잡을 때 나복산(羅蔔山:지금의 보악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국사전(國師殿)의 뒷등에 떨어져 앉았으므로 이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라 불렀다는 이야기를 토대로송광이라 한다는 설이 있다. 또 산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바위가 드러나지 않게 한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송광사의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송광사 사적비>와 <보조국사비명>등을 보면, 신라 말기에 체징(諦港)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길상사(吉羊寺)라고 불렀고 승려 수는 30명 내지 40명을 넘지 못하는 규모의 사찰이었다. 그 뒤 고려 인종 때의 석조(釋H飄)가 중창하려는 원(願)을 세웠으나 완공하지 못하고 그 후 보조국사가 정혜사(定慧寺)를 옮겨 오고, 1182년 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석 수행결사(修行結社)를 약속한 것에서 부티 대수도 도량으로 발전하게 된다. 1210년 보조국사 입적 후 교제자 혜심(慧心)으로 시작하여 180여년동안 15명의 국사가 이곳을 중심으로 수선사(修禪社)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선종을 이끌어왔으며, 이와 같은 탁월한 후계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송광사가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리워지게 된 것이다.

가람배치 및 당우

<사적기>에 의하면 고려 명종 때 이미 80여동의 건물을 가진 대사찰이었으며 1951년 공비들에게 소실되기 전만 하여도 건물 총수가 80여동을 유지하고 또 가람배치가 법계도(法界圖)의 도표처럼 배치되어 비를 맞지 않고 경내를 다닐 수 있었다 한다. 경내의 당무들을 살펴보면,

척주각(滌珠閣) . 세월각(聳月閣) : 일주문 뒤쪽에 있는 작은 건물로 다룬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건물이다. 죽은 이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재식시(齎式時) 영가(貳獰)의 관욕처(拿蘿參谷處)가 된다고 한다. 척주각은 남자 영가를 위한 관욕소이고, 세월각은 여자 영가를 위한 관욕소이다.

대웅전 . 설법전 .수선사 : 대웅전은 송광사의 중심건물이다. 195l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51년에 중창하여 비로자나불을 1구 보완하였으며 건물은 전면과 측면 각 3칸이었다. 1983년 중창 때 평면넓이 108평의 亞자 형의 건물을 다시 세웠으며 석가모니불과 연등 불 미륵불 등의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대웅전 뒤쪽에 설법전.수선사 등이 있는데 이는 요즘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가람배치이다. 설법 전은 본래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두던 곳으로 현재 대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선사는 최초에 조계총림의 방장(方丈)인 보조국사의 거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말기에는 조사당(祖師堂)으로 이용되었다. 현 건물은 1959년에 낙성되어 수행하는 선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송광사는 대웅전 뒤의 축대를 기준으로 대상과 대하로 대별된다. 대상의 건물로는 상사당 . 하사당 . 향적전(香稜殿) . 응진전 . 성수전(聖壽殿) . 진여문 . 설법전 . 차안당(遮眼堂) . 조시당 , 국사전등이 있다.

응진전 : 1623년(인조 l)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다.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 16나한을 봉안하였다.

국사전 : 국보 제 56호로 승보 사찰 송광사의 상징적 건물이다. 송광사와 더불어 나라를 빛낸 국사들의 영정을 봉안하고 그들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일종의 법당이다. 일명 자음당(慈蔭堂)이라고도 하며 한때는 참선을 하는 수선장으로 이용되기도 했었다. 이곳에 봉안된 16국사는 조계종의 가풍을 선양하고 불교의 참모습을 드러낸 한국불교의 증인들이다.

약사전 . 영산전 : 약사전은 송광사 안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이나 건물 양식이 독특하여 현재 보물 제 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약사여래상과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영산전은 석가여래의 소조상을 비롯하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석가여래의 일생을 묘사한 팔상탱화(八相楨畵)가 봉안되어 있으며 보물 제303호이다.

