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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10월호 / 통권 10호 / 불기
2538(1994)년 10월 1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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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법어 "선이란
무엇인가" / 정일 큰스님
주장자를
세 번 법상에 내리친 후, 활구법문을 다해
마쳤습니다. 화구는 바로 선입니다. 선이란
근본 진리를 당 체가 되게 바로 나타낸
것으로 그것을 또한 일구라고 합니다.
일고 소식이 바로 선입니다, 이것이 교리적으로는
3법인인 제행무상(言替孑予無常), 제법무아(諸法撫我),
열반 적정 (埋槃寂靜)의 최고봉을 당처로
나타낸 것을 일구라고합니다. 따라서 알고는
바로 활구(活句)이며 선이며 , 상법문(最上乘法問)이
됩니다
사구(死句)는
이 구부터인데 중생들의 근기를 쫓아 알아듣도록
안내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구라고
해서 일고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즉 방편의
소식을 바로 보면 일고에 계합되는 것입니다.3법인(法印)이
방편의 말씀으로써 아구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중생은 번뇌망상으로, 관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고귀한 법문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허물이 중생에게 있을 뿐 이 구라 해도
일고와 다르지 않습니 학자를 다루기 위해서
여태선 가운데서 조사선을 씁니다. 학자들이
여래선(如來禪)을 보았을지 몰라도 조사선(祖參而禪)은
꿈에도 보지 못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옛날 위산(爲山)스님과 앙산(仰山)스님
간에 법담 한 것이 '이렇지 않느냐?'하여
증거를 달리 대고 있는데 선문(禪門)은
말에 떨어져서는 전혀 불조(佛祖)의 뜻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선이란
그 당처(當處)를 바로 나타낸 것입니다,선구(禪句)에는
최초구(最初句)가 있고, 말구(末句)가
있습니다. 최초구는 최상승을 나타낸 것이고
말고는 임의자재로 용(用)을 나타낸 것입니다.최초구는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는 평등지(體
소식입니다 말고는 바로 차별지(用)의
소식으로 주장자를 세번치는 것이 바로
체를 나타낸 것입니다 임세 가풍에서는
체, 용, 제시로 나타내고 5종 가풍에서는
체, 상, 용으로 나타냉니다.중생들은 번뇌망상,
관념, 망식 속에서 가죽주머니 (身)에
집착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뜻인 일고 소식을 바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번뇌에는 추번뇌와 세 번뇌가 있는데 추번뇌를
항복 받기 위해서 소승관법 가운데 순관(順蘿屋)을
하고, 세(細)번뇌를 항복 받기 위해서는
다시 역관(迦觀)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대승관입니다.한편 최상승관, 절대상관이
있는데 이것은 순.역관을 초월한 것으로
일체 관념이 붙지 못하는수행법입니다.
소승관인
비파사나는 항상 그 입장만 관찰하는 것으로
몸을 관찰해 나가면 자기가 죽는 것까지
아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최고의 경지가
소승 아라한입니다. 그러나 비록 몸에
'대한 집착을 떠나 해탈을 성취했을지
모르지만 마음에 대해서 꿈에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몸에 대해 집착할 것이 없으며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러한 가운데 고(苦), 집(集), 멸(滅),
도(道) 4제(諦)의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다시
역관인 가관(假蘿駐), 공관(空觀), 중도관(中道蘿覽)을
해야 본래 마음을 찾아 들어가는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대승경전을 공부해 들어가는
것이 바로 역관입니다.
화두관(話頭簾屋)은
직지인심 (直指人毛,), 견성성불(見'性成佛)
, 불입 문자(不入文字)의 소식으로 아는
자 만이 이심전심으로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상승 화두관은 처음부터 일체의 관념이
붙지 못하는 수행법이며,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已냐꿍處滅)의 소식이기 때문에
일체의 집착이 끊어진 경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자리인것입니다.
화두는
참으로 무아(無我)가 되는 경지를 일고로써
중생에게 그 당처가 되게 나타내 보인
법문입니다. 그 마음이 순수하면 그 뜻을
바로 알게되고, 번뇌 망상에 팔리지 않는
힘을 얻어야 합니 그러면 어떤 관을 의지해야
번뇌 망상에 정신이 팔리지 않는가? 생각이
일어나면 찰나에 63,000번 번뇌가 요동치며
아집(我執), 법집(法執), 아공(我空),
법공(法空)했다는 집착에 빠지는데 그것을
다 초탈한 경지에 다다라야 번뇌 망상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선시불심 (禪是佛,已.)이요,
교시불어 (歎是佛語)라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면 일고에 계합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온 우주에서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들어내 일러주시는 분입니다. 부처님의
49년 설법은 '이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참으로 영원하며, 구김살이 없고,생사가
없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소승
아라한은 본래 생사가 없는 것을 알아야하는데
몸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3계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한 것을 궁극의 경지라고 여깁니다
이것을 선가에서는 반미치광이 짓으로
취급합니소승. 대승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입멸 후에 부처님의 말에
떨어져 조그만 수행에 만족한 무리들을
소승이라 한 것이고 부처님의 참뜻대로
해석한 것이 대승입니다. 부처님 당시는
부처님께서 직접 판단해 주시므로 아무런
문제가없었습니다,
요즈음
구두선(口頭禪)을 하는 자는 많고 실천하는
사람은 적어서 제대로 화두 드는 법을
모르므로 화두 드는 법을 일러주어도 못
알아 듣는 것은 이리저리 헤아리기만 하고
실천이 뒤따르지못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화두일념(話頭一念)을 하라고 하면 척
알아들었습니다 화두 일념이란 생각을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생각이 붙지
않게 통일하는 것입니다.
제법무아의
소식은 온 우주가 나이므로 따로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경지입니다. 업이 두터운
사람일수록 나에 집착하여 싸움이 많이
벌어집니다. 6바라밀을 자꾸 실천하려는
생각이 늘 있으면 집안은 화목하고 살림살이는
풍성해질 것입니다.살림살이란 산림(山林)이
모든 존재에게 영원한 안식처로 안내하는
것처럼 중생을 악지악견, 마구니에서 벗어나
어리석음을 여의도록 빈부귀천을 초월하여
모든 중생을 본성을 깨우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제행무상이란
'이것은 허망한 것이다' 물거품,이슬,
번갯불 같이 허망한 것이므로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소식입니다.
무여열반의
소식을 일고로 나타낸 것이 선입니다,
<금강경 (金剛經)>의 법회인유분(놋會因由分)제일
如是我聞에서 馭座而坐까지가 일구소식이며
선입니다
부처님법은
일체중생에게 골고루 이익을 주는법입니다.
이 법은 직접 수행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므로
정각원에 자주 나와 법문을 듣고 직접
실천수행해야 합니다.
선문에서는
살불살조(系梵佛殺祖)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중생이 관념적으로 만들어낸 부처와 조사를
쳐부수어 진불(眞佛)을 가려내는 소식입니다.아뭏든
이승에 좋은 법 만났으니 올바로 선법을실천하여
스스로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참된
불법의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정각도량 제
머리를 깍습니다./ 한보광 (서울캠퍼스
정각원장)
어떤
모임에서 이야기 도중에 누군가가 「스님이
제 머리 깎는 것 보았느냐」라고 하면서
나를 쳐다 보았다 마침 아침에 나는 혼자서
삭발을 하였던 터라 「요즈음 스님들은
모두 제 머리를 깍습니다」라고 하면서
한 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
우리
속담에 「스님이 제 머리 못깍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옛날에는 스님들이
삭발임을 정해두고 서로 깎아주곤 하였다
그 시절에는 삭도(削刀)라는 칼이 있었는데
이것은 작두의 날로 하기 때문에 대단히
예리하고 위험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깎아도 상처를 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사정이 달라졌다 안전면도기
라는 것이 있어서 혼자서 깎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앞쪽은 거울을 보고 깎고
뒤쪽은 손으로 만져서 깎는다 오히려 남이
깎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다 그러므로
요즈음 스님들 중에는 제 머리 못 깎는
사람은 갓 출가한 초심자나 아니면 시원찮은
사람이다. 따라서 스님들 사이에는 「제
머리 못 깎는 스님도 있느냐」라고 하는
시대 이 다
지
머리 못 깎기로 말하자면 오히려 세속인들이다.
세속인들 이야 말로 이발소나 미장원에
가지 않고는 안된다.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아직도 「스님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타령만 하고 있으니 시대에 뒤져도 한참이다.
이제는
자신의 일은 자신들이 해야지 누가 해
주길 바라고 있거나 남이 나를 알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두고
흔히들 자기 PR시대라고 한다.
교정의
구석 구석 뿐만 아니라 온 불교계에서는
앞으로 있을 본교의 차기 총장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 밥이나 사주고 술이나 먹이는
선거 풍토가 만연되고 있다고 하니 세속의
정치인들보다도 못하다. 그렇지만 필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어느 누구도 이러한 제의가
없었으니 허 소문으로 믿고 싶다.
