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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6월호 / 통권 8호 / 불기 2538(1994)년 6월 1일 발행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

의식 개혁으로 가다듬기/녹원큰스님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

자정과 다짐의 나날이 되길 / 민병천 총장

 

고승 법어

'맑고 향기롭게' / 법정스님

 

 

'맑고 향기롭게' 발원문

 

전등이야기

어떤 것이 부처인가 / 편집부

 

정각도량

캠퍼스를 맑고 향기롭게/ 한보광 스님

 

정각논단

환경 문제의 본질적 이해와 범우주적 가치관
/ 김병식

 

교리강좌

칭명과 염불 /편집위원

 

경전의 세계

금강경/ 편집위원

 

일주문

참다운 개혁/ 이만

 

불자탐방

경주병원 법당 해인스님 / 편집부

 

동국과 불교

항일 승격운동 장기 휴교/ 편집위원

 

비유와 설화

부모위해 몸 바친 수천제/ 편집위원

 

가람의 향기

통도사 / 편집부

 

불교건강법

중풍의 예방과 처치 / 김갑성

 

열린마당

마음이 나면 가지가지 법이 나는 것이오
/ 신용태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
의식개혁으로 자세를 가다듬기를 /  오록원 이사장

친애하는 동국인 여러분, 우리는 오늘 2538년째 '부처님 오신날'을 맞았습니다. 이 땅에 無明을 거두고 찬연한 眞如의 빛으로 오신 부처님은 모든 생명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그 진리의 몸짓은 여전히 온누리 생명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가치 혼란의 와중에 서있습니다. 東西의 냉전 시대는 종식되었지만, 강대국들의 보호무역주의는 높다란 장벽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경제전쟁이라 불릴만한 국가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또 산업화에 따른 전통윤리의 몰락은 이제 전 세계인들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 산업화에 따른 전통윤리의 몰락은 이제 전 세계인들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의 인류는 물질적 풍요를 얻은 대신에 정신적 방황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자아 상실의 불행한 세태는 전혀 멈추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동국인 여러분! 부처님은 모든 생명의 영원한 자유를 일깨우셨습니다. 참 생명의 가치는 그 내밀한 진여의 빛으로서 새롭게 소생해야 합니다. 오늘의 혼탁한 현실은 바로 이 생명 자각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입니다. 耽臧潚에서 '모든 생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니라. 자신을 이긴 이를 여라는 승리자라고하노라.'라고 하신 말씀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우리 한국의 불교는 1천6백여 년 동안 보살의 기개를 펼쳐 왔습니다. 이 땅의 지성인들은 불교를 통하여 우주와 생명의 참다운 가치를 이해하였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에게 있어서 불교는 철학이자 사상이었으며 종교이자 생활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물론 억불의 조선5백년을 맞으면서 불교의 영광은 많이 퇴색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민족 정통종교로서의 긍지를 이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불교계는 개혁의 진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서 일반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던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아픔은 보다 창조적인 미래를 향한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확신합니다. 불교개혁의 기본요건은 우리들 불자의 '의식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수동적 자세에서 능동적 자세로, 그리고 전통 묵수적 태도에서 미래지향적 태도로 우리들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불교는 결코 승단의 행정 책임자들이나 열렬한 진리를 사모하고, 올바로 살려는 서원을 지닌 모든 생명들의 것입니다. 비온뒤에 땅은  굳는 법입니다. 오늘의 아픔이 곧 불교발전의 초석이라는 기개를 품어야 할줄 압니다. 위대한 불교정신이 미래의 인류를 계도할수 있도록 우리의 정성을 모두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부처님오신날'의 기쁨이 온 누리에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동국인 모두와 그 가족들에게도 부처님의 크신 자비원력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나무석가모니불,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불기 2538년 부처님 오신날 아침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

문학박사 오록원 합장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
自淨과 자비의 날이 되기를 /  민병천 총장

오늘 큰스님을 비롯한 교수, 교직원 및 학생 대표가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 학교는 구한말 불교계의 선각들이 이 땅에 불국정토를 이룩하기 위한 큰 이상을 품고 먼저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의 목표아래 개교한 불교 종립대 학교입니다. 따라서 우리 동국인 모두는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에 비추어 누구보다도 부처님의 태어나심을 봉축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오늘을 맞아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참뜻을 되새기고 과연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자각하고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은 중생들이 바르게 깨달아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특히 지혜를 바르게 체득하여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회의 모든 모순과 갈들은 바로 지혜와 자비의 결핍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 동국인은 불국토를 이룩하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던 지혜를 체득한 인간과 자비를 실천할수 있는 인간을 기르는 데 정성을 다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남다른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경하와 봉축의 날일뿐만 아니라 자정과 다짐의 날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와 자비행의 실천 속에서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서원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한번, 부처님 오신날을 경축하오며 우리 동국대학교와 동국가족 모두에게 불은이 가득하기를 발원하면서 봉축사를 가름합니다.

불기 2538년 부처님오신날

동국대학교 총장 민병천

 

 

 

고승법어
맑고 향기롭게 / 법 정

과일에 씨앗이 들어 있듯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씨앗을 지니고 세상에 나옵니다. 그것을 불성 혹은 영성이라고 이름합니다.그 씨앗을 움트게 하고, 꽃피우는 일이 삶의 의미이고 보람입니다. 양성과 불성의 씨8t훌 움트게 하고,꽃을 피우려면 우리들 마음을 맑히는 일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혼히 마음을 맑혀라. 마음을 비워라 얘기합니다.원래 종교적인 세계에서는 지극히 관념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이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음을 맑히고, 비울 것인가, 절에 열심히 나가는 사람 중에도 절에 안 나가는 사람보다 옹졸하고, 꽉 막혀서 뭐 하나 배울 것이 없는 이들 도많이있는데, 그것은 관념적으로만 알기 때문입니다.관념적인 것으로는 마음이 맑혀지지 않습니다. 물론 참선이나, 염불, 기도를 지극히 해서 마음을 맑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쪽에 불과하며 자칫 잘못하면 관념으로 빠지기가 쉬워요. 현실적으로 선행을 해야합니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두루 착한 일을 행할 때 저절로 우리들 마음이 열리고 맑아집니다.

시절 인연이 오면 스스로 연꽃은 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두루 착한 일을 하면 우리의 마음은 저절로 맑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의 마음이 맑아지면 그의 둘레도 점점 맑은 기운이 번져 갑니다- 마침내는 온 세상이 다 맑아질 수 있습니다.

가령 부처님과 예수님, 공자님 같은 성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분들의 끌 은 마음은 메아리가 되고,두루 비추는 빛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만일 그분들이 인류 역사상 안 계셨다면 현재의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겁니다.

너의 마음 따로 있고 내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은 하나예요. 한 뿌리에서 파생된 가지가 당신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이고, 그의 마음입니다.우리가 어려운 이웃의 여기를 듣고 눈물 지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가 아파하니까 우리도 아픔을 느낀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묘리예요. 마음의 메아리입니다.

그럼 선행이란 무엇일까요. 선행, 착한 일. 그것은 나누는 일입니다. 나눈다는 건 많이 가진 것을 그저 퍼주는 게 아니예요. 나눔이란 가진 사람이 이미 받은 것에 대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보상의 행위이고, 감사의 표현입니다. 본래 내 것이란 없습니다.지금 내가 가진 것은 이 우주의, 법계의 선물을 잠시 맡아 가지고 있는 것뿐입니다

 육 바라밀 가운데 첫째 가는 것이 보시 바라밀입니다. 보시란 나누는 겁니다. 또 바라밀이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는 일, 세상을 사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보시 바라밀이란 세상을 사는 데 제일 가는 덕이 보시, 곧 나누는 일이란뜻입니다. 기쁨을 나누면 곱으로 커집니다. 반대로 괴로움과 슬픔은 나누면 몇 분의 일로 줄어들어요. 나누는 일에는 이처럼 미묘한 율동이 따릅니다.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서로주고, 받는 가운데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 관계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좋은 관계는 우리를 좋게 만들고,언짢은 관계는 우리는 언짢게 합니다.

세상 만물은 시간이 감에 따라 시들고 쭈그러듭니다. 새 차도 한 5~6년 타고 나면 폐차 직전에 이르지않습니까. 거죽은 언젠가 늙고 허물어집니다. 생로병사하고 생주이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그러나 중심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영혼에 나이가있습니까. 거죽에서 살지 않고 중심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여건 속에서도 시들거나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은 빨리 시들어요. 끝도 없는 것을 따르려니 안 그러겠어요 하지만 자기 중심에서 살면 어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이든 시들지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중심이 잡혀 있기 때문이예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존재 전체를 기울여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 다음 순간 더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 서로의 마음이 맑아져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됩니다 맑고 향기롭게 살려면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큰 것과 많은 것에는 살뜰한 정이 가질 않아요 늘 겪는 일이죠.선물의 경우 너무 크고, 많으면 받는 사람은 부담스럽습니다. 작은 것, 적은 것이 귀하고, 소중하고,아름답고, 고마운 것을 알게 되면 맑은 기쁨이 샘솟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행복은, 맑은 기쁨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저절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은 못 되지만 제가 있는 곳은 궁핍하고,거의 모든 것이 원시 상태예요. 하지만 그게 편해서,그곳에서는 순수한 내가 존재할 수 있어서, 지금 나그네처럼 머물고 있는 겁니다. 지난 겨울에 부半에는눈이 내리고, 뒷골에서는 노루 우는 소리가 들리고 하니까 내 마음도 소년처럼 좀 부풀어 오르려고 해요. 그래서 묵은 편지들을 뒤적이다가 몇 군데 답장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한참 먹을 갈다가 편지 쓸 종이를 찾으니까 도배하고 남은 종이 사이에서 쪼가리화선지가 두어 장나와요. 다행이다 싶어 그걸 잘 다듬어서 편지지를 만들었죠.

그런데 종이가 한정되어 있다 싶으니까 아주 조심해서, 잔글씨로 편지를 쓰면서 아주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 후에는 서울에 나왔다가 지압사에서 한 20장의 화선지를 사갖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쪼가리 종이에 편지를 쓸 때의 그오붓함, 살뜰함이 어디로 가고 없어요. 많다는 건 그런 겁니다.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고하지 마세요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어버립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꼭 필요 불가결한 것만 가지려는 사람이 바로 무소유자입니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소유해 버립니다.

