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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12월호 / 통권 12호 / 불기 2538(1994)년 12월 1일 발행

 

 

 

 

고승법어

참선수행의 첫걸음 / 도문 큰스님

 

정각도량

건학이념 구현의 길/ 한보광 스님

 

일주문

순수와 맹신사이/ 이만

 

정각논단

한국 석등의 기원/ 정명호

 

교리강좌

불성과 일천제/ 편집위원

 

경전의 세계

백유경/편집위원

 

불자탐방

지역개발대학원장 김병기 교수/ 편집부

 

가람의 향기

관룡사/ 편집부

 

동국과 불교

중앙불전폐지안, 그 전말/ 편집위원

 

비유와 설화

마음 다스리는 일/ 편집위원

 

열린마당

동국 총체적위기, 이제 우리 힘으로 극복해내자/ 이석종

 

신행 단체

정심법우회/ 편집부

 

불심의 창

어머니와 비둘기/ 이창윤

 

불교 건강법

심해상어의 간유, 스쿠알렌/ 김갑성

 

 

 

고승법어
참선수행의 첫걸음 / 임도문 큰스님

주상자를 세 번 내려치신 후에 설법을다 마쳐버렸습니다. 그러나, 기왕 법상에 올라왔으니까 몇 마디 일러볼까 합니다.

 

삼계대도사(三昇大凌"甲) , 사생자부(四生慈父)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놋ㅁ) 명행족(明行免) 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1茅世尊)님이 마하가섭에게 이르시기를 나의 미묘법문(酎少法文- 실상무상(實相無相) 청정법안(淸淨法眼) 열반묘심 (1呈槃妙,已,)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너에게 부촉하노라하시면서 전법 하시니 그 전법 게는 이러하다.

 

法本法無法 법이라 하는 본래 법은 없는 법이요無法法亦法 없는 법이란 법도 또한 법이라,今f寸無得法 이제 없는 법을 부축하는 때 去法何會法 법 법은 어찌한 일찍인 법인가.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인행(因行)시에 불 . 법 .승 삼종삼 보인 동체삼보(同體三寶) 별상(呂"相)삼보, 주지(毛主持)삼보에 귀의하여 공경, 공양, 예배, 찬탄, 참회, 발원하면서 자 . 비 회 . 사(慈悲횹捨)인 4무량심 (無量,已,)과 보시 (布施) 에어 (愛語) 이행(利行) . 동사(同事)인 사섭법(四攝法)과4념처 (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t艮) 5력(力) 7각분(覺分) 8정도(正道)인 37보리분법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의 52위를 지나 여래 위에 오르셨습니다.

45년간 일대시교를 설하시고 마하가섭에게 3처전심 (處{蕁已,) 격외도리(格外道里)를 전하시어가섭 이후 그 법이 전하고 전하여 석가여래 부축법 제28세 보리 달마 대사는 서역인도에서 동토 중국에 전법 하여 동토 중국의 초조가 되었습니다 보리 달마 대사가 제2조 혜가에게 전법하니吾本來比土 내가 본래 이 국토에 온 것은 傳法數迷情 법을 전하여 미혹 중생을 구제키위함이라.

一花開五葉 한 떨기 꽃에 다섯 잎이 피어서結果自然成 열매 맺음이 지연으로 이루리라.석가 여래 부축법 제33세 대감혜능 대사가 남악회양에게 법을 전하니

 

心地含諸種 심지에 모든 종자가 포함하여서

普雨悉皆生 널리 비가 오면 싹이 나오리라

螂吾華情已 화장을 돈오하여 마치면

춈提果自成 보리과를 스스로 이루리라.

 

법 제68세 용성진종(龍城貢鍾)에 이르렀다.용성대종사는 「불교의 5대 수행」을 제창하시었다. 불교의 5대 수행이란 불사(悚事)수행, 염불수행, 간결 (흡系厓)수행, 주력수행, 참선수행을 말한다 불사수행은 성불의 인연을 짓는 일로서경전(敬田)불사수행과 은전(,臣,田)불사수행과 비전(悲田)불사수행을 말한다. 염불수행은 10념(念)을 바탕으로 하여 칭명 염불 관상(相)염불 관상(想)염불 실상염불을 하는 것이다. 간경수행은 경전을 보는 것이며 주력수행은 법(法)다라니,의 (意)다라니, 주(呪)다라니 , 인(因)다라니로서진언다라니의 작용이다 다음은 오늘 법문의 중심 주제인 참선수행입니다.

참선수행이란 무엇인가? 선은 생각하여 닦는사유수(思惟뷩i釜)이다. 선은 고요히 생각하는 정려(靜慮)이다. 마음은 육 단심 (肉團,已,) 연려심 (緣慮,已,) 집기심(集起,已,) 견실심(堅實,已,)이 있다. 육 단심은 육체적 생각에서 우러나는 마음이고, 연려심은 보고 듣는 데서 분별하여 내는 마음이며,집기심은 제7식과 제8식을 말함인데 망상을 내는 깊은 속마음이다. 견실 심은 본성으로써 부처님의 성품과 같은 불성(佛샅生)이다. 참선은 참입선도(參入j후道)의 준말로 부처님의 성품과 같은 불성 즉 견실 심을 보는 수행이다. 그래서 침입선도인 참선은 만법의 근본이고 불교의 핵심이다.부처님의 교법은 필경 이 선의 경지를 깨우쳐 주려는 데 근본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8만4천 무진 법문의 교리는 부처님말씀이고 선은 부처님 마을이라고 하는 것이다.닦지 아니하여도 되는 분이 있고 닦아야 할 사람아 있다. 닦아야 할 사람을 위하여 세 가지 기본방법을 일러준다. 그것은 3관법(觀法)이다. 정관(靜觀) 환관(幻觀) 적관(寂觀)이다. -정관''이라함은 한 생각 일어나는 데서 고요히 관하기를 「이한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는고?」 일어나는 당처(省處)가 없는 도리를 깨달으면 고요해 진다. 고요한 것이 극치에 이르면 마침내 밝아져 버린다.-환관-이라 함은 밖의 경계를 보는 수행인데 보고 듣는 그 모두를 허깨비 환상(幻相)이라고 보는 것이다. 꿈은 허상이지 실상이 아니라고 알아버림으로써 환몽(幻夢)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삼라만상이 환상임을 깨닫게 되면 집착을 여의 고 자성이 밝아진다. 이러기에 지악수선(止惡0釜善)이 되는 것이다. ''적관-이란 정관과 환관이 일치하게 된 것을 말한다. 즉 안으로 번뇌가 일어나지않고. 琴聖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게 됨을 말한다.이것이 참선수행의 첫걸음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선은 진정한 이치를 사유하는 것이고, 생각을 고요히 ㅎ배 산란치 않게 하는것이며,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드는일이며, 선 . 악을 생각하는 것이고, 시비에 관계하지 않아 마을을 안락자제한 경계에 소요케 하는 것이다.

산란심을 제거하는 수행은 수식관(救,늰,觀)을해야 하고 짜증내고 성을 내는 진에인(嗔애入)은자비관(慈悲觀)을 하며, 애욕과 탐착이 많은 중생은 구상관(구t想觀)인 부정관(不淨觀)을 해야한다.

선은 마음을 닦는 수심법(튀i筆,已,法)인 것이다.그렇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닦아야 하는가? 역시 마음으로 닦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은 마음으로 마음을 닦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구경에는 닦는 마음도 닦을 마음도 없는 것이 참다운 선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의 심오한 경지를 말로나 논리로나 사랑분별 . 계교의식 (計較意識) 작용으로는 이룩할 수 없고 다만 참 지혜로써 흘연히 깨치는데 있다고 하겠다.

선에는 범부선, 외도선, 여태선 등이 있지만 여기 선은 조사선을 말한다. 조사선 가운데도 묵조선(默照禪)과 간화선(看話禪)이 있다. 묵조선은담연적정(湛然寂靜)한 심지 본연의 체를 비추는 수행이고 조사선은 조사 활구(活句)를 참구하는것이다. 간 화선의 삼대요건은 대분지 (大'[賁志),대신근(大信根) , 대 의정 (大疑情)이다. 대신근은제불조사와 같이 나도 불성이 있다는 믿음이며,대분지뇰 체불조사는 깨달았는데 나도 하면 된다는 의지이며, 대의정온 화두를 참 구하여 불 조의 가르침을 증명하겠다는 의구심이다.

몸이여!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로구나. 마음이여 한 생각 나오고 잠시 이어지고 달라지고 없어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로구나. 우주여, 이루어지고 존속되고 무너지고 공이 되는성주괴공(成住壞空)이로구나. 이것이 인연의 합당 상 가(假)짜로구나. 불성! 주인공아 생사가 아니로구나. 불성! 주인공아 생멸이 아니로구나. 불성! 주인공아 성과가 아니로구나. 불성! 주인공아....

이뭣고(是甚磨)?

 

弗f羚不相見 부처님과 부처님이 서로 보지 아니하고

祖祖平相傳 주사님과 주사님이 서로 전하지아니하도다.

佛祖意明法 부처님과 주사님의 혜명법은卽無有定法 곧 정한 바 법이 있음이 없느니라.