뒤로는
밥이나 술을 사는 운동이나 하면서 겉으로는
남이 머리를 깎아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참으로 소신이 있다고 한다면 제 머리를
깎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정당당하게
東國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위ㅎ배 자신있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남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말로만 한
것은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空約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4년동안 반드시 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여
모든 동국인과 불교계에 公譯正을 하여야
할 것 그리고 재단과 동국 인들에 2년
뒤에는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는 제 머리도 못 깎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제머리를 깎을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정각논단 佛子를
위한 건강 十訓 / 노완섭 (공과대학
식품공학과 교수)
평범한
俗入들에게는 財慾,色慾, 食慾, 名慾J季欲
등 5가지 기본적인 慾望 즉, 五慾을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돈이 많고,나는 새도 떨어뜨탈
만한 권력을 잡고, 온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꽃 같은 여자를 구름처럼
거느리고 있을 지라도 건강이 시원찮아
늘 골골한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無罐芮長鴦하기 위한 여러 가지
지혜가 있어 왔지만 그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있고,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10가지
건강수칙''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볼수록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에
비추어 보더라도 하나도 나무랄 것이 없는
훌륭한 내용으로서 특히 그 내용들이 우리
f羚敎敎理와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10가지 건강수칙''을 실천한다는
것 그것도 죽는 날까지 꾸준하게 실천한다는
것은 대단한 持久力과 參禪이 없이는 결코
쉬운일 이 아니어서 마치 佛家에서의 求道者와
같은 각오가 있어야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대로 실천만 한라면 누구든지 건강하게100세
이상의 장수를 누릴 수 있음을 확신하며,
여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1.
小物多菜하라.
고기를
적게 먹고, 야채를 많이 먹으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음식물에는 동물성인
것과 식물성인 것이 있는데, 이 두 가지를
어떤 비율로 섭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肉類가
빠진 菜食도 毒이지만, 野菜가 빠진 肉食도
卉이다''라고 까지 주장하는 영향학자도
있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답습해 왔으며, 특히 了串家에서는 敎瑥上
육식은 금하고 채식만을 고집하고 있으나
영양학적으로 따진다면 건강을 위해서는
육식과 채식 즉,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의 섭취 비율을 약 3:7로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2.
小褥郵라.
설탕을
줄이고, 대신 과일을 많이 먹도록 하라,
三白
즉, 설탕, 소금, 화학조미료 등은 많이
먹을수록 좋을 것이 없다는 정도의 상식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음식물을 섭취할 때 되도록 설탕을
피하고 그 대신 계절마다 쏟아져 나오는
각종신선한 과일을 많이 먹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피부미용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다만,
아침에 먹는 과일은 金이요, 점심에 먹는
과일은 銀이요, 저녁에 먹는 과일은 暴敭걔요,
잠자리에 박는 과일은 毒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습관상 아침이나 점심에
과일을 먹기란 쉽지가 않다. 저녁식사후온가족이
둘러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과일을
먹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따라서 가장
효과가 적은 과일을 먹게 된다. 그러나金이
됐건 狙이 됐건 과일은 안 먹는 것 보다는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많이 먹도록 하되
잠자리만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잠자리에
먹는 과일은 肥滿과蟲齒를 촉진하고 熟"良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3.
小彎齡♣라.
소금을
적게 먹고, 식초를 많이 먹으라.
일반적으로
짜게 먹으면 고혈압이 되기 쉽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짜게 먹는 것은 문제되지않으나
습관적으로 짜게 먹는 것은 확실히 위험하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필요량이상의 鹽分은 生理代謝
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體y늙로배설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
즉,
건강상태가 나쁘다거나 고혈압의 소질이
있는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 있는 사람은
대사활동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짜게 먹으면 여러 가지 健康障蔘돝가 생기게
된다.
지나치게
짜게 먹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소금 대신
식초로 간을 하여 먹는 것이 좋다 식초는
신맛이 나지만 실은 우수한 알칼리성 식품이며
또한 생리대사에 필수적인 식품인 동시에
미용식품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식초는
노폐물을 제거하고 생리대사를 원활하게하며,
腸內 異常醱酵를 억제하는 整腸作用도
있다.
4.
小錚鸚.라.
음식은
알맞게 먹되 오래 셉도록 하라.
男女老少,
貧富食賤, 有無濊을 막론하고 먹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기란 술이나 담배를 끊기만
큼이나 어려운 일이다.음식이란 먹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만 생리적으로賣包備感을
느끼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앉은 자리에서
배가 부를 때 까지 먹는다면 그것이 바로過食이다
한숟갈더 먹고 싶을
때
참고 숟가락을 놓아야 하는데 이것이 또한
어려운 일이다.뿐만 아니라 음식은 잘
씹어 먹어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이 생각보다
어렵다. 전문가들은 30번 이상 씹어야
한다고 권하지만 실제로 20번도 채 씹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목구멍을 넘어가 버리고
만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오래 씹도록
하라는 뜻으로 해석함이 옳을 것이다.음식이란
잘 씹어 먹어야 소화, 분해, 흡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5.小黴奏聯}라.
될
수 있는 대로 옷은 가볍게입고, 목욕을
자주상卜라.
추위나
더위를 옷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편할지 모르나 건강을 위해서는 옷 입는
가지 수나 입는 방법도중요하다. 일상적으로
입는 옷은 가볍고 얇은 것을 적당하게
입어서 肴曇溫을 유지하도록 하고, 너무
무겁거나 두터운 옷은 피하는 것이 좋다.
몹시 추울 때도 가볍고 얇은 옷을 여러
벌 입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또한
목욕을 자주 하여 건강유지에 가장 중요한
혈액순환원활하게 해줌으로써 體內쌓여
있는 여러 가지 老廢物과 毒素를 發外로
신속하게 배설시켜 주어야 하며 항상 피부를
깨끗하게 유지함으로써 皮虜"乎吸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탄력 있고 건강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
6.
小礪多"驪하라.
걱정과
근심을다버리고, 잠을 충분히 자도록 하라.
우리
f夢者들이 飡한羚때 마다드리는 四弘誓願
두 번째 구절이 煩惱無盡誓願斷(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이라고 서원하는
것처럼 모든 걱정, 근심, 번뇌를 의식적으로
모두 끊어버려야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 얼마나 佛敎的인 건강법인가. 근심,
걱정, 번민, 고통 등 모든 괴로움을 가슴
속에 쌓아두면 결국 이런 것들이 마음에
병이 되어 건강올해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번뇌들이 불면증의 가장 큰 원인이다.
불면증에 걸리면 熟眠을 취할 수 없게
된다괘率眠은 수면을 취하는 시간의 長短보다도
수면의 깊이가 더 중요하다. 비록 수면시간이
짧더라도 깊이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수면이
부족하면 食慾이 떨어지고 ,좡考力이 저하되어
일마다 의욕을 잃게 되며, 피부도 거칠어져서
여자의 경우 화장도 잘 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수면부족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여러 가지 질병을 야기하여 결국 건강을
심각할 정도로 까지 해치게 된다
7.
小言多行하라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많이하라.
다분히
불교적이며 철학적인 내용으로서 말보다는
실천으로 옮기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일마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輕擧妄動해서는 안될 것이다.
필요없는
말은 되도록 節制함으로서 말 수를 줄이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며, 不斷히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하여 몸놀림을
柔軟하게 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우리
佛家에서도 面壁하며 默昔精進하여 得道에
이를 때까지 苦行뷩i釜轢을 하여도 결코
목숨을 해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지는
않는 것을 보면 참으로佛敎的인 건강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沈默은 金이요,
雄辯은 銀이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말이란
절제할 수록 좋다. 원래 빈 수레가 소리만
요란하다는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8.小儼多鮎하라
욕심을
버리고, 남을 위하여끊입없이 奉tf하는
생활을 하라.
이
또한 우리 佛敎理念의 眞髓가 아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욕심이 커지면
죄를 범하게 되고 죄가 자라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다. 고로 항상 마음을
비우고 항상''맑고 향기로운'' 생활을
하면서 남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보시의
생활을 하라는 것이"律物이든 權力이든
분수에 맞지 않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 수록 비례하여 근심과 걱정도 많아지게
마련이며, 그것이 원인이 되어 마음에
병이 들고,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
발전하게 되어 결국에는 건강을 헤쳐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필요 이상의 재물이나 권력도 무병장수와
건강을 위해서는 미련없이 버릴 수 있어야만
한다. 버리기가 아깝거든 남에게 베풀도록
하라. 이것이 부처님의 보시정신이요,
또한 건강의 비결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일생을 남을 위하여 자신을
회생하고, 봉사하며, 많은 것을 자기보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보시의
정신으로 살다 간 사람은 하나같이 모두
다無驛芮長壽 하였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9.
小,聯勘毗
성내지
말고, 항상 웃으라.''一笑一시. 一怒一老''라고
한다. 신경질을 내거나 핏대를 세울 때마다
그만큼씩 빨리 늙고,한번 웃을 때마다
그만큼씩 젊어진다. 따라서 웬만큼 핏대
가나거나 신경질이 나더라도 허허허 웃어버리라.
생리적으로도 웃을 때보다도 '噴怒할 때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뿐만 아니라
老廢物과 毒素가 體內에 쌓이게 되어 體細胞가더
빨리 老化된다는 것이다. '
부처님께서는
모든 肉身의 병은 마음으로 부티 온다고
하셨다. 건강을 위해서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오죽하면 '魯火病''이라고 했겠는가.
섈賁怒를마음 속에 담아두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울화병이 된다 鬱火가 치밀더라도
울화통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호탕하게
우하하하 크게 웃어 버린다 미친 개한테
구두 뒤꿈치를 물린 셈 치고고 구두를
벗어 던져버리는 대범한 마음을 갖도록하라.
큰 마음에는 病魔가 끼어들지 못한다.
10.
小串麥傍하라.
가까운
거리는 차를 타지 말고, 걸어서 다니라.