친구 한 사람이 인도 여행을 갔습니다. 거기서 친구는 옛 금속공예품 하나를 사게 됐어요 상점 주인과 값을 흥정하는데 처음엔 천 루 피를 부르더래요. 그래서 친구는 시치미 뚝 떼고 백 루 피를 불렀다네요. 그러니까 주인이 백오십 루 피 내라고 하더래요.이 소리를 듣고는 친구가 '에래 하면서 칠십 루 피라야 사겠다고 우겼답니다. 결국 이 친구는 주인과 옥신각신한 끝에 칠십 루 피에 물건을 샀대요. 그래 좋아라 하니까 주인이 "좋으시죠?" 하고 묻더래요. 이 말에 그만 친구는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행복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집이나, 자동차, 가전 제품, 심지어는 지식까지도 거기에 집착해서 행복을 얻으려 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칫 인간 존재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되어버리기때문입니다. 필요에 따라 살아야 하며 욕망에 따라 살아선 안 됩니다. 필요란 생활에 아주 기본적인 욕구예요 하지만 욕망은 없어도 좋을, 분수 바깥의 욕구예요.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설한 유교경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보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라.만족할줄 안다면 항상 넉넉하고 즐거우며 평온하다.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사 그가 천당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홉 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은 늘 갈증 상태란 말이예요. 하지만 만족할 줄 알면 비록 가진 것은 없더라도 부자나 다름없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제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가난하게 느끼는 건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앞에 섰을 때가 아닙니다.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지만 그 단순함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입니다.

과잉 소비와 포식 사회가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마구 사들이고, 쉬 버리면서 귀한 줄을 모릅니다. 몸에 좋다면 무소뿔, 호랑이뼈까지, 그것도 외국에서 수입해서까지 마구 먹어 대는 포식 사회 풍조는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소비자란 말을 생각해 봅시다. 소비자,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존재란겁니다. 영혼을 가진 인간이, 무한한 창조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인간이 어떻게 쓰레기나 만들어 내는 존재, 소비자가 될 수 있습니까. 불필요한 소비 과다한 소비를 하기에 그런 소리를 듣는 겁니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려면 자연의 질서를 삶의 원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날씨가 궂으면 몸이 쑤시고 아프다고들 하시죠.하지만 화창한 날이면 괜스레 우리 마음도 밝아집니다. 이게 다 우리가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아낌없이 무상으로 베풀어 왔습니다.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논밭의 기름진 흙, 천연의 생수와강물, 오늘 종일 말해 도다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을 자연은 우리에게 주고 있어요.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고마운 줄을 몰라요. 감사는 고사하고 함부로 더럽히고, 허물고, 끝없이 학대하고 있습니다. 들짐승조차도 자기 둥지는 더럽히지않는데 인간이 소위 운명했다는 인간만이 자기의 생활 환경인 자연을 더럽히고 있습니다.만신창이가 되어 앓고 있는 자연은 곧 우리가 병을 앓는 것이요,자연의 신음 소리는 우리의 신음 소리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나자신이,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소우주이기 때문입니다.

병이 든자연, 허물어져 버린 자연에는 우리 인간들이 의지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죽어가듯 인간위생명도 위협받기 때문이예요, 과잉 소비로 자연 환경의 파괴를 부추길 게 아니라 이제는 적은 것. 작은 것의 귀함, 소중함을 알아서 더 이상 자연이 병들지않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의 질서가 필요합니다. 나눔으로써 맑은 기쁨을 얻으려 하고, 만족할 줄 알며, 소유는 꼭 필요한 것으로 스스로 제한하려는 그 마음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런 태도는 결코 소극적인 것이아닙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지혜의 선택입니다.

선배로서 대학생 여러분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학구적인 생활은 곧 창조적인 삶을 뜻합니다. 대학시절에 학구적인 자세가 몸에 배야 해요. 건성건성 4년 동안 지내면 잠깐인데 그런 생활이 몸에 배면 건성으로 삶을 보내게 됩니다. 창조적인 삶은 전통이나 인습, 지나간 기억에 예속되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누구를 추종하고 모방하는 것은 지혜를 일깨우는 데 방해가 돼요. 추종 모방은 복제품만 생산할 뿐입니다. 어떤 위대한 종교적인 스승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맹목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이지 마십시요.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인간적인 좁은 문을 통과해서 대학에 들어와 배운다는 것은 학위를 받아 가지고 좋은 직장을 얻거나 좋은 배우자를 얻기 위해 기억을 증가시키고 지식을 축적시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기억과 이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창조적인 것은 이해이지 기억이아닙니다. 이해는 사물의 진실을 말의 장벽 선입견 없이 직접적으로 내 눈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육은 거의 기억을 강요하고 있어요.우리가 참으로 배우려면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명석하고 건강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해요. 따라서 교육의 본질은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스스로 일깨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끌어 내야 할까요. 지혜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교육은 지식을 강요함으로써 거기에 짓눌려 마음의 지혜를 계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탐구하는 노력이 없으면 신속히 속물이 되어 갑니다. 대학 시절은 탐구를 전업으로 하는 시절입니다.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입시 지옥으로 얼마나 고통과 고초를 겪었습니까. 중요한 것은 탐구하는 사람은늘 깨어 있어야 하고 물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혹은 남에게 물어서 지혜를 찾아 내야 합니다. 그리고 가끔 자는 누구인가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됩니다. 자기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에 대고 '나는누구인가一 하고 그렇게 물어야 합니다. 물을 때 자신의 존재가 조금씩 조금씩 일어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자기 자신다운 삶을 이룰 수 없어요. 묻는 그 속에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물음 속에 지혜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늘 깨어 있으면서 묻고 스스로 찾아 내고 끝없이 성장할 때가 바로 현재의 대학 시절입니다. 이런 대학의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로써 탕진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예요. 탐구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거듭거듭 새롭게 형성되어 갑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문을 나설 때는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지고 사회에 당당하게 나서야 합니다. 마치 새로운 대지를 경작하는 농부의 의지로써 미지의사회에 나설 수 있어야됩니다. 늘 깨어 있으면서 묻고 찾아 내며 탐구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비슷한 되풀이로 끝내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날로 만들어 갑니다. 전생애를 두고 배움을 지속해 가야 지혜로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시인 카비르는 이렇게노래합니다.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말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웃는다.

진리는 바로 그대 안에 있다.

그대 자신은 이것을 알지 못한 차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쉴 새 없이 헤매고 있다.여기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진리를보라.

그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한번 가보라.이 도시로 저 산 속으로.

그러나 만일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여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 보면서 삶을 거듭거듭 개선하고 심화시켜 가는 명상이고, 또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전자는 지혜의 길이요, 후자는 자비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을 통해 우리는 본래부터 지녔던 불성과 양성의 씨앗을 틔워 낼 수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지닌 그 귀한 불성의 씨앗으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길 거듭 다짐합시다. 본래 청정한 우리 마음을 선행과 나눔으로 맑혀서 우리가 몸담고서는 이 세상을, 그리고 많은 은혜 속에서 의지해 살다가 언젠가는 그 품으로 돌아가 영원히 안길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가꿉시다.

 

 

 

 

  맑고 향기롭게

일찍이 한 점 청정한 마음이 있어

청정한 마음을 불렀습니다.

일찍이 한줄기 청정한 빛이 있어

청정한 빛을 이웃하였습니다.

일찍이 한 톨 청정한 풀씨가 있어

청정한 풀씨를 모았습니다.

 

청청한 마음은 사람을 지어내게 되었고

청정한 빛은 하늘로 펼쳐지게 되었으며

청정한 풀씨는 이 세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본래의 모습은 이렇듯

거울같은 존재로 감추인 것이 없었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자연은 아름다워 사람은 그속에서

맑고 향기롭운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에 먼지 한 티끌이 끼어들었습니다.

그것은 소유욕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먼지는 먼지를 불러

우리의 거울을 흐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물질이 마음을 가리워 각종 균을 창궐케 하였으며

우리들 본래의 복전은 다툼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까마득히 잃어버린 "나"를 찾고자 합니다.

청정한 마음 한 점 청정한 빛 한줄기

청정한 풀씨 한 톨을 헹구어

푸른하늘 아래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맑고 향기로운 삶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터가 삭막하고 혼탁하여도

연꽃이 진흙탕에 오히려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자신의 둘레를 맑고 향기롭게 가꾸듯

우리또한 한송이 연꽃으로 피어나고자 합니다.

 

부디 남의 허물을 탓하기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시며

온화한 인품으로 인색함을 물리치게 하시고

내 만족과 내 행복을 찾기전에

나보다 더 불행한 이웃을 돌아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마음 한 점 미소를 나누어 가지며

빛 한줄기 기쁨을 전하며

풀씨 한 톨을 가꾸며 살게 하소서.

 

"나"혼자가 아닌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어

종이 한 장도 아껴쓰고

밥풀 하나도 덜 버리는 마음

늘 챙기게 하시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칭찬하는 사람되게 하소서.

 

훗날

우리가 오늘 후손으로부터 빌려서

살고간 이 세상에

맑고 향기로운 바람 한줄기 더한

기쁨 누리게 하소서.

 

 

 

전등이야기
어떤 것이 부처인가 / 편집부

선어록을 읽다보면 늘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 '어떤 것이 부처인가'라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즉 부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이다. 특히 선사들의 선문답에서 이를 문제삼고 있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본질, 근본 가르침에 가까이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알았을 경우에 우리들은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깨닫기 전에는 불교를 모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알지 못하는 불교를 남에게 가르치려고 하니 참답게 전달 될 수가 없다. 부처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해오라고 하고 부처를 증득하여 스스로 성불하는 것을 증오라고 한다. 누구든지 증오를 하기 이전에는 참다운 불자라고 할 수 없으며, 올바른 불교인이라고 볼수 없다. 참된 불자란 부처와 같은 행동, 부처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렇지 못한 범부들은 늘 부처가 무엇인지를 문제삼지 않을수 없다. 사실은 어떤 종교이든지 신앙의 대상의 자체를 문제삼은 종교는 별로 없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가장 큰 문제로 삼고있다. 그러므로 불교가 다른종교와 다르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근복적인 신앙의 대상을 문제 삼으므로 인해 거기에도 속박받지 않는 신선함이 항상 유지될수 있을 것이며, 늘 새로워질수 있다. 따라서 불교는 원시불교에서 소승불교를 거쳐 대승불교로, 다시 선불교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교리의 발달은 불교가 거듭나는  운동이었으며 반드시 뼈를 깎는 아품이 수반되었던 일이었다. 때로는 교단이 분열되고 사회로부터 지탄받으며 풍전 등화였을때마다 불교인들은 과감히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하였다. 이때마다 다시묻는 질문은 '어떤 것이 부처인가?' 라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비불교적인 요소에 대한 척결이며 불교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종교의 사상이 늘 살아 움직이지 안으면 정지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며,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이는 바로 잘못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소금의 역할을 망각하게 되고 사회와 함께 부패하고 만다. 따라서 소금이 부패를 방지하듯이 종교 역시 출세간적인 신선함이 없으면 썩고 말 것이다. 그럴때마다 불교인들은 '부처가 무엇인가'라고 자성하여 왔다. 이는 바로 불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라고 하는 자성의 소리요. 참회의 외침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잘못된 것을 과감히 고치는 개쳑이 필요하다 . 그러나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부처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부처인가'라고 하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자가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삼 세 근이니라"

 

 

 

정각도량
캠퍼스를 맑고 향기롭게 / 한보광 (서울캠퍼스 정각원장)

대학은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 있는 학문의 전당이다. 모든 사상과 학문이 자유롭게 토론되어야 하며, 스승과 제자가 진리를 위해 젊음을 불사를 수 있어야 한다. 자유 분방한 가운데서도 질서가 존중되어야 하며, 결코 방종해서는 안 된다. 또한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듯 모든 삶의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하며, 나의 주장을 내세우듯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 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우리 학교는 불교 중립대학답게 번쩍이는 지혜와 따뜻한 자비의 품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항상 젊음과 희망이 넘쳐 흘러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대학은 그러하지가 못하다.교수 직원 학생들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으며,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불꽃 튀기는 경쟁과 진리를 위해 머리를 싸맬 수 있는 연구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지성인들이 모인 곳답게 질서 있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립대학다운 불교학위 새로운 발전과 신앙적인 면에서도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외부인들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대학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 스스로기 만든 과보이다. 여기에 대해서 그 문제점을 몇 가지 살펴보고자한다.