유물 : 국보 제 42호인 목조삼존불감(木造三尊佛龕)을 비롯하여 국보 제 43호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 보물 제 572호인 노비첩(奴婢帖)과 수선사형지기(修禪g而形止記). 보물 제 175호인 경패 등이 있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송광사 경패>

송광사에 전래 되고 있는 경명(桎名)을 새긴 패로 43개가 있다.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제작된 목함(木函)에 그 안에 있는 경전에 수록된 내용을 알기 위하여 부착했던 표지물이다. 형태는 앞면에 당초문(唐草紋) . 연주문(連珠紋) . 금강저문(金剛杵紋)등으로 장식된 장방형 외 사주변란(匡切周邊欄)안에 '대방광불화엄경 제 l함(大方廣佛華曷配 第一函)', '대방광불화엄경 제 3질(大方廣佛華最桎 第三帙)', '별역잡아함경 10권(別譯雜阿눕經十券)' 등이 음각(陰刻)되어 있다.

<송광사 고려문서 松廣寺 高麗文書>

고려시대 문서인 수선사형지기(修禪師形止記)와 노비 첩으로 수선사형지기는, 사천대(司天臺)의 관리가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의 실태를 조사한 기록이다. 그 내용은 수신사의 창건연혁 및 가람의 배치상황을 적은 다음, 복전기(福田記)라 하여 승려 수와 재산목록이 적혀 있고 보조국사 자눌(知納)의 비명(碑銘)이 실려 있다.

이는 당시 사찰의 규모와 건축 상황 및 재산상태 등을 규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송광사 금동요령>

고려시대의 금동요령으로 보물 제 176호이다.

몸체와 긴 손잡이로 이루어져 있는 이 요령의서, 각 면이 팽창되어 거의 원형(圓形)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어깨부분부터는 유려한 곡선을 이루어 반구형(半球形)이 되었고, 밑면은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구연부 네곳에 반원형을 설치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요령은 형태가 우아할 뿐만 아니라 조각도 뛰어나며, 제작 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송광사 보조국사진영>

송광사 국사전(國師殿)에 봉안되어 있는 보조국사 지눌의 진영(眞影). 이 그림은 국사 전에 봉안될 16국사의 영정(影爀貞) 중에서 가장 중심되는 그림으로,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 주장자를 짚은 전형적인 스님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 그림은 화가에 의하여 1780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으나 <십육국사영정기>(1621)에 의하면 이보다 앞선 영정이 1560년에도 있었다고 한다.

<송광사 영산회상도>

조선 후기의 영산회상도로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는 이 영산회상도는 영산회상의 모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청하여 듣는 청문중(聽聞衆)을 그림의 하단에 배치하고 설법하는 석가 불과 협시중(眺侍衆)들을 상단에 배치하는 이른바 영취산(靈鷲山)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이외에도 많은 유물들이 있으나 지면이 적음으로 하여 다 소개하지 못함을 아쉽게 여긴다.

 

 

 

신행단체/심우회

신라 화랑의 기백이 숨쉬고 있는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이타행(利他行)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정진하는 한의과 대학생 중 불자들이 모여 만든 의료봉사 동아리가 심우회입니다. 본 동아리는 불교정신에 입각한 본교의 건학 이념을 받들어 심신을 수련하여 한의학을 불교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동국 한의학의 창달과 불교의학의 정립을 목적으로 지난 84년 4기 선배님들에 의해 창립되어 현재 9기 회장단 (회장본과 2년 김봉기)아래 40명 남짓한 법우님들이 있습니다. 특히 졸업 선배님들께서는 매년 의료봉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일에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셔서 타 동아리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매년 학기 중에는 정기 법회와 불교 교리 공부를 하며 방학을 이용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어촌 지역의 의료봉사 및 수련대회를 통해 법우님들 간의 상호 친목과 의술을 통한 부처님의 자비심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우회라는 동아리 명칭은 84년 당시 수덕사 소실로 계시던 혜암 스님께서 지어주신 것으로 禪@ 修行을 통해 自性을 탐구하고 마음을 닦는 과정을 열 단계로 나누어 은유적으로 표현한 '十牛圖 혹은 尋牛圖' 가운데 제 1圖의 제목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티 가지게 되는 온갖 질병은 단순한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병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더 마음의 오염 즉, 마음의 번뇌로 인한 질병이 많습니다. 한의학을 하는 저 회들로서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고민을 하던 중 불교의 참선을 접하게 되어 참선을 통해 마음을 정화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에는 심우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특수성과 불교에서의 참선이라는 수행의 만남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신체의 건강과 심적 수양을 쌓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불교교리에 대한 여러 가지 학습으로 불교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수련대회를 통해 개인주의로 가기 쉬운 마음가짐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정각원에서의 정기 법회 중 가지는 참선 시간은 한 적톨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많은 질문과 고민을 가져다주며 매주 메주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줍니다.