가까운
거리도 늘 차를 타고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면 항상 운동부족이 된다. 오늘날 발달된
現代醫學의 결론이 ''걷는것처럼 효과적인
운동은 다시없을 것이다. 시간과 동을
낭비하면서도 가장 운동 효과가 없는 것이
골프라고 한다.
특히
도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운동부족이기 십상이다. 이렇다할 별다른
운동을 따로 하지 않는 한 자칫 운동부족이
되어 여러 가지 건강장애가 나타나기 쉽다.
되도록 교통 수단을 무시하고 일부리라도
몇 정거장 또는 곧은 자세로 여유있게
걷고, 웬만한 높이는 엘리베이터를 버리고
계단으로 걸어서 오르내리도록하라. 종아리에
알이 배겨 각 선미를 해친다는 것은 지나친
杞憂일 뿐이다. 오히려 각선미를예쁘게
해 줄 것이다. 걷는 운동이야말로 ,已,肺
기능을 높여주는 가장 좋은 운동이다.無病長壽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특별한 비결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을 꾸준하게
실천하기만 한다면 人蔘 鹿茸이 필요 없으며無病長壽와
不老長生은 당신의 손안에 있을 것이다.
교리강좌 신통과
초능력 / 편집위원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은 너무 흔한 경험이다. 이럴 때마다
누구나 한번쯤 얻을 수 있길 희구했던
것은 초능력일 것이다- 그것은 현상 세계의
물리법칙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의 임의로
어떤 현상을 창출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자연의
질서 속에 있는 인간으로서는 쉽게 얻을
수없는것 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주 특별한
인간이나 신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그렇긴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왔다.자연 법칙에 의해 생존하는 한 생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인간이 고안한 부질없는 우회인 듯한 운동
경기도 바로 인간 한계의 갱신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그의의를찾을수있다. 이
역시 초능력을 향한 인간의 지속적인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젊음을 모두 바쳐 노력해도 재력이나 정신력의
7샹신된 수치는 미미하듯이, 일상생활의
범주에서는 결코 초능력을 쉽게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초능력을 얻기 위해 아예 모든 것을 버리고
특별한 수행에만 전념할 수 없는 우리
범부는 어떤 초능력자에게 의지하여 그의
초능력으로 감화를 받고자 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범부의 심리는 모든 종교적 성자에게서
초능력을 기대하게 되고, 또 그런 성자나
수행의 대가는 대개 자신에게 초능력이
구비되어있음을 과시함으로써 대중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
그런데
초능력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 불교의
초능력에 대한 입장은 매우 독특하다.
초능력에 대한 일반인의 그릇된 인식을
교정하면서 진정한 초능력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초능력의
불교적 의미
불교에서는
초능력을 신통(神通)이라고 한다. 이 신통은
물론 초자 연혁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가
흔히 말하는 초능력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불교의 독특한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신통의
본래 의미는 '뛰어난 지혜'이다. 이 러한이해가
계승되어 후대의 선가(禪彖)에서는 크게
깨달은 사람이 보여 주는,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활동을 신 ,통이라고
한다 신통의 이러한 '의미는 기적과 같은
불가사의한 현상을 창출하는 능력을 진정한
초능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
초기의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에게는
많은 신통력이었었다고 간주되었지만,
그는 그런 신통력에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는 대중 앞에서
신통을 과시했던 제자를 꾸짖었고,이 사건을
계기로 제자들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신통을
과시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보다 구체적인
입장은 장아함의 견고경(堅固經)에 잘
드러나 있다.한 신도가 부처님께 찾아와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도록
신통을 보여 주길 청했다. 이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신통을 보이라고 가르친 적이
없으며, 다만 공덕이 있거든 안으로 감추어
두고 허물이 있으면 몸소 드러내 놓으라고
가르칠 뿐이라고 답한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간청을 거절하고서 부처님은 몸소 체득한세
가지 신통에 대해 언급한다. 변신술과
같은 초능력인 신족통(神足通)과 남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신통력인 타심통(他,已,通)은
사람들이 특수한 주문을 외어 얻은 것으로
오해하여 불법(佛法)을 비방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 금지했다고
설한다. 이에 대해 여태가 사람들을 바르게
이끄는 신통이 교계통(影c誡通)이라고
한다. 이 신통은 남을 가르쳐 훈계하는
것으로서 무명과 죄악을 제거하여 공덕을
성취케 하는 능력이다
이상과
같이 불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되는 초능력이란
바른 지혜와 청정한 마음을 얻게하는 능력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터득하는 바른 지혜와
이지혜를 실천하는 능력을 진정한 초능력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신통을 언급할
때는 흔히 6신통을 드는데, 바른 지혜를
성취함으로써 갖게되는 초능력이 6신통에서는
천안통(天眼通)과 숙명통(宿命通)으로
나뉜다.
진정한초능력
천안통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는 능력이고 숙명
통은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는능력이다.인도
특유의 명상, 즉 정신 집중의 논리에 의하면
수행의 깊이에 따라 이런 초능력이 가농하다는
점은 이해할 만하다. 과학자가 현상계에서
발견한 법칙들을 근거로 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든가 현명한 사람들이 자신의 여러
가지 경험을 적용하여 앞일을 예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세계의 진리를 깨달은
분이 미래의 일을 알수 있다는 점은 논리적으로도타당하다.
또 선정이나 삼매와 같은 정신 집중의
상태는 자신의 잠재 의식까지 관찰하여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경지이므로, 이
경지에서는 잠재 의식에 담겨 있는 과거의
상황을 알 수 있다는 점 역시 타당하다.
불교에서 이 러한능력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이를 통해 번뇌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6신통의 궁극은
모든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인누진통(漏盡通)이
된다. 아울러 6신통 중에서 천안통과 숙명통과
누진 통을 진정한 지혜라고 인정하여 소위
3명(三明)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나머지신통,
즉 타심 통과 천이통(天耳通)과 신족통은
'3명'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부수되는
능력일 뿐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는 천안 통이 숙명통보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초능력으로 간주된다. 이는 아마도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당연히 과거도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선업을
쌓은 사람이 사후에 하늘 나라에 태어난다는
사실을천안(天眼)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중부 경전에서''나는 청정하고
초인간적인 천안에 의해 중생들이 죽어서
변하고 태어나서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본다. 중생들은 그 행위에 따라 비천한
자, 우월한 자, 수려한 자, 추한 자, 좋은
곳으로 가는 자와 나쁜 곳으로 가는 자가
있음을 안다.''라고 설한다.
또
도리천과 같은 낙원이 없다는 등으로 말하는
것은 선천적인 장님이 색채의 차이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지상 밖의 다른 세계는 이 육안(肉眼)으로는볼
수 없고 천안(天眼)에 의해서만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이상의 예는 천안 통의
가치를 시사하는 것이지 천안 통을 사후
세계를 보는 능력으로 국한시기는 것은
아니다. 진리 또는 진실을 깨닫는 데서
천안이 열리는 것이며, 바로 이 점에서
천안 통이야말로 인간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진실한 초능력인 것이다.
『밀린다왕문경』에서는
''세상에는 진실한 것이 있다. 진실을
알고 진 실어를 말해서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고, 불을 꾸게할 수도 있고, 독을
없애고 그밖에 여러 가지 해야할 일을
할수 도 있다.''라는 밀린다 왕의 말을
나가세나 비고는 인정하고, 진실의 힘에
의해 天眼을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진실 그 자체가 천안을생 기게 하는 근거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와는 달리, 석가모니가
어떤 물질을 창조하는 초능력을 발휘하여
대중을 교화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간혹 기적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릇된 견해에 빠져 있는
외도(y卷두且)들을 바른 지혜인 신통으로써
제압하여 계도했음을 신화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이
경전의
세계 인왕경 / 편집위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경전의 내용이 단순히 교훈적인
것만이 아니고 때로는 철학적인 것도 있고,
또한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수승한것도
있지만,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인왕반야바라밀경
(仁土般若波羅蜜經)은 그 제목에서 보듯이,
국가의 권력자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반드시 인자함 즉 반야[지혜그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역설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효를 행할 때에도 이를무조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은혀a를 철저하게
알고난 뒤에 거기에 대해서 보답하는 이른바
지은보은(知,쿤滓臥,면,)사상이 주가 되는
것처럼, 여기에서도 통치자들이 외 난을
대처할 때나 민심을 수습할 때에는 근본적으로
지혜를 바탕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의 인왕경이 중국에 소개된 것은
일찍이 진(晉)의 축 법호가 인왕반야경을
역경 한 것을 시작(267년)으로, 그 후
구마라집이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을,
전제가 인왕반야경을, 불공이 역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을
번역하였으며, 천대 지위대사가 진(陳)이
멸망할 무렵에 당시의 궁내 대국전과 양택
사에서 이에 대해서 강설한 것이 최초로
주석서가 있게 된 연유인 것이 우리 나라의
신라에서도 일찍이 이 경전을 도입하여
국난을 극복하려고 하였으며 고려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난리를 당하여 이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백고좌법회 등이 성행했으며,
원 측 스님 등이 이에 관하여 소(疏)를
지었던 것은 이미 다아는 사실이다.