 

 

 

정각도량
건학이념 구현의 길 /  한보광(서울캠퍼스 정각원장)

이번 사태

지난 10월 31일 오후 6시경 교정에 모셔진 불상을 훼손하는 학생에게 나무라는 스님교수를 구타한 사건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어찌 보면 단순한 술취정 정도로 보아 넘길 수 있기도 하지만, 예상외로 그 파문은 교내는 물론이고 불교계와 전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본다고 하면 교육계나 사회적으로는 술에 취한 대학생이 교정에서 교수를 폭행했다는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사건으로 봄으로 인하여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는 것같다. 그러므로 학교나 언론계에서는 어디까지나 제자가 스승을 폭행한 것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불교계나 종교계의 시각은 좀 다르다. 이 사건은 단순한 교수폭행이 아니라 종립대학에서예배의 대상이 성상을 훼손하고 스님교수를 폭행했다는 점에 더욱 좌절감과 모욕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교정의 불상 주위에는 팔정도(八正道)로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어 있고 불단위인수미단에는 올라갈 수 없도록 방책이 쳐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예배의 대상인 불상의 스미단 위에까지 올라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 우리 불교계의 신앙형태이다.더구나 이를 저지하는 스님교수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행을 했다는 것은 더욱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교의 신앙의 대상인 불상(佛寶)과 가르침 (法寶)과 스님 (僧寶)인 住持三寶를 비방하고 훼손하는 重罪에 해당되는 불자의 계율을 범하였다. 교리상으로 보면 이들에게는 단순한 참회로서 용서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단에서는 이 사건을 이교도들의 광신자들에 의해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양식 있는 종교인이나 무종교인, 또는 불자 집안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충격이 크며 사건의 초점을 여기에 갖추고 있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첫째로 술 취한 상태에서 수미단에 올라가 불상을 훼손하려고 했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보면 불교에 대한 모독이며, 둘째로 불교존립대학에서 승복을 입은 스님교수에게 폭행과 폭언을 했다는 것은 모든 스님들에 대한 모독이며, 건학이념의 부재이다. 셋째로 자신의 신분이 교수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했다는 것은 교권의 상실이라고 볼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세 번째의 교권상실에 대한 문제는 많이 회자 되었으므로 제외하고 종립대학에서 불교 위상과 관련 있는 건학이념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문제점

우리 학교는 구한말 불교와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던 선각자 스님들에 의해 원흥사의 요사채에서 승려전문교육기관인 강원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발전하여 불교학을 중심으로 한 현대학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오늘날과 같이 비대하게 되었다. 불교의 건학이념은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학술의 깊온 이론과 응용방법을 연구하며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인격을 형성하여 민족과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의 지표는 ''지혜의 체득, 자비의 실천, 불퇴의 정진''으로 삼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도제의 양성 ② 현대불교학위 발전 ③ 응용불교학 연구 ④ 불교적 인재양성 ⑤교육을 통한 포교⑥지성인 배출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동국대학에서 이와 같은 불교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는 혼히들 건학이념 부분을 말하면, 재단의 전입금에 관해서 거론한다. 즉 불교계에서 학교에 무엇을 해 주었느냐는식이다. 그렇다 불교계에서도 이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70년대에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은 교단에 대해 학교재정을 확충하라고 법석을 떤 일이 있었다. 이를 고심한 끝에 종단에서는 강남 봉은사의 12만평이나 되는 땅을 팔아서 오늘날의 혜화관과 동국관(당시 공무원 교육원)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그때 당시 재산처분으로 인하여 생긴 분규의 후유증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 동국 인들은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재단의 전입금 문제를 들고 나온다 만약 강남의 그 땅이 지금까지 있었다고 한라면 대한불교 조계종은 어떠한 사업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본교의 이전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 뒤부터 종단에서는 학교를 위해서는 한치의 땅도 팔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널리 확산되었다, 이점에 대해 우리 동국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제는 본 교가불교 아니 조계종을 위해서 무엇인가 답례를 해야 할 순서이다.

그런데 본교는 위의 6가지 건학이념 중 어느 하나도 만족할 만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본교의 재단은 막연한 한국불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립대학이다. 그러므로 조계종의 종지에 입각한 건학이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교정화 이전의 생각과 조직으로 누적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조계종의 관할하에 있으면서도 불교정화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므로 종단에서도 애정을 갖지 못하며 학교의 구성원들 중 일부는 늘 독신 비고 종단인 조계종을 경원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아갈길

현재 본교에서 실천되고 있는 건학이념에 관해서 살펴보면

① 도제양성의 측면에 있어서는 해마다 선학과에 승려학생 10명의 입학이 전부니다. 이는 입학생의 0.2%에 해당되므로 체육특기자만도 못하다. 또 종단의 도제양성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은 강원, 중앙승가대학 등의 졸업생이 1년에 약 300여명이므로 3%에 해당된다.

② 현대적인 불교학의 발전에 있어서는 그나마 어느정도 공헌하였다고 자부할수 있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으로 인하여 큰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본교의 재직교수중 불교학 교수의 비율은 약7%에 머물고 있다.

③ 응용불교학에 있어서는 순수불교학 교수이외의 본교 교수중 불교관련 논문을 쓴 분은 약 50여명 이므로 이는 전교수의 10%정도에 머물고 있다. 특히 일부학과에서는 교단의 필요성에 의하여 종단의 종책적인 차원에서 개설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몇 해 못 가서 ''불교''라는 명칭을 없애버리고 그 특성조차 잃어버린 학과마저도 있다.

④ 포교직인 측면에서 본교에 재직교수 중 불교신자는 66%이며, 직원은 93% 정도이다. 이 중에서도 무종교에 가까운 불교신자도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그 비율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 특히 교직원들을 위한 정기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늘 한정되어 있으며, 몇십 년 재직중 법당과는 거리가 먼 분들도 있다. 학생들의 포교와 불교이해를 돕기 위해 불교학개론과 불교 문화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단순한 강의식이라서 종교적인 감화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⑤ 불교적 인재양성에 기여한 본교의 역할도 크지 못하다. 즉 졸업생 중에서 사회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불교신자임을 분명히 밝히는 인사가 많지 못하며, 또 불교계에 기여하는 졸업생도 얼마 없는 것이 사실이 그러면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 건학이념을 올바르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모색고자 한다.

 

① 도제양성의 측면에서 그동안 종비생을 배출하긴 하였지만, 이것으로 부족하므로 좀더 많은 승려를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최소한 전입학생의 1% 정도는 되어야 하며, 현재 20명인 선학과의 증원과 승려교육을 전담할 새로운 학과(宗學科 혹은 布救學科)의 개설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다

② 현대적 불교학위 발전을 위하여 학교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와 다양한 불교학자의 수용과 연구교수제의 도입이 있어야 할 것이다.

③ 응용불교학위 발전을 위해 비불교전공자들에 의한 불교관련 논문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전공과 관련시킨 응용불교학 논문의 포상제도를 마련할 것을 제안코자 한다. 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 전문분야의 교수초빙시 불 교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를 채용할 필요가 있다.

④ 포교직 기능과 불교적 인재양성은 함께 보아야 한다 이번의 사건을 계기로 하여 본교의 불교적 인성교육에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즉 1학년 교양학부의 필수과목인 강의실 중심의 불교학개론과 불교문화서의 한계성이 나타난 것이다. 대학에서의 종교교육은 심성교육인 동시에 인성교육이다. 그러므로 여타의 학문과 같이 단순히 강의실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종교단인 조계종의 종지에 부합하는 선 관련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중립대학에서 종지를 선양하는 과목이 없다는 것은 이미 중립대학의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교생에게 교양필수로 禪관련 과목(가칭 :''禪과 入間'' , ''坐禪實習'' , ''참 나를 찾아서'')이 반드시 정각원이나 禪院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정각원의 기능을 강화하고 다양한 포교를 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신입생들의 오리엔테이션을 산사에서 실시하며 중립대학 다운 분위기에 젖어들게 할 필요가 있다.⑤ 교 . 직원들의 단과대학별 정기법회와 불교교양 교육으로 한 달에 한번 정도 중강당에서 정기법회가필요하다, 이 중강당의 법회는 과거에 전통적으로 실시해 왔으나 근자에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⑥ 역 경원의 기능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불교 경전의 전산화에 본교가 앞장서야한다. 이를 위해 본교에서는 인력과 장비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가능하다. 우선 본교에서 심혈을 기우려 완성한 한국불교전시의 전산화는 시급한 일이다. 본교에는 다행스럽게도 불교대학,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한문학 관련 학과 등이 있으며, 잠재력도 있다. 이들 관련학과의 공동연구소를 개설하여 미래불교학위 발전을 위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건학이념이 원만하게 구현되기 위해서는 전 동국 인들은 돈독한 신심과 애교심으로 일심 단합해야 하며, 종단을 비롯한 전 불교인들의 애정과 관심, 재정적인 지원이 절실히 요망된다. 국제화시대를 맞이하여 각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과 대학의 특성을 분명히 나타내었을 때 세계의 다른 대학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일주문
순수와 맹신 사이 /  李 萬 (불교학과교수)

단어 중에서 'ultra' 라는 말이 형용사에는 '과도한, 과격한, 극단의' 등으로 쓰이고, 명사일 때에는 '과격론자, 극단론자' 등으로 쓰이는데, 이 단어가 본래는 이와 같은 뜻이 아니었고 '산 너머 저쪽, 알프스의 남쪽' 등으로쓰여져서, 옛날 프랑스 정부에서 남쪽의 로마 교황청을 바라보면서 지칭한 데서 온 개념이라고한다. 그리ㅎ때 'ultra' 라는 단어와 '산지의, 낮은 지대에 사는, 산지 동식물의' 등으로 번역되는 'montane' 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서 된'ultra-mentane' 이라는 말이 '알프스 산 저쪽의, 알프스 남쪽의' 등을 의미하는 것에서도 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세 이후에 통치자인 국왕과 로마교황 사이에 주교 등 성직자들의 인사권을 놓고 그것을 누가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 때문에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에 교황청의 편을 드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과격론자, 또는 극단론자 등의 뜻으로 이들을 ultra라고 불렀다는 것이요지이다. 물론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 반대로 프랑스 정부도 마찬가지로 과격론자들이거나 아니면 극단론의 짐 단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종교적인 측면에서 언급할 때에 우리 나라의 사회를 일컬어서 다종교사회라고 하지만 가끔은 개인의 종교문제가 상당한 갈등의 소재로 등장 되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다종교사회라면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의 직업이나 학문의 다양성만큼이나 종교인 그것도 그렇게 다양한 것이 원칙일텐데, 그렇지를 못하고 그것이 때로는 억압의 수단까지 되어서 개인의 활동을 제한한다든지 아니면 신분상에 불이익을 가져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한 뜻을 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자기 종교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면서 타인의 그것을 터부시하는 맹신론이나 광신론자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그것으로써 외래종교에서디 심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한 예로 해마다 몇 대학교에서 교직원들을 뽑는다는 광고문을 내거나 어느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기사를 낼 때에 꼭 어느 특정종교에 한정된 사람만을 참여자료국한해서 뽑으려는 경향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어느 회사의 제품에는 무슨 성구 등을 의도적으로 인쇄해서 그것을 사먹거나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라도 읽히려는 옹졸한 짓들을 보면 정말로 역겨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만약에 부득이 하여 그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다면 그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입시요강 같은 곳에 미리 이를 명시하여 종교적인 제약을 두어야 할 것이고, 생산하는 물품에 대해서도 꼭 그 종교인만이 사도록 사전에 이를 광고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그것이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또한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 그 자체이어야하 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누구를 가리고 누구만을 좋아한다는 것은 심한 갈등의 소유자가 하는 짓이지 진정한 종교인의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되면 국민의 대다수가 아직도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상태에서 그들은 어쩌면 양심에 따라서 생활할 수도 없단 말인가.