이번 방학에는 섬 지방으로 의료봉사를 갔다 왔습니다. 저희들의 미흡한 노력이 그 분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믿으며 尋牛하는 마음. 그것이 환자를 대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이자 곧 부처님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자비심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저희 심우회는 소를 찾아 오늘도 정진하겠습니다.

 

 

 

비유와 설화/설산동자의 위법망구
조용길(불교학과 교수)

한 수행자가 히말라야에서 출로 고행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기 전이었으므로 부처님의 이름도 대승경전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때 제석천(불교를 수호하는 천신)은 그 수행자가 과연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해 나찰(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독한 귀신)의 몸으로 변신하여 히말라야로 내려왔다.

수행자가 사는 근처에 서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외웠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라네'

그는 이 시를 듣자 마음속으로 한없는 기쁨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험상궂게 생긴 나잘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저처럼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가진 것이 어떻게 그런 시를 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 속에서 연꽃이 피고 뜨거운 햇빛 속에서 찬물이 흘러나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또 알 수 없다. 혹시나 저것이 과거세에 부처님을 뵙고 그 시를 들었을는지도.......'

그는 나찰에게 가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들었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그 여의주 보배의 반쪽을 얻었습니까? 나는 그것을 듣고 마치 망울진 연꽃 봉오리가 활짝 피듯이 내 마음이 열렸습니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르오. 여러 날 굶은 끝에 허기가 져서 아마 헛소리 했나 보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당신이 만약 그 시의 뒷 구절을 맞아 내게 일러 주신다면 나는 평생을 두고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물질의 보시는 사라질 때가 있지만, 법(진리)의 보시는 사라질 수 없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구료. 자기 욕심만 채우려하지 남의 사정은 모르고 있소.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수행자는 나찰에게 물었다.

'당신은 대체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나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놀라지 마시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살덩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피요. 그러나 그것을 구하지 못해 나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소'

'그럼 당신은 내게 그 나머지 시를 들려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다 듣고 내 몸뚱이를 송두리째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더 없는 몸을 버려 영원한 몸과 바꾸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당신의 말을 믿겠소. 겨우 반쪽의 시를 듣기 위해 그 소중한 몸을 버리겠다니.'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질그릇을 주고 칠보로 된 그릇을 얻듯이, 나도 이 덧없는 몸을 버려 금강석과 같은 굳센 몸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똑똑히 들으시오. 나머지 반을 마저 말하겠소.' 마침내 나찰은 시의 후반부를 읊었다.

'생사(生死)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열반의 기쁨이어라.'

수행자는 이 구절을 듣고 더욱 환희심이 솟았다. 시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한 뒤에 그 시를 후세에까지 전하기 위해 벼랑과 나무와 돌에 새겼다. 그리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아래로 뛰어 내리려 하였다. 그때 나무(樹神)의 신이 그에게 물었다.

'그 시에는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이 시는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시를 들으려고 몸을 버리는 것은 내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상의 인색한 사람들에게 내 몸을 버리는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다. 조그만 보시로써 마음이 교만해진 사람들에게 내가 반 구절의 시를 얻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보여 주고 싶구나.'

마침내 그는 몸을 날려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그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나찰은 곧 제석천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공중에서 그를 받아 땅에 내려놓았다. 이때 여러 천신들이 운집하여 그의 발에 예배하면서 그토록 지극한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하였다. 이 이야기는 대반열반경에 있는 유명한 설산동자(雪山嶽子)의 설화였다. 불론 설산동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과거세 수행자 시절의 이름이다.

반구절의 시를 듣기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내던지는 그 구도의 정신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위법망구(爲法望軀)라 했다. 증 진리인 법(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우리들에게 과연 이런 위법망구하는 진실한 구도정신이 있는가를 스스로 물을 때 내 자신들은 부끄러워질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더 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라네. 생사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열반의 기쁨이어라.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이 시는 열반경 사구게(四句偈)인데 나찰이 수행자에게 한 말 가운데 '당신은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구료.'라고 한 대목이 특이하게 관심이 쏠려진다. 인생으로서 완성을 이루어 생에 대한 성취를 이루려면 지혜만이 능사가 아니란 것을 터득하여 깨닫게 되고 지혜바탕은 자비심이라고 하는 덕심(德心)이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자비심이 곧 여태이며 부처님이며 관세음보살이며 지장보살이며 미륵보살이기 때문이다.