좀더
자세하게 이 경전을 설한 부처님의 근본교외를
먼저 알아 보면, 그 나라 모든 국민들의
참다운 호국방법과 정신자세 및 지도자들의
정치철학 등에 관해서 구도자적인 입장을
취할 것을 제시한 것으로서, 진정한 호국이란
외침이나 내환에 대한 방어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반야 바라밀에 근원을
둔 충실한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고 항상
분별하고 집착하여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은 곧 호국을 방해하는 것이 되며,
이로 인하여 귀신 등이 출몰하여서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국토가
어지러워질 때에는 먼저 귀신이 난을 일으키고,
이로 말미암아 백성이 난을 일으키며,
백성이 난을 일으키므로 외적이 내침하고,
적이 침입하므로 말미암아 국가와 백성이
멸망하여 상(喪) 등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은 다름 아닌 각 개인들이 마음의
번뇌와 무상의 원리를 알지 못함에서 온다는
것으로서, 이는 전체적으로 반야 바라밀을
닦지 않는데서 기인하고, 이로 인하여
시비와 갈등 등을 초래하여 잠시도 편할
날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왕들은,
''화난, 수난, 풍난 등 일체의 난을 당하면
ㅁr땅히 이 경전을 강설하라.''고 한 것인데,
이는 이 반야바라밀경이 심란을 그 뿌리째
뽑아내는 근본시인 사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반야 바라밀이야말로 삼매를
통한 대신주요, 대위 신주이므로 저와
같은 심란을 극복하고,자재하는 데는 더할
수 없는 마음의 경전임과동시에 호국 경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전은 그 구성에 있어서도 부처님의
높고 위 신력 있는 말씀을 믿고 행하면,
그것이곤 무한한 공덕을 쌓는다는 신앙심을
뒷받침하는 형식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각자의 삿된 알음알이와 나쁜 소견을 버리고서
참 지혜를 얻으려는 반야 바라밀의 활동이
바로 국가와 국민과 국왕을 성숙시켜서
스스로 자기 자리에 서게 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야경의 핵심내용인 3공관과4제설 및
12인연 등의 반야 3공사상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 여기에서의 중심사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 경전이 호국경전으로
명칭 되는 것처럼 호국신앙을 근본부터
강조한다. 그러나 그 호국이란 어떤 영토적인
차원의 방어나 보존만을 가리키는 것이아니라,
일체 개인의 유.무형의 심신을 바르게
지키는 끝없는 수행을 말한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반야 바라밀은 무엇인가
''무상이
제일의제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가
지은 것도 그렇다고 남이 지은 것도 아니다.인연
따라 스스로 있는 것이다. 一 법상까지도
본래 무상하다. 一 모든 것은 거짓 존재,
세 가지의 거짓이 모인 존재, 이를 본래의
무로 돌리고 보면 참다운 무를 알게 된다.
적열한 공, 제일의 공, 그것을 알게 된다.
一 세속의 도리는 환상 속에서 생기는
것, 마치 허공의 꽃과 같다. 一 환상이
환상을 본다. 어리석은 중생의 환상이다.
불 . 보살들은 환법을 보고서 모두가 다
무한 것임을 안다.이것을 부처님의 관
법이라고 한다. 보살의 관 법도 또한 그러하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시피,
입으로만 반야 바라밀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무미함과 무상함을 간파해서 분별심과
선입감을 털어버리고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해탈 심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수행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나 법을 준수하는
것 등도 그 나라의 지도자나국민들이 성숙ㅎ배
이러한 공관을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히
한 나라의 국왕은 마치 반야 행자의 보살과
같이 행동하여야 하는데, 그 까닭은 정치
그 자체가 보살의 중생교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라는것이다. 말하자면 국민을 떠나서는
지도자도 있을 수 없고, 국민을 위할 때만이
지도자로서 그 존재가치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정치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증일아함경에서도 나타나는데,
거기에 보면 지도자의 참다운 덕목으로서
열 가지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말하자면,
(1) 국왕은 재물에 집착하지 않으며,성을
내지도 않고, 또한 작은 일로 남을 해치지도않는다.
(2) 신하의 간언을 진심으로 받아드려
그 말에 거슬리지 않고, (3)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즐겁게 국민들과 함께 지내는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그 나라의
지도지-와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와 같은 호국경음 호 지하고 독실하게
수행하면, 각자에게 반야 바라밀이 성취되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살기 좋은 사회가 건설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이 경전을 호 지하고
백고좌법회 등을 열어 국난을 타개하는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이다.
열린마당 가능성의
매력 / 김용철 (공보부장, 보현회부회장)
우리는
젋은이를 부러워 한다 대체로 젊은이는
힘이 있고윤이 나며 예쁘기 때문일 것이다.이
세상에 힘이 있고윤이 나며 예쁜 것처럼
매력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힘이 없고
퇴색했으며 일그러진 노인의 얼굴이 별
매력이 없음은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젊은이의 매력이 그런 것에만 있는것일까.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젊은이의
진짜 매력은 무한한 가능성. 즉 저 젊은이가
앞으로 무엇이 될 지 모른다는 그 두렵고
엄청난 가능성을 지녔다는 사실 그것이다,
그런데
같은 젊은이라손 치더라도 도무지 매력이
없는 친구들도 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아무리 뜯어봐도 전형 어떤 가능성이
보이지않는 젊은이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
젊고 싱싱하며 인물도 예쁜 편인데 벌써
몇 마디 말만들어봐도, 그리고 그 젊은이가
하는 행동 몇 가지만 보아도 웬만한 노인보다도
더 한심한 젊은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싹이
노랗다」다 든가,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 다인 든지 하는 속담을 떠
올리게 하는 경우다
그런가
하면 회갑은 고사하고 고희나 팔순이 된
노인 중에도 전혀 그분의 어떤 한계를
예측할수없는, 그래서 아직도 많은 가능성이
엿보이는 노익장(老益壯)의 무서운 분들도
얼마든지 있다.예컨대 그 분의 사상, 학문,
신심, 혹은 예술에 대한 정렬, 사업에
대한 의욕 동이 너무 값지고 보람이 있어
우리에게 존경과 두려움 마저 느끼게 하는
매력 있는 분들이다.
각설하고,
초심자 중의 초심자인 나는 가끔 불교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그것은 한마디로 불교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종교라는 점이다.
그
가능성이란 한마디로 무엇인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성불이다. 물론 성불 이전에
수많은 수행 단계를 거쳐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최후의 목표는 성불이다.
성불의
경우 아마 무슨 고시공부를 하듯 몇 년
혹은 몇 십 년 죽자사자 공부를 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무슨 면허증이나 수계증을 주듯 누군가가
성불증을 척척 내줄 수 있다면 불교의
매력은 반감 정도가 아니라 전무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교는 늘 성불의 가능성을 제시한다.즉,
「너도 네 마음속 어딘가에 분명 불성이
있으니 그 불성을 잘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성불할 수있다.」
대체로
불교의 이상은 이런 요약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 수많은 불자들은 이 말 한마디를 믿고
작게는 재가불자들로부터 크게는 자신의
전 생애를 수행과 성불의 가능성에 건
스님들에 이르기까지 불교에 매달려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로 성불한 사람은 오직 한 분, 바로
석가여래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어마어마한 불교의 매력이 숨어 있다.
솔직히 석가여래 말고 석가여래처럼 제대로
깨달은 부처가 여기 저기에 몇 분만이래도
더 있다면 내내 불교의 매력은 별로일
것이다.
그러나
석가여래는 결코 우리에게 실망을 주신
존재가 아니다. 수행이나 정진 여하에
따라서는너희들도 나처럼 될 수(成佛)
있다는 가능성을 얼마든지 제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처님의 위대함과 매력이
함께 있는지도 모른다.따라서 우리 불자들은
이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된 존재들이다.
거듭
초심자인 나는 가끔 사홍서원의 허구성만
놓고도 소름이 끼친다. 자 한번 음미해
보자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솔직히
제 자신도 어려운 데 누가 무슨 재주로중생을다
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얼마나
매력이 있는 가능성인가.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산다는
자체가 번뇌의 연속이다. 사바세계에 번뇌와
갈등이 없다면 이미 그 곳은 정토다. 그런데도
다 끊겠다니 얼마나 굉장한 포부인가.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바다보다도
더 넓고 깊은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무슨 시간과 정력으로 이를 다 배우겠다는
것인가. 꿈도 야무지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내내
최후의 목표, 곧 성불이다. 생각할 수록
어마어마한 가능성이다. 하긴 이쯤 돼야
대원이니 서원이니 할 만하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사홍서원만 놓고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가 아니라 전율할 만한 허구성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믿어볼 만한 종교다.
아무튼
성불을 전제높한 이 종교는 이 지구 위에
죄 많고 번뇌 많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래서 영원히
매력있는 신앙이 아닌가 한다.
못내
아쉬운 세월의 여윔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가려 한다. 그러나 나 이외에
달리 무엇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밤을
흐르는 憂愁처럼 바람을 느끼고는 문득
사람의 한정된 생애를 흘려 보내야 하는
이 시점으로 부티 우리는 얼마만큼 나
자신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를 우선 문제 아닌 물음으로 새겨두기로
한다.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아니 사람뿐이
아니라 시간을 의식하는 뭇 생명들은 그
의식의 순간에 있어서 시간은 그 의식으로
한정되어 버리고 마는것을. 과거를 돌이켜
보는 순간의 시간과 그 과거시간과의 상관성은
이미 하나가 되어 버린 까닭에 다시는
추억도 하기 어려우리라. 마치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살아가나
벌써 젊음과 늙음은 어찌할 수 없는 별개의
것이 되고야 마는 것처럼.
상념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대자연의 물상 하나하나가 그렇다. 흉터진
나무처럼 어쩔 수없는 것을 앞에 놓구먼
곳을 응시하며 꿈을 꾸듯 그렇게 자신을
추스르고 싶어도 순간은 순간으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순간은 순간이라는
성품을 지닌 까닭에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명한 사실이다.