나보다도 더 남을 사랑하고 이치에 맞는 사랑을 할 때에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종교인이지, 자기종교에만 집착한 나머지 남 보다 나를 먼저 내세운다면 이는 종교를 빙자한 극단론자일 것이다. 이 러한사람들에게 무슨 지혜와 덕이 있어서 남이 존경하겠는가. 모든 귀천은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참다운 종교인은 남의 아픔을 아는사람이다. 억지부리지 말아야 한다

 

 

 

정각논단
한국 석등의 기원 / 정명호 (미술학과 교수)

한반도 내에서 발견되는 여러 종류의 古伏道形美術品 중 주목되는 조형미술품은 晛明施設의 一種인 石燈의 존재를 들 수있 다

 한반도 내에서 발견된 풍부한 石燈은 언제 어디에서 발생되었고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기원되었는가를 규명하여야 할 것이다.현재까지 학술조사에 의해 밝혀진 석등의 존재는 주로 匯袁墓와 佛寺및 그 유적지 내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邸宅과 宅地 등에서 옥외에 시설된 石燈具는 물론 燈樓의 유구가 전혀 발견돼봐 없어 주목된다.

다양하게 발달된 유물과 유적의 조성연대를 相考하여 볼때 능묘에 소재하고 있는 작품들 보다는 비교적 종교적 예배처인 佛寺와 그 유적에서 발견되는 작품들이 양식상 선행되는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즉, 불교 전래 이 전의능묘에서는 석 등 구가존 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기원을 자연히 불교에서 찾아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석등의 발생이 불교에 있다 하더라도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 있어서는 겨우3기가전해 지고 있으며 이중 2기는 네팔에서 찾아볼 수 있다.또 중국에 있어서는 겨우2기 만이 조사된 형편이다. 이와 같이 희소한 자료를 가지고 이상의 兩國中에서 발상지를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여기서는 다만 한국석등에 대한 기원문제만이라도 밝혀두고자 한다. 석등의 기원이 불교에 있다. 고 하면, 한국의 석등은 한반도에 전래한 불교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불교가 전래한 시기는 삼국난립시대인데 최초로 받아들인 곳은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로서제17대 소수림왕 2년(A.D372)에 불상과 경문이 들어오고 곧 가람이 세워진 것을 볼때 필 시 예배도구인 燈에관한 지식도 전해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유물 .유적은 물론이요, 문헌조차도 전해지지 않고있다.

불교의 燈具는 禮拜儀式用에서 뺄 수 없는 기본적인 儀式具일 뿐만 아니라 津家에서 실시하는 모든 공양중 가장 으뜸가는 法供촐具인 三大要品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이와 같은 공 양구가 실내용일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옥외에 고정된 경우에 있어서儀式用 혹은 燈으로 겸하여 사용되었을 때 이들의 초기형태에 대하여 문제가 되는 것이다. 동구는 사용처에 따라 숫자②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첫째는 이동이 가능한 소형의 생활필수품으로서 실내외장치용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둘째는 건축의 한 부속으로서 옥외 일정한 곳에 고정시켜 주로 야외용으로 전용된대 형의 것으로 大別할 수 있다. 특히 佛家에서는 燈具의 사용이 절대적으로 교리적 의미에서 이용될 뿐 아니라 승려들의 야간활동과 밤중에 사찰의 위치와맹수 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도 구로서 발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상과 같은 원인에서 발전된 야외등구의 초기양식에 대하여는 전혀 밝힐 수가 없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전래하였을 때 疼象의 初期衰材가 石造에 앞서 木遣였던 것을 보아 燈具 또한 木遣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木造架構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으면서도 실제로 이와 같은 遺構와 遺跡이 아직 발견된 바 없으므로 이도 규명할 길 없으나 우리 나라와 이웃하고 있는 일본에는 文軫 二, 三伊"가 남아 있다. 그에 의하면 일찍이 木造의 燈樓가있었던 사실을 전하고 있다.그러나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도 일본과 같이 石燈에 앞서서 존재하였는지 그 여부는 알 수 없지만 燈樓와 유사한 명칭으로는法住寺事蹟에 '燃燈閣三間' 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연 등 각의 위치에 대하여알 수 없으며 이곳에는 현재 4기의 석등만이 있는 만큼 목조의 동구시설로 볼 수는 없다.현재까지 알려진 등루형태의 석등이 발해의 고도 농경 성내의 한寺址에 一基가 遺存되고 있는데, 火舍石以上部分에 목조건축양식의 장식을 한 것을찾 아볼 수 있으며, 또 고려시대의 것으로 法泉寺址 智光國師无춈碑殿址에서 발견된 火舍石片과 신륵사의 휩齊尊者 石鍾欣孚屠 앞 석등 등의 실례로 보아 목조누각 식의 동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까지 불교 전래로부터 6세기까지 목조는 물론 이요, 석재 유구가 발견된 바 없다. 그러나6세기 즉, 백제가 부여와 그의 남방인 익산시 금마를 중심으로 한 矛津寺遺跡에서 비로소 시원적인 형태의 새로운 석등자료를 얻게 되었다.이로 말미암아 석등의 기원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시원양식으로 추정되는 석등이 발견된 부여의 一部材 이외에는 저 유명한 미륵사지로서, 이곳에는 현재까지 밝혀진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석 탑이 遺存되어 있다.이 석등 또한 석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석재로서 동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목탑파에서석탑파로 변천된 과정과 같이 화재의 위험에서 또한 작품의 영구보존의 의사에서 발생된 현상이라 하겠다.

석등은 시대적 구분에 따라, 또한 용도나 미관에 따라 그리고 종교적 의미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변천되고있으며 그 양식상의 구별은 크게 불교적 시설과 유교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나눌 수 있다.불교적 성격에 의해 이룩된 석등은 가람 배치에 따라 佛殿 앞이나 탑 부도 앞에 설치되는 종교적인 의식 구로서 이는 憐燈 또는獸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한편 유교적 산물로 보이는 석등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민속적 성격에서 유래하여 죽은 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며 일반 능묘 앞에 세워진 석등으로 長明燈이라 부른다. 또한 이들 석조양식은 시대변천에 따라 점차 구조적인 표현양식도 변화 발전하는 것이필연적이다. 이들 일반적인 석등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석등의 주요부분은 등화를 일으키는 부분인 불 집 곧, 火舍部와蜃座部로 크게 나누어진다. 대좌부는 燈趺에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불상대좌나 부도의 대좌와 같이 거의 동형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이들이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온 것을 살펴보면, 주 부분인 火舍石의기본평면은 초기에 팔각으로 사면에 火窓이설치되어 있으며 餘面에는 火舍壁으로 되어있는 것이 기본형에 화창장을 개설한 경우도 보이고 있다. 때로 화 사석의 기본평면은 팔각에서 변형되어 4각, 6각,부등변8각 등으로 변화하여 시대적 구분을 가능하게 한다아울러 竿枉石에 있어서도 역시 팔각이 기본형이나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鼓腹形 . 雙獅子汗) . 單獅子死) 蟠龍形 人物象汗). 圓形. 楕圓形 平等邊八角形 . 六角形 . 四角汗) 등으로 변한다. 이같이 火舍石그리고 臺座 등의 주요부분의 변화양식은 이들 석등의 시대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석등의 양식적 분류의 주안점은 火舍石에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8각,6각, 4각의 3가지 양식으로 크게 구분이 가능하며 이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는, 팔각으로서3국시대부터 조선조까지 전해진 양식이며 이는 특히 신라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다.

둘째는, 육각으로 고려 초에 일시 유행되었던 양식으로 개성 사지석등에서 찾아볼 수 있셋째는, 사각형으로 고려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행되고 있는 형태이다 이상과 같이 대별할 수 있으나 모든 부재가 팔각형을 이루고 있으면 典型樣式이라 부른다. 전형양식 이외에竿柱石의 형태에 따라 鼓腹型石燈, 異型石燈으로 세분할 수 있다.

 

 

 

교리강좌
불성과 일천제 /  편집위원

구제의 근거, 불성

어느 한 종교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종교로서 신봉 되는 데에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근거가 있다. 그 근거란 단적으로 말하면 '똴1간의 구제' 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있다 인간의 구제를 약속으로 천명하는 그 종교를 우선 믿어야 한다는 단서이다.

'인간의 구제' 라는 막연한 듯한 약속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이 곧 그 종교의 발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구제'의조건과 방법들이 교리로 정립되어 간다. 아울러 구제될 수 있는 인간의 법위도더욱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가난하지나 불행한 자와 소외된 자가 구 제의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회의 여론에 의해 용서할 수 없는 자로 낙인 찍힌 '극악한 자'까지도 포함될 정도로 구제의 대상은 확대된다.

종교에서 표방하는 구제란 일반적으로 '절대적 타자(他肴)에 의한 구제' 틀 의미한다. 즉 전능한 절대자의 힘에 의지하여 구제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있다. 그런데 불교는 그러한 전제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불교는 자기 자신의 각성과 노력에 의해 자신이 저절로 구제될 수 있다는 입장에 입각하여 '중생의 구제' 라는 이념을 표방하였고, 이 이념은 부처님의 자비에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자비를 베풀었다 함은 모든 사람에게 성불의 길을 열어 주었음을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석가모니가 반평셩 동안 헌신한 전법(轍)의 노력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중생에게 가르치기 위함이었으며, 이 노력이 자비 시현의 구체적인 예로 간주된다-

후대의 대중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렇게 노력한 근거를 불성(彿性써서 찾았다. 즉 모든 사람이부치가 될 수 있는 본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ㅎ배, 그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사고 방식과 수행방법을 여러 가지로 가르친 내용이 바로 불교라고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대승 불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불교의 본래적인 입장이다. 예를 들어 『법구경』과 『출요경』 등의 초기 경전에서 "모든 악은 짓지 말고 온갖 선은 받들어 행하며 그런 마음을 스스로 정화하는 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불교를 정의하는 데서도 그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대승 불교의 『열반경J에서는 성불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서 맑게 드러내야 할 우리의 마음을 '불성' 이라고 명명하면서 , "일체중생 실유불성'' (一初衆生悉有佛性)이라는 표현으로 이 불성은 모든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다고 천명한다 『열반경』은 하나의 비유를 들어 그러한 사실을 확신하라고 가르친다

 이마에 금강의 구슬이 붙어 있는 한 역사(力士)가다른 역사와 힘을 겨루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서로의이마가 부딪치면서 그 구슬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그 역사는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통증을 호소하였다. 의사가 이마에 있던 구슬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 박혀 버렸음을 알려 주자, 역사는 이제 그 구슬이 더 이상쓸모 없게 되었다고심히걱정하였다. 이에 의사는 역사의 이마를 거울로 보여주면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구슬이 여전히 불가사의한 빛을 발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위의 비유에서 역사는 중생을, 구슬은 불성을, 의사는 여래 또는 부처님을 각각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그 내면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이 비유의 요점이다. 여기서 불성이란'깨달은 자' 즉 부처의 본성, 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일천제의 성불

그런데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정말 누구에게나 인정할 수 있을까? 어느 종교에서나 상징적인 의미일 망정 구제 불가능한 '최고의 악인'은 설정되기마련인데, 그러한 악인에게도 구제의 가능성이 있음을 선뜻 인정하기엔 일반의 통념상 곤란한 점이 있을 것이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설하는 『열반경J에도그러한 통념이 반영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최고의 악인을 대표하는 부류를 일천제(一暇)라고 한다. '잇찬티카' (icchantika)라는 법어를 음역 한 일천 제라는 말은 성불할 원인을 지니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데,'선근이 끊어진 자' 라는 의미로는 단선근(斷幇鼠), '신앙심을 갖추지 않은 자' 라는 의미로는 신불구족(信平具足), '욕심이 극도로 많은 자' 라는 의미로는 극욕(極欲)이라고 번역되었다. 이런 일 천제가 성불할 수 없는 부류로 간주되었던 것은 불교 일반의 통념이었다 『열반경』도 처음에는 일 천제가 성불할 수 있는 그릇이 못된다고 설한다.