첫째는 서로기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보니 불신의 골이 깊어만 가고 있다. 가장 가ㄲ넥야 할 스승과 제자는 서로기 이방11처럼 느껴지며 감시하고 감독하며 평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과연 참된 교육이 될 수 있으며, 사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직원과 교수는 서로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그러나 학교의 폭주 되는 업무와 어려운 일들은 직원에게만 그 책임을 돌리고 그 밖의 사람들은 수수 방관하지는 않았던가.그러면서 남들이 존경해 주기만을 바랄 수 있을까.과연 우리는 교내 일에 스스로 능동적으로 동참한 일이 얼마나 있었으며 학생들의 고뇌를 들어 주기 위해엄마나 많은 시간을 바쳤던가. 또한 학생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주장만 홀 내세우지는 않았던가. 이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모두가 함께 맑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따뜻한 인간으로 돌아가자.

둘째는 대학다운 연구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고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들려오는 소음과 확성기소리, 사물소리, 강의실 바로 앞에서 떠들고 소리지르며 공을 차고 운동하는 무질서한 소리, 온 교정,구석구석을 가득 메운 자동차의 소음까지도 더하고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년에 한 번 있는 축제로서족하다. 엄연히 공을 찰 수 있는 대운동장이 따로 있으며, 소리를 마음껏 지를 수 있고 어떠한 모임도 가질 수 있는 만해 광장이 있으나, 하필이면 족구는 강의실 앞에서 하고, 큰소리가 나는 집회는 도서관 앞에서 하여야 하며, 담배는 불상 앞에서 피워야 하는가. 이들의 부모들은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여 부디 참다운 인간을 만들어 달라고 우리들에게 맡기지 않았던가. 또한 여기서 4년이 지나면, 모든 기업체에서는 완전한 인격자가 다 된 줄 알고 우리들이 매긴 성적표와 추천서를 믿고 이들을 채용하지 않는가.그러나 우리들은 제자의 잘못된 행동과 무질서한 생활을 보고도 크게 꾸짖고 나무라서 인간이 되게 하였던가. 아니면 그의 행동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학점만 취득하면 졸업을 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이와 같이 산만하고 무질서한 분위기 속에서 진정으로 고매한 인격이 형성될 수 있으며 훌륭한 미래의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고,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수있을까. 이제 우리는 학문의 연구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맑고 향기로운 신선한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자. 셋째는 오늘날 대학의 캠퍼스는 어떠한 집단보다도 가장 무질서하고 지저분하며, 과소비로 쓰레기가7滑한 곳이다. 학생들은 담배를 피워야 할 자리와 그래서는 안 될 곳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꽁초를 아무 곳에나 마구 버린다. 또한 엄연히 게시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데나 대자보를 붙이며, 현수막을 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느 누구 하나 철거할 줄은 모르고 그대로 방치하고 만다. 거는 사람이 뗄 줄도 알아야 한다.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 표시를 해두면 더 기를 쓰고 올라가고, 금연 표지를 하여 두었건만 오히려 그 곳이 흡연 구역이 되고마니, 우리는 이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의 질서 의식조차도 못 가르쳤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화장실에는 낙서가 가득하며 연구실마다 폐지로 쌓이건만 어느 누구 하나 치울 줄 모른다. 우리들이 마구 쓰고 버린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50여 명의 청소하는 분들이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며, 매일 h톤청소차로 한 대 가득하다. 왜 우리 대학에는 재활용도 할 수 없으며 우리 스스로 주변을 깨끗이 하지 못할까. 이제 우리는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맑고 향기로운 캠퍼스를 가꾸어 가자.

넷째는 이 농악은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삼보의 언덕이며 불교의 종립대학이다. 그러나 동국 인들의 신심은 날로 약해져 가며, 불교적인 분위기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곳에서 불교의 학문적인 정립이 되어야 하며, 불교와 제 학문 간의 연관을 맺을 수 있는 응용 불 교학이 나와야 한다. 그때 비로소 건학 이념이 바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뿐만 아니라 여기서 한국 불교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도제의 교육 기관이 돼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이 학교를 졸업하는 종비생은 20명에도 못 미치니 어찌 도제양성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불 교학은 불교에서만 머물고, 타학과와는 무관하게 되었으며 다른 전공자들도 자신의 전공과 불교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신심 나는 맑고 향기로운 도량을 가꾸어 지혀曄와 자비의 등불을 밝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 학교의 모든 교수 직원 학생들은 이 운동에 동참하여 캠퍼스를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 가자.

 

 

 

정각논단
환경문제의 본질적 이해와 범우주적 가치관 /  김병식 (화학공학과 교수)

1. 서언

우리는 지금 맑은 물, 맑은 공기, 쾌적한 환경에 모두 목말라 하고 있다. 이의 개선과 해결을 위해서 나름대로 모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노력을 보다 잘하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를 보다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에는 환경 문제를 돕고자 하는 행위와 노력들이 문제 해결에 접근하기보다는 더욱 큰 또 다른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때문이다. 예를 들면 서울의 공기 오염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수소 연료형 혹은 전기자동차 개발의 경우를 보자. 수소 자동차의 실현으로 서울의 공기는 한시적이고 부분적으로 개선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에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를 생산하는 데에는 그 몇 갑절의 환경 파괴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수소는 원유를 정유공장에서 반응, 정제하여 만든다.

그래서 본 고에서는 환경 문제를 기술적 정책적 차원에서가 아닌, 그 밑바닥에  담겨진 본질적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이해를 돕고 이를 기초한 나름 대로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제시되는 방안은 기술적이거나 현실적으로 구체적 방법이 아닌, 도덕적, 종교적 접근이 될 것이다. 특히 만물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불교적 사물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환경 문제를 다루는 데 절대적 방향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2. 환경 문제의 특성

 

가. 환경 문제의 필연성에 대한 이해

환경 문제는, 결론부터 말하면, 본질적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 문제는 더욱 어렵게 되어 오염과 파괴를 심화시킬 것이다. 환경 파괴와 오염은 우주적 개념으로 볼 때,피할수 없는 절대적 변화공정이다. 이를 그림 1에 엔트로피적으로 설명하였다.

 

 1 멘트로피로 살펴본 자연 변화에 따른 무질서의 필연성

 

그림 1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엔트로피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면, 이 법칙은 자연이 변화하는 총체적 변화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법칙이다.이 법칙은 증명되지 않은 법칙이나 대부분의 자연과학자들은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 또한 이 법칙이 크라우시스에 의하여 1800년대 후반에 제시된 이래 한 번도 이에 반하여 나타난 자연 현상은 없었다.

인간을 포함하여 삼리 만상, 모든 자연은 움직이며 변화한다. 움직이며 변화하지 않는 물질은 없다.이 변화는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지고, 인간이 자동차를 만들어 타고 다니며,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는 일체의 변화를 포함한다. 이 변화들을 자세히살펴보면, 무질서하게 배열된 분자의 물질에서 질서있게 배열된 분자의 물질로 변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되기도 한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들이 모여서 자연은 큰 변화를 이룬다.

여기에서 엔트로피법칙은 이 총체적 변화는 질서있는 분자나 물질의 상태에서 무질서한 엉망인 상태로 변화하여 간다는 절대성을 가리키는 법칙이다.이러한 예측은 과학자에 의해서만 설명된 것이 아니고, 역사나 사회학 또는 철학을 하는 학자들에 의해서도 이미 간파되어 왔다. 생자 필멸(生者f叔), 회자 정리(看者定陵)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기에 불편한 환경인 무질서한 쪽으로 자연이 변화되는 이 방향은 순리이고 필연이어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나. 환경 문제의 복잡성

 또한 환경 문제는 구조적으로 갈등 구조이다. 환경문제에 관한 한 개인, 단체, 국가 모두 입장이 다르다.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경제 성장이 긴요하다. 유권자의 생활 수준 향상이 위정자의 정치적 목표이기도하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환경 문제는 손등과 바닥으로 하나의 문제이다. 성장만큼 오염은 증대된다.기업도 마찬가지다. 생산에 의한 이윤의 창출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환경 파괴는 동전의 앞뒤면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보호에 소요되는 재정 부담, 편리 및 개인의 이익 등 환경에는 이해가상'충된다.예를 들어 보자. 자동차를 타는 사람과 걷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이 더 환경에 유익한 행동인가. 말할 것도 없이 걷는 쪽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환경 보호에 유익하다는 이유로 그를 걷도록 할 수 있을까. 이는 어려워 보인다. 자동차를 타는 일에는 편리함, 효율적인 활동력, 자기 능력의 멋진 표현 등 현실적 이점이 있어 이를 극복할 만한 차원 높은 가치관이 없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확실치도 않으며 먼 훗날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직접적인 자기 손실(?)을 감수하라는 요구는 무리해 보인다.

그러면 이를 극복할 만한 차원 높은 가치관이란 무엇이고 과연 이것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있다면 이것이 교육에 의해서 가르쳐 질 수 있는 것인가. 많은교육자, 기업가들은 어떤 사람을 그 자신의 이익에 관한 가치관에 대해서 교육시기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행동하는 데 기준이 되는윤리, 가치관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를 환경 문제와 더불어 생각하면서 그 해결책을 살펴보자.