순간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오히려 길이
그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은 순간이라는
자신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낸 까닭이요,
영겁의 세월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부단히
자기의 자리매김을 스스로 포기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절망까지도 다시 절망함으로써
신 앞의 단독자 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했던 키에르케고르의 고뇌가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요, 철저한 회의의 깊은 심연 속에서
자신까지도 대상화함으로써 그 회의를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던 데카르트의 사유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자아를 과감히
내던짐으로써 己事究明의 기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변화속의實相을 직시해야
한다.
열린마당 변화속의
실상 / 김호귀 (선학과 박사과정)
눈동자의
자막에 영상이 흐른다.
저
하늘엔 구름이 이 가슴엔 그리움이 흐르듯
중국 唐代의 석실도오(石室瀏'吾)선사에게
앙산혜적 (仰山慧寂)선사가 보름달을 보고
물었다''저 하늘의 보름달이 초승달 일
때는 보름달의 모습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초승달일
때는 보름달이 그 속에 숨고 보름달일
때는 초승달이 그 속에 숨느니라.''
마침
곁에 있던 운암담성(雲巖曇晃)선사가 말했다.
''초승달
속에는 보름달이 있지만 보름달 속에는초증달이
없습니다.''
그러자
석실선사가 말했다.
''초승달은
초승달이 아니요 보름달도 보름달이아니니라.''
實相으로
보자면 본래 보름달이 초승달이 될 리는
만무하다, 초승달 또한 보름달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 한 달을 주기로하 여
매양 그 모습은 변화를 반복한다. 부단히
변화하는 가운데 자신의 본체는 잃지 않으면서도
항상 자신의 모습을 변화무쌍하게 연출해
낸다. 보름달은 자신 속에 초승달의 모습을
감추고 있고 초승달은 자신 속에 보름달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보름달은 초승달이
아닌 엄연한 보름달 자신의 모습이요,
主승달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보름달은
언제나 그대로 보름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초승달로 나타나기도 하면서 때로는
그믐달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자리가 한낮이 되어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해서 영영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
달의 모습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요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순간순간에
나타나는 본체와 변화 체의 상관된 인연의
성립에 따라 인식의 범주가 달라졌을 뿐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자연이 우리에게 스스로
구름처럼 그리움처럼 세월의 추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자신의 주체를 자각하라는
은근한 메시지가 아닐까.
전등이야기 禪에
대한 관심 / 편집부
이번학기
돌배 정각원에서. 새로운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 선학과에서 실시하고있는學講座와
禪實習인교양 선택 과목에 학생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禪學講座는 그나마 강의실에서
할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j攣實習은법당이나
禪院이 아니면 어렵다. 그런데 禪實習
한 강좌에 주야 간 1,000명 이상이 수강신청을
하였으므로 법당으로서는 그 한계를 벗어났다.
그러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분반을 ㅎ배
강의실과 법당을 교대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앉고싶어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
과거에 없었던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그 전에는 법당이 늘 텅텅 비어서
쓸쓸하기까지 하였으나 요즈음은 항상
법당의 한쪽 구석에는 몇 명의 학셩들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는
학생들의 관심이 외부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로 돌아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의 관심이 禪實習에 몰리고
있는 현상은 바로 우리 대학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감지해야 한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 배우는 것으로는 속이 차지 않고
늘 허전하며 무의미하므로 그 갈증을 해결하고자
屠'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禪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은 바로 ''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禪이란
三昧에 드는 것이며 , 자신을 觀照하는
것이다. ''나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진리탐구에 들어 가는 첫 관문(關門)이다.
그 길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 누구나 들어 갈 수 있고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송나라의 無門慧開(1182-1260)
스님은 無門關)에서 大道撫門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禪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것도
선택과목으로 수강신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無門의 길로 들기 위해서이다.
버릇없는 철부지로만 보이던 학생들이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의젓한 자세로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대견스럽게
보인다. 그 모습 그대로가 진리를 찾아
나선 구도자처럼 여겨진다.
이제
대학은 변해야 한다, 어떠한 잇슈를 만들어
외부로만 치닫던 80년대의 낡은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직도 이 낡은 사고로
집회를 갖고자 하거나 무엇을 해보겠다고
한다면 이는 학생들이 요구하는 십만팔천
리 떨어진 생각이다 이제는 고함지르고
꽹과리치고 현란한 동작으로 떠드는 것으로
군중집회를 가지려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또 능변으로 말 잘하고 학점에'후하다고
하여 명강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말
한 마디 없이 죽비 소리 세 번으로 시작하여
2시간 동안 침묵만 지키고 앉아 있는 과목,
그것도 찬바람이 돌 정도로 엄숙하며,
졸거나 마음으로 번뇌만 일으켜도 여지없이
방망이(죽비)가 날아가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경책) 과목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자탐방 최병구
불자 / 편집부
처음에
기자가 최병구 선생님을 <정각도량>에
소개하고자, 인터뷰에 응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선생님은 쑥스러워 하시며 거절하셨다.
기자가 선생님 같은 분이야 말로 <정각도량>에
소개하여 돈독한 불심을 여러 사람이 본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는 말씀에야 응해
주셨다. 정각원 주위가 노을로 인하여
빠알갛게 물들어졌을 때 정각원 사무실에서
최선생님은 푸근한 웃음으로 물음에 답해주셨다
경주캠퍼스가
설립되면서 부티 수위로 근무하시다가
몇 년 전부터 정각원 보호 업무를 맡고
계신 최선생님의 고향은 경주에서 조금
떨어진 화천이라는 곳이다. 가족은 부인과
1남2녀의 3남매를 두고 있다. 최선생님이
부처님 말씀을 따르게 된 것은 돌아가신
어머님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불심이
돈독하신 어머님은 좋은 말씀으로 자녀들을
가르쳤고 항상 부처님 말씀을 생각하게
하고 그에 따르게 했다고 한다.
한번은
선생님이 군복무중에 휴가를 나올 때면
어머님께서는 언제나 부처님 부티 참배한
후에 집에 오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고 한다.그의 영향을 받아서 최선생님은
더욱 불심이 깊어졌다 한다.학교에는 경주
캠퍼스가 세워질 무렵 공사현장 감독으로
계시다가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또 세워지는
학교가 중립 학교인 동국대학교이기에
본교에 적을 두게 되어 지금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점에온방골 역사의
산증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 말한마디, 행동 하나마다
그 만의 소탈하고 푸근한 심성이 듬뿍
묻어나옴을 느낄 수 있다.
최선생님은
근무 인수인계를 받으면 법당에 먼저 참배하고
근무시간 나는 대로 기도를 드린다. 108배를
하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는 신심으로
정신을 맑고 바르게 하여 일마다 임한다고
한다, 기도 드릴 때는 자신과 온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항상 지속되도록
아울러 정각원 식구들과 주위의 모든 이들이
부처님의 자비 아래 평온한 나날이 되도록
조그마한 소원도 함께 염원한다,
최선생님이
부처님의 말씀 중에서 늘 마음에 새기는
말씀은 천수경과 반야심경이라 한다.법당에
들어가서 천수경을 독송하고 반야심경을
읽고 나면 마음이 무한히 깨끗하고 밝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을 읽도록 권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어머니에
의해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최선생님은
경주박물관 뒤에 있는 대인 사라고 하는절에
다니고 있다 대인 사는 생전의 어머님이
가시던 곳으로 그 곳의 도주스님을 존경하여
그것이 인연이 되어 대인사의 불자단 체인
대도거사림모임에 참여하여 신행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수계는
전 정각원'원장님이셨던 법혜스님께 수계를
받고, 불국사 월산 스님에게서 두번째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받은 법명이 무여(無如)이다.
불교에서의 무여(無餘)는 완전히 궁극에
이르러 남겨둔 잔여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바 그의 법명을 직역하면 같은 의미이다
삶을 살아가매 生, 死, 苦, 樂에서 벗어나
無의 존재가 되라는 의미에서 월산 스님이
내려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법명에
어울리도록 항상 부처님의 기피력 속에서
수행정전하는 최선생님의 몸가짐을 우리
불자들은 본받아야 될 것이라 본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선생님은 정각원에서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 한토막을들려주신다.
경주
캠퍼스 정각원은 그동안 참 많은 수난을
당하였는데, 서너 차례 있었던 방화사건이
그것이다. 몇 차례 방화사건이 있은 후
정각원에서는 경보기를 설치하고 수위
아저씨들이 24시간 교대 근무하게 되고
얼마 있지 않아서의 일이라 한다.어느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정각원 밖에서 서성거리며 배회하기에
선생님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다.
수상쓰럽고전의 방화사건이 생각이 나서는
여겨 보다가 학생을 불러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그 학생은 느닷없이
화장실에 가면 안 되느냐고 했고, 그러라고
하자 화장실에 갔다 와서는 법당을 가르치면서
저 위에 가면 안되느냐고-물어서 의심스런
마음이 더욱 가중되었지만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도록 허락했다고
하였다. 학생이 금방 갔다 오기에 선생님이
무슨 학과 학생이며절에 처음이냐고 물으니
누구인지 신분을 말하면서 기독교인이라
절에서 참배는 안 해보았다고 답하였다.
타종교인이고 부처님께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말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풀어나가자
종교에 관해 특히 종교관에 관하여 여러
가지를 서로 주고 받고 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조심스럽게 동국대학이종립학교인
점을 부각시키면 서학 교내에서 전도활동하는
것에대ㅎ때 물었는데 그 학생은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면서 웃었다.