하나의 비유를 들길, 맑은 구슬을 흐린 물 속에 넣으면 그 구슬의 빛으로 그 물이 맑게 되지만, 아예 진흙탕인 물 속에 넣으면 그 물이 맑게 될 수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체중생 실유불성' 이라는 미묘한 가르침을 설하는 『열반경』으로 '흐린 물' 과 같은 중생, 즉 다섯 가지의 큰죄를짓거나네 가지의 중요한 계율을 어긴 중생에게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진흙탕과 같은 일천 제에게는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보리심을 일으키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일 천제는 모든 선근(善t艮)을 단절하였으므로 그럴 만한 그릇이 못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섯 가지의 큰 죄' (5無間罪 또는 5逆罪)란 아버지 . 어머니 .아라한 부처님을 해롭게 하는 죄와 교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죄를 가리킨다 또 '네 가지의 중요한 계율' (4重帑法)이란 살생과 돋움 질과 간음과 거짓말을 하지않는 것이다.

그러나 '일천제 성불 불가' 라는 통념은 『열반경J 자체에서 수정되기에 이른다. ''그 일 천제는 비록 불성이었더라도 숱한 죄악으로 얽혀 있어서 나올 수가 없다.누에가 고치 속에 있는 것과 같다.''라고 언명했으면서도 -만일 선심(善毛,)을 일으키면 그렇게 일천 제라고 불리지 않게 된다-라고 부연한다. 이는 일 천제가 성불할 수 있다는 단서를 치(공하는 것이다. 즉 일 천제가 성불할 수 없는 이유는 선심을 일으키지 못 하기 때문일뿐, 선심을 일으킨다면 일천 제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마침내 『열반경』은 일천 제도 성불할 수 있다는 점을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닌다. 불성이 있기 때문에 일천 제도 본심을 떨쳐 버리면 모두 바로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한다.-라고천명한다.

일천제 문제에 대한 이상과 같은 시각의 추이는 진리에 대한 자각을 통해 '깨달은 자'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불교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이것은 또 불교 본래의 인간관과 수행관에게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논리에 의해 타인을 구제하고 타인에 의해 구제될 수 있다는 이타(柑f猷) 신앙도 활발하게전개된다.

모든 사람은 구제 받을 만한 본성. 즉 불성을 지녔으면서도 무지와 번뇌로 자신의 불성을 오염시킴으로써 쉽게 일천제로 전락할수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 천제는 우리 범부의 모습일 수 있다. 자비를 표방하는 불교가 이런 범부를 방치할 리가 없으며, 실제 보살이란 일 천제를 포함한 중생 모두를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일 천제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입능가경』에서 말하는 대비 천제(大悲闡怪)란 바로 그런 보살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열반의 깨달음에 굳이 들어가지 않는 사람을 '큰 자비심으로 성불하지않는 일천제' , 즉 '대비 천제' 라고 칭하는 것이다.

 

 

 

경전의 세계
백유경 /  편집위원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에 말씀하신 모든 형태의 가르침을 그 내용이나 방식에 따라서 아홉 가지로 나눌 수 있고(九묶毋父) 더 늘려서 열 두 가지로도 분류할 수 있는데(十二숩哉), 이 때에 어느 쪽에도 포함되는 것이 여러 가지의 비유(avadana . 譬喩)를 들어서 설하신 내용이다 이에 속하는 경전류가 백유경(百喩經)과 출요경(出"翟經)으로써 여기서 살펴 보고자 하는 백유경은 이를 백비경(百譬系邑) . 백유집(百喩集) . 백구비유경 (百句譬喩系쪼) 또는 백구비유집경 (集系篁)이라고도 불리우는 경전이다-

이의 내용은 옛문헌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가 비유형식으로 소개되고 있었으나 그러한 것은 여기에서는 별로 볼 수 없고, 근기가 낮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말한다 하더라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가지가지의 비유 물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으로써 이러한 의미에서 이를 또한 치화만(癡花만)이라고 의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한 화만이라는 뜻으로써, 화만이란 옛날 인도에서 그 지방의 풍속으로 꽃을 실에다 꿰어서 몸이나 머리에 장식하던 것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앞을 장엄하게 꾸미기 위하여 생화나 금 은으로 만든 조화 등을 달아 늘어뜨리는 장식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비유를 드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경전의 저자로는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셨다는 설과 승가사나(僧伽斯那)가 짓고 그의 제자인구 나비지 (求那毘地)가 492년에 한역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부처님께서 설하셨다는 것은 이 경전내용이 대승의 여러 경전 중에서 선악 응보에 관한 비유 문을 백구들여서 집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연유하여 그와 같이 여긴 것 같지만 승가사 나가 지었다는 사실을 이 경전의 끝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또한 이 경전과 같은 목적으로 편찬된 것이 잡비유경(雜譬喩余쪼) 4종류와 여러 경전에서 뽑은(韜邑撰) 비유설화들이 있으며, 11세기경에 인도의 소마데바(Somadeva)가 지은 고전 설화집인'전설이 호로는 바다' (katha-saHt-sagara) 중에도 이 경전에 수록되어 있는 같은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Dr.A,코언이 편찬한 유태인의 경전인 'Everyman Talmud' 에서도이 내용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저 유명한'The Arabian Nights' 에도 유사한 내용들이 자주보이는것을알수있는것이다

전체가 4권으로 된 이 경전은 그 구성에 있어서는 대개 일반 대중들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가려 뽑은 것이지만, 간혹은 유치한 이교도나 통치자인 왕을 위한 것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출가자들의 수행에 관한 것 등 그 내용이 다양하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록 이 경이 본 연부에 속하는 것이지만 개도와 방편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데, 이는 여러 부류들을 진실한 세계로 인도하려는 목적 아래에서 차별된 사물의 실상을 올바르게 파악하여 깨닫게 하려는 중생교화의 한 방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의 대부분의 경전이 엄숙하고 진중하여 일반인들은 쉽게 이에 접근할 수 없는데 비하여, 이 경전은 그렇지 않고 해학적인 내용이어서 누구나 부담없이 허심탄회한 웃음을 짓게 하고, 그러면서도 언중유골 식으로 불교의 깊은 사상을 은연 중에 알게 하는 해박한 내용들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출가자나 세 속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불교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하며, 웃는 가운데서 진실에 계합 되는 점을 노린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경전이 만들어질 때에는 100가지의 내용이었지만 후세에 이르러서는 그 중에서 두가지가 없어지고 현재는 98가지만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각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는 인도 논리학과 같은 5단논법을 쓰거나 일반적으로 쓰이는3단논법을 사용한것이 아니고, 단순한 2단논법 즉먼저 비유를 들고 이어서 이를 불교의 교리내용 중에서 발췌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 가운데서 맨 처음에 나오는 우인식염유(愚入盒鹽喩)를 소개하면, 이 이야기는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소금을 적당히 넣어야 음식의 간이 맞아서 맛이 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서 무조건 많이만 넣으면 맛이 더하는 줄로 알고는 소금을 많이 넣어서 음식 자체도 먹지 못했다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즉,옛날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주언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는데, 싱거워서 맛이 없다고 불평했다는 것이다. 이에 주인이 그 말을 듣고는 곧 소금을 더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소금을 더 넣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음식이 맛나는 것은 소금 때문이다 조금만 넣어도 맛이 있는데, 하물며 많이 넣으면 말할수 없지 않겠는가 '' 라고 혼자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리석게도 공복에도 소금을 먹었다는 것이다. 소금만 먹으니 입맛도 변하고 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외도들이 음식을 절제해야 도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7일 혹은 15일 동안 음식을 들지 않아 몸을 헤쳐서, 마침내는 도를 얻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저 어리석은 사람이 소금이 맛있다고 소금만 먹어 입맛을 변하게 한것처럼, 외도들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만을 알고서 그것을 전부인 양 인식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이면의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온전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비유 담

이 98가지가 소개되고 있는 이 경전이므로, 포교사나 교법 사들이 설법할 때에 몇 가지의 내용만으로도 숙지하고 있으면 참으로 유익하게 사용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불자탐방
지역개발대학원장 김병기 교수 /  편집부

이번 호에서는 경주캠퍼스의 유일한 대학원인 지역개발대학원의 김병기 원장님을 찾아서 대담을 가졌다.

기자 :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게된 동기와 그 이력에 대해말씀해 주십시오.

원장님 : 어떤.특별한 계기는 없고 나이 40을 넘기니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인지 회의를 느끼게되었지요. 그러던 차에 우리집이 관악산 근처인데 그 산에 보덕사라는 절이 있어요. 아침마다 약수를 떠오고 가끔씩 예불에도 참석하게 되면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어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불교의 부처님 말씀에 귀의하게 된 인연이랄까요.

기자 : 경전중에 마음에 새기는 구절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원장님 : 불교경전 중에서법화경, 화엄경 등을 많이 입고 공부했는데 그 중에서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즐겨 읽곤 하는데 내용 중에 장자가 불이 난 곳에서 아이들을 구하려고 장난감으로 회유하여 아이들을 구해내었다는 비유가 있어요. 이것은 마치 중생들이 탐.진.치 3독에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부처님의 교화로 구제된다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라 마음에들 담아 두고 있어요.

가자 : 가족관계 및 근황은 어떻게 되십니까?

원장님 : 연로하신 어머님과 안사람 그리고 1남 2녀를두고 있는데 이들은 결혼하여 분가해 살고 지금은 다섯식구이지요- 식구 중에는 막내딸만이 내가 있는 동국대학교를 올해 졸업했어요-

기자 : 신행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원장님 : 별다르게 하고 있지는 않고 가끔씩 관악산 보덕사에 가서 부처님을 뵙기도 하고 관세음보살보문품 테잎을 자주 듣고 항상 부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하려고 노력하지요.