 

3 윤리적인 사람

 

전통적으로 가치가 혼돈되는 경우, 이를 위한 길잡이로서 윤리 도덕이 체계적인 방법으로 사용된다.누구나 인간은 도덕적이길 기대한다. 특히 모두의 이해 관계가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나와 남의 생활권이 서로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요즈음에는 특히 인간이 도덕적이길 서로 기대한다. 그러나 '도덕적이다'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사람이 윤리적이다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는 세 가지 기준이 있어 보인다.

① 어떤 일련의 체계화된 가치관을 가지고 이 체계에 의해서 행동하는사람.

② 역시 한 집단에 의해서 세워진 가치 체계에 의해서 행동하는 사람.

③ 범 우주적인 가치 체계에 의해서 행동하는사람.가장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윤리는 어떤 일련의 가치 체계이다.

 

가. 개인의 가치

윤리적인 사람은 일정한 자신의 가치 체계 위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그리고 윤리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지속시킨다. 그러므로 윤리는 터무니없이 자기 부정적이지도 않고 조리가 없지도 않다.또한 개인적 윤리는 얼마든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들 누구는 어린이의 입을 막는 것을 옳지 않다고 믿는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두 쪽은서로를 비난할 만한 아무런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다.의심할 바 없이 누군가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그것들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개인적 책임과 자율이 좋다면 개인적 가치관의 개발은 좋은 것이다. 즉 누구든지 개인적 윤리 기준一그것이무엇이든지 상관없이一을 적용해야 한다. 개인이 그의 가치관에 의해서 산다는 것은 공식적인 요구이며 충분하고도 본질적인 것이다.

 

나. 집단의 가치

두번째 경우의 윤리는 어떤 집단 즉 지역이나 사회 또는 전문 집단에 의해서 공유된 일련의 가치 체계로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윤리적인 사람으로 인식되는 자는 실제로 이러한 가치 처며에 밀착된 사람이다. 여기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 집단이 공유한 가치 체계를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인간은 사회의 일원이며 그래서 집단 즉 지역사회, 학교, 전문직, 지방, 국가 등의 일원으로서 혜택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 혜택의 인식 아래 무거운 짐과 의무 및 책임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이것들은 규칙들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법칙들이 꼭 완전하거나 특히 좋기 때문에 그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시민으로서 학생으로서 전문가로서 그들은 적정한 법을 지켜야 한다. 이 러한사회에서의 균형 잡힌 법들은 모든 이에게 이익을 주고 잘 운용되며 이 법을 만드는 데 누구든지 발언권을 갖는다. 그러나 비평 등 사회인독재 국가 사회에서는 이는 전혀 그럴 듯하여 보이지않는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법은 소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고 이를 위하여 누군가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자기가속해 있는 사회의 법을 지켜야하는 일반적 의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부도덕한사람이다.이러한 윤리적 개념은 윤리에 대한 일차적 논의를 뛰어넘어 어떤 이점을 갖게 한다. 아마도 공유된 일련의 가치 기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긴장과 충돌을완화시키고 믿음과 안전을 증진시킴으로써 누구에게든지 이익을 주는 듯 싶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불일치하는 의견들이 이러한 개념 위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러한 의견들은 규범이 말하는 바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혹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이러한 경우를 살펴보자.

'차이나 신드롬' 외 영화에서 TV 진행자는 핵에너지 공장의 엔지니어와 인터뷰를 시도하고 있었다.그 엔지니어는 그의 고용자에 의해서 swAr 팀에 참여하도록 강요를 받고 있었는데 그는 그 반응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를 공개하여 버리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러나 폭로하기 직전에 그는 몹시 당황하여 몸서리치면서 그의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매우 복잡 미묘한 문제다라고. 그가 복잡하다고 생각한 것은 단지공장과 관련된 핵 반응기와 기술이 그렇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고용자의 뜻에 매우 반하여 언론에 직접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그 직장의 윤리 도덕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하는데 이는 고가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반면에 그는 반응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폭로가 사회적으로 매우 유익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고용인은 고용자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一침묵도, 폭로도.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치관이 혼돈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도덕적으로 행동하고자한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떤 공유된 가치에 의해서 사는 것은 공식적이며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정말 그것은 그렇다.

 

다. 범 우주적 제3의 가치

 그러면 어떤 보편 타당한 열리진 제3의 가치는 존재하는가. 개인이나 사회가 윤리적 규범으로 모두 받아들일 만한, 사회를 초월한 어떤 범 우주적 가치는 있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다른 것보다 우수한 어떤 가치, 이것이 사회에 의해서 거부되더라도 받아들일 만한 가치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란 이러한 가치들에 의하여 행동하는 것이라 볼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 개혁자, 시민의 지지를 받는사회운동가, 즉 휘슬을 부르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가치가 그 사회에서 지키도록 되어 있는 규정된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 가치가 우주적으로 타당하다거나, 혹은 절대적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가치들이 지금까지 받아들였던 것보다 우수하다고 믿는다. 선진국의 민주적 전통은 정의, 공정, 민주, 자율, 책임에 큰가치를둔다. 우리는 이 가치가 우수한 것이며,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믿고 있다. 사회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비판하거나 발전을 위하여 그 가치들에 호소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잘못 세워진 집단의 가치나 법칙을 비굴하게 지킬 필요는 없다. 법을 지켜야 하는 전제는 그 법이 공정하며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 정의롭지 못하고 비합리적일 때는 그 법을 바꿀권리, 아니 더 나아가 의무를 누구나 갖는다. 극단적인 경우로, 현행법이 잘못되어 있어 계속 시행착오를 일으키면 시민들은 그 법을 파기하도록 선언하고 불복하여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가치들을 적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란 윤리적 이론에 무지하고 또한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4 불성과 제3의 가치관

 

 우리는 위에서 환경의 본질, 인간의 도덕적 기준 그리고 우주적 가치관 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러면 범 우주적 가치관. 즉 자기의 이익과 입장을 초월한 가치관은 무엇이며 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전체를 하나로 보는 불이론(不二論)적 입장인 불교적 이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나는본다.자연에 존재하는 무생물 식물 동물 할 것 없이 ''모든 물체는 존재하여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불경은 선언하고 있다. 그 이유까지 분명하게 법상과 불성의 의미를 통해 우리에게 연기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를 그림 2로 나타내어 보았다. 환경 문제는 인간 곧 자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그 답이 없다. 국가와국가, 개인과 집단의 끝없는 싸움과 오염 및 파괴 속도만 증가시킬 뿐이다. 마을, 우리 국토, 지구, 우주 모두를 하나로 보는 혜안이 없이는 환경 문제의 해결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6. 결언

 

나는 인류 최고의 환경론자로서 종정 성철(,臘)스님을 꼽는 데 주저치 않는다. TV가 비추어 준 스님의 생전 생활 도구는 사시는 데 필요한 최소의 것들 뿐이었다. 옷두벌, 몽당연필, 볼펜 한자루, 고무신 한 켤레가 그것이었으며, 이쑤시개가 무뎌지면 다시 깎아 쓰셨다고 한다.

이는 우주적 입장의 삶에 대한 지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였으리라 본다. 아마도 단순한 절약적 차원에서는 그러한 말뿐이 아닌 일생을 통한 실천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개인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행위는 옳지 않은 것이다.이는 다음 생으로 태어나 살아가야 할 뭇 생물一미생물, 식물, 동물, 사람 모두를 포함하여一에 대한살생 행위인 반종교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덜 쓰고, 적게 소유하며 절제하는 생활 태도야말로 윤회에 의하여 계속 태어날 숱한 미래의 영혼들에 대한 자비 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러므로 부자가 되었다고 물건을 사재고 낭비하는 일은 단순히 경제적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정도가 아니라 우주적 가치 기준으로 볼 때 이는 커다란 반자인 행위인 것이다.

이 생각과 이론은 환경 문제를 다루는 데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를 근거로 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하여 우리의 새로운 모델이 설정되어야 한다. 환경 문제는 그 속성상 우주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합일하려는 깊은 통찰과 본질적 이해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리강좌
칭명과 염불 /  편집위원

불교 신앙을 대표하는 염불

우리는 흔히 '나무 아미타불' 이라고 되풀이 하여 부르는 것을'염불한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염불한다는 말은 그다지 좋은 어감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쓸데 없는 짓 또는 쓸데 없는 말을 되풀이 하는 경우에 이 말이 특별한 의미도 없이 사용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 습관은 우리의 역사에서 한때 불교가 배척되었던 데서 기인한 것이기도하겠지만, 그만큼 염불이라는 말이 불교 특유의 신앙적인 이해가 결여된 채 사용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는 어쩌면 불교 신자에게도 예외가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보통 염불이라고 칭하고있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칭명' (稱名)이라고 해야 한다.

이 칭명이 왜 염불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대로 염불의 의의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

불교의 신앙 형태는 여러가지가있다. 그 중에서 염불은 불교 신앙의 특성을 대변하는 본질적인 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염불' 이라는 말이고 자체로써 곧바로 불교의 신앙형태를 대표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왔다는 사실은, 염불이 불교 신앙의 실제에서는 그즛뇹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의 속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흔한 예를 들어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라는 속담 은제가 맡은 일에는 정성이 없고 제이끗에만 마음이 쏠린다는 뜻으로쓰인다. 이 속담은 스님들이 주로 맡은 일은 신도들을 위해 염불 하는 데 있다는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무엇을 염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하는 말로는 '염불 외듯' 이라는 표현이있다. 이 말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중얼거린다'는 뜻으로 두루쓰인다.

실제로 염불은 그 내용을 굳이 남에게 알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자기의 염원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부처님을 계속ㅎ때 부르는 소리를 통해 그 염원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염불이기때문이다. 즉 염불은 부처님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칭명(僻)의 행위를 가리키지만, 그 실제의 내용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한다는 염불(念줆莽) 그대로이다.