그
후부터는 가끔씩 만나면 이야기도 하면서
친해져서 법당에 와서 참선도 하고 멀리서
보면 뛰어와서 인사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일화를 말씀해주셨다. 정각원에서 근무하신지는
이제 두 학기 정도 되지만 그동안 정각원에
참배하러 오는 학생들을 보면 적어도 사찰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다행스런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최선생님은 드러나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임에 최선을
다하며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 참된 불자의 자세라고 보고 계시는
분이었다. 선생님을 만나는 학생들에게
진실하게 정직하게 살며 부처님 말씀에
따라 행하라고 말한다고 한다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취재를 마치면서 나 자신을 돌아봄은 최병구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까...
가람의
향기 석남사 / 편집부
아직은
늦더위의 기승으로 가을의 느낌을 밭지
못하고 있을 때 하늘은 이미 높고 푸르른
쪽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누군가 가을
하늘은 깨끗함의 상징이라 말했던 것 같다.
예로 부티 가을은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했다. 하늘이 더욱 높아지고
가을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어 들판의
곡식을 더욱 여물게 하고 자연의 모든
것을 거두어 들이는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인가.
석남사에 가던 날은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한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석남사를 향하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들판은 마렵게 황금빛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어떤 곳은 추수를 시작하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보여 지기도 하였다.석남사는
경남 밀양군, 울주군, 양산시 일부지역에
걸쳐 있는 가지산 도립 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운문사 다음 가는 비구니
전 강원으로서 순수학과 엄격함으로 고결한
승풍을지켜 오고 있는 곳이다.
창건
경북
청도군과 경남 울주군 및 밀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준봉인 가지산에 자리잡고 있는
석남사는 지금으로 부티 약 1200여 년
전 신라41대 헌덕왕(憲t念王)16년 서기
8M년에 도의(道義)국사가 창건하여 내려오다가
조선 현종 15년(I674년) 탁령(卓靈) 선철
선사 등이 중수하였으며 1안2년 우운(友雲)
심인 스님이 중수하였으나 그 이후 6 25동란으로
파괴된 것을 1957년 당시 주지인 이인홍
스님이 재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의국사와
가지산파
석남자를
창건한 도의국사는 신라인으로 호는명적(明寂)이고
속성은 왕씨이다. 784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대산(臺山)으로 갔다가 광부(廣府)의 보단사(寶壇寺)에서
비구계를 받고 다시 주계로 가 육조의
양당에 참배한뒤, 강서의 홍주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西堂) 지장선사(智藏禪師)로 부티
의심을 결단하여 법을 이어 받고 이름을
도의 (道義)라 고쳤다. 백 장산 회해(쿨裏侮)에게법요(去要)를
받고 헌덕왕(憲德王) 13년(821년)귀국함으로서
통일 신라 때의 선종구산문(禪宗九山門)의
한 파인 가지 산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다,
가지 산파는 840년 신라 문성왕 2년 보조선사(普只琵禪師)
체징(體澄)이 당에서 귀국하여 전남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寶林寺)를 세워 도의국사를
종조로 삼고 개산(開山) 도의의 남종선(南宗禪)을
크게 떨쳐 이루었다. 이보다 앞서 도의는821년(헌덕왔
13년) 당에서 돌아와 남종선을 처음으로
신라에 전하였으나 그의 새로운 선풍(禪風)은
경교(巫敎)에 젖어왔던 신라 교계(敎界)에쉽사리
받아들여 지지 않아 은거하고 있었는데
그의 심인(,已,印)을 받은 체장이 그의
송풍을 다시 일으킨 것이며 이에 도의를
제1조로 하고 염거(廉居)를 제2조로 체장을
제3조로 하였으며, 그 뒤를 영혜(英惠),
청부(淸負), 의차(義卓) 등이고 뒤를 이었다,
이에 그 흔적으로 탑비(槨阜)가남아 있다.
그 탑비는 五層石塔 一位, 오竺義國師塔?十力,
智皐大師遺蹟碑 一位, 含月大師舍利碑
一位등이 남아 있다.
유물
석남사에는
고찰의 명성에 걸맞게 많은 유물 이남아
있다. 앞서 말한 탑비를 비롯하여 삼층석가사리탑,
석남사부도, 석남사 삼층석탑 등이 그것이다.
삼층석가
사리탑
이
탑은 높이 11m, 축(지대석 4.57m)의 대답으로
신라 헌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호국의
염원을 빌기 위하여 세운 15층의 탑으로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973년에 삼층탑으로
복원하고「스리랑카국」 사타티싸스님이
부처님의 사리 (舍利)를 모셔다가 석남사
삼층석탑에 봉안하였다.적남ㅅ} 부도
보물
제369호로 통일 신라시대 때의 화강석
부도이다. 이 부도는 도의국사의 사리탑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기본우로 한 이것은8각의 지대석 위에
높직한 8각 하대석이 세워져 있고 하대석
각 면에는 사자(獅子)가 양각되어 있다.
중대석은 교복형 (鼓腹形)으로8각을 이루고
각 면에 화형(花形)이 낮게 솟은 안상(眼象)이
1좌씩 있고 중앙에 독립된 화형이 있다.
탑신은 8각으로 각 우각(隅角)에 기둥형이
조각되고, 전후에는 호형(戶形)이 모각되었으며
, 전년의 호형 좌우에는 신장입상(示欌인象)이
양각되었다. 옥개석(屋蓋石)의 각 우동("融車)
끝에는작은 귀 꽃이 달려 있다. 상륜(相椧)에는
앙화(仰花), 보개(寶羞), 보주(賽珠)가
남아 있다. 이 부도는 1962년 5월에 해체
보수하여 원형을 다시찾았으며, 이때 고복석의
윗면 중앙에 17x10cm, 깊이 7.5cm의 사리구멍이
확인되었으나 사리는 없었다.
석남사
3충석탑
지방
유형 문화재 제22호인 이 탑은 2중기단(二重基壇)
위에 세운 3층 석탑으로 통일 신라시대의
일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신라 하대의
건립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남사의
교통편은 언양터미널에서 석남사행버스를
타면 절 입구까지 간다.
일주문 백중과
'M'신드롬 / 이봉춘 (불교학과 교수)
음력
7월15일 백중(百衆)은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을 위령 천도하는 불교적 효행의 날이자
농경사회의 노동의례와 관련된 끊l속 명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민속 명절로서의
의미는 거의 퇴색하고, 불교 안에서 천혼(薦魂)
의식을 행하는 등 효를 되새기는 날로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백중천도재가 금년 여름에도 전국 각 사찰에서
예년과 다름 없이 올려졌음은 물론이다.
직접적인
연관은 전혀 없지만 이런 백중을 전후한
지난 여름, 한 TV방송국에서는 납량특집물로「M」이라는
프로를 방영하고 있었다 납량특집극이라면
으레 소복한 여인이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나오는 '전설따라 삼천리' 씀을 떠올리게
마련인 시청자들에게 「M」은 의외의 충격을
주었던 것같다. 그 착상의 새로움과 소재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M」으로 불리우는
낙태아의 기억인 자가 살아 있는 사람의
몸 안에 침입하여 때로 무시무시 한 괴력과
형상을 보이면서 그를 죽게 한 옛날부모(?)들을
찾아 다니며 복수한다는 내용이다.그러고
보면 불교의 백중과 이 「M」 사이에는
접점이 전혀 없지도 않다. 백중이 선망(先亡)
부모와 조상을 천혼하는 효행의 날에서
한 걸음 더나아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영문도 모른채죽어간 무수한 낙태아들의
영혼까지도 위로하는천혼행사가 각 사찰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낙 태아에 대한 천도는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수자불공(水子佛供)이라 ㅎ배 이미 보편화
되어 있는 일이다. 그것이 근래 우리 나라
몇몇 사찰에서 시행되더니 금년 백중에는
더욱 확산되어 낙 태아를 위한 불공 49재
천도재 등이 베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야 천 혼이 백중날의 또 다른
의례로서 정착하리라는전망이다.
낙태,
인간의 죄의식을 다소나마 은폐하려는
듯한 용어로서의 인공 임신중절문제는
종교적인 인식과 사회적인 판단에 있어서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것은 우선 태아를
인간으로 파악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나라의 민법에서 '모체내에
있는 장차 자연인으로 출생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되는 태아의 개념이나,
모자보건법에서 모(母)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인공 임신중절의 허용 등이 시사하는 바와
함께, 낙태를 행하는 일반의 인식은 태아를
인간 이전의 단계로 취급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모든 종교에서는 각기 교리를 근거로 인공
임신중절의 최익성을 지적하고 그것을
반대한다. 이 점에 있어서 수태(受g台)
그 순간부터 이를인간(生翁]으로 보는
불교에서는 태아의 주체적인 생명력과
그 존엄성을 강조한다. 그런 만큼 낙태는
당연히 살인행위가 되며 그것은 단순한
살생 . 살인의 의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존속(尊屬)과 마찬가지로 자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비속(卑屬)에 대한 직접적인 살해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생명
및 인구폭발 문제의 해결 등과도 관련하여
사회 일각에서 낙태는 필요악적으로 긍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일이며
윤리나 인과의 법칙마저 거스르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납랸특집극 「M」은 낙태를
경험했거나 예상하는 사람들에게 드라마로서의
흥미 이상의 경각성을 주었음직 하다.