기자 - 원장님은 현 국제경제학과 교수이신데 전공분야에 관하여 말씀해 주세요.

원장님 : 무역학 중 해상보험이 전공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물자이동이 필요한데 주된 무역통로는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는 많은 재해를 안고 있기 때문에 보험조치를 하지 않고는 무역이 성립되지 않아요.무역을 성림하게 하고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관장하는 것이 해상보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기자 : 전 불교학t생회 지도교수님 으로 계셨던 것으로 아는데 보람을 느깼던 적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고 기억에 남는일 이 있다면?

원장님 : 지금 정각원장님이신 도업스님의 추천으로 3년정도 불교학생회 일을 지도했지요. 불교를 공부하는 동아리라서 그런지 몰라도 타 동아리학생보다도 마음이 착하고 신심이 돈독한 학생들이 많이 있었어요. 지금도 졸업한지 4-5년 된 그때의 학생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안부를 물어오기도 해요. 서로 간에 연락을 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돕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인연으로 계속 소수의 인원이나마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지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언젠가 성지순례를 선산쪽으로 간 적이 있는데 절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수행정전을 하면서 학생들이 갑자기 1500배를 한다고 해서지도 교수라는 명목도 있고 해서 학생들과 같이 시작을 했는데 750배정도 했을 배 지쳐서 중도에 그만두었는데 그날 저녁에 1500배 못한 벌을 받았지요. 지금 동부그룹에 근무하는 학생인데, 저녁에 씻고 나오는데 내 신에 치약을 잔뜩 짜 놓았던가 보아요. 그것이 연이 되어 지금도 한번씩 만나기도 하지요.

기자 :  대학원이 생긴지 이제 6~7년이 되는데 그동안 대학원장님 임기중에 가장 힘들었던점과 보람을 느꼈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원장님 : 이제 대학원이 생긴 지 6년이 되었는데, 내기대학원장 소임을 올해 2월부터 맡아서 힘든 점은 아직은 없었던 것같아요. 이제 9개월을넘긴 시점이라 대학원 사정을 파악하는 것에 힘썼어요.보람을 느혔다면 지역개발대학원은 앞으로 지방화시대를 맞이하는데 그동안의 지역경제 지방행정을 위해서 학교 내의 각학과 교수님들이 강의를 많이 해주셨고, 또 전 대학원장님이신 김시배교수님이 잘하셔서 지금은 울산, 포항, 경주지역에 우리 대학원 졸업생들이 많이 배출되어 사회적으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것에서서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또한 대학원에 학과가 개발행정학과 하나에서 이번 제가 대학원장작을 맡으면서 개발행정학과와 지역경제학과 둘로 나뉘게 되었어요. 전 원장님이 당국에 신청했던 것이 내 임기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전 원장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서 유지하고 개선점이 있으면 고쳐나가는 것이 지금의 제 소임이라 여깁니다. 대학원의 성격이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인 만큼 대학원생들과 많은 접촉을 해야 되므로 개인적인 시간이 없는 것이 좀힘듭니다.

기자 옆으로 대학원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또 추천 하고자 하는 사업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원장님 : 추진 사업이라고 말할 것은 없지만 앞으로 대학원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에 노력해야겠지요. 그러려면 우리 대학원을 지역사회에 좀 널리 홍보해서 지역주민과 상호이해 관계가 깊어짐으로써 학생의 질도 높아지고 양적으로도 많은 학생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있으며 그렇게 되면 우리 대학의 위치도 올라가겠지요. 또한 대학이란 것은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있어야지만 그 대학의 명성이 올라가지 않을까. 그 점에 있어 우리가 특수대학원이라는 한계점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 가잘 운영함으로써 일반 우리학과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좋은 대학원생을 유치하고 교과목편성에 중점도 두고 잘 지도해서 지역발전의 볕 거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기자 :  끝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계시면 해주세요.

원장님 : 우선은 공부할 때도 기초부터 하며 사소한 것 하나라도 실천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처님말씀 중에 모든 악을 멀리하고보든 착한 일을 받들어 봉행하라는 먈씀이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지만 정작 실천하는 이는 몇 안됩니다. 요즘처럼 논리도덕이 타락한 사회에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짝한 일을 실천할 줄 아는 사림이 되라고 말하고 싶고 또 열반경에 있는 말씀으로 「법등명 좌둥명」이 있는데 즉 전라를 등불로 삼고 자기 스스로를 또한 등불로 삼으라. 이런뜻인데 신의라든가 우정이라든가 이런 것을 믿기보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가다듬는 것이 훌륭한 인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악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실천하는 이가 되라. 둘째는 자기 자신을 다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기자 : 바쁘신데 긴 시간 탐방에 응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대학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가람의 향기
관룡사 / 편집부

하늘의 푸르름을 더하는 가을풍경은 언제나 정겹다. 들녘에는 추수한 볏 집들이 널려있고 골목마다의 감나무들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감나무 꼭대기에는 까마귀 밥으로 감 몇 개를 남겨 두는 우리네 인심이 가장 넉넉하게 표현되는 것이 가을인 까닭이다 이번호에는 넉넉한가을, 단풍보다는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억새푿의 고장, 화왕산 관룡사로 발걸음을 돌려본다.

 

창건

관룡사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九育山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또한 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기도 하다. 신라시대 8대사찰 중의 하나로서 많은 문화재와 경치 좋은 사찰로 널리 알려졌지만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사기에 의하면 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은 지리산 칠불암의 창건설화에 나타난 것과 같이 불교가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가야에 전해졌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애증이 되기도 한다 그 뒤 583년 종법이 중창하였는데, 보통 이를 창건으로 삼기도 한다. 삼국통일 뒤에는 원효가 천명의 중국 승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고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서 火旺山 마루의 月影三1也로부터 아홉 마리의 용이 등천하는 것이 보이므로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748년 추담이중건하였고, 1401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당무가 소실되었고, 1617년에 중창하였으며,1704년 가을의 대홍수로 금당과 부도 등이 유실되고 승려 20여 인이 익사하는 참변을 당한 뒤 1712년에 대웅전과 기타 당-우들을 재건하였다 그 뒤 1749년의 부분적인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12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보물 제295호인 용산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46호인 약사전, 보물제519호인 석조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3호인 관룡사사적기, 경상남도 민속자료제6호인 석 장승 둥 귀중한 문화재들이 있다, 그 중 대웅전 안에는 비로잖아 삼존불이 봉안되어있고, 약사 전은 임진왜란 때 전화를 면한 관룡사 유일의 건물로서 부석사 조사당, 송광사 국사l전과 함께 건축사연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이 약사 전 안에 봉안된 약사여래 좌상은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약사전압에 있는 높이 2m의 삼층석탑은 기단부위 4면이 각각 2개씩의 안상이 조각된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작품이다. 또한, 절의서쪽 계곡 500m 위의 育틉船暑에있는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불로서 산정상에 안치된 드문 예이다. 관룡사 입구 좌우에 마주보고 선 높이 약 2m의 石육휴柱 2주는 자연석에 남녀 상을 새겼는데, 관룡사 경내를 표시하고 石標의구실도 하고 있다.

 

유물

. 감로왕도

망인 천도에 대한 내용과 「우란분경(盂蘭헒墾L의 내용을 도상 화한 그림으로 1791년 좋乍이다 원래는 관룡사에 봉안되어있던 불화이나 현재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은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윗부분에는 7여래(七如來 . 孤魂들로 하여금 탐 심과 약도를 버리고 열반락을 얻어 감로미를맛보게 하고, 극람에 왔생하게한다는 일곱 부처)와 죽은 이의영혼을 인도ㅎ배 정토로 안내해가는 인로왕보살 및 지장보살,관세음보살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중 7여래의 높고 뾰족한옥계, 약간 형식화된 인물표현,느슨한 필치 등이 18세기 후기불화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보살 아래의 대부분의 공간은 부드러운 암산을 배경으로 지옥 및 현세의 생활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불화는 내용이나 구성 등이 다른 감로왕도와비교되는 반면, 색채와 필 선에서도 二元的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색채는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다양하고 화려한 불 화의색채감각에서 벗어나, 일반회화에 가까운 단순한 색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대웅전

관룡사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전으로 보물 제212호이다.앞면 3칸, 옆면 3칸인 다 포식건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귀기 둥 밑에는 거칠게 다듬은 네모난 주춧돌을 깔고, 나머지 기둥은 곱게 다듬은 둥근 주춧돌로 받쳤다.기둥 위에는 춤이 큰 장방이 평방을 놓고 그 위에 포착을 짜올렸으며, 어간에 2구, 양옆 협간에 1구씩 공포를 배열한 다 포식을 취하고 있는데 세부를 처리한 수법은 비교적 오래된 것이다, 건물의 내부는 가운데 뒷줄에 교주 2기를 세우고, 그 사이에 불단을 설치하여 불전의 기본형식을 갖추고 있다. 천정은 우물천장으로 만들되 불단 위쪽은 한단 높게 하였고, 불단 위에는 보 개의 구실을 하는 닫집을 가설하였다 1965년 8월에 해제하여 보수할 때 가운데 칸 마루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401년에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I7년과1618년에 중창하였다. 그뒤1749년에 다시 중창하였는데 위 상량문은 이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석조여래솨상

약사전에 봉안된 고려시대의 석불 좌상으로 보물 제5I9호이다. 절 위쪽의 용선 대에 있는통일신라시대(9세기) 불상인 관룡사 용산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조형으로 해서 고려시대에 만든 작품으로 생각된다 높은 3단의 팔각연회대좌에 결가부좌 한 이 불상은광 배가 결실되었다 평면적인 둥근 원으로 나발을 선각한 큼직한 욕계가 표시되어 고려불상의 머리형식의 통례를 따르고있다. 이 불상의 크기는 용선대석불좌상 보다 작지만 전체적인 표현수법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을 모형으로 하여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이 지방장인이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불신에 두껍게 회칠을 해서 눈,코, 입 같은 미세한 세부는 잘 알아볼 수 없지만, 대좌에는 회칠을 하지 않아서 그 표현수법이 생생하게 드러나 보인다 각부의 신체의 비례가 맞지않아 어색한 점이나얼굴, 신체,옷주름, 대좌 등에서 고려불상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고, 어느 정도 지방적인 양식까지 반영하고 있어서 고려 후기의 조각양식을 대변하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

 

약 사전

조선시대의 목조건축물로 보물 제146호이다. 규모는 정면1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 기와집이다 공포는 네 귀에 세운기둥위에만 있을 뿐 이 공포들 사이로 포벽에는 화반도 배치되지 않았다. 기둥 머리를 괴어나온 창방 끝을 그대로 첨자로 만들어 공포를 짜올라간 솜씨는 주심포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독특한 수법의 하나이다. 좌우측면의 박공머리에 나와 있는 첨자들은 모두가 전형적인 주심포집의 첨자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이 주심포계 건물에서 부분적으로 다포계 양식의 건물에 쓰이는 첨자를 사용한 예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이나 송광사 국사전(국보제56호) 등에서 볼 수 있다.