 

염불에서 칭명으로

 

염불이 처음부터 칭명률 가리켰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불전에서 사용되어 온 염불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을 기억 또는 상기하는 것이며, 부처님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부처님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염불이다,

불교에서는 예로부터 6수념(隨念)이라고 하여 여섯 가지 대상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법을교시하였다. 이 여섯 대상 중의 첫째가 부처님이다. 나머지는 교법(法), 승가(憎), 계율(戒), 보시(施), 천계(天몌다. 이 수행법이 후대의 대승불교에서도 중요한 수행법으로 채용되었다.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 이외에도 많은 부처님들이 어느 때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믿고서 그 부처님들에 대한 신앙이 특히 강조되었으므로, 그들 부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자 하는 견불(免佛)이 강하게 요구되었다. 이리하여 부처님을 직접 볼 수 있는방 법으로서 염불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다시 말하면 부처님에게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부처님이 눈앞에 출현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길, 어느 여인과 교제하길 바라는 사람이 오로지 그 여인을 계속 생각한다면 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처럼 염불은 견 불의 방법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을 눈앞에서 보고자 하는 견 불의 방법을 정리하여 관불(灝佛패라는 수행법이 등장하였다. 관 불은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을 대상으로 하는데, 석가모니의 신체상의 특징으로 널리 알려진 모습들을 차례로 명상하여 부처님을 보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관불의 방법은 드디어 『관무량수경』(觀無量凜甦)이라는 경전에서 아미타불과 이 부처님의 정토(극락)를 염원하는 방법으로 적용되었다. ( '무량수' 라는 말은 아미타불의'아미타'를 번역한 말이다.) 이 경전에서는 아미타불을 부르는 일, 즉자무 아미타불' 이라는 칭명을 강조한다.( '나무'는 名 즉 '부른다'는뜻이다 ) '나무 아미타불' 이라고 소리내어 말함으로써 죄를 용서받고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 경전의 단계에서는 칭명과 염불을 구분하고 있으므로,칭명이 그대로 염불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염불 할 여가가 없는 사람에게 칭명을 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칭명은 염불의 편법으로 간주되어 있지만, 그 둘의 필연적 결부가 이미 예견되어 있다.

관무량수경과 같은 계열의 경전인 『대무량수경』(흔히 '무량수경' 우로 통한다.)은 아미타불이 보살이었을 적에 세운 48가지의 서원으로 특히 유명한데, 이 중의 18.19. 20째 서원은 칭명에 의한 극락 왕생의 근거로 알려져 있다.이 서원들의 취지는 아미타불을 부르고 의지하는 사람을 임종시에 극락에 왕생토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범어 원전에 의하면 구제 받을 조건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지극한 신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칭명과 염불을 연결하고 있다. 이런 가르침이 관 무량수경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칭명으로 강조되었던 것이다. 한편 『법화경j에서도 '나무 관세음보살' 이라고 칭함으로써 여러 가지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와 같이 극락 왕생을 가르치는 정토 신앙이 중국에서 들어와서는 칭명과 염불을 아예 같은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정토 신앙을 크게 성행시킨 선도(善導) 스님은 염불이곤 칭명을 뜻한다고 해석했는데,이는 앞서 말한 『무량수경』 제18서원에 대한 해석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선도 스님은 극락 왕생의 방법이 적어도 다섯 가지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즉 경전을 읽는독송, 극락의 모습을 생각하는 관찰, 아미타불을 섬기는 예배, 아미타불의 공덕을 칭송하는 찬탄,아미타불을 부르는 칭명이다. 그는 이 중에서 칭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바로 염불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칭명에서 염불로

이지 불교 신앙에서 칭명이 성행했고 이것이 곧 염불로 통용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아마도 그 이유는 칭명이 부처님과의 대면을 희구하는 염불의 편법으로서 누구나 쉽게 실행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 대상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일반 신도들의 공통적인 속성이다. 이 점에서 칭명은 본래의 염불을 위한 보조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칭명과 염불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염불의 본래 의의를 생각하지 않고서 칭명인 염불만을 중시함으로써 신앙 상의 폐단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선도 스님을 따르는 신도들이 극락을 그리워한 나머지 자살까지 하는 등의 현실도피적인 경향을 보였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염불이라면 칭명을 통해 응당 부처님의 가르침과 공덕을 생각하고 그것을 자기 생활의 신조로 길들이는 습관이 병행되어야 할것이다.

 

 

 

경전의 세계
금강경 / 편집위원

금강경은 교종인 상론이나 법상, 화엄, 천대 등뿐 만 아니라 선종에서도 근본 경전으로 삼는 중요한 경전이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일찍이 하택 산회가 그의 어록에서 이 경전을 가리켜서, ''일체행은 반야바라밀행이니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최승 제일이다.-라고 하였으며 육조단 경에서도 ''이 경올 지니면 곧 견 성하여 반야 삼께에 들게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이 경영은 둘 중에서 금강석이 모든 것을 끊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가장 단단하고 완벽한 반0백 지혜로 피안에 이를 수 있으며, 모든 집착과 분별심을 끊어지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이 경전의 한역은 여러 번에 걸쳐서 이루어졌는데,최초의 것은 후진의 구마라집이 402년에 번역한 것으로서 이는 현장이 번역한 대반야경의 600권 중에서 제9회 제557권인 능단금강분의 별 역으로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 또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하며, 줄여서 금강반야경 혹은 금강경이라고도 하는것이다. 특히 이 경은 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날리 수지 독송 되어 그 주석서만 해도 800여 종에 달했다고 하며, 금강경오가해라고 하여 구마라집의 한역에 양 나라의 부흘과 당나라의 혜능과 종말 및송의 여보 노천 등 5인이 주석한 내용을 엮은 주해서가 유명하다.

또한 금강경은 그 성립 시기가 대략 서기 150년에서 200년 경으로 추측되어서 대승불교의 초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에서는 대승이나 소승과 같은 술어를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흔히 반아부 경전 계통에서 살필 수 있는 공사상 등이 서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소승과 대승이 격렬하게 대립되기 전에 유포되었던 대승 사상을 함축한 경전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전은 또한 이보다 먼저 설한 것이 화엄과 야함 및 방등경류요, 뒤에 설한 것이 법회 . 열반경류이므로 오시에서 본다면 한 중간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와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그리고 전에 설한 것은 세간법으로부터 출세간법으로, 숙제에서 전제로 들어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즉 불과 유에서 유로 가는 데 지나지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유를 파하고 공을 나투며, 상을 떠나서 성을 밝히어 무상(斛目)의 종(宗)과 무주(無主)의체(體)를 세우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중생계의 현실 세계로부터 열반의 이상 세계로 가는 관문이 있는데 이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오직 지혜가 필수 불가결로서 중요한 시기와 지위에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때에 맞추어 설하셨다는 것이다.

육조 혜능 대사는 그리하여 이에서 무상으로 종으로 삼고, 무주를 체로 삼으며, 묘유(妙有)를 용(瑁)으로 삼았던 것이다. 먼저 종으로 삼은 무상이란, 모든 법에는 어떤 모양도 없다는 것이 근본 이념으로,이는 일단 모든 것을 부정하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어떤 존재를 인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높은 경지의 존재일지라도 결국은 상대적인 유의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부정해서 그 가운데서 主월적인 영원한 존재와 자아를 찾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경전에도 모든 존재는 모양이 다 허망하여 진실한 것이 아니므로, 모양 아닌 것으로 보는 지혜가 참으로 부처를 보는 안목이라고 설해져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추함이 없는 것을 근본의 체성으로 삼는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존재와 판단을 인정치 않는 것과 그 개념이 같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무상한 경지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 머문다는 것은 벌써 집착 심이 일어난것이며, 진실한 마음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분별심이라는 것이다. 즉, 물질은 성주괴공으로 그 모양이 변해가고, 정신적인 것은 생주이멸로 그 양상이 찰나마다에 바뀌어가는데, 어느 곳에 머뭄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강경에서는 모든 것은 모양이 없고, 조처가 없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운데서도 어떤 모용이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범 속의 비법이요, 무질서 속의 질서인 법칙성의 존재, 즉 연기법이 상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는 결코 완공이 아니고 활공과 진공으로서 모양이나 추함이 없는 가운데도 어떤 진리인 법칙성은 존재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진리의 작용이 모유의 용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경에는 지혜를 일깨워 주는 중요한 교의와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수지하거나독송하면 많은 공덕이 따른다는 것이다. 즉 ''황하의모래와 같이 많은 몸을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의 사구게 한 구절만을 외운 공덕에 비기지 못한다.''거나, ''만일 삼천 대천세계 중에 있는 수미산 만한 칠 보 무더기를 가지고 어떠한 사람이 보시에 사용하더라도, 반야바라밀경 중의 사구게 등을 지녀 이의 뜻을 알고 외워서 남을 위하여 설명해 준다면, 이는 앞에서 말한 보시보다 백 배의 복덕이 있으며 백천만억 내지 숫자가 있는 대로 비유를 들어 말할지라도 능히 표현할 수가 없는 복덕이 있는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 등이 이를 잘 말해 준다.이러한 금강경이 불교의 전역 시대인 양 나라를 거치고, 종류 시대인 당 때와 유지 시대인 종을 거쳐오면서 중국의 모든 시대를 풍미했는데, 여기에서 산출된 금강경오가해는 금강경에 관한 인도 유식 가들의 논리해석으로부터 중국 선사상의 형성과 발전에 이르는 대표적인 주석을 가려 뽑아서 의식적으로 배열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강원의 사교과 중에 이 금강경에 관한 교육이 있으며, 원효 스님의 금강반야경 소를 필두로 원 측 스님의 금강반야경소 등 많은 저술이 있다.특히 금강경오,가해에 관한 실의가 조선 초에 함하에 의ㅎ때 찬술되었는데, 이는 선과 교의 융합을 의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고, 이후에는 선종에서 이 경을 지도 이념으로 오늘날까지 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에 관한 우리 국민들의 사경 불사나 석경 조성 등은 그 영원한 신앙성을 말해 주는 것으로서, 어떠한 경전보다도 우.리 일상 생활과 친밀해져 있음을 나타내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주문
참다운 개혁 /  이만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경전에 보면, '올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말할지라도 삿된 법은 '정법이 되나, 삿된 사람이 정법을 말할지라도 정법은삿된 법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불교에서는 사람의 사람됨을 강조한 교리 저며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리하여 아득히 저 말리산을 넘어서 이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에 관한 어떤 인식도 자기 자신에게는 무의미하며, 절실하지 못하다면, 그것에 대한 강요는 오히려 의혹만을 쌓이게 하거나 회의만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인식의 주인이 자기이며,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내용이 자주 역설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에 우리 나라의 조계종에서는 법승가종단 개혁추진회(범종추)가 주축이 되어 불교계를 혁신하려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서 모든 불자들은 물론이고 관심 있는 국민들의 초미의 사건이 되었는데, 이는 50년대의 불교 정화 운동 이후에 가장 많은 사부대중이 참여한 데서도 그 역사성이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 우리 불교 종단에서 개혁운동을 부르짖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대부분이 어디까지나 종권 유지나 몇 사람의 사전 의도하에 이루어졌던 당리 당략적인 운 동세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범종 추가 쟁취한 것은 이와 같은 구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점도 있지만, 불교계도 이체부터는 스스로 자림해서 한 시대나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강력한 집단이 되었다는 데 대단한 자부심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실로 500여 년 만에 불교계가 자체의 노력과 투병으로 정치 권력과 힘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데 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 동안 조계종의 종헌 혁명는 삼권 분림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지만 총무원장 한 사람에게 거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는 실질적인 교단의 발전과 신도들의 권익 및 증가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임명제였던 각 사찰의 주지를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한다든지, 그 예산과 지출 등을 공개하여 투명성을 보일 때라 사료된다. 한 나라의 문화는 500년을 대략 한 주기로 해서 흥망 성쇠가 반복되고 성인도 이 주기를 중심으로 한 분씩 출현하신다고 한다. 그렇지만 진리인 종교는 그 생 명성이 더 길어서 1만 년을가며, 인류가 이 세상에 존속하는 한 언제까지나 함께 한다는 것이다. 불교가 진리인 이상 조선시대에 잠깐 그 흥쇠가 있었지만, 본래 그 자체에 이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관리를 일부 사람들이 잘못했을 뿐이다. 이번의 개혁 운동을 기반으로 해서 우리에 불교가 다시 건실하게 자리잡았으면 한다.