방영이 끝난 뒤에도 낙태유경험자 또는
청소년들에게서 까지 전화가 쇄도했다는
데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가히
1{ 신드롬' 라고 말할 정도였는데,여기서
새삼 불교의 백중행사의 일부로서 정착되고
있다는 태아 천도문제를 생각게 된다.
죄없이
희생 당한 가엾은 태아들을 위령하는 종교적
의식은 그 의미가 아름답고, 나름대로
그러한 죄악의 방지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는
바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같은
행사가 행여라도 사원의 운영을 염두에
두고 과장되게 전해진다거나 또는 천도의례
자체가 마치 면죄부 쫌으로 치부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금년
여름 백중의 새로운 의미 첨가와 함께
때아닌 「M」신브롬 현상을 바라보면서,
불교에서도 의례만이 전부가 아닌 또 다른
「 M」의 멧시지를전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리란 생각이다. 종교는 악한의
총에 살해된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보다,
악한의 총부리를 거두게 하는 일에 더
먼저 관심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국과
불교 불교전문학교 승격운동 / 편집위원
불교전수학교는
1928년 4월 30일에 개교하였거니와, 한편
이에 앞서 조선불교 중앙교무 원에서는
학생모집에 관한 방침을 정하고 1월 17일자로이를
각 본산에 공문으로 통보해 놓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①
입학자격은 고등보통학교졸업자로 함.
②
학생수는 각본 . 말사의 재단 출자액의
비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배정함.
재단출자액
5만원이상 사찰: 4인
재단출자액
3만원이상 사찰: 3인
재단출자액
2만원이상 사찰: 2인
재단출자액
1만원이상 사찰: 1인
재단출자액
1만원미만 사찰: 隨意
③
학생의 起送 여부를 2월말까지 통지할
것
④
결정된 학생은 5월말까지上京시킬 것 등을
골자로 가고있다
이에
의해 4월 30일에 입학게 된 학생은 36명이었다.
그런데 이 입학자격은 일반 전문학교의
입학자격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는 불교전수학교로
인가가 될 때부터 그대로 학칙에 명기된
상태였다. 결국 「廖修」와 「寡門」의
명칭만 달리했을 뿐 불교전수학교의 학칙은
전문학교로서의 학칙 그대로였던 것이다.
따라서 불교전문학교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려온 불교계로서는 내용은 전문학교이면서도
명칭이 전수학교로 되어 있는 것에 다시
한번 실망과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그리하여
이제부터 라도 하루바삐 재단의 출자액을
증자시켜 전문학교의 이름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일기시작하였다. 「一光」誌
창간호에 실린 당시 불교전수학교 서무주임
曺學乳의 '卵廖昇格에對'하여 란 글을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인재양성을
각오하여 다년간현안이 되었던 불교전수학교가
금년부터 개교케 되었음은 늦어진 것이
좀 유감이나마 조선불교계의 장래를 위하여
심히 경하하며 또한 조선사회를 위하여서도기뼈하는
바이다 물론 이 기관이 조선불교계의 최고학부이니만큼
기대함이 많은 줄 信하는것이다. 그러나
학교 자체를 한번 회고할 때에는 일종의
유감 이경하와 기대를 伴하여 대두하려한다
그것은 현 하 교육제도로 본 학교의 유일한
생명으로 간주되는 승격문제이니 아마
이것은 동일한 敎徒로는 더욱 공명 될
바로 ,먼,하노라.(中略)
이상
여러 점을 보아서 증 격을 어디까지나
주창하는 바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 지면
寧히 학교란 명의보다 特殊講院을 의미하는
무슨 간판을 붙이고 싶다. 요컨덴 佛專은
조선불교계에 不可無의 旣說한 최고학부의
기관이며각 사찰의 기대와 성의로 聚結된엄연한
건물인 즉 다시 一步를進하고 赤誠을 添하여
재단을 증액하여서 가치있고 완전한 기관으로
꾸며내기를 바라는 바이다.불교계 내에
미만했던 이 같은 여론의 분위기는 그대로
개교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불교전수학교
학생들의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
바로 그 해 가을부터 전문학교 승격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학생들은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12월 3일 학생대표 7인이 학교 당국과
교무원예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이것이
전문학교 승격을 위한 단체적 움직임의
출발이었다. 한편 그들은 진정서 제출과
동시에 개별적으로는 교무원 평의원들에게
승격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학생들의
이 같은 줄기찬 전문학교 승격운동은,
이듬해 교단 내에서나마 일단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1929년 3월
26일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 평의원회의가열렸고,
이 때 학생 일동의 명의로 佛等승격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는 동시에 각 평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同月 28일 계속된
회의에서 불교전수학교를 불교전문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하여 현 재단에다 40萬圓을
증자하자는 안을 제출케 하고, 이 안을
찬성 29표, 반대 5표라는 절대 다수표로
가결케 하였던 것이다.학생들은 이 같은
결의에 희망을 갖고 교무원과 학교 당국을
믿고 묵묵히 학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평의원회의 증자결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몇 달 동안 이에 관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에 다시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고,同年 10월 8일 ①명년 3월
말까지 불교전수학교를 전문학교로 승격시켜
줄 것 ②交名을 개칭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서를 학교당국과 교무 원에 다시
제출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학생들의
열성이나 여망과는 달리 이에 대한 학교당국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었다. 이에 1930년
2월 13일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전문학교
승격문제에 관한 토의가 다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은 이미 작년 3월 교무원
평의원회에서 학교 승격을 위한 40萬圓의
증자까지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뚜렷한 진척이 없고 전망마저 보이지 않는데
대해 학교 당국과 교무원외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키로하되, 만일 明日 중으로
확실한 답변이 없을 때에는 동맹 휴학도
불사할 것임을 결의하였다.이같은 결의는
朴暎熙 ' 朴允進.姜裕文 등 새로 선출된
3인의 학생대표에 의해 즉각 학교 당국과
교무원예 통고 되었 이에 대하여 학교
당국과 교무원은 여전히 '선처하겠다''노력중이다'
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명확한 답변을 하지못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결국 다음날인 2월 14일
통고한 대로 동맹휴학을 결의 . 단행하고야
말았다. 사태가 이쯤 되자 설마 하던 학교
당국과 교무원은크게 당황하였고, 대책을
논하기 위해 同 2월 17일 학교에서 긴급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반드시
전문학교로 승격시킬 것을 최종 확인하고,
동월 19일 학생들을 소집하여 이 같은
결의를 전달키로 결의하였다. 이 결의
이후 전문학교 승격에 필요한 작업을 즉시
서두르기 시작한 것도 종래와는 다른 한
모습이었다. 19일에 등교한 학생들은 이러한
진척된 사실을 전달받고 환희의 만세를
불렀다. 그들은 즉시 동맹휴학을 풀고
희망과 기쁨에 찬 발걸음으로 다시 강의실로
돌아갔던 것이다.이와 같이 불교계 내의
당위적인 여론을 배경으로 학생들이 주체가
된 전문학교 승격운동은, 결국 학교당국과
교무 원으로 하여금 조선 총독부에 전문학교
승격에 관한 인가 신청서를 제출케 하는데
성공하였다. 학생들의 이러한 열성과 그
성과는 곧 당시 한국 불교계의 오랜 염원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있 는것
이었다 뿐만아니라이 일은 오늘의 우리
東國이 가능할 수 있게한 한 시대의 의미
있는 足跡이었다는 점에서, 동국의 역사상높히
평가 받을 만한 일이 아닐수없다.
비유와
설화 나라를 구한 지혜 / 편집위원
부처님은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다
노인을
공경하면 큰 이익이 잇다. 나는 지금뿐
아니라 옛날에도 부모와 스승과 노인네를
항상 찬탄하고 공경하였다. 옛날 기로국(棄老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서는 노인이
있으면 모두 멀리 내다버렸다. 어떤 대신도
늙은 아버지를 국법에 따라 멀리 내다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효성이 지극해 차마
아버지를 내다버리지는 못하고 땅을 깊이
파고 굴을 만들어 아버지를 거기다 모셔두고
때에 맞춰 공양하였다. 그때 천신이 뱅
두 마리를 왕궁에 던지면서 ''이들의 수컷과
암컷을 구별하면 너의 ,나라가 편안할
수 있겠지만 만일 구별하지 못하면 너
회 나라를 7일 후에다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고민하면서 곧 신하들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며 제각기 의견을
말하게했다 아무도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왕은 곧 온 나라에 영을 내려 ''누구든지
이것을 구별하면 큰 상을 주리라'' 하였다
이 대신은 집에 돌아가 그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구별하기 쉽다 아무 보드라운 천을 그
뱀 위에 씌워두면 가만 있지 못하고 조급히
날뛰면 수컷이요,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그놈은 암컷이다''
과연
그 말과 같아서 수컷과 암컷이 구별되었
천신은 또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와서
물었다.''자는 이 중에서 깬 이는 누구이고
깬 이 중에서 자는 이는 누구인가?''
왕은
또 신하들과 의논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대신은 곧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는 유학(有學)이다.유학은
저 범부에 대해서는 깬 사람이고 저 아라한에
대해서는 자고 있는 사람이다.''
곧
이 말대로 왕은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물었다 ''이 큰 코끼리의
무게는 얼마나되는가?'' 왕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보았으나 역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코끼리를 배에 싣고
배를 못물에 띄어 그 배가 얼마나 가라앉는가를
표시해 두었다가 다시 그 배에 돌을 싣고
물에 띄워서 물이고 표에까지 오는 무게가
바로 코끼리의 무게이다'' 그 말대로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또물었다,
''한
움큼의 물이 큰 바닷물보다도 많을 수
있는데 그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고?''