 

관룡사 용산대 석조석가여래좌상

관룡사 근처의 용선 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 보물 제295호이다. 높은 팔각연회대좌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결가부좌하였는데광배는 없어졌다 나발(蟬髮)의머리에는 낮아진 둥근 옥계가있으며, 탄력성은 감소되었으나 단아한 사각형의 얼굴이다 직선에 가까운 눈, 오똑한 코, 미童놓 머금은 입은 온후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귀는 어깨에닿았으며, 목의 三道는 가슴까지 내려오고 어깨는 좁아지고 조금 올라간 위축된 자세이지만 안정감이 있다 결가부좌 한 하체는 안정감이 있으나 조금은둔중하다. 무릎에 놓인 손은 두났풀하지만 섬세하게 조각되었는데 석굴암의 본존이 취한 항마촉지인과는 조금 다르다.

 

약사전 삼층석탑

花崗岩으로 건조한 方形의 삼층석탑이다. 암반을 이용하여 하층기단을 조성하였는데 각 면에는 2區씩의 인상을 새겼다 상층기단 면식에는 두 隅柱와撑柱를 모 각하였으며 옥개석과 탑신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다. 건조양식과 각 부위수법은 신라시대 석탑을 따르고있다. 그러나 규모가 약 2m 높이로 줄어 들고, 각부의 양식 수법이 간략해지고 섬약해져 그 건조시기가 고려시대 전반일 것으로 추정케 한다.

 

 

 

동국과 불교
중앙불전 폐지안, 그 전말 /  편집위원

한국의 전불교인이 갈망하던 중앙고등교육기관인 중앙불전의 출빙은 매우 고무적이고 경하 서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출범 불과 3년 6개월만에아무도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중앙불전의 출범을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그 육성과 발전에 힘을 기울여야 할 재단법인 조선불교선교양종 중앙교무원 이사회에서 중앙불전 폐지안을 평의원회에 제출한 것이다 1923년 1월 16일의 일이었다.

그제기의 경위는 곧 이러했다 즉 당시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아 경영하던 교육기관은 1923년 6월에 인수한 보성고등학교와 중앙불전의 2개교였다. 그런데 교무원재정 형편상 양교 운영을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어 양자택일의 기루에 서게 되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중앙불전의 폐지론이었다. 보성고 보에는 재단으로부터 년 1만원의 보조가 필요한 데에 비하여 중앙불전은 연간 근 2만원의 보조가 있어야 유지해나갈 수 있으므로 보조액이 적은 보성고보를 교무 원에서 계속 경영하고 중앙불전은 정리해버리자는 것이었다. 그 대신 불교전문강당 하나를 설치하면 경비는 절약되고도 불교교육은 더욱 잘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재단사업 정리 안즉 중앙불전 폐지안은 그 전날 임시평의원회에서 선출된 신임 이사들의 제1차 회의(10월16일)에서 갑론을박 끝에 결의된 내용이었다. 이사회는 이 안건으로 평의원회의 재개를 요구하였으나 평의원회의 재개불능으로 다음 해 3월의 정기평의원회로 안건처리는 미루어지게 되었다,

실로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바뀐 이 폐지안이 알려지자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이 즉각 일어났음은 물론이다, 재경 졸업생들의 긴급 심야회의를 비롯, 교수 직원 연석회의, 그리고 긴급 학생총회 등이 잇달아 열려 일제히 반대의 포문을 열었다 반대운동은 亂上을 통해, 혹은 이사나 평의원들 찾아야 반박과 설득을 하는 등으로 끈덕지게 전개되었다 그 반대의 이론적 근거는, 첫째,교무원에서 보성고보를 경영하단 것은 사회사업이지 엄밀한 의미에서의 불교교육사업은 아닌 데에 비해 중앙불전은흥학 포교를 내세우고 있는 한국불교의 생명체나 다름없다는 것, 둘째, 교계는 바야흐로 신시대에 맞는 신교육을 받은 동량을 필요로 하는데 재래식교육인 전문 강원 설치를 말하는 것은 크게 시대착오적이라는 것 등이었다.

이제 당시 중앙불전폐지 반대에 대한 몇 분의 분노에 찬 충언과 외침을 들어본다. 먼저 당시의 교장 박한영은 냐묘本敎育과 名嘗事業」이란 글에서,(전략)緣目0 중앙교무원 재단법인은 우리 불교 내에 홍학 포교로 主眼되는 중에 진실의 중심은 佛摩校를 完成且嚮長하라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천백 년 아래에 조선에 9백사찰 소유재산을 반분하여 근본교육인 佛摩校는 힘쓰지 않는고. 다른 명예를 模議 주장한다 함은 무슨 필연의 내용이 伏在인지는 不知로되 石顚沙門도 중앙학림 이래로 중앙교무원재단법인의 발기 자의 1인으로서 그 재단을 주장할 시에중앙학림을 아무쪼록 승격하여 세계중립대학과 동일한 보조를 취하자면 재단법인이 아니면 안되겠다하야불완전하나마 지금까지 중앙교무원아 성립되어 오는것이다. 만일 佛廖校의 근본교육에 携異한다하면 근본정신을 망각하는 동시에 조선불교까지를 背脫하는 것이다.

(하략)  <一光 四號> 라 하여, 폐지론을 근본정신면에서 꾸짖고 있다. 또 권상로교수는 「菩薩行平아J란 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전략) 흥! 참! 말하기 과연어렵다! 중앙불교전문학교폐지설이다. 응? 무엇? 이사가 중앙불교전문학교를 폐지하라는 복안을 가졌다한다. 訛言이라도 不成說이지만은 訛言이 아니라면 참平楙單事이다. (중략) 금일에 경비 타산으로서 佛奪폐지를得策으로 자부하리라 마는제 부모를 잊어버리고 제 집을 배반하는 사람이 잘 되는 데를 보지 못하였다. 佛專폐지한 代賞으로 조선불교에 무엇 하나新慤사업이 있을 줄 아느냐1 佛轝이 있기 때문에 조선불교가 속히 망하고 佛奪만 폐지하면 조선불교가 졸지에 번창하고 사회사업하기 때문에 사회의大稱극T가 돌아올 줄 아느냐? (중략) 만일 그렇게 하랴거든 이사이고 평의원이고 주지이고 할것 없이 일제히 사직할 뿐만 아니라 조선불교에 승적을 두지 말고각 사찰에 본존불도 모셔내고 사암의 간판을 떼어버리고 공회당이나 供樂部를 만들고 자기들은 모다 이교도 노릇을 하여라. 소위조선불교의 대표자격으로 조선불교의 중앙사업을 한다면서 그날부터 무슨 면목으로 이사니 주지니 승려니 하고 세상에 존재할 터이냐?(하략) <一光 四號>

 

이미 졸업한 교우들의 분노도 대단하였다. 「蔚軒葉1 이것이 천하의 가을을 말하는 서곡이라면 중앙불교전문학교 폐지결의1 이 결의는 조선불교의 몰락을 아뢰는 弔鍾이다」<박윤진 . 中身1회> 「中專폐지론의발언자는 용인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본다. 삼천만 원의 거금은 아직 존재하나 中身이 없는 날이면 조선의 불교는 멸망의 시각을 足하는 것이다. 우리는 폐교론에 절대 반대한다」<박석하 . 中身2회>는 등 中廖5t堯友會로 끊임 없이 반대의 절규가날아들었다. 한편 중앙불전의日 人교수 江田後雄도 「佛身에대한 비난에 答함」이라는 글에서 보성고보의 경영을 위해 中奪을 폐지하는 일이 얼마나 냉소한 일이며 자살 적 행위인가를 지적한 다음, 「아울러 身을조선 불교에 속하고 如斯한 생각을 가지는 자는 정히 조선불교교단에 있어서 獅子身中의蟲이라고 평할 수 밖에 없다」고 통박하고 있다.

<一光 四號>

 

이같은 중앙불전 교수 학생 및 졸업생들의 궐기와 맹박에 발맞추어 교계에서도 비난의 소리는 빗발치듯 하였다. 사실이사회의 이 중앙불전 폐지안은 이사들 중에서도 반대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며, 또한 교무원 전체의 통일된 의사도 물론아니었다. 장음용은 중앙불전 1회 졸업생들의 모임인 「2958會」에 다음과 같은 격문을 날려 차제에 불교계의 혁명까지도 불사하라고 외치고 있다.

 

(전략) 諸君1 중앙불교전문학교문제이니 폐교? 정지?지속? 문제이다. 소위 동방문화의 재흥을 목표하고 13도 英俊聰듯손를 교육 도야시키는 불교 최고학부가 5년이못되어 문을 닫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너무도 소아병적작용이 심하다고 하겠다.(중략) 조선 삼천리 강산에 봄은 온다! 불교혁명의 종소리는 울려 온다 제군은 감연히 운집하라!

피! 눈물! 힘! 을 한데 뭉쳐서 조선 불교를 살려라

〈津敎 弟4號〉

 

이와 같이 중앙불전 폐지 반대의 여론이 들끓고 비난의 화살이 퍼부어지자 1934년 3월에 열린 정기 평의원회의 결과는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결국 후임 경영자를 물색하여 보성고보를 양도하기로하고, 중앙불전은 계속 교단에서 경영하기로 한 것이다. 이리하여 어처구니 없이 일어났던 중앙불전 폐지론이란 평지풍파는 가라앉게 되었다. 말썽의 불씨가 되었던 보성고보의 경영은 후임 경영자로 高啓學院이 결정되어 1935년 9월 11일 인계를 완료하였다. 당시 사정으로는 부득이한 일이기는 했지만,그러나 보성고보의 인계 또한 일말의 0내움을 갖게 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었다.

 

 

 

비유와 설화
마음 다스리는 일 /  편집위원

몸을 괴롭히지 말고 마음을 다스려라

옛날 어떤 비구니가 사가라국(사伽羅國)에 갔었는데 어느 한 바라문이 온몸을 불에 지지고 있었다 그의 이마 위에서는 물이 흐르고 가슴과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마구 솟았으며 목구멍은 마르고 입술과 혀는 바짝 타 있었다 그는 용광로 같은 이글거리는 불을 사면에 두고 그 열기 속으로 이리저리 뒹굴어 마치 시루 속의 떡처럼 온몸이 익어 있었다 그리고 이 바라문은 항상 해진 베옷을 입은 채 온몸을 불에 지졌으므로 그때 사람들은 그를 누갈자( 賓褐炙)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때 그 비구니가 지나가다가 이것을 보고 그 바라 문에게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불에 지져야 할 것은 지지지 않고 지지지 않아야 할 것을 지지고 있소?''