 

 

 

불자탐방
경주병원 법당 해인 스님 / 편집부

포교는 물론이거니와 불교의 사회 봉사라는 측면에서 동국대학교 부속 경주병원의 개원은 매우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물론 개원 당시 이미 부속 한방병원이 진료를 하고 있었지만 경주병원이 종합병원이라는 점괘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기여도를감曾}할 때 그 상징적인 의미는 그만 클 크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단에서 이미 경주의 두 곳 병원 이외에도 포항병원과 동국한방병원, 인천의 길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분당 신도시에 한방병원을 개원할 예정이어서, 불교의 사회봉사라는 의료원의 실림 목적을 충족시키고 육체적으로 고달픈 환자들이 귀의하여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는 법당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경주병원 법당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힘쓰시는 해인 스님을 만나뵈었다.

바쁘신 중에서도 귀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주병원 법당은 언제 개원하였습니까.

지난 '92년 4월 30일 월산 큰스님을 증명법사님으로 모시고 오 녹원 이사장 스님, 배 도원 화계사주지 스님, 총장님을 비롯한 학교 보직 교수님 등을 모시고 개원하였습니다.

환자둘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시다 보면 스님의 수행에 지장이 오리라 생각되는데 어떠신지요

저는 '내가 어떻게 살더라도 포교를 해야겠다.' 는 생각을 출가 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병원에서 그 일을 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저는 선방에 가서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은 특별히 하지 않았지만, 꼭 선방이 아니더라도 대공부를 한 다음에 포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여러 스님들께서는 공부 따로, 포교 따로 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이 옳았습니다.지금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열심히 수행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곳은 저로서는 아주 좋은 수행 도량인 셈이지요.

병실을 돌다 보면 여러 부류의 환자 들을 상대하게 되는데, 그에 따르는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어려움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을 대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한두 가지 어려움은 있어요.

우선 우리 병원이 불교병원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경주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원환자의 8,90%가 불자예요. 그런데 스님도 그런 면이 있지만, 불자들이 불교에 대한 적극적인 신심이 없어요. 여기가 교회나 성당이라면 아마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느라 사람이 가득 찰 겁니다, 그런데 우리 법당은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환자법회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데 병실마다 다니면서 아무리 오라고 권해도 잠을 자면 잤지 안 내려옵니다. 불자들의 잠든 불심을 깨우는 일이 무척 어려워요.

또 한 가지는 이교도들 문제예요. 기자도 승강기를 타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액자에 경구를 써서 넣어 두었거든요. 그런데 누가 그걸 부수든지 꺼내갑니다. 불자들이라면 말씀이 좋다고 생각되면 적어가든지 하지 누가 부숴 가면서까지 꺼내 가겠습니까? 아침에 넣어두면 한두 시간 뒤엔 상당수가 그렇게 되요. 그러니까 그것을 누가 상습적으로 한다는 이야기지요. 또 병실마다 걸린 관세음보살액자를 떼어 놓는다든가 부숴버리는 경우도 허다해요. 그래서 제가 돌아다니면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액자를 닦아서 걸어두기도 합니다. 어떤 환자들은 붙잡고 하나님 믿고 천당 가라고 쪽지를 주기도해요. 이교도들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앞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시다면 한말씀해 주십시오

 지금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장소가 확보되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환자들을 대상으로 간이 도서관을 만들어 불교 도서의 대출 사업을 확대해 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책도 늘려야 되고 도서 대출 업무를 담당할 직원도충원해야겠지요. 지금 있는 책들은 법당 운영비를 쪼개어 구입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는 않아요. 뜻 있는 불자님들께서 불사를 기증해 주신다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부처님과 새 인연을 맺는 뜻 깊은 공덕을 쌓게 될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개원 기념일에 맞추어 환자 위문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환자들에게는 삶의 의욕,기쁨 같은 것이 필요하거든요. 그것을 전해 주고 싶어요.

경주병원내 신행 단체의 활동상황동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경주병원 불자회가 조직이 되어 각종 행사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소모임으로 합창단, 다도모임인 다정회, 산악회가 있습니다- 이번 달(5월)까지는 성 낙진교수님께서 회장을 맡아 수고해주셨는데, 이번에 새로이 임원진이 개편될 예정입니다. 어느분이 회장이 되더라도 잘 해주시리라생각해요.

교직원들이나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해 주십시오

 소를 물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지요..그것과 마찬가지로 신행 활동을 하는 것도 어느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봐요. 스스로가 부처님의 가르침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속에 절실히 와닿도록 신심을 가지고 정진했으면 해요.

그리고 학인 스님이나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포교는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부터 해야지요. 멀리 볼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병원의 환자들에게 어떤 종류이든 봉사하는 것도 포교라고 저는 생각해요.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중생의 벗이고 보살 아니겠어요, 병원에 자주 들러주세요.

환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불서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환자들에게 하루에 한 번씩 천수경을 독송하라고 권합니다. 항상 기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법규경도 좋을 겁니다.

끝으로 법당에서 봉행하고 있는 법회를 안내해 주십시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8시 30분에 아침 예불을 올리고 있고, 첫째 주와 셋째 주소 요일 오후 5시 30분에 직원 법회를 갖고있어요. 환자 법회는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있습니다.

바쁜 시간 내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국과 불교
항일. 승격운동. 장기 휴교 / 편집위원

동국의 학생회 활동은 역사적 유구함과 함께 그 의연한 정신 전통이 더욱 돋보인다. 명진학교 이래  학생회 구실을 해온 것은 膚學會쉈다. 이 모임은 교수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운영제였다. 그러던 것이 중앙학림 시대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그들만으로 구성된 독자적인 학생회를 조직하였으니 甬自已會가바로 그것이다. 당시 국권 상실에 대한 분개심과 그 회복에의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던 학생들은 이 유심 회를 중심으로 더욱 굳게 뭉치고 있었다. 크리하여그들은 수시로 桂洞에 있던 萬悔 스님의 댁을 찾아 시국을 토론하거나 憂國의 정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던 중, 민족의 분노가 폭발하고만 1919년 3월1일이 왔다. 전날 밤 만해의 지시를 받은 중앙학림의학생들은 이에 조직적인 대활약에 돌입하였다. 그들은 감시의 망을 피해 각기 자신의 출신 지방으로 내려가 속속 시위 운동을 주도하는가 하면, 서울에서는 신상완 , 백성욱 . 김범린 . 김대용 등의 항일 운동의 자금을 조달하고 중앙과 지방간의 긴밀한 연락을 맡는 등 대대적이고 장기적인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거센 불길처럼 타올랐던 항일 운동으로 각급 학교들은 일시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학림 또한 예외가 아니었으며, 일제의 무자비한 총검 앞에 표면상 상황이 조용해진 5월 초에 이르러 다시 학교의문을 열 수 있었다. 이 무렵 중앙학림은 초대 학장이던 美大蓮이 물러나고 朴朝이 그 뒤를 이었으며, 學監도 李古鏡에서 金晶海로 바뀌었다. 다시 학교가문을 열었훌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나 다름없이 등교하였지만 그들의 결사적인 항일 투쟁은 더욱 본격화하였다. 상해 임시 정부에 대표를 파견하는가 하면 다시 임시 정부로부터 국내에 특파되어 은밀히 활약하기도 하고, 상해 임정과 국내 항일투사와의 비밀연락을 맡는 등 중앙학림 학생들의 끈질기고 장기적인 항일 운동은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차츰 일제의 주시하는 바가 되었다.

한편 이 무렵부터 중앙학림 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불교 청년회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지고 있었다.본래 불교 청년들의 움직임은 1914년 여름 불교고등강숙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제의 불교 정책에 순응하기만 해온 흙寺 주지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한국불교를 되찾자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불교고등강숙을 폐교시키는 등 주지측의 횡포로 그 활동이 잠잠해졌었다. 그러나 이 무렵 3 . 1운동의 영향을 받은 젊은 불교인들이 일심 단결하여 다시 일어섰으니 곧 간악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1920년 6월 26일중앙학림의 젊은 구도자들이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또 이듬해 가을에는 3 . 1운동 이후 노도와 같이 이 나라를 휩쓸던 민족의 계몽 운동에 발 맞추어 한용운을 중심으로 하는 「鱗會」라는계몽 단체에 중앙학림 학생들이 벼기 참여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특히 불교유신회는 寺卑'冷을 제정한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에 반기를 들고 신성한 불교가 행정 관청의읜가를 요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戇잣艦을 내세워 전국 승려대회를 소집하는 등으로 일제에 저항하였다. 이 때문에 일제는 중앙학림을 항일 분자들의 소굴이라 하여 계속 감시하는 한편 학생들의 모든 활동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나서는 형편이었다.

1920년대에 접어들자 중앙학림과 불교계는 각각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중앙학림으로서는 전문학교로의 승격이 현안과제로 등장하였고, 불교계는 일제의 사찰령에 대한 찬반 입장으로 인해 조선불교 선교 영종 중앙총무원과 중앙교무 원으로 교단이 갈라져 대립했음이 곧 그것이다. 중앙학림의 전문학교 승격운동은 곧 불교계의 분열 대립문제와도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중앙학림의 문제가 곧 불교계의문제였고, 불교계의 사정은 그대로 중앙학림에도 파급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앙학림의 전문학교로의 승격문제는 1920년대에들어서면서부터 여론화되고 있었다. 여기서 그 당시의 교육계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 즉 전문학교들은 종교계에서 경영해오고 있었다. 이를테면 보성전문학교는 천도교에서, 연희전문학교나 이화여자전문학교는 기독교에서 각각 운영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미 전문학교로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날로 발전하며 면목을 새롭게 해오고 있는데 비해 오직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중앙학림만이아직 전문학교로 승격되지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있다. 당시 중앙학림은 교수 내용이나 또는 시설면에 있어서 타 전문학교들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었던 것이지만 학교 당국이나 재단측이 사회정세에 너무 어둡고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이러한 현실에 가장 민감한 것이 중앙학림 학생들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김대용.신상완 . 김범린 둥 학생들은 누차 회합을 갖고 중앙학림올 전문학교로 승격시켜 줄 것을 학교 당국에 건의하였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에 1921년 9월21일에는 졸업을 앞둔 3학년을 제외한 1 . 2학년 학생 전원이 모여 6개조에 달하는 중앙불교 전문학교 승격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10월 1일부터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진정서를 학교당국과 30본산 연합사무소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당시의 재단 대표인 洪臧은 학생들의 이러한 요구를 급히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정서를반환하였고, 학생들은 앞서 결의한 대로 10월 1일부터 동맹 휴학에 들어가고 말았다.