왕은 신하들과 의논해 보았으나 또 알
수가 없었다. 이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은 알기 쉽다. 즉 어떤 사람이 청정한
신심(信,已,)으로 한 움큼의 물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고 또는 부모나 곤궁한
사람이나 병자들에게 보시하면 이 공덕으로
수천만 겁 동안 한량없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바닷물은 아무리 많아도 1겁을
지나지 못한다. 이 말로 미루어 보면 한
움큼의 물은 저 바닷물보다 수천 배나
더 많다.''
왕은
이 말대로 천신에게 대답했다. 그 다음
천신은 몹시 굶주려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야윈 사람으로 되어 와서 또 물었다.
''이
세상에서 과연 배가 고파서 고통을 받는
사람 중에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자가 있겠는가?'' 왕과 신하들은 또 생각하여
보았으나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대신은
다시 가서 아버지에게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간담하고 질투하면서 삼보를
믿지 않고 부모와 스승께도 공양하지 않다가
죽은 뒤에는 아귀 세계에 떨어져서 백천만
년 동안 물이나 곡식이란 말도 듣지 못한다.
그 몸은 큰 산과 같고 그 배는 큰 골짜기와
같은데, 목구멍이 가는 바늘과 같고 송곳과
같은 머리털을 가지고있으므로 거동할
때는 사지의 뼈마디가 불에 타는 것과
같이 된다. 이런 사람의 고통은 그의 굶주리는
고통보다 백천 배가 더 하다고 하라.''왕은
천신에게 그렇게 말하였다. 천신은 다시
손과 발에는 수갑을 차고 목 뒤에는 쇠사슬을
걸고 온몸이 불에 훨훨 타는 사람으로
변하면서 물었다.
''세상에
과연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겠는가?'' 왕과 신하들은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다 대신은 가서 또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말하였다.
''세상에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불효하고 스승에게
반역하며 남편을 배반하고 삼존(三尊)을
비방하다가 오는 세상에서는 지옥에 떨어져서
칼로 된 산과 불타는 수레에 끌려 다니고
송곳 같은 갈나무에 온몸을 찔리며 이글거리는
화로에 살이다는 등의 갖은 고통을 다
받는다. 또 똥오줌이 끓는 강물에 들어가
고통을 받는 등 그런 고통들이 한량없고
그지없다. 이런 고통은 너의 고통보다
천만 배가 심하다고 하라.''
왕은
곧 천신에게 그렇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단정하고 아름답기가 세상에 뛰어난
한 여인으로 화하여 또 물었다. ''세상에
과연 나처럼 단정한 여자가 있겠는가?''
신하들은 모두 잠자코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는
곧 말하였다.
''이
세간의 어떤 사람은 삼보를 믿고 공경하며
부모에게 효손하고 모두에게 보시하며
인욕하고 정진하며 계율을 가진다. 그런
이는 천상에가 나서 단정하고 뛰어 남이
그보다 백천만 배가 더하다. 그에 비하면
그대는 애꾸눈의 원숭이와 같다고 하라.''
왕은
천신에게 그렇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또전단향
나무를 정방형으로 만들어서 돌고 물었다.
''이것은 어느 쪽이 뿌리 쪽인가?'' 신하들의
지혜로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다. 그것을
물에 넣어 보라.뿌리 쪽은 반드시 밑으로
향하고 나무 윗쪽은.반드시 물 위로 뜰
것이다'' 왕은 곧 이런 말로써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또 형상이 똑 같은
흰말 두 마리를 보이며 물었다. ''어느
것이 어미고 어느 것이 새끼인가?'' 신하들은
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대신은
다시 아버지에게 가서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들에게 풀을 주어 보아라.
어미는 반드시 그 풀을 새끼에게 밀어줄
것이다.''
이렇게
묻는 것을 모두 대답하자 천신은 기뻐하면서
그 왕에게 진기한 보물을 많이 주었다.
그리고 공중으로 사라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지금부터 당신 국토를 옹호하여 외적이
감히 침입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후
왕은 이 지혜가 그 대신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사실을 알고 노인을 버리는 법을
철폐하고,부모와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자를 벌내렸다''그때의 그 아버지는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요. 그때의 대신 은사리
불이며 그때의 그 왕은 바로 저 아사세왕이요,
그때의 그 천신은 바로 이아난이니라.''
<雜寶藏經>
신행단체 동국좌선회
우리는
날마다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정신없이 쏘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심신은 피로해지고 정신은 산란해집니다.
이 때 I0분 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좌선을 해보십시오.
어지러웠던 정신은 상쾌해지고, 피로했던
육체는 어느 새 가볍고 싱싱하게 되살아
납니다.
좌선은,
흐트러진 정신과 구겨진 몸을 본래대로
되살려 한가롭고 쾌적한 심신으로 활성화
시키기 위한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7시 30분 부티 1시간 동안,
먼저 40분 쯤 좌선을 행하고, 5분 쯤 선체
조로 몸을 품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도교수이신
정각원장님의 신심명(信,已,奚名)에 관한
강의를 듣습니다. 참으로 주옥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심신은 나도 몰래 무아지경에
이릅니다. 가장 소중하고 밝은 지혜를
이 짧은 순간에 덤뿍얻게 됩니다
동국좌선회는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한 해에 두세
번 씩 명찹순례도 계획하여 작년 겨울엔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신흥사를 1박2일의
일정으로 좌선법회를 다녀왔습니다 '1生一주지스님이
밤낮으로 뛰어서 이룩한 거대한 사찰과
수백 명을 수용, 숙박하면서 수련할 수
있는 도량에 하룻밤을 보내고 좌선하는동안,
우리는 '性一스님의 강한 불심과 강인한
의지를 마음 속에 새겨왔습니다.
동국좌선회는
이와 같이 끊임없는 심신의 수련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데 노력하면서 나아가
동국외모든 가족의 심신의 영양소가 되도록
노력하고자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한
불교 이 불교를 건학 이념으로 세운 동국대학교를
일자리로 하여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우리
동국 가족은 이 훌륭한 삶의 지혜를 먼저
처1득하고, 또 이것을 널리 여러 사부대중에게
전파하여야 하겠습니다
좌선은
그 한 자리에 지혜입니다 우리는 이 지혜를
고루 나누어 익히기 위해서 생각을 모으고
힘을 뭉치기를 바라 마지 않으면서 이
모임에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불교건강법 요통과
운동 / 김갑성 (동국한방병원 침구과)
병원에서
소위 허리디스크(요추부 추간판탈출증)를
앓은 경험이 있는 환자를 대하다 보면
대부분 허리디스크 병에 대한 두려움과
재발에 대한불안감 등으로 사소한 요통에도
의기소침해 하거나, 본인의 병을 확대
해석하여 절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대게의 경우 과거 디스크수술을 해야만
했던 환자들이 특히 더욱 경향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몇 가지의 이학적 검사만으로도
재발의 여부를 알 수 있다.
소위
디스크의 재발이 아니라고 판정되는 경우의
환자들의 많은 범위에서 요통발생은 크게
2가지의 원인에서 발병이 되는데, 첫째는
허리디스크 병으로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상당기간이 병으로 고생을 한 환자의
경우 재발에 대한두려움으로 허리를 지나치게
과보호하게 되며 이러한 결과는 척추를
받치고 보호해 주는 요장근과같은 중요한
근육들의 힘이 약해지므로 허리주위의
근육이 쉽게 긴장하여 잦은 요통을 발생시키게
된다. 둘째는 퇴행성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허리에 형성된 국소적 병변부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인 인체의 노화와
함께 여타의 부위보다도디 빠른 퇴행성
변화를 보이게 된다 퇴행성 변화는 척추
골 구조의 변형과 디스크의 변형 등을
야기하여 신경이 지나는 통로를 협소하게
만들거나 주위의 조직들을 쉽게 긴장하게
만들고 심한 경우 염증을 유발시켜 요통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한의학
측면에서 보면 신허요통(腎虛腰痛)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한의학에서는 뼈를 신(腎끼능계에
포함하여 생 리적 관찰과 치료에 응용하므로
이때의 처방은 많은 종류의 처방의 선택이
있을 수 있으나 대표적인 예로, 약간 마른
체형이면서 평소에도 소화기능은 원활하나
성기능의 약한 체질에는 육미지황탕에
가감을 하여 치료하며, 보통의 체형에
소화기능이 약하고 소심한 성격의 환자에게는
청아환에 가감을 하여 치료를 한다. 대게의
경우에서 침구치료가 병행되는데 체질에
따른 체질보사법과 오장육부의 허실 한
열을 따져 시술하는 오행보사법어 있으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참치료법으로는 척추
위를 따라 유추하는 독액경과 주위의 방
광경의 경혈에 직접 침요 삽입하는 순경치료법이
있다. 상기의 치료법은 전문적인 치료법이므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우므로
한의사는 진단과 치료에 맡기기로 하고,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허리의 근육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요통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허리운동요법을
권할 수 있다. 이 방법의 주요 목표는
단기적 효과를 노리고 실시하기 보다는
허리운동을 생활화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생활에서 오는 척추부위에 가해지는 무리한
역학적 힘을 강화된 근육이 홉스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예방의 조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을 보통 요통체조라고
명명하여 부르고 있는데,운동을 하는 시간은
가급적 아침 기상시가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이때가 인체의 관절이
최대한 이완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통체조도 해를 소개하니 생활화하여
강한 허리를 유지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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