그때 누갈자 바라 분은 이 말을 듣고 몹시 성을 내면서 대답했다

''가소롭다, 이 까까머리야 무엇을 불에 지진단말인가?''

비구니는 다시 말했다

''그대가 정말 불에 지져야 할 것은 그대가 남을 미워하고 성을 내는 그 마음을 불에 지져야 한다고 마음을 지지는 것이 참다운 고행이다

 그대는 저 수레를 끌고 가는 소를 보았는가? 마치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채찍질해야 하고 수레는 채찍질할 필요가 없듯이 이 몸은 수레와 같고 마음은 소와 같다.

그러므로 그대는 마음을 불에 지져야 하거늘 왜 쓸데없이 그 몸을 못 견디게 구는가? 또 몸이란 저 숲 같기도 하고 담장 같기도 하여 아무리 불에 지져도 마침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갖가지로 법을 설하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깨우쳐 주었다

<大莊風聆酋經>

 

주리반특이 한 게송을 외우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였다,.

주리반특(未梨料寺)이라는 한 비고가 있었다. 그는 원체 기억력이 없었으므로 부처님께서 '비로 쓸어' 라는 말을 외우라고 했다 그러나 백 날 동안을 외워도 '비로'를 잊었다고 해서 송추(誦추)라는 별명이 붙은 이너무도 미련했으므로 부처님은 5백 아라한으로하여금 날마다 그를 가르치게 하였지만 3년 동안에 하나의 게 송도 알지 못했다 온 나라의 4배(四輩)들도 그의 미련함을 모두 알았으므로 부처님은 그를 가엾이 여기어 곧 불러서 앞에다 두고 한 게송을일러주셨다

 

입(口]을 지키고 뜻(意 을 껴 같으며

그리고 몸(身]으로는 범하지 말라

이렇게 수행하는 이라야 세간을 초월한다

 

이 게송을 들은 반특은 부처님의 인자한 은혜를 느끼면서 기뻐하다가 마음이 열리어 게송을 읊어올렸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나이 늙어서야 비로소 한 게송을 외웠구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므로 기특하게 여기지말라. 이제 너를 위하여 그 뜻을 해설해주겠다.

첫째 믐에는세 가지가 있고 입에는 네 가지가 있으며 뜻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그 일어나는 바를 보고 그 사라지는 바를 자세히 살펴라. 삼계(三界)와 오도(五道)가 바퀴 돌 듯 쉬지 않는데, 이로 말미암아 하늘에 오르고 이로 말미암아 구렁에도 떨어지며 이로 말미암아 도를 얻어서 열반이 저절로요는 것이다 ''

하고 분별하면서 그를 위하여 한량없는 미묘한 법을 말씀하셨으므로 마음이 탁 트이면서 아라한의도를 얻었다

 이때 5백의 비구니들은 따로 다른 정사에 있었는데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한 비고를 보내어 너희들을 위하여 경범을 설하게 하겠다 내일은 반특의 차례라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여러 비구니들은 그 말씀을 듣고 모두가 비웃으면서

''내일 오면 우리들이 미리 그 게송을 읊어서 그가 부끄러워서 한마디 말도 못 하게 해버리자.''고 했다. 다음날 반 특이 왔다 여러 비구니들은 모두가 나와 예배하면서 서로기 보면서 웃었다.

반특이 앉은 뒤에 음식이 나왔고 식사가 끝나 손을 씻고 양치질을 마치자, 설법을 청했다 반특은곧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 자신을 낮추며 겸양한 자세로 말했다

''박덕하고 재주가 없어서 아직도 사문의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완악하고 근기가 무뎌서 아직 배운 바가 많지 못하며 겨우 한 게송만을외우고 있으면서 대략 그 뜻을 알고 있으므로 그대들을 위하여 설하겠으니 , 저마다 조용히 들어주십시오.''이때 여러 젊은 비구니들이 미리 그 게송을외우려 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으므로 모두가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을 책망하며 머리 조아려 허물을 뉘우쳤다

반특은 곧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몸과 입과 뜻으로 인하여 죄와 복의 안팎과 천상에 오르고도를 얻는 것과 그리고 정신을 한데 모아 생각을 끊고 선정에 드는 법 등을 낱낱이 분별하여 설했다.그때 비구니들은 그의 설법을 듣고 괴상하게 여기면서 일심으로 기뻐하다가 그들은 모두 아라한의도를 얻었다

 뒷날 바사닉왕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정전(ZE殿)의 모임에 초청했다 부처님은 반특의 위 신력을 나타나게 하려고 부처님의 발우를 주시면서 뒤를 따라오게 했다. 그러나 문지기가 그를 알아보고 막으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당신은 사문이면서 한 게 송도 모르고 있는데,청을 받아 무엇하겠소 나는 속인이 지만은 많온 게송을 알고 있소 당신은 지혜가 없으므로 당신에게는 보시해도 이익이 없을 것이니, 문 안에 들여보낼 필요가 없소 ''

그리하여 반특은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 서 있었다.

부처님은 그때 전각 위에 앉아서 물을 발우에다돌리려 했으므로 반특은 발우 가진 팔을 쭉 펴서 멀리서 부처님께 발우를 드렸다.

왕과 신하들과 부인 . 태지를 비롯하여 모인 제자들은 팔이 쑥 들어온 것을 보이는데 사람은 보이지않았으므로 괴이히 여기면서 부처님께 물었다.''이는 어떤 사람의 팔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는어진 이 반득 비고의 팔입니다''

왕은 말했다.

''그는 도를 얻었습니까?''

''아까 내가 발우를 가지고 따라오게 했더니 문지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으므로 팔을 펴서 내 발우를 준 것입니다''

왕은 곧 그를 들여보내도록 했다 그가 들어오자 위신이 평소보다 갑절 더 뛰어났으므로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듣건대 존 자 반특은 본 성품이 우둔하여 이제야 겨우 한 게송을 알았다 하던데, 어떤 인연으로 도를얻었습니까?''

부처님은 왕에게 말씀하셨다

''배움이란 반드시 많아야 좋은 것이 아니며 배운 것으로 행하는 것이 으뜸입니다 어진 이 반특은 한게송의 이치를 정밀하게 알고 몸과 입과 뜻이 고요하며 마치 천상의 금(天金 과 같습니다 사람이 비록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이때 세존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천 장(千章)을 왼다 하더라도

 글귀의 이치가 바르지 않으면

 하나의 요지 (要旨)보다 못한 것이니

 듣고서 생각을 없애야 되느니라.

 

비록 천 언(千言)을 왼다 하더라도

이치가 없으면 무엇이 이익되랴.

하나의 이치보다 못한 것이니

 듣고 행하여야 재도될 수 있느니라

 

 비록 경전을 많이 왼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무엇이 이익되랴.

하나의 법 글귀라도 이해하면 서

행해야만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

 

이 게송을 같이 들은 2백의 비구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며 왕과 여러 신하와 부인이며 태자들도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法-句經>

 

 

 

열린마당
동국의 총체적 위기, 이제 우리 힘으로 극복해내자 / 이석종 ( 동대신문사 편집장, 3학년)

심각한 위기의식이 우리 곁으로 엄습해 온다. 88년의 자랑스런 동국의 역사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대학종합평가, 교육시장개발, 흔들리는 건학이념, 실종된 학풍 등 우리 앞에 놓여있는 위기의 잔상들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만은 없도록 만들고 있다

 

 위기의 시대

 

 흔히들 사람들은'지금시기를 혼돈의 시대니, 세기말적 혼란기니 라는 말로 표현한다.

사회전반에 만연한 가치혼돈과 적자생존의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 등으로 나타난 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단순한 사회모순이 아닌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위기이며 우리 삶의 터전인 대학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위기의 시대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하는 사건들이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얼마전 두 동강 나버린 성수대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전형적인 전근대적 사고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를 자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사상누각처럼 위태롭게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40여 년 동안의 근대화의 성과가 너무나도 부실한 토대 위에 서있다는 우리의 목소리였을 것이며 총체적 위기를 느낀다는 불안의 발로였을 것이다.

어디 이런 위기의식이 다리가 무너지고, 배가 침몰하고,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사건들에서 기인한 것일까 분명코 단언하건대 이는 분명 아닐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잊혀져가는 우리의 정체성과 도덕성의 실추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종합평가 인정제

 

이렇듯 사회 전반의 위기의식 속에 대학 역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중 교육시장개방과 맞물리면서 대학자체의 존폐를 위협하는 대학종합평가 인정제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의 꺼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평가를 앞두고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이 벌이고 있는 경쟁들은 일찍이 한국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중앙일보의 대학순위보도는 우리에게 더 큰 고민을 던져주었다. 이 보도에서 우리학교는 졸업생 사회진출 부분을 제외한 전분야에 걸쳐 상위권에서 찾아볼수 없었다.

이는 선배들이 쌓아온 동국의 명성을 올바로 이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 될 수 있을것이다.

 

국문과 사태와 대응

 

동국을 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이 뿐아니다. 건강성과 순수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우리 사회 최고의 교육기관인 대학이 그 건강성과 순수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발생한 국문과 7명의 학생들이 저지른 교수폭행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가고 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바로 본국에 대한 자긍심의 부재현상일 것이다 바로 이런 자긍심의 부재로 부티 건학이념의 실추나 학풍의 실종현상이 발생했다고 봐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사건의 올바른 해결은 잃어버린 동국의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학생들의 실종되어가는 애교심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들을 내봐야 할 것이며 불교존립학교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둘씩 쌓여갈 때 동국의 학풍은올바로설 수 있을 것이다.