한편, 앞서 1920년에 접어들어 젊은 청년 승려들의 활발해진 움직임에 대해 잠시 언급한 바 있거니와, 그들은 전국 승려대회를 여는 등의 움직임 끝에1921년 봄에 鸞量寺에 조선불교 선교 영종 중앙총무원을 설치하고 전국 사찰을 통할할 기구로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대부분 주지들이 반대함으로써 불교계는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고 만다. 이러한 불교계의 혼란 속에 중앙학림 학생들의 맹휴 사건이 터지게 되었으므로 그 마무리는 좀체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비록 1922년 1월 12일에 개최된30본산의 주지 총회에서 중앙학림의 전문학교 승격원칙을 결의하긴 하였으나, 이어 청년 승려들의 주지 성토 강연회 개최 및 30본산 연합사무소 초대 위원장이던 용주사 주지 美大藩에 대한 審鼓 纛出 사건 등으로 교계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맴돌고 있었다.따라서 중앙학림 맹휴에 대한 해결은 흐지부지된 재학생들은 등교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교단의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중앙학림의 전문학교 승격 원칙에 대한주지 총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대내적으로는 전문학교 승격에 따르는 재단법인의 구성과 增資 또는 시설 확충 등의 산적한 작업을 추진할 수 없었고, 대외적으로는 3 . 1운동 이후 중앙학림 학생들의 끈질긴 항일 투쟁으로 인해 당국의 간섭과 탄압이 이 무렵에 이르러서는 중앙학림을 폐쇄 시키겠다는 위협으로까지 진전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22년 5월 29일의 30본산 주지 총회에서는 중앙학림의 전문학교 승격을 전제로 5개년 기한부로 중앙학림을 휴교키로 결의하고야 말았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결의이긴 하지만, 당시 교단의 혼란과 일제의 강제 폐교 기미 앞에 일단의 돌파구로서 채택된 안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앙학림은 1928년4월 불교전수학교로 다시 문을 열 때까지 6년간의 장기 휴교가 계속되었다.

 

 

 

비유와 설화
부모위해 몸바친 수천제 / 편집위원

증일아함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그의 아버지를 왼 쪽 어깨에 얹고 그의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얹고는 천만년 동안 의복, 음식 . 평상. 침구. 의약 등을 공급하고 부모님이 어깨 위에서 대소변을 보시더라도 그래도 그 부모님의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생각하였나니, 부모님 은혜의 막중함을 알아야 한다.또 부모님이 우리를 기르실 때에 항상 보호하셨나니,우리도 때를 놓치지 않고 공양하고 효도해야 한다.또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양하는 공덕의 괘보는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의 공덕과 같다'고 하였다.

수천제가 살을 베어서 부모를 구함

 옛날 비바시 부처님이 열반하고 상법({瓠) 시대가 되었을 때였다. 바라나국의 왕 라서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그 왕자들은 저마다 작은 나라를 맡고 있었다.이때 왕은 총명하고 바른 법으로 정치를 하여 국민들을 잘 다스렸으며, 왕에게는 덕의 힘이 있어서 사람과 비가 때 맞추어 왔고 오곡이 풍성했다.

이때 왕이 중용하고 있던 라후라라는 대신이 역모를 품고 갑자기 사병(四兵)을 일으켜 바라나국을 쳐서 대왕의 목숨을 끊고 이어서 제1과 제2의 왕자를 쳤으며 다음에는 제3의 왕자를 치려 했다.

제3의 왕자는 형체가 크고 단정하며 성품이 온화하고 선량했으며 말할 때는 언제나 본음을 머금었고 이익되는 말만을 하여 사람들의 뜻을 상하지 않게 하였다. 바른 법으로 백성을 다스렸고 토지는 풍요했으며, 나라 재산은 충분하여 사방에서 찬미했고 허공의 여러 하늘과 온갖 귀신들까지도 모두 공경하고존중했다. 그에게 한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수천제(須闡堤)였다. 총명하고 인자했으며 보시하기 좋아했고 몸은 황금빛에 일곱 군데(七處)가 원만했으며 상호를 두루 갖추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몹시 사랑하여 잠시도 마음에서 잊은 일이 없었다. 그때 수전제의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궁전을 수호하는 신(守宮神)이 왕에게 말했다.

"라후라가 역적을 도모하여 군사를 일으켜 나라의 왕위를 빼앗고 부왕을 살해했으며 두 형을 체포해서 역시 생명을 끊었습니다. 군사와 말이 오래지 않아 여기에도 밀어닥칠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듬고 몹시 괴로워하면서 어쩔 줄 모르다가 기절해 쓰러졌다. 한참만에 소생해서 작은 소리로 공중에다 대고 말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기에 소리만 들릴 뿐 그 형상은 보이지 않습니까. 아까 말씀하신 바가 사실입니까.''

공중에서 왕에게 대답했다.

''나는 바로 궁전을 수호하는 신입니다. 왕이 총명하고 정직하며 인민들을 올바르게 다스렸으므로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왕은 빨리 피하셔야합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들이닥칠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우선 이웃나라로 피하려 했다.그 나라로 가려면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7일동안 걸리는 길이었고 다른 길은 돌아서 14일 동안 가야 하는 길이었다. 왕은 곧 한 사람이 7일 동안 먹을 양식만을 꾸려두고 궁중으로 들어가 수천제를 불러 무릎 위에 앉히자 부인이 나와서 물었다.

''대왕께서는 지금 몹시 두려워하는 모습이십니다.''

왕은 말했다.

''당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부인이 말했다.

''저와 왕은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어째서 서로 몰라도 된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왕은 위의 사실을 부인에게 알려 주고 곧 태자를 데리고 함께 떠났다, 그들은 워낙 당황하던 터라길홀 잘못 들어 14일 동안 걸리는 길로 접어들었다.그 길은 험난하고 물과 풀도 없었다. 왕의 일행은 앞으로도 수일 동안 더 가야 되는데 양식이 떨어졌다.길은 아직도 요원했으므로 왕과 부인은 소리 높여 슬피 울면서 말했다.

''참으로 괴로운 일이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제까지 이런 고생은처음겸는 일이다.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한단 말이냐.''

마음이 아픈 데다 이제는 굶주려서 거의 죽게 되었다. 왕은 마지못해 생각했다.

''있홀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세 사람이 한꺼번에 죽지 않으려면 무슨 방편이 있어야겠다. 우선 부인을 죽여 그 살을 먹어서라도 나와 아이만은 살아야겠다.''

이렇게 결심을 굳힌 뒤에 행동에 옮기려 했다. 그때에 수천제는 왕의 거동이 이상함을 보고 나아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여쭈었다.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7'

아버지는 몹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마한 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세 사람이 다 죽지 않으려면 무슨 방편이 있어야겠다. 우선 너의 어머니를 죽여서 그 살과 피를 먹어서라도 너와 나의 생명만은 살려야겠다.-

수천제는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께 아뢰었다.

''어디서 어떤 아들이 어머니의 고기를 먹는다 합니까. 저는 어머님의 살은 먹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면 아들과 어머니는 같이 죽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아들만을 죽여서 부모의 생명을 구하게 하십시오.''

왕은 기절했다가 다시 눈을 뗬다.

''어찌 아들을 죽여 먹는단 말이냐,''

수천제는 다시 아뢰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도 저도 다 죽게 됩니다. 그럴 바에야지 한 사람이 죽어야합니다. 이 방도밖에 없습니다. 아들의 간곡한 청을 들어 주셔야합니다. 그리고 저를 한꺼번에 당장 죽이면 얼마 안 가서 피와 살이 냄새 나고 문드러져서 며칠 먹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저의 몸에서 세 근(斤)씩의 살을 베어 두 근 몫은 부모님께서 잡수시고한근몫은 제가 먹어서 생명을 이어 가게 하셔야합니다. 저는 자식으로서 마지막 소망을 아뢰는 것이니, 만일 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도 인자한 부모님이 하실 일이 아닙니다.''

부모는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어 슬피 울부짖으며 그의 말대로 따라하며 자꾸만 전진했다. 몸의 살은 거의 없이 뼈만 앙상하게 겨우 붙어 있었다. 부모가 통곡하며 같이 죽자고 하였으나 수천제는 빨리 목적지로 떠나기를 간청했다. 떠나는 부모를 전송한 수천제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면서 기원했다.

''원컨대 전생의 재앙과 악은 이로부터 다 없어지게 하시며 부모님께 공양한 이 공덕으로 부모님은 열한 가지의 여복을 얻게 하시며 아직도 남아있는 피와 살은 모두 모기와 벌레와 짐승을 위한 보시로 배불리 먹게 하소서.''