법문이라는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리는 지극한 구도의 마음이 마침내 성불을 이룬다는 이 부처님 전생이야기는 생명이 되고 피가 되는 경전의 말씀을 얼마나 건성으로 대하고 소홀히 하였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혼의 참 양식이 되는 소중한 보배의 가르침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지혜가 요구되어지는 때이다.

<나무지장 보살 마하살>

 

 

 

나의 신행담/아집을 버리는 절
김한일(정치외교학과 3학년 불교학생회)

수련대회에서의 마지막 저녁.

밖에서는 산새 소리들의 울음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우리는 모두 간편한 복장으로 염주와 죽비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선다.

우리는 부처님 앞에서 각자의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린다.

그리고 죽비 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기 시작한다. 석가모니불을 염하면서.......

이렇게 우리의 용맹 정진은 시작된다. 이러한 용맹 정진은 1080배 혹은 3000배를 하게 된다.

처음의 나의 발원은 진지하다. 그 동안의 잘못을 참회하며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내일 이변 다시 악업을 짓지만....... 발원 후의 나의 마음은 말 그대로 삼라만상이 모두 들어 있다.

108배까지는 열심히 석가모니불을 부르면서 절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배를 넘어서 300배를 하다 보면 잡생각이 떠오른다. 아직도 300배밖에 못 했나 언제면 3000배를 다하지, 다리도 아파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신없이 다시 절을 하기 시작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 들 열심히 하고 있다.

나 혼자만 잡념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은 지나 3000배를 거의 다하고 마지막 108배가 남았다. 다시 힘이 난다. 108배만 하면 3000배를 다한다. 그런데 마지막 108배가 왜 이렇게 많을까. 아직도 더 남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죽비가 연속해서 3번 울린다.

드디어 3000배가 끝났다. 우리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나온다. 이때의 웃음을 갓 태어난 아이의 웃음과 비교하면 어떠할까....... 그리고 한 모금씩 마시는 소금물, 짜야만 할 소금물이 꿀물보다도 더욱 맛있다.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며 「성불하세요.」라는 말로 우리의 3000배를 끝을 맺는다.

3000배를 끝내고 나서의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직접 먹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듯이.......

시작할 때의 다짐과 걱정이 끝나고 나서의 환희로, 서로의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법무들의 얼굴이 그리고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세상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3000배, 아니 절을 왜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왜 절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교회에 나가는데 절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라고 하였다. 왜 나무나 둘에게 그렇게 열심히 절을 하느냐고 따지듯이 말을 하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절을 하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고, 우리는 당신들이 말하는 나무나 둘에게도 자기 자신을 낮추면서 절을 한다고.

그런데 나는 실제로 절을 하면서 나을 낮춘다고 생각을 하면서 절을 한 적이 3000배 중에서 몇 번이 될까....

부처님은 욕심을 버리고 자기라는 이상을 버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름대로 불교를 알고 신심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는 어떠할까 수련대회에서 절은 많이 하면서 과연 아집을 버텼을까, 보다 더 많은 아집이 쌓이고 있다. 선배라고 많이 안다고 아집이 쌓인다. 불교를 많이 알면 알수록 아집은 오히려 더욱더 쌓여만 간다.

절을 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라는게 있기 때문에 절을 하면 할수록 아집이 더욱더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우리는 절을 하면서 바람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절을 하기 전에 세운 자신의 서원마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심으로 부처님을 부르면서 하는 절이 진정으로 자리 자신을 낮추는 아집을 버리는 절일 것이다.

지금 밖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뉴스에는 비의 피해가 많이 났다고 한다. 이왕에 내리는 비이니까 나의 아집마저 쓸고 내렸으면 한다.

이번 주말에는 조용한 절을 찾아가야겠다. 절에 가면 항상 기분이 좋다 따뜻한 어머님 같이, 편안함을 느낀다. 절은 절에 가면 절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해서 절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치열하게 아집을 버리기 위해 절을 해야겠다. 절을 하면서 나의 아집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그런데 아집을 버리겠다는 마음이 바로 아집이 아닐까

누가 나와 함께 아집을 버리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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