 

위기극복과 총장선출

 

이와같은 동국의 위기는 극복되어야 한다. 국문과 사태가 우리의 위기를 보여주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단 초를 만들어 주었다면 이제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모아져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위기의 동국을 구출할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바로 동국의 향후4년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제13대 총장선출일이 1월15일로 다가왔다 이번 총장선출과정은 위기의 동국을 구해내고 밝은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선거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교발전의 내용들을 증폭시켜 동국인위 위기의식을 해소해주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

이를 위해 학내 전구성원의 힘을 모아 제13대 총장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위기의식을 발전의 계기로

 

지금의 시기를 우리는 위기의 시기라고 한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위기로만 바라보지 말고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기를 알고 남을 알면 백번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는 옛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위기의 인식을 나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적을 알아가는 것으로 승화시켜 위기의 동국을 구출하고 발전의 전환기로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신행단체
정심법우회(正心法友會)

 

항상 들어도 마음이 경건해지는 명칭이다. 1989년 4월 15명의 회원으로 시작된 인원이 지금은 50여명으로 늘었다. 정심 회의 목표는 전 동국인위 불자회에 앞장서는 데 있다. 매년 2회에 걸쳐 명산 대찰을 찾아 참배도리고 부처님의 말씀과 진리를 체험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정심법우회 회원들은 기능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려운 여건에 있으면서도 묵묵히 맡은 비책임에 최선을 다하며 작은 선행이라도 열심히 실천하려는 신행단체이다. 매 달 2회에 걸친 정기 법회를 통하여 부처님의 진리를 배우고 실천에 힘쓰고 있다 항상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가르침에 바탕하여 마음의 문을 활 싹 열끄i 모든 이의 모자라는 부분을 감싸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금년 4월 초8일 부처님 오신 날의 봉축행사 때는 서울 운동장에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도 그 비를 다 맞으며 미동도 하지않고 식전행사를 마쳤으며 나아가 긴 시간에 걸친 빗속의 시가행진에서 I명의 탈락자도 없었다, 정심 회원들은 모든 불교행사에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원력이 강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고 항상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불교행사에 열심히 참여하여 그 행사가 원만히 회향 될 때마다 가슴 벅찬 환희를 느끼곤 한다. 또 회원 모두가 자신의 일보다는 남의 일을 먼저 배려한다는 자세로 생활하고 있다. 이것이 정심 회의 중심축이 되는 정신이다.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하려는 자세, 작은 실천부터 철저히 실행하려는 정심 회원들의 굳은 결심이 한데모아지어 모든 불자들의 귀감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반드시 부처님의 가호가 있으리라 확신 한다. 항상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우는 정심 회가 돼보려고 다짐해 본다

 

1. 초대임원 1990년 4월一19안년 5월회장 손봉오 총무 정인만

2. 2 대 임원 19안년 5월一1993년 10월회장 추연학 총무 임헌장

3. 3 대 임원 1993년 10월一현재 회장 주철식 총무 김홍종

 

 

 

불심의 창
어머니와 비둘기 /  이창윤(경주캠퍼스 불교학과 졸업)

눈발을 날리던 하늘은 어느새 ㅈ내를 감추고 아침 햇살이 조용히 하얀 눈 위로 내리고 있었다

 세상 어느 곳에 이런 아침이 있을까? 온통 하얀 빛으로 물든 이 세상이 온갖 고통과 무명과 번뇌 망상이 가득한 세상이라니 거짓말인 듯싶다 그저 더 할 수 없이 깨끗하고 평화롭고 자비로운 세상인 것 같다 눈이 온 뒤의 세상, 정토가 바로 이런 곳일까?어디서 고요한 정막을깨고 한 무리의 비둘기가 마당에 내려앉았다 비둘기가 먹이를 찾아 처음 우리 집에 贊아들었을 때는 겨우 서너 마리 뿐이었는데 이젠 마당이 꽉 차는 느낌이다.

''구륵 구륵 구르르륵....."

어서 모이를 달라는 듯 마당과 지붕 위를 번갈아 가며 울어낸다 눈이 내린 후라 포근한 날씨라지만 그래도 저렇게 맨발로 서있으면 발이 시려 울 텐데 먹이를 찾아 이 추운 겨울에도 날아드는 것을 보니 전성에 무슨 업보를 지었는지 불쌍하기만 하다.

어머니께서 모이를 들고 뜰로 나서 섰다 모이를 찾아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서로 다정스레 먹는 모습 속에서 유난히 잘록거리는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지난 여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비둘기는 날아들었고 어머니께서는 오늘처럼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의 눈에 절룩거리며 모이를 찾는 비둘기 한 마리가눈에 띄었다 그 비둘기는 어디선가 발을 다쳤던 듯 발가락을 펴지도 못하고 잔뜩 웅크린 채 땅을 디디며 먹이를 화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그 비둘기가 불쌍한지 치료를 해주려고 잡으셨다. 그리고 비둘기의 다리를 살피시던 어머니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발가락이 누군가에 의해 온통 실로 묶여 있었고. 묶인 실이 살을 파고들어 파고든 자리 곳곳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기 배문이다 나 자신도 인간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으니 어머니께서 놀라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실을 풀고 정성스럽게 약을 바르길 며칠, 비둘기는 다시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마도 저 비둘기가 그때 그 비둘기였으리라 온통 눈에 덮여 청정해 보이는 이 세상에 아직도 저렇게 짐승을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나 나는 그런 일을 하지나 않았을까?

불현듯 수년 전 어느 겨울날이 생각났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추운 날이었다 이모님 댁에 다녀오던 나는 낑낑거리는 강아지의 울음을 듣고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소리나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길이 멈춘 곳은 어느 쓰레기통 앞이었다 그리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다 죽어가고 있지 않겠는가!

다리는 몹시 다쳐 살이 다 터지고 몸은 꽁꽁 얼어 거의 움직이지도 못한 채 다만 희미한 눈빛만이 애처로이 살려달라는 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강아지를 버린 사람을 원망했었다 왜 이런 불쌍한 짐승을 버렸느냐고, 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에 가야한다고 그러면서도 나는 더럽기도 하고 집에 가져가면 혼날 것 같기도 해서 불쌍하다고 여기면서도 나 또한 살려달라는 애처로운 눈길을 피하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비둘기를 정성스럽게 보살피시던 자비로운 모습과 내가 얼어 죽어가는 한 성명을 모질게 뿌리친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나란 인간이 그렇게 악하였던가?

어머니의 동물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나에게 조금만이라도 있었더라면 그 강아지가 그렇게 쓰레기통에서 얼어 죽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

아직도 그 강아지의 눈길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어머니의 자비로움을 배워야겠다. 그 자비로움은 이 세상을 구하는 큰 길이 될 수도 있고, 이 세상을 밝게 빛내는 빛이 될 수도 있고, 이 세상을 즐겁게 만드는 명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범천왕의 간곡한 청을 듣고 이 세상 모든 중생에게 자신이 깨친 법을 설하시려고 결심하신 것도 부처님의 뭇 중생에 대한 지극한 자비였고, 그로부터 45년간 무명에 가득한 중생들에게 구하시려고 정처없이 다니시다 쿠시나가라의 사라 쌍수 아래에서 위대한 열반에 드신 것도 크나큰 자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부처님의 대자대비가 없었던들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어머님의 모습이 떠 오른다. 자비가 가득한 얼굴로 한 마리의 비둘기를 위해 정성을 다하시던 그 모습이, 그것이 보살 심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대의 고뇌는 나의 고뇌, 그대의 안락은 나의 안락''이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 말씀을 사랑에 주린 사람들에게 심어주자 그리고 이 벌씀이 싹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노력하자. 그러면 이 말씀이 탐스런 열매를 맺을 배 이 세상을 흰 눈이 내린 뒤 청정해진 정경처럼 한껏 아름다우리라

''푸드득

비둘기가 날아을랐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강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강아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때 지난 날과 같은 아픈추억은 생기지 않겠지. 비둘기가 눈 덮인 산 위로 날아올라 밝게 비치는 햇살 사이로 유유히 날고 있었다.

 

 

 

불교건강법
심해 상어의 간유(肝油), 스쿠알렌 /  김갑성(한의과대학 부교수)

옛날부터 인간은 자신의 허약한 장기를 보강하기 위해서 타동물의 유사한 장기를 섭치하는 지혜를 터득 우리 한의학에서는 이를 지칭하여 ''以其相從說' 이라고 한다.

눈이 안 좋은 사람이 소나 돼지의 간("T)을 섭취하거나 콩팥의 기능이 약한 사람이 역시 동물의 콩팥을 섭취하는 것은 가장 본능적이고도 기초적인 식이요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한동안 스쿠알렌이 건강동호인들의 입에 회자하면서 건강식품의 상징으로 대두한 적이 있다. 스쿠알렌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심해상어의 간유에 포함되어 있는 유효성분을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유독 상어의 간, 그 중에서도 심해상어의 간에 포함되어 있는 간유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어는 한의학에서 교어(癬交魚)라고 하며,혹은 껍질에 모래알 같은 돌기가 있어 사포(퓨喙芦包)를 이루고 있으므로 사어(砂角,)라고도 한다. 본초도경에 나오는 상어에 대한 설명은 주로 살이나 껍질 또는 담즙을 이용한 기록이 보이는데, 살은 약간 달고 짜며 내장기능을 보위하고, 몸의 부종을 내리고, 어혈을 푸는 작용이 있으며, 껍질은 어류에 의한 중독, 특히 복어의 독을 해독한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요리의 고급메뉴 중 하나인 상어의 지느러미는 달고 짠맛이다는데 허한 것을 보하고 기를 돋구어 주는 작용이 있고, 소화기능을 촉진시키고, 생선을 먹고 체한 데 사용한다고 하였다. 담즙은 목구멍이 갑자기 붓고 막히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상어에 대한 연구서들을 살펴보면 상어의 특징으로 일반 어류와는 다른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물 속에서 필요한 산소를 담아두는 부레가 없다는 점이 가장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어는 심해의 산소도 적고 수압도 엄청나게 높은 곳에서 평형을 유지하면서, 더더욱 부레가 없으니 가라앉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쉬지않고 운동을 해야만 하는데,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물보다도 가벼운 간장유(肝臟油)가 많은 산소를 저장하여 부레의 역할을 해 줌으로써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상어의 간은 커야 하며, 보통 심해상어는 체중의 25% 정도가 내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내장의 90%가 간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상어의 간 중에서 75% 정도가 물보다 가벼운 간유(肝油)로 구성되어있으며, 간유의 8(卜90% 정도가 스쿠알렌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지면서 흥미를 끌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스쿠알렌의 화학구조는 이론적으로는 복잡하나 결론은 스쿠알렌 1g당 1077.3칼로리를 발산한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스쿠알렌의 효능은 무엇인가? 스쿠알렌은 무색, 무취로서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저 휘발성으로 응고점도 -40  -50 로 낮으며, 발생기 산소를 공급ㅎ배 인체의 기능회복이 빠르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작용은 폐질환은 물론이고 심장근육에 산소를 공급하여 심근무력에 의한 부종현상이나. 혈압이상 및 천식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세포와 피부의 발육을 촉진하여 피부미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살균작용과 정화작용도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각종 염증성 질환에 내복이나 외용함으로써 살균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정화작용이란 신진대사의 촉진을 말하는 것으로 체액의 산성화를 방지하여 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한의학에서 부항요법을 통해 인체의 어혈(瘀血)현상을 제거하는 방법과도 유사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스쿠알렌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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