이때 천지는 진동하고 제적천왕이 나타나 태자를 본래대로 구하니 신장의 보호함이 되었다. 한편 이웃나라로 간 부모는 왕의 도움으로 라후라를 토벌하고 아들과 해어진 곳을 가보니 꿈인가 생시인가 수천제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닌바 정성이면 천지신명(天爀晫呂)도 감동이라1 그때의 부왕은 바로 지금의 수두단왕(癬磯王)이요, 그때의 어머니는 지금의 마야 부인c攣耶夫人)이며, 수천제는 지금의 구타마 싯다르타 부처님 몸이요, 그때의 제적천왕은 지금의 아야교진여라고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가람의 향기
통도사 / 편집부

불교계에 개혁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참회의 등을 걸겠습니다. 개혁의 불을 밝혀 주십시오.' 라는 슬로건이 말해 주듯이 그것은 구태의 악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불교를 의미한다.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부처님의 근본 정신에 기반을 둔 끝없는 자기 성찰과 수행력을 바탕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불보 사찰인 통도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단지 외형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계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파계를 하고 백년 동안 살기를 원치않는다. (吾寧一日手穢而死 不厚貸百年暴蠟而生)' 는 개산 조 자장 스님의 철저한 계율 정신이 문수보살로부터 진신사리와 가사를 받음으로써 부처님의 인가를 받았듯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개산 정신 때문에 이번 개혁 운동에 종정 월 하 큰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통도사는 자장 스님이 입당하여 문수보살에게서 범어로 된 게송과가사, 진신사리 등을 받고 귀국한 후 선덕여왕 17년(M6)에 창건하였다. 스님은 국동이 되어 보름마다 계율을 설하고 겨울과 봄에 시험을 치르어 지계(持戒)와 범계(犯戒)의 차이점을 알게 했다. 이 때문에 열 집에 여덟, 아홉 집이계를 받고 불법을 받들었으며 출가하고자 원하는 사람이 해마다늘었다. 그래서 금강계단을 쌓고 모여드는 사람에게 계를 주었는데, 이것이 통도사가 창건된 근본이유이다,

'통도사 라는 사명은 '이 절이 자리한 영취산의 모양이 부처님어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취산과통한다. (比山之形 通妗Ep度驢山形y고 해서 지어졌다고도 하며,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 (爲僧者通而度之)' 는 의미라고도 한다. '모든진리를 화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 (通萬法度衆生)' 는 뜻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통도사에는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에게서 받은 가사와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다. 이 금강계단은 통도사의 정신적 근거이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창사의 기틀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략록(通度寺舍利袈鵝蹟略錄』에는 문수보살이 금강계단이 자리할 터를 잡아주는 설화가 전한다 즉, 문수보살이 진신사리와 가사 등을 전해주며 영취산 기슭의 신지(嘶也)에 독룡이 거처하는데 그 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진신사리를 봉안하면 삼재를 멸하게 되어만 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이 그 곳을 옹호하게되리라고 한것이다. 이에 스님은 용들을 위해 설법하 고 못 을메운 후 그

 위에 금강계단을 쌓았다고 한다. 속전에는 자장 스님에게 항복한 아홉 마리의 독룡 중 다섯 마리는 오룡동으로, 세 마리는 산동곡으로 갔으나 한 마리는 남아 절을 지키겠다고 굳게 서원하므로 스님이 고용의 청을 들어 연못의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그 용이 머물게 했다고 한다. 그 곳이 바로 대웅전 옆에 위치한 구릉지로 넓지도 깊지도 않은 작은 연못이지만 가뭄이 외도수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금강계단은 대웅전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는데, 『통도사사적기』에는 이곳에 안치한 사리의 영이(靈異)함에 대하여 열거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리를 예결하기 위해 동구(H司口)에 들어오면 계단의 사리탑 위에서 오색의 광명이 나타나 동리의 산과 골짜기를 밝힌다든지, 사리를 우러러 예를 표할 때 다섯 가지 법신의 향기가 산 내에 감돈다든지, 금강계단 위로는 일체의 날짐승이 날지 않고 시끄럽게 지저귀지않으며 오줌과 똥을 누지 않는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영이 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956년에 대웅전에서 화엄산림을 베풀 때 한밤중에 계단의 사리탑에서 광명이 뻗쳐 대낮처럼 밝았다고 한다.

이처럼 신이 한 금강계단은 고려말과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탈을 피해 불사리가 각각 개경과 금강산으로 피난을 하기도 했다, 사명대사 유정 스님은 은사인 서산 대사 휴정 스님의 명에 따라 잡초와 가시덤불로 황폐화된 계단을 증수하여 11년 만에 사리를 다시 봉안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대와 영조,순조대에 중수를 거듭하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통도사는 상로전(上t歐殿) , 중로전, 하로 전의 독립된 구역으로 나누어 독특한 가람 배치를 이루고있다.

상로전은 금강계단과 대웅전이, 중로 전은 대 광명전과 용화전이, 하로 전은 영산전과 극락전이중심이 된다

상로전의 대웅전은 통도사의 중심 건물로 동쪽에 대웅전, 서쪽에대방광전, 남쪽에 금강계단, 북쪽에 적멸보궁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의 편액을 걸고 있고 건물의 뒤편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부도가 있으므로 따로 불상을 모시지는 않았다. 소 맷돌에 연화문을 새긴 돌계단이 특히 아름답다.

중로전의 개산조당(開山祖堂)은자장 스님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i磁寶閣)의 조사문(祖師門)으로 사당(祠堂)의 솟홀삼문과 같은 형식이어서 눈길을 끈다.

용화전 앞에 위치한 봉발탑은가섭 존 자가 석가모니불의 발우와가사를 미륵불에게 바치기 위해기다라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을 상징하고 있다고 하며, 개산 조당 앞에 있는 석조물은 팔정도를 새겨 이채롭다.

이 밖에도 통도사에는 화엄경변상도와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 경 (文殊舍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 청동은입사향완 등 많은 상보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이돌소장품들은 대부분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부속암자로는 자장암, 극락암,비로암, 백운암, 축서암 등이 있다, 특히 지장암은 금 개구리의 전설로 유명하다

 교통편은 대구에서 부산행 일반고속을 이용하면 된다.

 

 

 

불교 건강법
중풍의 예방과 처치 / 김갑성 (한의대 부교수. 보건소 소장)

중풍은 지난 호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뇌혈관의 순환 장애로 야기되는 일과성 또는 지속적으로 언어 장애나 사지의 운동 마비를 초래하고 그 후유증의 치료가 매우 어렵고또 한그 에 따른 경제적 시간적 가정적 문제를 심각하게 파생시키므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난치병 중의 난처에 속하는 질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양 의학이든 동양 의학이든 일단 중풍 환자의 치료는 가능한 한 빨리 그 환자가 사회 생활에 복귀할 수 있고 또다시 염려되는 재발의 위험성을 최대한으로 방지하는 예방법에 주력하게 된다.중풍 중에서도 혈관이 막혀서 발생되는 뇌경색의 경우, 뇌출혈에 비해서 중풍발생 전에 어느 정도 발병의 전구 증상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나타나는 전구 증상으로는 편즉 상하지가 저려오거나 어지러움, 두통, 오심,목덜미와 후두부의 긴장, 잦은 하품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고 실제중풍으로 이행되는 경우 발병 시간대도 활동 시간대인 낮보다는 수면중 또는 아침 기상 직후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 반하여 뇌출혈의 경우는 예고 없이 발생되며 발병되는 시간대도 주로 낮 시간에 갑자기 발병하여 출혈의 부위와 출혈의 양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특히 주의를 요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우선 중풍 예방법에 앞서 중풍 환자들에 대한 병력의 조사 과정에서 몇 가지 공통된 사항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중풍 발생 전에정신적 또는 육체적 과로가 누적되어 있었거나, 둘째 평소 식생활 중 지방질과 염분의 과다 섭취 및 포만감이 있을 때까지의 과식, 셋째 급격한 신체상의 온도 변화로서 갑자기 몸을 차게 하는 경우 발병률이 높으며 실제로 고혈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에 더욱 주의를 요한다.이를 다시 요약하면 과로를 피하고 음식에 대한 식이요법을 철저히 하고 몸을 갑자기 차게 하는 등의 생활의 부주의를 피한다면 중풍은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기도 한 것이다. 일단 중풍이 발생하여 환자가 혼수 상태에 빠지거나 마비가 진행되기 시작하면 대부분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주의할 것은 혼수 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함부로 약을 복용시키거나 물을 먹여서는 안 된다. 흔히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강제로 입을 벌려 우황청심환이나 평소 상복하던 약을 복용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잘못하면 약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하거나 폐로 흡입이 되어 흡입성폐렴을 유발시켜 치명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환자를 절대 안정시키고 일시적인 뇌압의 상승으로 구토가 수반되는 경우 환자의 머리를 옆으로 향하게 하여 구토물이 기도나 폐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환자의 머리를 약간 뒤로 젖혀지게 하여 줌으로써 호흡이 원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다음 양손가락과 발가락 끝을 소독된 바늘이나 침을 이용하여 출혈시켜 주는 것은 한의학에서는 개규통성법이라고 하여 일시적으로 뇌압의 상승이나 혈압의 상승을 억제하여 주는 작용이 있으므로 권할 수 있으며 이후의 처치나 치료는 전문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끝으로 본인이나 식구들 중에 중풍 환자가 발생했다면 우선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본 인과식구들이 이 병에 빨리 적응을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중풍은 환자나 가족이 기대하는 만큼 빨리 회복을 보이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린마당
마음이 나면 가지가지 법이 나는 것이오 / 신용태 (일어일문학과 교수)

"마음이 나면 가지가지 법이 나는 것이오. 마음이 죽으면 해골이나 다름없다.'' (心生員0飾法生. 心滅闕觴停婁不二. ) 고승 원효 스님의 말씀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누구나 행복하게 살다가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한데, 많은

사람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 하고 물으면, 자신있게

''예.'' 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또이번에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합니까苧 하고 물어도 또한 시원스레 대답해 줄 사람도 드물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부러워한다. 김씨네는 이웃 이씨네의 처지를 부러워하고, 이씨네는 또한

 박씨네의 처지를 부러워한다. 말하자면 사는 기준을 상대적으로 생각하고 저 사람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를개탄한다.

''저만큼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r 하고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막연한 어느 상대의 처지에다 맞추어긋는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무한이라서, 어쩌다 그 선에이르면, 금방 또 다음의 선으로 마음은 치닫는다.인간의 행복은 곧 마음의 작용에서 일어난다. 어느 면으로 봐도 남부럽지 않는 p씨가 고뇌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복은 객관적이 아니라, 다분히 주관적이다.

우리는 ㅁ명인을 보면 연v흐의 정을 느낀다. 앞 못보는, 일생을 암흑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불행한 사람들' 이라고생각한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생활하는 데 조금

 불편하다는 것 뿐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 라고 설파한 어느 맹인의 강연은 그날의 많은 청중에게 큰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오히려 탐욕을 불러들이고 마음에 풍파를 가져다 주는 당신네와 같은 '눈뜬장님' 보다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마음 속으로외쳤을런지도 모른다.

인생에 있어서, 명예, 학문, 재보, 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서도 고뇌 속에 사는 '눈뜬 장님' 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존재하는지 모를 일이라고 그 맹인강연 자는 강조했을 것이다.

병원에 가보면 '무병이 제일의 手" 라 생각되고,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처지를 보면 '지족이 제일의齎 라 절감한다.

강 건너 마을이 살기 좋아 보이지만, 건너가서 살아보면 비로소 살던 곳만 못함을 알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합니까?"

이 난문에 현 답은 이제 자명해진다. 마음, 만 가지의 원동력이며 만복의 근원이다. 육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심안으로 마음을 움직여야할 것이다. '마음의 눈' 이 어두우면 빛이 있으되,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나면 가지가지 법이 나는 것이오''

원효의 이 한마디는 나의 마음이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주며, 나의 발걸음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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